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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Jonathan Edwards

에드워즈

Introduction

서론

Edwards, Jonathan (b. Oct. 5, 1703, East Windsor, Conn. [U.S.]--d. March 22, 1758, Princeton, N.J.), greatest theologian and philosopher of British American Puritanism, stimulator of the religious revival known as the "Great Awakening," and one of the forerunners of the age of Protestant missionary expansion in the 19th century. (see also Index: theology, Calvinism)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 10. 5 코네티컷 이스트윈저~1758. 3. 22 뉴저지 프린스턴. 미국 청교도 신앙을 물려받은 위대한 신학자·철학자. '대각성 운동'으로 알려진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킨 인물로 19세기 선교확장 시기의 선구자들 가운데 하나이다.

 

Early life and ministry

Edwards' father, Timothy, was pastor of the church at East Windsor, Conn.; his mother, Esther, was a daughter of Solomon Stoddard, pastor of the church at Northampton, Mass. Jonathan was the fifth child and only son among 11 children; he grew up in an atmosphere of Puritan piety, affection, and learning. After a rigorous schooling at home, he entered Yale College in New Haven, Conn., at the age of 13. He was graduated in 1720 but remained at New Haven for two years, studying divinity. After a brief New York pastorate (1722-23), he received the M.A. degree in 1723; during most of 1724-26 he was a tutor at Yale. In 1727 he became his grandfather's colleague at Northampton. In the same year, he married Sarah Pierrepont, who combined a deep, often ecstatic, piety with personal winsomeness and practical good sense. To them were born 11 children.

초기생애와 사역

아버지 티모시는 코네티컷 이스트윈저에 있는 교회의 목사였고, 어머니 에스터는 매사추세츠 노샘프턴에 있는 교회의 목사 솔로몬 스토더드의 딸이었다. 에드워즈는 5번째 자녀이자 11명의 남매 가운데 외아들로서, 청교도적인 경건함, 사랑, 교육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뒤 13세에 코네티컷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학에 입학하여 1720년에 졸업했으나 뉴헤이븐에 2년 간 더 머물면서 신학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잠시 목회생활을 한 뒤(1722~23) 1723년에 석사학위를 받았고, 1724~ 26년 대부분을 예일에서 개인교수 생활을 했다. 1727년 외할아버지가 목회를 하고 있는 노샘프턴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같은 해 사라 피어폰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황홀경에 빠지곤 하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였으며 쾌활함과 조화로운 교양을 지녔다. 그들은 11명의 자녀를 낳았다.

The manuscripts that survive from his student days exhibit Edwards' remarkable powers of observation and analysis (especially displayed in "Of Insects"), the fascination that the English scientist Isaac Newton's optical theories held for him ("Of the Rainbow"), and his ambition to publish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works in confutation of materialism and atheism ("Natural Philosophy"). Throughout his life he habitually studied with pen in hand, recording his thoughts in numerous hand-sewn notebooks; one of these, his "Catalogue" of books, demonstrates the wide variety of his interests.

에드워즈가 학생시절에 남긴 원고들에는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특히 〈곤충들에 관하여 Of Insects〉에 잘 나타나 있음),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의 광학이론(光學理論)에 대한 몰두(〈무지개에 관하여 Of the Rainbow〉), 유물론과 무신론에 맞서는 과학과 철학 저서들을 펴내려는 포부(〈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 등이 잘 나타난다. 평생 습관적으로 펜을 들고 공부하면서 수많은 공책에 자기 생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저서들의 〈목록 Catalogue〉은 그가 얼마나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드러내준다.

