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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유교의식음악 (儒敎儀式音樂)

유교제례에 쓰이는 음악.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문묘악이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묘에서 제사음악으로 쓰던 것이다. 즉 중국의 고대 음악인 아악에 속한다. 이 곡은 세종 때 박연이 다시 만든 것인데 그 악보가 〈악학궤범 樂學軌範〉에 전해진다. 모두 15곡이 모여서 이루어졌으며 12율(律)을 각기 궁(宮)으로 삼아 12곡을 이루고 거기에다 몇 가지를 더하여 15궁으로 이루어졌다. 종묘악이란 조선의 역대 제왕의 제사 때 쓰이는 제사음악이다. 문묘악처럼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를 갖추고 있어 언뜻보면 아악 같지만 기실은 속악(俗樂)이다. 종묘악의 골자는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으로, 원래 세종 때 만들어졌고 처음에는 잔치에 사용되었다. 세종 때의 보태평은 11곡으로 평조였고, 정대업은 15곡으로 계면조였다. 이들 곡이 종묘악으로 쓰인 것은 세조 때부터였다. 이들은 〈세종실록〉 악보, 〈세조실록〉 악보 등에 전해진다. 유교의식음악에는 대략 편경·편종·축·어 같은 아악기, 방향·당피리 같은 당악기, 젓대·태평소·아쟁·장고 같은 향악기가 많이 섞여 있다. 현재 유교의식음악은 성균관의 문묘제례악 행사에서 연주되면서 전승되고 있다.

 

문묘제례악 (文廟祭禮樂)

문묘제례 때 행해지는 음악.

석전악·문묘악·응안지악(凝安之樂)이라고도 한다. 문묘제례악은 협의의 아악(雅樂)에 해당하는데, 아악은 1116년(예종 11) 중국 송에서 대성아악(大成雅樂)을 들여온 후 그해 10월 태묘(太廟)의 제향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후 문묘에도 사용되었다. 이후 조선초 원(元)의 임우(林宇)가 지은 〈대성악보 大晟樂譜〉에서 12곡을 취해 사용했으나, 1430년(세종 12)에 개작해 그 제도를 재정비했다. 지금은 〈악학궤범〉에 따라 행하는데 해마다 음력 2월과 음력 8월 첫 정일(丁一)인 상정일(上丁日)에 성균관대학교 구내에 있는 문묘대성전에서 열린다. 문묘제례악은 황(黃)에서부터 응(應)까지 12율을 각기 궁(宮:기음)으로 삼은 12곡과 신을 배웅하는 송신악(送神樂) 가운데 〈송신협종궁 送神夾鍾宮〉·〈송신황종궁 送神黃鍾宮〉·〈송신임종궁 送神林鍾宮〉을 더해 15궁으로 되어 있다. 15궁을 묶어 응안지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곡은 〈황종궁〉·〈고선궁〉·〈중려궁〉·〈이칙궁〉·〈남려궁〉·〈송신황종궁〉의 6곡뿐이다. 이곡들은 중국에서 연주되고 있는 문묘제례악보다 더 고형(古形)으로 주(周)의 제도에 더 가까운 음악이다.

아악곡인 문묘제례악에는 당악기나 향악기는 쓰이지 않으며 8음(八音)이 반드시 구비되어야 한다. 사용되는 악기를 팔음에 의해 나누면 금부(金部)에는 편종·특종, 석부(石部)에는 편경·특경, 죽부(竹部)에는 지·적·약·소, 사부(絲部)에는 금·슬, 토부(土部)에는 훈·부, 목부(木部)에는 축·어·박, 포부(匏部)에는 생황·부, 혁부(革部)에는 절고·진고·노고·노도 등이 쓰인다. 이러한 악기들에 의해 문묘제례악은 2개의 악기군을 형성하는데, 이를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라 한다. 예악사상의 '악'(樂)을 상징하는 등가는 대뜰 위에서 연주되며, 악기편성은 편종·특종·편경·특경·금·슬에 노래가 따른다. '예'(禮)를 상징하는 헌가는 대뜰 아래에서 연주된다. 주로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데, 악기편성은 훈·지·약·적·노도·진고·축·어·부 등으로 이루어진다.

