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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종교체험

宗敎體驗

religious experience

종교와 관련된 인간의 경험.

우주의 무한성과 신성에 대한 경이감·신비감, 신적인 권능이나 보이지 않는 질서에 대한 의존감, 신의 심판을 믿는 신앙에 수반되는 죄책감·불안감, 신의 용서를 믿는 신앙과 그로부터 생기는 평화로운 감정 등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종교체험은 첫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만나거나 어떤 사물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신적인 존재와 대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신성한 것과 올바른 것에 대한 이해나 현실 속에서 모든 체험을 궁극자와 연관짓는 것이다. 곧 종교체험이란 신적인 것이나 궁극적인 것에 대한 특수한 체험인 동시에, 일상생활 속의 다른 체험을 신적인 것이나 궁극적인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험이다.

종교체험의 본질과 형태

'종교체험'이라는 말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체험의 다양성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1920)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전문용어로 널리 사용되지 않았다. 제임스 이전에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루돌프 오토 등이 종교의 체험적 측면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그후 심리학자·사회학자·역사학자·인류문화학자·신학자 등이 신·신앙·회심·구원·예배 등의 개념을 개인의 체험과 연관지어 해석함으로써 종교체험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으며, 현상학자나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종교체험을 중요시했다.

종교체험에 대한 본질규명은 연구자의 입장에 따라 그 초점이 다르다. 신비주의 연구의 선구자들인 오토나 W. T. 스테이스는 신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했으며, 신학자인 에밀 브루너는 인간과 신과의 만남을 통한 진정한 인격형성을 강조했다. 자연주의적인 성향을 택했던 지크문트 프로이트나 J. H. 루바는 이러한 견해들을 일축하고, 심리적·유전적 언어로 종교체험을 인간욕구의 투사로 보았다. 존 듀이는 종교체험을 체험의 내용이나 삶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인간 영혼의 표현으로 보았다. 쇠렌 키에르케고르, G. 마르셀, 피울 틸리히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신을 인간의 소외를 극복하고 통합된 자아를 실현시키며 인간체험 속에 현현하는 존재로 보았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종교언어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종교체험을 이해하려고 했다.

종교체험과 그밖의 체험

종교체험은 일반적인 체험 또는 경험과 대비시켜 볼 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존 로크나 데이비드 같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체험 또는 경험을 본질적으로 감각을 통해 세계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감각은 논리와 수학의 영역인 이성과 대비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정신이란 밀랍석판과 같아서 감각의 세계가 각인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2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첫째, 이마누엘 칸트에 의한 비판이다. 칸트는 경험이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감각적 질료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오성에 의해 파악된 것과 질료의 공동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칸트는 모든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칸트의 후계자들인 요한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G. W. F. 헤겔 등도 독일관념론의 발전에 발맞추어 경험을 세계·타인·자신과의 복합적 만남을 다양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둘째,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들인 찰스 샌더스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등에 의한 비판이다. 이들은 경험을 겪은 것을 드러내주는 매개체로 보았다. 경험이란 경험하는 사람의 목표·관심과 관계된 인간의 활동이다. 따라서 경험은 인간과 환경 사이에서 생겨나는 복합적인 교류를 해석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 내용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정치적·종교적 의미의 준거기반까지도 내포하게 된다. 또한 경험은 언어나 상징적 형태로 표현된다. 경험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개념과 언어로 묘사하고 해석함으로써 사물·사람·사건을 동일시해야 한다. 경험을 객관적 대상으로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거룩한 것에 대한 인식, 절대의존의 감정, 전적인 타자와의 만남 등으로 표현되는 종교체험을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된다.