 

Edwards did not accept his theological inheritance passively. In his "Personal Narrative" he confesses that, from his childhood on, his mind "had been full of objections" against 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i.e., that God sovereignly chooses some to salvation but rejects others to everlasting torment; "it used to appear like a horrible doctrine to me." Though he gradually worked through his intellectual objections, it was only with his conversion (early in 1721) that he came to a "delightful conviction" of divine sovereignty, to a "new sense" of God's glory revealed in Scripture and in nature. This became the centre of Edwards' piety: a direct, intuitive apprehension of God in all his glory, a sight and taste of Christ's majesty and beauty far beyond all "notional" understanding, immediately imparted to the soul (as a 1734 sermon title puts it) by "a divine and supernatural light." This alone confers worth on man, and in this consists his salvation. What such a God does must be right; hence, Edwards' cosmic optimism. The acceptance and affirmation of God as he is and does and the love of God simply because he is God became central motifs in all of Edwards' preaching.

에드워즈는 신학 유산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 Personal Narrative〉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예정설(하느님이 자신의 주권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여 구원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버림으로써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한다는 교리)에 대해서 반감을 가졌으며, "그것은 공포를 자아내는 교리처럼 보이곤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교리에 대해 점차 지적인 반박을 했지만, 회개를 하고 나서야(1721초) 비로소 하느님의 주권에 대해서 '즐거운 확신'을 갖게 되고, 성서와 자연에 계시된 하느님의 영광을 '새롭게 자각하게' 되었다. 무한히 영광스러운 하느님에 대해 직접적·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에 의해서' 영혼에 직접 부여되고 모든 '개념적' 인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보고 맛보는 것(1,734번째로 행한 설교 제목)이 에드워즈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이것만이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안에 인간의 구원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임에 틀림없으며, 이것이 에드워즈의 우주적 낙관주의의 근거이다. 하느님의 존재, 하느님이 하고 계신 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까닭은 단지 하느님이 하느님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에드워즈가 한 모든 설교의 중심 주제이다.

Under the influence of Puritan and other Reformed divines, the Cambridge Platonists, and British philosopher-scientists such as Newton and Locke, Edwards began to sketch in his manuscripts the outlines of a "Rational Account" of the doctrines of Christianity in terms of contemporary philosophy. In the essay "Of Being," he argued from the inconceivability of absolute Nothing to the existence of God as the eternal omnipresent Being. It was also inconceivable to him that anything should exist (even universal Being) apart from consciousness; hence, material things exist only as ideas in perceiving minds; the universe depends for its being every moment on the knowledge and creative will of God; and "spirits only are properly substance." Further, if all knowledge is ultimately from sensation (Locke) and if a sense perception is merely God's method of communicating ideas to the mind, then all knowledge is directly dependent on the divine will to reveal; and a saving knowledge of God and spiritual things is possible only to those who have received the gift of the "new sense." This grace is independent of human effort and is "irresistible," for the perception of God's beauty and goodness that it confers is in its very nature a glad "consent." Nevertheless, God decrees conversion and a holy life as well as ultimate felicity; and he has so constituted things that "means of grace" (e.g., sermons, sacraments, even the fear of hell) are employed by the Spirit in conversion, though not as "proper causes." Thus, the predestinarian preacher could appeal to the emotions and wills of men.

청교도와 다른 개혁주의 성직자들, 케임브리지 플라톤학파, 뉴턴과 로크 같은 영국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에드워즈는 당대의 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의 윤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존재에 관하여 Of Being〉라는 논문에서, 그는 절대무(絶對無)란 생각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하느님이 영원하고 전능한 존재임을 주장했다. 그는 또한 어느 것도, 심지어 우주적인 존재일지라도 의식(意識)을 떠나서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물질은 오직 인식하는 정신 안에서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우주의 존재는 매순간 하느님의 지식과 창조의지에 달려 있고, '영혼들이야말로 진정한 실재'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든 지식이 궁극적으로 감각을 통해서 온다는 주장(로크)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는 감각을 통한 인식이 사람의 정신에 관념을 전달하는 하느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지식은 하느님의 계시의지에 직접 좌우되고, 하느님과 영적인 일들에 대한 지식을 얻어 구원을 받는 것은 '새로운 감각'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게만 가능하게 된다. 그 은총의 선물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거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은총을 통해 얻게 되는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인식은 본질적으로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궁극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회개와 거룩한 생활을 명령한다. 하느님은 은혜의 수단들(설교, 성례, 심지어 지옥의 두려움)을 중요시한다. 그 은혜의 수단들 때문에 회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성령은 그것들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정설을 믿었던 설교가 에드워즈는 사람의 감정과 의지에 호소하며 설교할 수 있었다.

