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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3교합일(三敎合一)

 

3교합일(三敎合一), three religions amalgamated into one 종교·철학 용어.

3교는 유교· 불교· 도교를 가리킨다. 유교는 공교(孔敎)라고도 하는데 유가학파가 발전하면서 성립되었다. 유교는 하늘을 받들고 조상을 숭상하여 봉건윤리적인 교화를 완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BC 2세기 한(漢) 무제(武帝)는 유교만을 숭상하도록 했는데, 이때부터 유교는 중국 봉건사회의 통치사상이 되었다. BC 1세기에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2세기에 도교 교단이 설립되었다. 이후부터 중국의 사상계는 유·불·도 3가(家)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3가는 각각의 사회적 기초를 가지고 있었는데, 학설은 차이가 많았지만 서로 통하는 점도 있었다. 중국의 봉건사회 속에서 몇몇 황제들은 3가 가운데 하나만을 믿게 하고 나머지를 폐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다. 2세기 이후부터는 기본적으로 3교가 나란히 성행했다. 남송(南宋)의 효종(孝宗)은 "불(佛)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도(道)로써 몸을 다스리며, 유(儒)로써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다. 반면에 3교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이 몇 차례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 논쟁은 14세기까지 계속되었다. 3교의 차이점과 우열은 논쟁의 주요주제였다. 안지추(顔之推)·도홍경(陶弘景)·고환(顧歡) 등과 많은 사람들이 3교 사이의 모순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해, 3교의 합치를 주장했다.

11세기에 이르면서 3교의 합일은 더욱더 중국 사상의 보편적인 추세가 되었다. 계숭(契嵩)·찬녕(贊寧)·장백단(張伯端)·왕중양(王重陽)·임조은(林兆恩) 등은 모두 3교합일을 적극 주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당연히 자기가 믿는 종교·사상을 3교의 중심으로 삼았다. 사상적인 문화는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관점에서 볼 때, 3교합일은 3교의 교의(敎義)가 장기적인 발전 속에서 서로 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을 때 유교의 윤리설과 융합할 수 있었고, 도가·현학(玄學)의 개념을 빌려서 불경을 해석할 수 있었다. 또한 도교는 5세기부터 불교의 여러 가지 개념과 종교의식을 대량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는데, 많은 도교서적들을 보면 내용에서 용어까지 거의 대부분을 불경에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12세기 이후에 새롭게 창립된 전진도(全眞道)·정명도(淨明道) 등의 교의는 3교학설이 더욱 융합된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10세기부터 유가도 선진(先秦) 유학에 기초를 두고 불교·도교 사상을 크게 흡수·융합시키기 시작했고, 이로써 3교학설의 색채가 농후한 송·명대의 성리학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3세기 이후 백련교(白蓮敎)·팔괘교(八卦敎)·진공교(眞空敎)·동선사(同善社) 등과 같은 중국의 민간종교는 모두 3교합일을 제창했고, 3교의 학설을 혼합하여 교의를 만들었다. 〈서유기 西遊記〉·〈봉신연의 封神演義〉·〈홍루몽 紅樓夢〉 등과 같은 중국 근세 통속문학 작품도 모두 3교합일의 종교적 관념이 깊게 배어 있다. 현재에도 하나의 사원에 3교의 신상(神像)이 함께 모셔져 있는 모습을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3교합일이 11세기 이후 중국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또한 송대 이래로 중국 봉건문화 발전의 전반적인 추세였음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3교가 근본적으로 하나임을 주장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말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 鸞郞碑序〉이다. 〈난랑비서〉는 화랑 난랑을 위해 건립한 비석의 해설로서, 〈삼국사기〉 진흥왕 37년 기사에 일부가 인용되어 전한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나라에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어 그를 풍류도(風流道)라 한다"고 기록하고, 풍류도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 仙史〉에 자세하게 실려 있으나 거기에는 3교가 포함되어 있어 여러 중생을 교화해준다고 했다. 또 효도와 충성은 공자의 뜻이고, 무위(無爲)와 불언(不言)의 가르침은 노자의 주장이며,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가르침은 석가의 교화라고 했다. 이는 유·불·도 3교의 기본 취지가 상보관계에 있고 동시에 한국 고유의 풍류도 정신과 어긋남이 없음을 가리킨 것으로, 결국 화랑도(花郞道)가 3교의 가르침을 포괄하는 풍류도를 사상적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한국 역사 속에서 3교 중의 어느 하나가 지배적 위치에 있을 때라도 그 사상과 신앙의 바탕에는 고유의 풍류도가 바탕이 되어 3교를 포함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특히 삼교합일의 전통은 조선 후기에 발흥한 동학(東學)·증산교(甑山敎) 등 신종교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신종교가 삼교합일, 또는 새로운 종교인 그리스도교까지 포함시킨 것은 유교 중심의 지배 이념이 해체되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흐름이 아니라, 외래 종교를 자신의 삶과 신앙 속에 용해시킨 민중신앙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보인다.

난랑비서 (鸞郞碑序)

신라 말기 최치원(857~?)이 지은 화랑 난랑의 비석 서문.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576)조 기사에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원래 화랑인 난랑의 행적과 화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포함한 장편의 문장이었을 것이나 화랑도에 대한 간략한 지적만이 남아 있다. 화랑도의 정신과 이념을 살펴보는 데 가장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내용은 신라의 화랑도인 풍류도가 유·불·도(儒佛道) 3교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 화랑도를 현묘(玄妙)의 도, 풍류라 일컫고, 화랑의 역사책을 〈선사 仙史〉라 하여 선(仙)과 관련시킨 것이 주목된다. 여기서의 '현묘'나 '선'은 비록 노장적(老莊的)인 용어로 표현된 것이지만 중국의 도교사상이 들어오기 이전 신라의 고유한 무속(巫俗)과 관련된 화랑의 풍속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유·불·도와 관련시켜 설명하는 것은 신라의 화랑도가 유·불·도의 유입과 함께 겪은 일정한 변질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유·불·도 3교의 합일을 주장하는 최치원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은 화랑의 풍류도가 유·불·도 3교의 유입과 함께 3교의 사상을 포괄하며 변화되어간 모습을 보여주고, 아울러 이러한 변화의 귀결인 유·불·도 사상의 강화는 화랑의 풍류도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쳐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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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