종교체험의 구조

모든 종교체험은 3가지 기본요소로 기술된다. 첫째, 체험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관심사·태도·관념이다. 둘째, 체험 속에 노출된 종교적 목표이다. 셋째,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생겨나는 사회적 형태이다. 종교체험은 삶을 신성하게 만들어주며, 모든 실존의 기반과 목표를 지향하는 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참된 자아실현과 관련하여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체험은 현존하는 타자 또는 신적 실재에 대해 의식을 집중하는 개인에게 실현된다. 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우주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비인격적이고 신성한 질서(로고스, 道)로서의 신이다. 둘째, 경외심을 가지고 적절한 준비나 정결의식을 치르고 접근해야만 하는 거룩한 힘으로서의 신이다. 셋째, 모든 유한한 실재의 궁극적 합일체이거나 신비적 탐구의 목표이며 만물을 포용하는 유일자로서의 신이다. 넷째, 세계와 인간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는 개별자로서의 신이다.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가장 중요한 신 개념은 초월적 신관과 내재적 신관이다. 이는 신과 유한한 실재의 관계를 나타낸다.

종교체험에는 사회적인 차원이 있다. E. 뒤르켐은 종교를 사회적 사실로 보았으나, 화이트헤드는 종교체험의 사회적인 독자성을 강조했다. 이는 가족이나 지역사회 같은 자연적인 집단과는 달리 종교집단은 창시자의 이념과 체험을 전통으로 삼아 교회나 회당 같은 공동체를 통해 종교체험이 표현된 전통·교리·예배의식을 보존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종교공동체는 예배의식이나 종교력(宗敎曆)을 통하여 종교체험을 형성하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종교체험은 언제나 그 자체를 초월하여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는 실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었다. 바로 이 초월적인 준거가 종교체험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종교체험에 대한 인지적 의미나 객관적인 타당성이 문제시된다. 이것은 종교철학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종교체험 현상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법(사회학적·심리학적)이 대두되고, 이러한 현상에 근거해서 신의 실재 또는 진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요청된다.

종교체험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직접성(immediacy)과 중재성(mediation)이 문제가 된다. 즉 종교체험을 직접적 만남으로 보는 것과 종교체험이 끼친 영향력을 중시하는 2가지 부류이다. 종교체험을 계시적인 직접성으로 보는 사람으로는 브루너, H. H. 파머, 마르틴 부버가 있는데, 브루너와 파머는 이것을 신과 인간의 만남으로 보았고, 부버는 나와 당신과의 관계로 보았다. 이와는 달리 종교체험을 분석과 해석을 통한 중재성으로 보는 학자로는 틸리히, C. 하트숀, H. D. 루이스, 듀이 등이 있다.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이나 도덕적 당위성과 같은 한계경험들은 신성한 체험을 통해 인지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하트숀은 체험 속에 나타나는 초월적인 실재가 신적인 실재가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제임스는 종교체험이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체험을 하는 신비가, 예언자, 종교적 사상가들은 3가지 형태로 종교체험 속으로 들어가는 준비를 한다. 첫째, 인간정신으로 하여금 통찰에 이르게 하는 훈련을 위한 합리적 변증법이고, 둘째, 인도의 요가처럼 신체적 훈련을 곁들인 마음의 정화를 위해하는 도덕적 준비이며, 셋째, 일상성을 초월하는 확대된 의식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의약품의 활용 등이다.

상황적 배경과 표현의 형태

종교체험을 표현하는 형태에는 몇 가지 상황적 배경이 있다. 첫째, 예배와 헌신의 형태이다. 예배는 신의 탁월성을 찬미하고 그에게 몸·마음·물질을 바치는 것이다. 둘째, 삶의 위기에 대한 통과의식이다. 임신, 어린아이의 명명식, 성인식, 장례식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것은 삶의 위기(과도기)를 삶과 죽음의 우주적 주기와 연결시킨 것이다. 셋째,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연결이다. 삶의 현실 속에는 신성한 것과 신성하지 않은 것이 있다. 거룩한 것은 세속적인 삶에 관계함으로써 거룩성의 다양함을 유지하지만 특별한 종교형식으로 보호되지 않는 한 거룩함을 상실할 수도 있다. 넷째, 종교체험은 구술적·개념적·상징적 표현들을 활용한다. 경전, 이에 대한 해석의 체계, 신화적·상징적인 개념 등을 종교체험의 표현 방편으로 삼는다.

