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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소승불교 (小乘佛敎, Hinayana)

(산스크리트로 '작은 수레'라는 뜻)

대승(大乘 Mahyna)에 대비되는 용어로 보다 정통적이고 보수적인 불교 학파.

소승이라는 말은 고대 인도의 대승불교 전통을 따르는 무리들이 이 교파에 붙인 이름이다. 이러한 명칭에는 대승불교도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진리의 추구나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대비심의 구현에서 다른 전통보다 탁월한 것으로 생각하는 가치판단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은 보수 교파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언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 이른바 고대 불교의 18부파는 별개의 교리체계를 가진 대승불교 사상의 출현에 앞서서 나타난 것이므로, 대승불교와 비교하여 보면 모두 소승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고대 소승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근본불교의 18부파 가운데 하나인 상좌부(Theravda:장로들의 수행법을 따르는 수행자들)뿐이다.

상좌부 (上座部, Theravada)

(팔리어로 '상좌들의 길'이라는 뜻)

스리랑카·미얀마·타이·캄보디아·라오스 등지에 퍼져 있는 불교의 주요형태의 하나.

상좌부에서는 불교의 다른 모든 학파와 마찬가지로 부처가 설한 원래의 교리와 수행을 자신들이 가장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파에서는 고대 인도 팔리어로 전승된 불교 경전을 정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초의 불교 승가(僧伽 sagha:공동체) 고승들에 의해 형성된 전통을 이어온 상좌들(산스크리트로는 Sthavira, 팔리어로는 Thera)에서 자파의 기원을 찾고 있다.

석가모니가 죽은 뒤 몇 백 년 동안 불교 공동체는 여러 부파(部派)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각 부파들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조금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부파불교). 최초의 분열은 BC 4세기경 경전의 제2차 결집 때 일어났는데, 이때 정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근본상좌부(Sthaviravda)로부터 갈라져나와 새로이 형성된 부파가 이른바 대중부(大衆部 Mahsaghika)이다. 당시 대중부는 계율의 해석에 있어서, 금이나 은의 보시를 받아도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등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2번째 주요분열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stivda:원어는 산스크리트로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뜻)가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yavda:'분별설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근본상좌부를 가리킴)로부터 갈라져나옴으로써 이루어졌다. 분별설부는 지리상으로 남인도와 스리랑카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오늘날 상좌부(산스크리트로는 Sthaviravda, 팔리어로는 Theravda)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부파는 BC 3세기경 아소카 황제의 치세중에 스리랑카로 전파되었고, 그곳에서 각각 중심되는 사원에 따라 대사파(大寺派:팔리어로는 Mahvihrika)·무외산사파(無畏山寺派:팔리어로는 Abhayagirik)·기다림사파(祇多林寺派:팔리어로는 Jetavanya)라는 3개의 파로 분리되었다. 상좌부 불교는 점차 동쪽으로 전파되어 11세기 후반에는 미얀마에서, 13세기에는 캄보디아에서, 그리고 14세기에는 라오스에서 중요한 종교로 자리잡았다.

상좌부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에서 보수적·정통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상좌부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불교도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에 이른 완전한 성인 곧 아라한(阿羅漢:팔리어로는 arahant, 산스크리트로는 arhat)이다. 상좌부에서는 재가자의 역할과 출가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재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상좌부의 불교도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에게는 완벽한 스승으로서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대승불교의 사원에서 숭배하는 신격화된 다양한 부처와 보살은 받들지 않는다.

아라한 (阿羅漢, arhat)

(팔)arahant

('고귀한 사람'이라는 뜻).

불교에서 완전해진 사람,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열반(涅槃) 또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일컬음.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生)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상좌부(上座部 Theravda) 불교에서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 불교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보고 있다. 팔리어 불교 경전은 아라한이 되는 4단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① 수다원(須陀洹):팔리 원어 소타판나(sotpanna:전향)를 음사한 말로서 번역하여 예류(預流) 또는 입류(入流)라고도 한다. 미혹을 끊고 성자의 대열에 들어선 사람이며 부처와 그의 가르침과 승가[僧]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의심을 극복함으로써 도달되는 단계이다. ② 사다함(斯陀含):사카다가민(sakadgmin)의 음사이며 일래(一來)로 번역된다. 한 번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재생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며 탐욕과 증오와 미망을 줄임으로써 도달되는 단계이다. ③ 아나함(阿那含):안아가민(angmin)의 음사이며 불환(不還) 또는 불래(不來)라고 번역된다. 욕계(欲界)의 번뇌를 모두 끊어 결코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는 성자를 가리킨다. 죽은 다음 색계나 무색계에 나고 거기에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는 앞의 두 단계를 얻은 뒤 감각적 욕망과 그릇된 의지를 이겨내면서 얻게 된다. ④ 아라한(阿羅漢):깨달음에 이른 경지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든 여자든 출가(出家)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이다.

