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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법가 (法家, legalism)

 

고대 중국 철학의 한 학파.

전국시대(BC 475~221)에 한비자(韓非子)의 영향을 받아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秦:BC 221~206)의 이념적 토대를 이루었다. 법가는 인간의 실제행동에 따라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통치자의 미덕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회적 화합이 보장되지는 않으며, 오직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을 통해서만 사회적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가는 특정한 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상벌을 내리는 법률체계를 내세워 정부를 옹호했다. 또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통치자와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진나라는 이 정책을 가혹하게 실행했기 때문에 결국 15년 만에 무너졌고, 법가철학도 중국에서 영원히 불신받게 되었다.

 

한비자 (韓非子)

 

한비자 (韓非子), (병)Hanfeizi (웨)Hanfeitzu. ?~BC 233. 중국의 법가 철학자.

진왕(秦王) 정(政 : 후의 始皇帝)은 그의 전제정부에 관한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이를 통일국가의 정치원리로 삼았다. 그의 이름을 따라 한비자로 명명된 그의 저서는 당시 법가 이론의 총괄이다.

생애

한비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전국시대(BC 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한비자는 유가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순자를 저버리고 그당시 봉건체계가 붕괴되는 상황과 보다 밀접한 이론을 가진 다른 학파를 따랐다. 자신의 충고가 한 왕에게 무시당하자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솜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에 대해 있을지도 모를 반론에 대한 논박도 글로 썼다. BC 221년 통일 후 시황제가 된 당시의 진왕 정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BC 234년 진은 한을 공격했고, 한왕은 한비자를 진에 협상자로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진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하여 그를 투옥시켰다.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했다.

정치사상

한비자는 정치제도란 반드시 역사적 상황과 함께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유가처럼 과거의 낡은 제도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풍습은 도덕적 감성이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적 여건에 의해 변화하며, 정치제도는 당연히 이것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흉년이 들면 사람들은 그 친척에게도 양식을 주지 않지만, 반대로 풍년이 들면 낯선 사람에게도 음식을 대접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인색하거나 관대하기 때문이 아니고 구할 수 있는 양식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자가 풍부했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재물을 가볍게 여겼으나, 인구가 점점 증가하여 물자가 부족하게 되자 사람들은 재물을 두고 서로 다투게 되었다. 따라서 군주는 사람들을 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백성들은 이기적이면서도 무엇이 진정 자기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군주는 그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해서도 안 된다. 백성들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아서 믿을 것이 못 된다. 유가의 이론에 따르면 덕이 있는 왕만이 다스릴 수 있으며, 덕이 없는 왕은 그 지위를 잃게 된다. 그러나 한비자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통치자의 도덕적 품성이 어떻든 또 그가 어떻게 다스리든 상관없이 권력(그는 이를 愼到의 이론에 따라 勢로 설명했음)을 가졌다는 것은 이에 대한 절대 복종을 요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에게 복종하며, 아들이 아비에게 복종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변함없는 대원칙 중의 하나이다. 군주가 비록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신하는 군주의 자리를 감히 넘보아서는 안 되며, 정치적인 의무는 다른 모든 의무에 우선되어야 한다. 어떤 병졸이 그가 전사하면 부모를 봉양하지 못할까 두려워 싸움터에서 도망쳤다. 한비자는 이에 대해 "효자는 그 군주를 배반하는 신하가 될 수 있다"라고 평했다.

권력은 변덕스럽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공포하면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만 하는 (法 : 商의 법 이론을 따름)을 통해 행사되어야 한다. 현명한 군주는 법에 따라 사람을 고를 뿐 절대 자신의 마음대로 고르지 않는다. 법에 의해 그 대상자의 장점을 평가하고 군주 자신이 판단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어떤 법을 폐지할 권한은 있으나, 그 법이 살아 있는 한은 군주 자신도 그 법에 따라야 한다. 신하들이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게 하기 위해, 또 그 신하들의 반역을 막기 위해 군주는 술(術 : 申不害의 술 이론 계승)을 써야 한다. 전국시대의 통치자들은 정치·외교 및 전쟁에 능한 사람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많은 유세객 속에서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직위를 준 후에 군주는 그가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가를 감시하여, 의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한다. 군주는 어떤 신하의 제안을 승인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게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결과가 계획에 못 미치거나 또는 목표를 넘어설 때도 벌을 주어야 한다.