종교체험의 유형과 인격

종교체험의 유형과 그 실천적 기능은 체험자의 성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비가는 성찰하고 관조하는 유형으로서, 정화와 각성을 통해 참된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 세상과 관계를 끊는다. 제사장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인이기 때문에 그의 중요한 기능은 예배의 형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개혁자는 종교적 전통 속에 서 있으면서 체험과 통찰의 시각에서 그 전통을 변형시키고 활성화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수사는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특정장소에 살면서 최상의 도덕적인 삶과 종교적 요구를 성취하려고 한다. 성인은 종교공동체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완덕을 선취한 사람이다. 따라서 성인은 신앙의 완전한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 순교자가 되거나 신앙의 도덕적·영적인 이상을 성취하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종교의 창시자는 다른 모든 체험과 유형을 능가한다. 그의 종교체험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권위가 되며 설립한 종교의 본질을 형성한다.

신비주의 체험

숨겨진 진리나 지혜를 추구하는 신비주의는 20세기에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전 시대에 신비주의가 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까지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현대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이 부분적으로 그 원인이 되고 있다.

본질과 의미

신비주의의 목표는 신이나 신성한 것과 결합하는 것이다. 통상 이러한 결합은 4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신체적인 욕망의 억제, ② 의지의 정화, ③ 정신의 각성, ④ 신과 의지적·존재적 합일이 그것이다. 신비주의는 존재의 근거로 회귀하는 방식의 하나이며, 소외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신비주의에는 비물질적·비논리적·역설적인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비합리적이고 반합리적인 '사고를 배제한 종교'는 아니다. 심층적인 삶의 형식인 신비주의는 인간이 실재의 근거와 만나게 되는 차원은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러므로 신비주의 차원에서는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고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종교와 신비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종교의 창시자들은 분명히 앞서간 신비주의자들이다.

신비체험과 다른 체험과의 관계

신비주의는 마술·기적·기도·예배·과학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과 신비주의는 접근방법과 강조점에 있어서 다르다. 신비주의는 예배나 기도처럼 감각적 체험의 연속이 아니라 순수하게 통일된 의식(unitary conscious- ness)이다. 과학이 분석적이라면 신비주의는 시적·역설적이다. 열광적인 감정주의(emotionalism)와는 달리 신비주의는 사주를 받거나 계략에 악용되지 않으며 정숙하다. 신비주의는 종교의 주장을 긍정하며 사후의 세계를 예시하기도 한다.

신비주의의 정의와 신비체험

신비주의는 예언적 종교나 샤머니즘과는 구별된다. 예언적 종교는 신비주의에 비해 행위를 강조하며, 신과 인간의 절대적인 차이를 말한다. 샤머니즘은 신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신비주의의 정화의 단계와 유사점도 있지만 초자연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한다. 신비주의는 감각적인 지식이나 추론적 지식을 뛰어넘는 제3의 지식에 대한 신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비주의의 본질은 일시적인 이해의 범주를 뛰어 넘어 직관의 세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중세 때의 유신론적 신비주의는 인간 영혼이 사랑의 열망을 통해 신을 향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결과 절대자와 교류를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된다. 19세기의 오토 플라이데러는 종교 신비주의를 자아와 신과의 직접적인 일치의 감정이라는 배타적인 정의를 내렸다. 그러나 영국의 리처드 네틀십은 반대로 신비주의는 인간이 경험하는 요인에 대한 상징이라고 정의했다. 어떤 신비주의 형태는 상징을 뛰어넘어 절대자와 적나라한 대면을 시도한다. 내향적 신비주의는 밖을 주시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함으로써 절대자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것은 전반적인 의식의 내용을 거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영국의 학자 R. C. 재너는 격리형식의 신비체험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영과 물질, 영원과 시간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생물학자인 L.V.버탈란피는 자아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일치와 자유를 체험하는 정상체험(peak experience)을 고백하기도 했다. 신비주의에 대한 태도는 20세기 중반부터 무의식, 초감각적 인지, 진화론적 관점 등에 의해 상당히 수정되었다.