 

Pastorate at Northampton

At Stoddard's death in 1729, Edwards became sole occupant of the Northampton pulpit, the most important in Massachusetts outside of Boston. In his first published sermon, preached in 1731 to the Boston clergy and significantly entitled God Glorified in the Work of Redemption, by the Greatness of Man's Dependence upon Him, in the Whole of It, Edwards blamed New England's moral ills on its assumption of religious and moral self-sufficiency. Because God is the saints' whole good, faith, which abases man and exalts God, must be insisted on as the only means of salvation. The English colonists' enterprising spirit made them susceptible to a version of Arminianism (deriving from the Dutch theologian Jacobus Arminius), which was popular in the Anglican Church and spreading among dissenters; it minimized the disabling effects of original sin, stressed free will, and tended to make morality the essence of religion.

노샘프턴에서의 목회

1729년 스토더드가 죽자 에드워즈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보스턴을 빼고는 가장 중요한 노샘프턴 교회의 강단을 혼자 맡아야 했다. 맨 처음 출판된 설교로서, 1731년 보스턴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설교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철저한 의존, 구속의 역사, 그의 완전하심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느님 God Glorified in the Work of Redemption, by the Greatness of Man's Dependence upon Him, in the Whole of It〉에서 에드워즈는 뉴잉글랜드 사람들이 신앙과 도덕의 자만심에 빠져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다고 비판했다. 또한 하느님만이 신자들의 모든 선이기 때문에 사람을 낮추고 하느님을 높이는 신앙이 구원의 유일한 방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은 진취적인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국교회만이 아니라 국교회 반대자들에게도 널리 퍼진 아르미니우스주의(네덜란드의 신학자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에게서 유래됨)를 쉽게 받아들였는데,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인간을 무능하게 만드는 원죄의 효과들을 최소화했고, 자유주의를 강조했으며, 도덕성을 종교의 핵심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Against these ideas Edwards also delivered a series of sermons on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in November 1734. The result was a great revival in Northampton and along the Connecticut River Valley in the winter and spring of 1734-35, during which period more than 300 of Edwards' people made professions of faith. His subsequent report,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1737), made a profound impression in America and Europe, particularly through his description of the types and stages of conversion experience.

에드워즈는 이런 견해들에 맞서 1734년 11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됨'에 관해 연속 설교를 한 결과, 1734년 겨울부터 1735년 봄까지 노샘프턴과 코네티컷 강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들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으며, 이 기간 동안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에드워즈의 설교를 듣고 신앙고백을 했다. 그 뒤에 쓴 보고서 〈하느님의 놀라운 사역에 관한 신실한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1737)는 특히 회개 체험의 유형들과 단계들을 묘사하여 미국과 유럽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In 1740-42 came the Great Awakening throughout the colonies. George Whitefield, a highly successful evangelist in the English Methodist movement, and Gilbert Tennent, a Presbyterian minister from New Jersey, drew huge crowds; their "pathetical" (i.e., emotional) sermons resulted in violent emotional response and mass conversions. Edwards himself, though he held his own congregation relatively calm, employed the "preaching of terror" on several occasions, as in the Enfield sermon,"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 (1741).

1740~42년 식민지(미국) 전역에서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영국 감리교 운동에서 큰 성공을 거둔 복음전도자 조지 화이트필드와 뉴저지 출신의 장로교 목사 길버트 테넌트는 많은 대중을 끌어모았으며,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를 통해 격렬한 감정적 반응과 대중의 회개를 이끌어냈다. 에드워즈 자신은 비교적 청중들을 차분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분노한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엔필드에서 한 설교(1741)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설교'를 여러 차례 했다.

