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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Congregationalism

회중교회주의 (會衆敎會主義)

Congregationalism, Christian movement that arose among Protestant churches in England in the late 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emphasizing the right and duty of each congregation to make its own decisions about its affairs, independent of any higher human authority. Although this principle of church government is upheld by several modern denominations (e.g., most Baptists, Disciples of Christ), the designation Congregationalist is usually reserved for those churches that hold the congregational polity to be their primary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Congregationalism developed as one wing of the broader Puritan movement in western Christianity. The general goal of Puritanism was to carry on to completion the work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England. Congregationalists in particular were concerned to put into practice the Reformation doctrine of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Although active before the English Civil Wars, Congregationalists (or Independents, as they were then more commonly known) gained prestige when Oliver Cromwell aligned himself with this cause. Their political influence peaked in the 1650s, declined precipitously after Cromwell's death in 1658, and was abolished with the Restoration of the crown in 1660. The accession of William and Mary in 1689 signaled a change of mood, and the Toleration Act, passed in the same year, marked the beginning of a process that would finally grant full religious toleration to the Congregationalists along with all other religious dissenters.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Congregationalists in England did little more than hold their own. Their numbers were small, and their zeal had been exhausted in the struggle to achieve toleration. With the coming of the Evangelical Revival (c. 1750-1815) this situation changed. Through its association with the revival, Congregationalism gained a new vigour that was to increase throughout the 19th century. An important watershed was the formation in 1832 of the Congregational Union of England and Wales.

As Congregationalists consolidated their internal organization, they also forged a strong tie with the Liberal Party. The Liberal victory of 1906 is generally seen as the peak of Congregational influence in English society and politics. As the 20th century progressed, Congregationalists, along with almost all other church groups in England, declined both in numbers and strength. Nonetheless, Congregationalism provided many prominent leaders for the ecumenical movement. In 1972 the majority of English Congregationalists and Presbyterians united to form the new United Reform Church.

It was in the United States that Congregationalism achieved its greatest public influence and numerical strength. Through the so-called New England experiment, it became a major factor in determining the character of the new nation. Congregationalism was transplanted to America in two forms very early in the colonial period. The "Pilgrims" of Plymouth Colony were separatistic Congregationalists; that is, they felt that realization of their ideal of church government required separation from the Church of England. The neighbouring Puritans of Massachusetts Bay, on the other hand, were nonseparatists, holding that the national church was capable of being reformed according to their ide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groups soon dissipated, however, in the face of a general decline in religious fervour. (see also Index: Pilgrim Fathers)

The adoption in 1662 of the Half-Way Covenant relaxing requirements for church membership was a response to these developments. The widespread revivalistic movement of the 1730s and 1740s, known as the Great Awakening, also helped replenish the membership rolls of New England's churches, but simultaneously it revealed a new division within American Congregationalism. The Calvinism of the founding bodies was being replaced by an Arminian theology that put greater emphasis on human efforts in attaining salvation.

A general liberalizing of theological opinion continued in the Congregational Churches during the 19th century, with two results. First was the defection of many churches to Unitarianism. Second was Congregationalism's downplaying of the importance of conversion in Christian experience. The Kansas City Creed of 1913 is usually cited as the definitive statement of Congregationalism's break with its Calvinist past.

American Congregationalism has had a varied institutional history.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Congregationalists participated in a Plan of Union with the Presbyterians. The National Council of Congregational Churches, formed in 1871, was enlarged in 1931 through an affiliation with the smaller General Convention of the Christian Churches. In 1961 a further merger was effected with the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 to create the United Church of Christ. The Congregational tradition is now preserved in original name and form in only two or three small associations of churches.

While Congregationalists do not constitute a large percentage of the Christian world population, Congregational churches can be found worldwide. Some of these churches (for example, those of Australia, New Zealand, South Africa, and Jamaica) trace their roots to English Congregationalism. Other Congregational churches, such as those in The Netherlands and Sweden, were self-originating.

Wherever they may be found, Congregationalists share certain characteristics. They embody the idea of a "gathered" church--a group of believers brought together not by territory but by a common style of life. As a rule, Congregationalists eschew binding creedal statements and view faith as a personal encounter with God. In Congregational worship the preached word is usually emphasized over the use of the sacraments. In common with most Protestant groups, Congregationalists accept only two sacraments, baptism and communion, or the Lord's Supper. Communion is celebrated once or twice a month and is now usually open to "all believers"; formerly, "closed" communion was the general practice. Baptism is not required for membership.