신비체험의 보편적 유형

지성적·관상적(觀相的)인 형태의 신비체험은 분별력에 의존하면서 신이나 지고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사고·의지·감정을 동원하여 지식(지냐나)·업(業: 카르마)·신애(信愛: 박티)를 연결하는 인도의 신비체험이나 요가는 이 유형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유형에서 모든 삶과 삶 속에서 수행해야 할 일이 명상이다. 헌신적인 형태의 신비체험은 사랑이나 헌신을 중심으로 하는 정서적 접근방식의 유형이다. 기도·예배·경배의 의식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유형의 신비체험은 황홀경이라는 보상을 제공해준다. 황홀하고 에로틱한 형태의 신비체험은 교회의 교부들이나 현자들에 의해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유형으로, 정화되지 않은 에로틱한 감정을 촉발시키는 접근방식이다. 인도의 바이스나바 또는 탄트라(性的) 체험은 이 유형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20세기에는 약품 등을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의료적 신비주의가 등장했다.

신비체험과 신비주의의 목표

신이나 신성한 것을 직접 체험하려는 신비주의는 최고의 선으로 간주되었다. 직접적·직관적 신(神) 인식은 계시 종교와 유사하지만 나름대로 그것은 과학이며 철학이다. 신이나 신성한 것과 합일하려는 신비체험은 인격의 변화인 회심을 가져온다.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존재'나 힌두교의 '재생'(再生)이 그 예인데, 그것은 불경건한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여기'로부터 '저기'로의 이행을 뜻한다. 우주를 체험하는 신비주의는 역설적인 신비체험이다. 모든 신비주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만 체험자는 시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시간 밖에 있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편견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성숙을 촉구하는 체험이다. 사람들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비체험은 발전적인 인간생활을 도모하려는 신비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를 담고 있다. 신비주의가 초월을 지향하는 데 반해 이 체험은 인간의 영혼 속에 내재하는 신을 지향하는 것이다.

인간과 신성과의 신비적 관계

인간의 영혼 속에는 신성한 것이 있고 신비주의는 신성한 것에 대한 학문이며 예술이다. 신과의 합일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인간과 신을 일치시키는 것을 이단으로 생각했으며 범신론으로 보았다. 이슬람 신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신성한 것에 대한 체험은 언제나 유쾌한 것은 아니다. 때로 그것은 불안과 공포를 주기도 한다. 어떤 신비가들은 신비체험의 수단으로 금식·명상·자기암시 등을 활용한다. 신비신학에서는 체험 자체를 신의 은총으로 여긴다. 신비체험은 인간이 신성한 것과 다양한 신비적 관계를 맺도록 한다. 서방 그리스도교에서는 이것을 신비적 합일(unio mystica), 힌두교에서는 구원(moka), 불교에서는 열반(nirva), 이슬람교에서는 자아의 소멸(fan)이라고 한다.

신비체험에서의 의미론과 상징주의

대극(opposite)의 합일은 '대극적 일치'라는 의미로 체험의 한 차원을 가지고 다른 차원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상징이며 역설이다. 그리스도와 사탄이 형제라는 말이 이에 해당된다. 겸허와 충만은 표현의 이율배반적 방법을 통해 균형을 찾는 상징이다. 긍정적인 방법은 충만이고 부정적인 방법은 겸허로 표현되어 신은 우주 만물을 다 소유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신의 사자(使者)라는 상징주의는 신비의 실재를 체험했으나 이를 널리 보편적으로 알릴 수 없을 때 특별한 통로를 통해 전달한다는 뜻이다. 사랑과 결혼의 상징주의는 체험자의 영혼을 여성으로 보고 체험의 대상을 남성으로 보면서 모험적이고 심도 깊은 관계를 추구할 때 쓰는 말이다. 여행의 상징주의는 탐구, 순례의 길을 의미한다. 여기서 길은 위로, 안으로 열려 있으며 역사의 피안으로의 도약도 이루어진다. 이 모든 상징은 발전적인 자아 이해의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이다. 신비체험은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해주며 우주의 본질을 보는 제3의 눈과 지혜의 눈을 제공해준다.