문묘제례악에서는 일무(佾舞)를 추는데 가로 8줄, 세로 8줄로 모두 64명이 8일무를 춘다. 문무(文舞)는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는 왼손에 간(干), 오른손에 척(戚)을 들고 춘다. 음악적 특징은 중국 아악 계통으로 궁(宮)·상(商)·각(角)·변치(變致)·치(致)·우(羽)·변궁(變宮)의 7음 음계로 되어 있다. 선율은 장식음이 없는 1음1박이고 리듬은 규칙적이며, 음악은 반드시 주음(主音)으로 시작해 주음으로 끝난다. 4음이 한 구(句)를 이루고, 이것은 8마루로 구성되며, 매구의 끝에 박(拍)이 1번씩 들어간다.

  • 참고문헌 (문묘제례악)
    • 악장등록연구 : 송방송, 영남대학교, 1990
    • 한국음악사 : 송방송, 영남대학교, 1989
    • 한국전통음악의 이해 : 장사훈, 서울대학교, 1989
    • 한국음악사 :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86
    • 세종시대의 음악 : 성경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종묘제향에 쓰이는 의식음악.

 
종묘제례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와 영녕전(永寧殿)의 제사에 쓰이는 제사음악 일체를 말하며, 종묘악이라고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제향에 음악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고려사〉에 처음 보이는데 1116년(예종 11)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같은 해 10월 태묘(太廟), 즉 종묘에 사용했다 한다. 그러나 고려의 아악은 완전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었고 향악·당악과 함께 사용되었다. 조선초 1405년 4월 문묘·종묘 등 배신(陪臣)의 제복과 악기가 너무 낡아 1406년 7월 내사(內史) 박린·김희 등을 중국에 보내 악기를 들여왔다. 조선 초기에는 여러 곡을 지었으나 조종(祖宗)의 공덕을 기리기에는 부족하다 하여 세종은 고취악과 향악에 바탕을 두어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 발상(發祥)·>봉래의(鳳來儀) 등을 창제했다. 그중 정대업과 보태평은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제된 것이고 종묘제례악에는 쓰이지 않았다. 이 곡들은 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인 정간보(井間譜)와 율자보(聿字譜)에 의해 기보되었다. 보태평은 조상들의 문덕(文德)을,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칭송한 한문시의 가사를 말하는데, 이것을 악장(樂章)이라고 한다. 보태평의 각 곡은 임종궁평조(林鍾宮平調)인 5음음계이고, 정대업은 남려궁계면조(南呂宮界面調)인 5음음계로 이루어졌다. 1460년 세조는 최항에게 명하여 세종이 지은 음악을 간추려 새로 짓게 했다. 15곡의 정대업은 11곡으로 축소되었고, 임종궁평조와 남려궁계면조에서 각각 청황종평조(靑黃鍾平調)와 청황종계면조(靑黃鍾界面調)로 바뀌는 등 대대적인 편곡작업이 이루어졌다. 1464년(세조 9) 정대업과 보태평은 개작되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었다. 세조 때 정비된 종묘제례악은 해마다 연주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종묘가 불타버려 복구되기까지 한동안 중단되었다. 1626년(인조 4) 정명장(貞明章) 뒤에 중광장(重光章)을 삽입했으나 병자호란 직후부터 1647년까지 10년 동안 정지되었다. 지금은 전주이씨 종친회의 주관으로 해마다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에서 거행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의 음계는 보태평은 황종·태주·중려·임종·남려의 5음음계 평조이고, 정대업은 황종·협종·중려·임종·무역의 계면조였으나, 19세기 이후부터 계면조는 3음음계 또는 4음음계로 변했다. 종지형(終止形)은 하강(下降) 종지형이다. 악보는 〈세종실록〉 권138, 〈세조실록〉 권48, 〈대악후보〉 권2, 〈속악원보〉 권1·6 등에 전한다. 사용악기는 등가 악현에 박(1)·대금(2)·방향(1)·편경(1)·절고(1)·당피리(3)·아쟁(1)·장구·편종(1)·축(1)이고, 헌가 악현에는 박(1)·편종(1)·편경(1)·당피리(3)·대금(2)·해금(1)·태평소(1)·징(1)·축(1)으로 아악기·당악기·향악기가 모두 사용된다. 일무(佾舞)는 예전에는 6일무로 36명이 추었으나 현재에는 8일무이며 64명이 춘다. 보태평지무는 문무(文舞)이고 정대업지무는 무무(武舞)이다. 문무는 오른손에 적(笛), 왼손에 약()을 들고 춘다. 무무는 국립국악원 소장의 〈시용무보 時用舞譜〉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 참고문헌 (종묘제례악)
    • 악장등록연구 : 송방송, 영남대학교, 1990
    • 한국음악사 : 송방송, 영남대학교, 1989
    • 종묘제례악 〈현대예술〉 2 : 성경린, 현대예술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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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