 

회중교회주의(會衆敎會主義, Congregationalism), 16세기말과 17세기초에 잉글랜드 개신교 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각 회중이 지교회 이상의 인간 권위로부터 독립하여 자체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결정을 하는 권리와 의무를 강조한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이러한 교회정치 원칙을 주장하지만(예를 들면 대부분의 침례교회, 그리스도의 제자회), 회중교회라는 명칭은 대개 회중적인 정책을 독특한 특징으로 삼은 교회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회중교회주의는 포괄적인 청교도운동의 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청교도운동의 일반 목표는 잉글랜드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을 완성하는 데 있었다. 이 가운데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만인사제론'(萬人司祭論)을 실천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잉글랜드 내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활동하던 회중교회주의자들(또는 독립파, 당시에는 이 명칭으로 더욱 많이 알려졌음)은 올리버 크롬웰이 만인사제론을 지지함으로써 유명하게 되었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165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가 1658년 크롬웰이 죽은 뒤 급격히 기울었으며,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폐지되었다. 1689년 윌리엄과 메리의 즉위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신앙의 자유 법령이 통과됨으로써 결국 회중교회주의자들이 다른 모든 비국교도들과 함께 종교적인 충분한 관용을 얻게 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18세기 전반 동안 잉글랜드의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유명무실했다. 그 수도 적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열정도 차차 식어갔다. 그러나 복음주의 부흥운동(1750경~1815)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회중교회주의는 이 부흥운동과 연대를 맺어 새로운 활기를 얻기 시작하여 19세기 내내 점점 활발해져서 1832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회중교회 연맹이 결성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회중교회주의자들은 내부 조직을 강화하면서 자유당과도 강한 유대를 맺었다. 대개 자유당이 승리한 1906년을 회중교회주의자들이 영국 사회 및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때로 본다. 20세기가 진행되면서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영국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인수와 세력에서 모두 쇠퇴했으나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해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1972년 영국 회중교회주의자들 대다수와 장로교도들이 연합하여 새로운 '연합개혁교회'를 세웠다. 회중교회주의가 공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교인을 많이 얻은 것은 미국에서였다. 이른바 뉴잉글랜드 실험을 통해서 회중교회주의는 새 국가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회중교회주의는 식민지시대 초기에 2가지 형태로 미국에 심어졌다. 플리머스 식민지의 '순례자들'은 분리주의적인 회중교회주의자들로 자기들의 교회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국국교회에서 이탈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그들과 이웃에 있던 매사추세츠 만(灣) 청교도들은 비(非)분리주의자들로서, 국교회를 자기들의 이상에 따라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두 집단 사이의 차이점들은 종교적 열정이 식어가자 곧 사라졌다. 1662년 교인자격을 완화한 불완전서약(Half-Way Covenant)을 채택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각성운동으로 알려진 1730, 1740년대의 광범위한 부흥운동은 뉴잉글랜드 교회에 교인들을 다시 가득 채웠으나, 동시에 미국 회중교회주의가 다시 분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회중교회주의가 처음부터 받아들여온 칼뱅주의가 구원을 얻는 데 인간의 노력을 더 강조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으로 대체되어가고 있었다.

19세기 회중교회들 안에서는 자유주의적인 신학견해가 일반화되어가면서 2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는 많은 교회들이 유니테리언주의로 이탈한 것이고, 2번째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에서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13년의 '캔자스시티 신조'는 회중교회주의가 과거에 신봉해온 칼뱅주의와 결별하는 결정적인 진술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회중교회주의는 다양한 제도의 역사를 지녀왔다. 19세기초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장로교도들과의 '연합계획'에 참여했다. 1871년에 결성된 '전국회중교회협의회'는 1931년 그보다 작은 교단인 '그리스도교회총회'와 연합함으로써 확대되었다. 1961년에는 '복음주의 개혁교회'와 연합하여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들어 규모가 더욱 커졌다. 회중교회의 전통은 오늘날 불과 2~3개의 군소 교회연합회들로 그 원래의 이름과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회중교회주의자들은 세계 그리스도교의 인구를 놓고 볼 때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교회들은 세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교회들 가운데 일부(예를 들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자메이카의 회중교회들)는 그 뿌리가 영국 회중교회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회중교회들은 자생적인 교회들이다. 회중교회들은 어느 지역에 있든 특정한 성격을 공유한다. 이들은 '모이는' 교회의 이상(理想), 즉 신자 집단이 지역이 아닌 공동의 생활양식으로 맺어진다는 이상을 실천한다. 이들은 대체로 신조 선언문에 매이는 것을 회피하며, 신앙을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으로 볼 뿐 아니라 예배에서 설교를 선포하는 것을 성례전을 집행하는 것보다 우위에 둔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과 마찬가지로 회중교회주의자들도 2가지 성례전, 즉 세례와 성찬식만을 인정한다. 성찬식은 한달에 1~2번 가지며, 과거에는 '제한된' 성찬식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으나, 오늘날은 보통 '모든 신자들'에게 공개한다. 교인자격으로 세례를 요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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