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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Revivalism

신앙부흥운동

revivalism, generally, renewed religious fervour within a Christian group, church, or community, but primarily a movement in some Protestant churches to revitalize the spiritual ardour of their members and win new adherents. Revivalism in its modern form can be attributed to that shared emphasis in Anabaptism, Puritanism, German Pietism, and Methodism in the 16th, 17th, and 18th centuries on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and holy living, in protest against established church systems that seemed excessively sacramental, priestly, and worldly. (see also Protestantism) 신앙부흥운동 (信仰復興運動, revivalism),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단체, 교회, 공동체의 신앙적 열의를 새롭게 하는 운동으로,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주로 교인들의 영적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아울러 새로운 교인을 얻으려는 운동을 뜻한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흥운동은 지나치게 의식적이고 성직자 중심이며 세속적인 기성 교회 체제에 반발하여, 개인의 신앙적 체험, 만인사제직(萬人司祭職), 거룩한 삶을 강조한 16~18세기의 재세례파·청교도·독일경건주의·감리교의 주장을 공유한 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Of the groups that contributed to the revival tradition, the Anabaptists were severely persecuted, and only a few survived the 16th-century Reformation. In England, however, the Puritans protested against the sacramentalism and ritualism of the Church of England in the 17th century, and many migrated to America, where they continued their fervour for experiential religion and devout living. The Puritan fervour waned toward the end of the 17th century, but the Great Awakening (q.v.; c. 1720-50), America's first great revival, under the leadership of Jonathan Edwards, George Whitefield, and others, revitalized religion in the North American colonies. The Great Awakening was a part of a larger religious revival that was also influential in Europe and Great Britain. In Germany and Scandinavia, Lutheranism was revitalized by the movement known as Pietism. The British revival led by John Wesley and others eventually resulted in the Methodist church. 부흥운동의 전통에 기여한 단체 중 재세례파는 심한 박해를 받아 16세기 종교개혁 때에는 소수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이 영국 성공회의 성사제도(聖事制度)와 의식주의(儀式主義)에 대항했고,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체험적 신앙과 경건한 생활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다. 청교도의 열정은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점차 시들었지만, 아메리카 최초의 대부흥운동인 대각성운동(1720경~50)이 조너선 에드워즈, 조지 화이트필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인도로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신앙의 활기를 새롭게 불어넣었다. 대각성운동은 유럽과 대영제국에도 영향을 끼친 광범위한 종교 부흥운동의 일부였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경건주의로 알려진 이 운동이 루터교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존 웨슬리와 그외의 인물들이 주도한 영국의 부흥운동으로 결국 감리교가 생겨났다.
Toward the end of the 18th century another revival, known as the Second Great Awakening (c. 1795-1835), began in the United States. During this revival, meetings were held in small towns and the large cities throughout the country, and the unique frontier institution known as the camp meeting (q.v.) began. The Second Great Awakening produced a great increase in church membership, made soul winning the primary function of the ministry, and stimulated several moral and philanthropic reforms, including temperance, emancipation of women, and foreign missions. 18세기 말엽 미국에서는 제2차 대각성운동(1795~ 1835)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부흥운동 기간중 미국 전역의 중소 도시와 대도시에서 집회가 열렸으며, 야영 집회로 알려진 독특한 프론티어 제도가 시작되었다. 제2차 대각성운동으로 교인 수가 크게 늘었고, 영혼구원을 목회의 가장 중요한 직무로 삼게 되었으며, 절제·여성해방·해외선교 등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 걸쳐 도덕적이고 박애적인 개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After 1835 professional revivalists traveled through the towns and cities of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organizing annual revival meetings at the invitation of local pastors who wanted to reinvigorate their churches. In 1857-58 a "prayer meeting revival" swept U.S. cities following a financial panic. It indirectly instigated a revival in Northern Ireland and England in 1859-61. 1835년 이후 여러 전문 부흥사들은 자기 교회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주기를 바라는 지역 교회 목사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과 영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연차 부흥집회를 조직했다. 1857~58년에는 경제공황에 뒤이어 '기도 부흥집회'가 미국 도시들을 휩쓸었다. 그 열기는 간접적으로 1859~61년에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부흥운동을 부추겼다.
The preaching tour of the American lay evangelist Dwight L. Moody through the British Isles in 1873-75 marked the beginning of a new surge of Anglo-U.S. revivalism. In his subsequent revival activity, Moody perfected the highly businesslike techniques that characterized the urban mass evangelistic campaigns of early 20th-century professional revivalists such as Reuben A. Torrey, Billy Sunday, and others. The interdenominationally supported revivalism of Moody and his imitators in 1875-1915 constituted, in part, a conscious cooperative effort by the Protestant churches to alleviate the unrest of urban industrial society by evangelizing the masses and, in part, an unconscious effort to counter the challenge to Protestant orthodoxy brought on by the new critical methods of studying the Bible and by modern scientific ideas concerning the evolution of man.  1873~75년 미국의 평신도 복음전도자 드와이트 L. 무디가 영국을 돌아다니며 벌인 전도로 영국과 미국 부흥운동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났다. 무디는 계속된 부흥 활동을 통해 루빈 A. 토레이, 빌리 선데이 등 20세기 초엽 직업 부흥운동가들의 도시 대중 전도집회의 특징이 된 고도의 사업가적인 수완을 완벽하게 발휘했다. 1875~ 1915년 무디와 그를 모방한 부흥사들이 초교파적인 도움을 받아 벌인 부흥운동은, 한편으로는 대중을 복음화함으로써 도시 산업사회의 소요를 완화시키기 위한 개신교 교회들의 의식적인 협력 운동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테스탄트 정통신학에 불어닥친 새로운 비평적 성서연구방법과 진화론의 도전에 맞서는 무의식적인 노력이 되었다.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most educated Protestant churchmen lost interest in revivalism. After World War II, however, a renewed interest in mass evangelism appeared and was especially evident in the widespread support given to the revival "crusades" of the American Southern Baptist evangelist Billy Graham and various regional revivalists. 20세기 전반에 프로테스탄트 지식인 신자들은 대부분 부흥운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대중 전도집회에 대한 관심이 새로이 일어났으며, 이같은 관심은 특히 미국 남침례교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여러 지역 부흥운동가들이 신앙부흥 '십자군'운동에 쏟은 열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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