불도(佛道)를 성취하는 데 보다 높은 목표가 보살이라고 확신하는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의 이상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보살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윤회하는 세계에 남아 있기를 서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상좌부, 즉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의 하나로 계속 남아 있다. 한국·일본·티베트·중국에서는 보통 16명의 아라한(흔히 약칭하여 나한이라고 함)을 사원의 벽에 그렸다(뒤에는 아라한의 수가 18명에서 500명까지 늘어남). 이들은 석가모니의 부탁으로 다음 부처가 올 때까지 사람들이 섬길 수 있도록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는 석가모니의 가까운 16제자들을 나타낸다.

보살 (菩薩, bodhisattva)

(팔)bodhisatta.

(산스크리트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확정된 이'라는 뜻)

불교에서 역사상의 부처인 고타마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상태, 또는 현세나 내세에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궁극의 목표인 열반(涅槃)을 연기하겠다고 하는 보살의 서원(誓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 이전의 소승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아라한(阿羅漢 arhat)이나 스승의 지도없이 홀로 깨달음에 이르는 독각불(獨覺佛 pratyeka-buddha)을 이상적 전형으로 삼고 있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그러한 전형들을 개인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위와 같은 보살의 전형을 강력하게 내세워 그 위상을 높였던 것이다. 이러한 보살의 개념은 자비(慈悲 karu)의 가치를 지혜(智慧 prajñ)의 가치에 대등하도록 고양시켜 주었다. 여기에서 보살은 특히 신도들에게 자신이 쌓은 공덕(puñña)을 이전해줌으로써 자비를 실천한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울 수 있고, 일단 서원을 세우기만 하면 '십지'(十地 daa-bhmi)라고 하는 보살로서의 정신적 수행단계의 첫번째 단계에 들어가게 되며 이때부터는 인간의 세상이나 신의 세상에만 태어나게 된다. 그처럼 큰 뜻을 품는 보살은 대개 남자이지만 꼭 남자이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고, 재가자일 수도 있으며 반드시 출가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나 보살일 수 있고, 따라서 보살이 될 수 있는 이는 무한히 많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칭호는 주로 위대한 학자와 스승들의 경칭으로 사용되었으며,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불교도로서의 왕의 영예를 나타내는 관습적인 칭호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여성 재가신자의 일반적 경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특정한 보살들은 영원한 부처의 화현이자 위대한 구세주로 존중되고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종종 역사상의 부처보다도 더욱 친근한 신앙의 대상으로 숭앙되고 있다. 이러한 보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보살은 자비로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vara)로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bha)과 관계가 깊다. 중국에서 널리 숭앙되는 보살로는 지혜를 특색으로 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 Mañju), 저승에 있는 이들에게 특히 도움을 준다고 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 Kitigarbha), 보살행의 실천과 의지를 대변하는 보현보살(普賢菩薩 Samantabhadra) 등이 있다. 티베트에서는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 그리고 금강저를 들고 불법을 수호한다는 집금강보살(執金剛菩薩 Vajrapi)이 가장 널리 숭앙받는 세 보살이다. 다음 세상의 부처이자 현세의 보살로 묘사되는 미륵보살(彌勒菩薩 Maitreya)은 대승불교와 상좌부(上座部 Theravd) 불교 모두에서 숭앙받는 유일한 보살이다.

보살의 형상은 보통 인도 귀족의 모습으로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위에는 천의(天衣)를 걸쳤으며 아래에는 치마와 같은 군의(裙衣)를 두른 것으로 표현된다. 또한 귀걸이·목걸이·팔찌·영락(瓔珞) 등으로 몸을 장식하고 여래와 같이 이마에 백호(白毫)를 붙이며, 각 보살의 기능에 맞게 손에는 연꽃·정병·보주(寶珠) 등과 같은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지장보살의 경우는 보관을 쓰고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 반면에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손에 보주와 석장(錫杖)을 지닌 스님의 모습으로 많이 표현되었다. 조상으로는 단독상 외에도 협시의 역할을 하거나 협시를 수반한 것, 군상(群像)으로 표현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처를 도와주는 보살로서 아미타불은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석가불 또는 비로자나불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약사불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예가 많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등이 신앙되기 시작하여 크게 유행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지장보살이 널리 신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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