 

The Awakening produced not only conversions and changed lives but also excesses, disorders, and ecclesiastical and civil disruptions. Though increasingly critical of attitudes and practices associated with the revival, to the extent of personally rebuking Whitefield, Edwards maintained that it was a genuine work of God, which needed to be furthered and purified. In defense and criticism of the Awakening he wrote 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 (1741), Some Thoughts Concerning the Present Revival of Religion in New England (1742), and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1746).

대각성운동은 회개와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으나, 무절제와 무질서, 교회와 세속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로 인해 부흥운동과 관련된 태도들과 관습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 화이트필드 개인을 비판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에드워즈는 그것이 하느님의 참된 사역이며, 그 사역을 더 증진하고 더 순결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다. 대각성운동을 옹호하고 비판하기 위해 그는 〈성령 사역의 독특한 표지들 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1741)·〈최근 뉴잉글랜드에서 일어난 신앙 부흥에 대한 몇몇 사람들의 견해 Some Thoughts Concerning the Present Revival of Religion in New England〉(1742)·〈신앙적 감동에 관한 논문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1746) 등을 썼다.

In the Affections, Edwards insisted, against the revival critics' ideal of sober, "reasonable" religion, that "the essence of all true religion lies in holy love," a love that proves its genuineness by its inner quality and practical results. In 1749 he edited, with "Reflections," the memoirs of David Brainerd, a young New Light revivalist who became a Presbyterian missionary to the Indians and died in 1747. The volume became a highly influential missionary biography. Edwards' Humble Attempt to Promote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of God's People in Extraordinary Prayer (1747), written in support of a proposed international "concert of prayer" for "the Revival of Religion and the Advancement of Christ's Kingdom on Earth," helped to remove a major ideological barrier to missionary activity by arguing that the worst of the "great tribulations" (prophesied in the book of Revelation to John as preceding the millennium) were already past and that the church could thus look forward to an increasing success of the gospel among men.

〈신앙적 감동에 관한 논문〉에서 에드워즈는 부흥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냉정하고 '합리적인' 신앙관을 반박하면서 '모든 참된 종교의 본질은 거룩한 사랑'이며, 그 사랑의 순수성은 내적인 성품과 실천결과들에 의해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1749년 에드워즈는 〈반성 Reflections〉이라는 글과 함께 젊은 부흥운동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회고록을 편집했다. 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인도에 가서 일하다가 1747년 젊은 나이에 죽은 브레이너드에 관한 이 책은 큰 영향을 미친 선교사 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세상에 신앙 부흥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증진하기 위한' 국제 '기도협조'를 제안받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특별한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하나되게 하기 위한 작은 노력 Humble Attempt to Promote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of God's People in Extraordinary Prayer〉(1747)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요한의 묵시록〉에서 천년왕국에 앞서서 온다고 예언한 '대환란'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교회는 복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히 성공을 거둘 것을 내다볼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선교활동을 가로막는 주된 이념적 장벽을 제거하도록 도왔다.

Dismissal from Northampton.

Meanwhile, Edwards' relations with his own congregation had become strained; one reason for it was his changed views on the requirements for admission to the Lord's Supper. In the Halfway Covenant, baptized but unconverted children of believers might have their own children baptized by "owning the covenant"; Stoddard had instituted the subsequently widespread practice of admitting to the Eucharist all who were thus "in the covenant," even if they knew themselves to be unconverted. Edwards gradually came to believe that the profession required for admission to full communion should be understood to imply genuine faith, not merely doctrinal knowledge and good moral behaviour. (see also Half-Way Covenant)

