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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철학 - 지혜의 탐구

체용론 (體用論)

 

사물을 체와 용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그 각각의 의미와 상호 연관성 속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사고방식.

체는 사물의 본체,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용이란 사물의 작용 또는 현상, 파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체용론의 연원은 멀리 한대(漢代)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현(鄭玄)은 예기 禮記〉 서(序)에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을 체라 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하는 것을 용이라 한다"고 하여 체용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체용론적인 사고방식이 제대로 정립된 것은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하안(何晏)·왕필(王弼) 등에 의해서이다. 그들은 비록 체용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용한 본말(本末)의 개념은 체용론의 중국적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들은 도가의 무(無)와 유(有)에 관한 설명을 본말론으로 체계화하여, 변화가 무궁한 천지만물에 대해 그 본체인 '무'는 적연부동(寂然不動)하다고 하며, 본체가 있어야만 개개의 현상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러한 본말론이 뒤에 불교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체용론으로 발전했다. 불교에서 체용의 논리는 인과의 논리와 대비되는 것으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바람과 파도의 관계로 비유된다면, 체와 용의 관계는 물과 파도의 관계이다. 따라서 인과론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별개의 것이지만 체용론에서는 체와 용이 서로 다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송대에 성립된 성리학은 이 불교적 체용론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체계를 구축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주희는 이 체용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자신의 이론체계를 수립했는데, 그는 "형이상(形而上)인 것으로부터 말한다면 아득한 것(沖漠者)이 체가 되며, 그것이 사물 사이에서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형이하인 것으로서 말한다면 사물이 또 체가 되고 그 사물의 이치가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형이상을 도의 체라 하고, 천하의 달도인 5가지를 도의 용이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이황은 이를 해석하여 "체와 용이라는 것은 2가지가 있는데, 도리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아득하여 조짐이 없으나 만상(萬象)이 빠짐 없이 갖추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요, 사물에 나아가 말한 것이 있으니 배는 물에 다닐 수 있고, 수레는 육지에 다닐 수 있다는 것과 실제 배와 수레가 물과 육지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주희의 체용론은 어떤 대상을 고정적으로 체와 용에 분속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상으로는 분리될 수 있으나 실제는 분리될 수 없는 모든 합일적 존재를 설명하는 추상적 범주였다. 주희가 이 체용론의 범주로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 대표적인 분야는 심성론이다. 그는 심을 체와 용으로 구분하여, 발(發)하기 전을 심의 체로, 이미 발한 때를 심의 용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심의 미발(未發)을 가리키는 성(性)과 심의 이발(已發)을 가리키는 정(情) 역시 체와 용의 관계로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체용론은 중요한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이 체용론을 이용해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한 대표적 인물은 이황이다. 이황은 기대승과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을 벌이면서 사단은 이의 발(發)로, 칠정은 기의 발로 설명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심성론에서의 이발설은 그의 사상체계에서 우주론에서의 이동설(理動說), 인식론에서의 이자도설(理自到說)과 함께 성리학의 이기론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원래 성리학에서는 동정(動靜)하는 것은 기이며, 이는 그 동정의 소이(所以)일 뿐 그 자체가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는 정의(情意)와 조작(造作)이 없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황의 이발설·이동설·이자도설은 분명히 성리학의 이에 대한 설명과는 배치되었다. 이때 이황이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체용론이다. 그는 이를 체로, 이가 상(象)으로 드러난 것을 용으로 파악하는 주희의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자체를 체와 용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대개 정의가 없다고 운운한 것은 본연의 체요, 발하고 생(生)할 수 있는 것은 지묘(至妙)한 용이다"라고 하여 이에 정의와 조작이 없다는 것은 이의 체를 말하는 것이며, 이가 발동하고 생한다는 것은 이의 용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전통철학에서 중요한 범주로 사용되던 체용론은 19세기 이후 서양세력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들 기술문명의 우월성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중국의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이나 우리나라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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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