한비자는 많은 왕들의 왕권을 잃게 한 반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술로써 대답했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이해관계는 일치할 수 없다. 위에 있는 자와 밑에 있는 자는 하루에도 100번씩 싸운다. 그러므로 군주는 아무도 믿지 말고 아첨꾼을 경계할 것이며, 누구라도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나 세력을 가지게 하지 말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첩자를 이용하여 반역 음모를 적발해내야 한다. 왕권이 확립되고 질서가 제대로 잡힌 뒤에 군주는 무력을 사용하여 영토확장에 나선다. 나라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나라가 가진 군사력이며, 이는 경제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농업만이 유일한 생산적 일이므로 다른 모든 직업들, 특히 학자의 일 같은 것은 억제되어야 한다. 빈민을 구제하는 것은 어리석고 공평하지 못한 것이다.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빈민을 돕는 것은 부지런하고 검소한 사람의 것을 강탈해서 게으르고 낭비하는 자들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K.-C. Hsiao 글

이사 (李斯)

 

이사 (李斯, (병)Li Si (웨)Li Ssu). BC 280(?) 중국 중부의 주(周)나라~BC 208 셴양[咸陽].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

무자비하나 매우 효율적인 법가(法家) 사상을 이용하여 여러 나라를 합병하고, 통일제국 진(秦:BC 221~206)을 건설하는 데 공헌했다. BC 247년 진나라로 가서 그후 거의 40년간 나중에 시황제(始皇帝)가 된 진왕 정(政)을 위해 일했다. 진의 승상으로서 BC 221년 이후 시행된 거의 모든 정치·문화의 급진적 개혁을 주도했다. 이사는 전국을 36군(郡)으로 나누었으며, 모든 군은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가 다스리도록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시황제는 화폐단위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또한 그는 천하의 모든 문자를 전서체(篆書體)로 통일시키도록 했는데, 한자(漢字)는 그후 큰 변화없이 지금까지 존속되어왔다. 마지막으로 불온한 사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BC 213년 역사교육을 금지하고 분서(焚書)를 명령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후대 모든 유학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BC 209년 시황제가 죽자, 황위 계승자를 바꾸려는 환관 조고(趙高)의 음모에 가담했다. 그러나 2년 후 둘 사이에 암투가 생겼고 조고는 그를 사형에 처했다. 

  • 참고문헌 (한비자)
    • 저서
      • 한비자(현암신서 37) : 한비자, 남만성 역주, 현암출판사, 1989
      • 순자·한비자(중국사상대계 4) : 한비자 외, 김학주 역, 신화사, 1983
    • 연구서
      • 토끼는 그루터기에 두번 부딪지 않는다 : 김균, 청조사, 1993
      • 중국사상의 이해-공자로부터 모택동에 이르기까지 : H. G. 크릴, 이동준·이동인 공역, 경문사, 1992
      • 중국철학사 : 憑友蘭, 정인재 역, 형설출판사, 1990
      • 한비자 제왕학 : 오까모도 류조, 예맥사 편집부 역, 예맥사, 1985
      • 韓非子のことば(中國の知惠 5) : 近藤康信, 藜明書房, 1967
      • 法家思想の硏究 : 木村英一, 弘文堂, 1944
      • Chinese Legal Philosophy:A Brief Historical Survey, 〈Chinese Culture, 1:7-48〉 : John C. H. Wu, 1958
      • The Legalist School,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 During the Early Tsin Period〉 : Liang Ch'ichao, 1930(reprinted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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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