노샘프턴에서의 파면

한편 에드워즈와 교회 회중들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갔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에드워즈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한 입장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당시 통용되던 '불완전 서약'(Halfway Covenant)에 따르면, 교인 자녀들 가운데 세례는 받았으나 회개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사람들도 '계약에 힘입어' 자녀들이 세례를 받게 할 수 있었다. 스토더드는 비록 회개의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계약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성찬식에 받아들이는 당시의 관습을 노샘프턴 교회에서 채택하도록 했다. 이에 반해 에드워즈는 점차 성찬식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신앙고백은 교리 지식과 도덕적 선행만이 아니라 참된 신앙을 담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The public announcement of his position in 1749 precipitated a violent controversy that resulted in his dismissal. On July 1, 1750, Edwards preached his dignified and restrained "Farewell-Sermon." In the course of this controversy he wrote two books, Qualifications for Communion (1749) and Misrepresentations Corrected, and Truth Vindicated, in a Reply to the Rev. Mr. Solomon Williams's Book (1752), one to convince his congregation, the other to correct what he considered misrepresentations of his views by a kinsman, the pastor at Lebanon, Conn. Though Edwards himself was defeated, his position finally triumphed and provided New England Congregationalism with a doctrine of church membership more appropriate to its situation after disestablishment.

1749년 에드워즈는 위와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끝에 결국 해고되었고, 1750년 7월 1일 엄숙하고 절제된 심정으로 '고별설교'를 했다. 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Qualifications for Communion〉(1749)·〈솔로몬 윌리엄스 목사의 책에 대한 한 응답 가운데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고 진리를 옹호함 Misrepresentations Corrected, and Truth Vindicated,in a Reply to the Rev. Mr. Solomon Williams's Book〉(1752)을 썼는데, 앞의 책은 그 자신이 섬기던 교회 회중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쓴 것이고, 뒤의 책은 코네티컷 레바논 교회의 동료 목사가 자기 견해를 오해했다고 보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 쓴 것이다. 에드워즈는 논쟁에서 패하기는 했으나 그의 입장은 결국 승리를 거두어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에 교도 자격에 관한 교리를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국교 폐지 이후 회중교회가 처한 상황에 더 적절한 교리가 되었다.

Pastorate at Stockbridge

In 1751 Edwards became pastor of the frontier church at Stockbridge, Mass., and missionary to the Indians there. Hampered by language difficulties, illness, Indian wars, and conflicts with powerful personal enemies, he nevertheless discharged his pastoral duties and found time to write his famous work on the Freedom of Will (1754). The will, said Edwards, is not a separate, self-determining faculty with power to act contrary to the strongest motives, as he understood the Arminians to teach. Rather, it is identical with feelings or preference, and a volition is simply the soul's "prevailing inclination" in action; the will "is as the greatest apparent good." Men are free to do as they please, and God therefore rightly holds them morally responsible for the quality of their volitions as expressions of their desires and intentions.

스톡브리지에서의 목회

1751년 에드워즈는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에 있는 개척교회의 목사 겸 그 지역 인디언들의 선교사가 되었다. 언어 장벽, 질병, 인디언 전쟁들, 개인적으로 못살게 구는 사람들과의 대립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목회에 충실했고, 여가를 내어 〈의지의 자유 Freedom of Will〉(1754)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서, 의지는 가장 강력한 동기들을 거스르면서까지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기능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의지는 감정이나 선호(選好)와 같은 것이다. 결단은 영혼의 '지배적인 경향'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의지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최대의 선'으로서 나타난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으며, 따라서 하느님은 그들의 욕구와 의도의 표현인 결단의 내용에 대해서 도덕적인 책임을 질 것을 당연히 요구한다고 했다.

By 1757 Edwards had finished his Great Christian Doctrine of Original Sin Defended (1758), which was mainly a reply to the English divine John Taylor of Norwich, whose works attacking Calvinism (based on the thought of the 16th-century Protestant Reformer John Calvin) had "made a mighty noise in America." Edwards defended the doctrine not only by citing biblical statements about the corruption of man's heart but also by arguing that the empirical evidence of men's universal commission of sinful acts points to a sinful predisposition in every man. In answering Arminian objections to the notion that God "imputed" Adam's guilt to his posterity, Edwards proposed a novel theory of identity by divine "constitution" to account for men's unity with Adam and suggested that their innate corruption is not a judicial punishment for Adam's guilt but is really their own because of their participation (being one with him) in the sinful inclination that preceded Adam's sinful act. Edwards' was the first major contribution to the long debate about human nature in American theology and helped set the terms of that debate.

