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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장릉 (張陵)

 

장릉 (張陵), (병)Zhang Ling (웨)Chang Ling.

85(?) 중국 장쑤 성[江蘇省] 패현(沛縣)~157(?) 한중(漢中).

중국 도교교단의 창시자이자 초대교주.

정식 이름은 장도릉(張道陵). 그는 쓰촨[四川] 지역에서 후한(後漢)의 순제(順帝) 재위기간(125~144)에 도(道)를 공부했다. 후에 자신의 종교의식을 선전하기 위해 도에 관한 책을 지었는데, 이 책이 중국인과 쓰촨의 토착소수민족 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서 그에게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다. 그당시의 다른 도가들처럼, 장릉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육체의 불멸과 장수를 약속했다. 그러나 다른 도가들과 다른 점은 종교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있다. 그는 최초의 도교 교단인 천사도(天師道)를 창설했다. 천사도는 기도로 병을 치료해주고 그 사례로 1년에 쌀 5말을 받아 보통 '오두미도'(五斗米道)로 알려져 있다. 치료비나 종교헌금의 명목으로 신자들로부터 곡식을 거둔 것은 조직의 보존을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장릉의 교단은 다른 도가 교단들에 비해 특별히 일반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는 종교적인 믿음이 병을 치료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사도에서는 병이란 죄의식의 결과이며, 따라서 교주인 천사에게 그 죄의식을 고백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즉 영혼의 정화로 육체적인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한나라의 제위계승을 모방하여 천사도의 교주는 세습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주직은 장릉에서부터 그의 아들 장형(張衡), 손자 장로(張魯)로 이어졌는데, 이들을 3장(三張)이라고 불렀다. 장로는 한대 말기(188경~215)에 한중(지금의 쓰촨 성과 산시 성[陝西省]의 일부)에 종교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도교교단에서 종교교육을 위해 사용된 기본경전은 노자(老子)의 〈도덕경 道德經〉이었다. 그러나 이 오래된 철학서적은 교단의 종교적 필요에 맞추어 왜곡된 부분도 적지 않다.→ 오두미도

오두미도 (五斗米道)

 

오두미도 (五斗米道), (병)Wudoumi (웨)Wutoumi (영)Five Pecks of Rice.

중국의 도교 교파 가운데 하나.

천사도(天師道)라고도 한다. 한대(漢代 : BC 206~ AD 220) 말기에 발생하여 조정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이후 2,000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한 민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두미도는 2세기초에 중국 도교의 창시자이며 초대 교주인 장릉(張陵)이 창시했다. 그는 본래 신앙치료사였는데, 신자들에게 치료비나 종교헌금의 명목으로 매년 쌀 5두를 내게 한 데에서 오두미도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에게 붙여진 천사(天師)라는 존칭은 아들 장형(張衡), 손자 장로(張魯)에 의해 계승되었다. 장로 때 중국 중부지방에서는 농민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는 이곳에서 생긴 불만을 이용하여 독자적인 군대를 만들고, 새로운 독립국가를 세웠으며 여행자를 위한 여인숙을 만들고 범죄자를 관대하게 처분하여 교세의 확장을 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른 도교 지도자인 장수(張修)와 결합했으며, 이 두 사람은 점차 세력을 키워 마침내 쓰촨[四川] 전역을 지배했다. 그러나 두 지도자 사이에 불화가 생겨 장로가 장수를 죽였다. 215년 장로는 한나라의 장군 조조(曹操)에게 항복했으며, 조조는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고 제후에 해당되는 봉토를 주었다.

5세기초 북위(北魏)의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는 유가의 예법을 중심으로 오두미도를 개조하여 북천사도(北天師道)를 세웠고, 남조(南朝) 때의 육수정(陸修靜)은 도교 서적을 정리하고 불교의식을 흡수하여 남천사도(南天師道)를 세웠다. 수 ·당대(隋唐代)를 거치면서 남·북의 천사도가 합쳐졌다. 그후 천사도는 도교의 상청파(上淸派)·영보파(靈寶派)·정명파(淨明派) 등과 점차 통합되어 정일도(正一道)로 불렸다.

한국의 오두미도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 기록이 적어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일부 기록에 의하면 7세기 무렵 고구려인에 의해 성행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고려본기〉를 인용하여 고구려말인 중국 무덕(武德)·정관(貞觀) 연간(618~ 649)에 국인(國人 : 고구려인)이 오두미도를 다투어 신봉하니, 당나라 고조가 도사를 시켜 천존상(天尊像)을 보내고 도덕경(道德經)을 강연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또 도교에 관한 강연을 624년(영류왕 7) 왕이 국인과 함께 들었다고 하며, 보장왕 때에는 당시의 권력자였던 연개소문에 의해 육성되었다. 이렇듯 고구려 말기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도교의 일종이었던 오두미도가 성행한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전파 내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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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