1757년까지는 〈원죄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대교리 Great Christian Doctrine of Original Sin Defended〉(1758)를 완성했는데, 이 책은 주로 노리치에서 시무하는 영국 목사 존 테일러가 그의 저서들을 통해서 칼뱅주의(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사상에 근거한 교리체계)를 공격하여 '아메리카를 소란스럽게 한' 데 대한 반론이다. 이 책에서 에드워즈는 인간의 마음이 부패했다고 가르치는 성서 구절들을 인용하고,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는 경험적 증거로 보아 모든 사람들에게는 죄를 짓는 성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원죄 교리를 변호했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하느님이 아담의 죄책(罪責)을 그의 후손들에게 '전가'(轉嫁)했다는 개념을 반박했는데, 에드워즈는 하느님의 '속성부여'에 따라 정체성(正體性)이 결정된다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하여 인류와 아담의 연합을 설명했으며, 인류의 내적인 타락은 아담의 죄책에 대한 법적인 형벌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가지고 있던 죄의 성향에 동참함(그와 하나가 됨)으로써 얻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론으로 에드워즈는 아메리카 신학에서 인간 본성을 놓고 길게 끌어온 논쟁에 중요한 공헌을 했고, 이 논쟁에서 쓰인 용어들을 정립했다.

Edwards perceived the threat in Taylor's notion of man's innate goodness and autonomy; the whole Christian conception of supernatural redemption seemed to be at stake. He therefore planned further treatises, of which he completed two posthumously published dissertations: Concerning the End for Which God Created the World and The Nature of True Virtue (1765). God's glory, not human happiness, is his end in creation; but this is because God in his all-sufficient fullness must communicate himself by the exercise of his attributes. God can be said to aim at the creature's happiness, but it is a happiness that consists in contemplating and rejoicing in God's glory manifested in creation and redemption. Edwards defines true virtue as disinterested love (benevolence) toward God as Being in general and toward all lesser beings according to their degree of being. True virtue, therefore, does not spring from self-love or from any earthbound altruism (two prime 18th-century views); love to self, family, nation, or even mankind is good only if these lesser systems of being do not usurp the place of highest regard that belongs to God alone.

에드워즈는 인간이 선과 자율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테일러의 주장이 위험한 주장이라고 보았다. 이 주장은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이 믿고 있는 초자연적 구속 개념을 뒤흔든다고 본 것이다.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계획한 몇 편의 논문들 가운데 정작 완성된 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신 목적에 관해서 Concerning the End for Which God Created the World〉· 〈참된 덕의 본질 The Nature of True Virtue〉(1765)이었다. 이 2편의 논문은 그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의 행복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에 있다. 왜냐하면 자족적인 충만함 가운데 있는 하느님은 자신의 속성을 발휘하여 자기자신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피조물의 행복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행복은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묵상하고 즐기는 것이다. 참된 덕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존재인 하느님과 그보다 열등한 모든 존재들을 그 존재의 등급에 따라 사심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덕은 자기 사랑이나 세속적인 이타주의(18세기의 2가지 주요 견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자기 자신, 가족, 국가, 심지어 인류에 대한 사랑도 최고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존경을 받을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Edwards also projected books on other subjects, notably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he had preached a series of sermons--posthumously published--on that subject in 1739), which was to be a complete theology combining biblical, historical, and systematic materials "in an entire new method." Late in 1757, however, he accepted the presidency of the College of New Jersey (later Princeton University) and arrived there in January. He had hardly assumed his duties when he contracted smallpox and died.

에드워즈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글을 썼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사역의 역사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에드워즈는 1739년에 이 주제에 대해서 연속 설교를 했으며, 이 내용은 그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음)이다. 이 책은 훗날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성서·역사·조직신학의 자료들을 한데 묶은 완벽한 신학 저서가 되었다. 1757년 그는 뉴저지대학(뒤의 프린스턴대학교) 학장으로 초빙되어 1월에 그곳에 도착했으나, 천연두에 걸려 학장직을 수행해보지도 못한 채 죽었다.

Influence

Edwards' immediate disciples, Joseph Bellamy (pastor at Bethlehem, Conn.), Samuel Hopkins (pastor at Great Barrington, Mass., later at Newport, R.I.,), and Jonathan Edwards, Jr., developed some of his "improvements" into a distinct theological school; it was first called "Hopkinsianism" and later the "New England Theology." These men and their successors, in their effort to defend Calvinism against Arminians, Unitarians (those who denied the doctrine of the Trinity), and "infidels," made important modifications in some of its doctrines and thus prepared the way for later 19th-century evangelical liberalism.

영향

에드워즈의 직계 제자들인 조셉 벨러미(코네티컷 베슬리헴의 목사), 새뮤얼 홉킨스(매사추세츠 그레이트 배링턴, 후에는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의 목사), 조나산 에드워즈 2세는 에드워즈가 이룩한 학문 업적들 가운데 일부를 발전시켜 뚜렷한 신학 학파를 만들었다. 이 학파는 처음에는 ' 홉킨스주의'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 뉴잉글랜드 신학'으로 불렸다. 이 사람들과 이들의 후계자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 유니테리언주의자들(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들), '이단자들'에 맞서서 칼뱅주의를 변호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칼뱅주의 교리 가운데 일부 내용에 중요한 수정을 가하여 19세기 복음주의적 자유주의를 위한 길을 닦아놓았다.

Edwards' influence on the intellectual character of American Protestantism for a century after his death was very pronounced, and he was widely read in the British Isles. In a general revolt against Puritanism and Calvinism after the U.S. Civil War (1861-65), Edwards' prestige declined, and he was remembered mainly as a hell-fire preacher or as an abstruse, absent-minded metaphysician. In the 1930s and after, he was rediscovered by theologians reacting against liberalism and by secular scholars seeking to delineate the "American mind." Edwards' ability to combine religious intensity with intellectual rigour and moral earnestness, the cosmic sweep of his theological vision, his emphasis on faith as an "existential" response to reality, his insistence that love is the heart of religion, and his uncompromising stand against all forms of idolatry are some of the reasons his life and writings are again being seriously studied.

에드워즈가 죽은 뒤 1세기 동안 아메리카 개신교의 지적 성향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영국에서도 그의 책이 널리 읽혔다. 그러나, 미국 남북전쟁(1861~65) 이후 청교도와 칼뱅주의에 대해서 일어난 전반적인 반발로 인해 그의 명성도 줄어들었고, 주로 '지옥불 설교자'로, 까다롭고 실속없는 형이상학자로 기억되었다. 1930년대 이후에 그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신학자들과 '아메리카 정신'을 그려내려고 하는 세속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에드워즈의 생애와 저서들이 다시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는 몇 가지 이유는' 그가 신앙 열정을 지적 엄격성, 도덕적 건실성과 결합할 만큼 역량이 있었고 신학적 관점의 폭이 넓었으며, 신앙을 실재에 대한 '실존적인' 반응이라고 강조했고 사랑을 종교의 핵심이라고 주장했으며,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IBLIOGRAPHY.

John E. Smith, et al. (eds.),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1957- ), will be a complete critical edition. Ola Elizabeth Winslow, Jonathan Edwards, 1703-1758 (1940, reprinted 1973), containing a delineation of Edwards the man; and Arthur C. McGiffert, Jr., Jonathan Edwards (1932, reprinted 1980), containing a good understanding of his thought, are regarded as the best biographies. Perry Miller, Jonathan Edwards (1949, reprinted 1973), an intellectual biography, is a brilliant interpretation that has been accused of unduly modernizing Edwards. Other interpretive studies include: Douglas J. Elwood, The Philosophical Theology of Jonathan Edwards (1960), which stresses the Platonic and Augustinian elements; and Conrad Cherry, The Theology of Jonathan Edwards: A Reappraisal (1966), an excellent theological study.

요약설교 3 : J. 에드워즈, 김남일 역, 여수룬, 1991

의지의 자유 : J. 에드워즈, 채재희 역, 예일문학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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