신비주의의 심리학적 측면

신비주의는 심리학적 상태를 뛰어넘어 형이상학적인 서술로 비약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심리학과 신의 심리학을 섞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신비주의의 주된 방향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전환하면서, 인간의 안과 밖에 있는 신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신비적 생활의 특징은 다량의 에너지와 확대된 자각으로 삶의 비전을 획득하여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랍어로 '정신의 궁전'이라는 뜻의 '마캄'이나 산스크리트로 '대지'라는 뜻의 '부미'는 모두 생의 비전을 찾고 세계의 나그네로서 삶을 시작하려는 조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자각이다.

신을 예배하는 자는 신처럼 되어야 한다는 인도의 경구처럼 신비주의에서 에너지의 활달한 발산은 의식을 어떤 대상이나 상념에다가 고정시키고 집중할 때 촉진된다. 인도심리학은 인간의 의식을 자각상태(jgrat)·몽상상태(svapna)·수면상태(suupti)로 분류 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순수한 자기 실존 또는 존재의 의식(turya)이다. 이러한 4개의 척도는 인간이 절대정신인 존재의 근원으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의 단계를 시사한다. 신비주의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두꺼운 자아의 벽, 감각, 제한된 관심이라는 감옥 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의 천사와 사랑의 천사는 인간이 위를 향하도록 부르고 인도한다. 신비주의자들은 장기간 또는 단기간 사회로부터 떨어져서 지식과 사랑으로 나아간다. 신비의 길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것은 이중 감정이다. 곧 많이 사랑할수록 고통도 크다는 것이다. 신비의 병적 상태란 이러한 사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발전하는 의식의 한 측면이다. 상징과의 동일시 역할은 이런 의식의 발달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측면이다.

신비체험에 대한 체계적 설명

신비체험에 대한 신비체험가들의 첫번째 체계적 설명은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하는 일이다. 신비주의에 대한 이론이나 해석 자체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에 대한 설명에는 철학적·실천적 또는 고백적·해명적 측면이 있다. 어떤 신비가는 체험의 내용을 기록하며 또 어떤 신비가는 실천의 기법을 기록한다. 어떻든 신비적 방법, 체험, 설명 등의 3가지는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 이런 설명은 문화, 전통, 시대에 따라 특수한 한 기조를 형성하기도 했다. 8, 9세기 인도의 철학자 상카라와 16세기 스페인의 십자가의 성 요한네스의 기록은 방법의 차이는 있으나 보편적인 내용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신비체험에 대한 2번째 체계적 설명은 그 가치와 의미를 논의하는 일이다. 신비체험가들은 그들의 성향이나 경향에 따라 초월적 세계나 신에 몰입하여 세계를 부인하기도 하고 어떤 성숙한 신비가들은 영과 물질을 분리하지 않고 중재하기도 한다. 신비주의는 생명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파괴적인 것이 아니고 성취적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인간의 감각이나 정신적인 차원에서 신비주의는 감동이 없는 실존의 삶의 형식으로부터 돌파구를 제공해준다. 또한 이것은 인간을 심오하게 해주고, 채워야 할 희망과 운명을 제공하기 때문에 인간의 종교 또는 성숙의 종교라고도 했다. 신비체험에 대한 3번째 체계적 설명은 대화와 이해의 문제이다. 한 나라에서의 경향을 다른 나라에서 설명하고 가치를 이식해서 수용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상(理想)을 함부로 서술하거나 체험을 체계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상관적인 초월이라는 점을 신비주의는 지적한다.

사회적 요인으로서의 신비주의

신비체험은 확실히 개인 단독자가 초월자와 갖는 체험이다. 야코프 뵈메의 말처럼 신비체험 속에서 세계는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재형성되기 때문에 외형적 권위나 교회에 대항해 나타난 신비주의는 그 배경이 다양하다. 신비주의가 지니고 있는 타계적 편견과 신과의 수직적 관계 때문에 신비주의자들은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받아왔다. 그래서 그는 소외자이며 죽은 시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R.D.라나데는 "사회에 대하여 최선의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신비가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소 소박한 형태의 신비주의는 자선·격리·헌신의 태도와 원칙을 통해 개인과 집단과의 관계를 유도한다.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신비주의는 자연과 사회를 초월하여 집단적인 삶을 변화시키려고 했으며 세계의 질병을 치유하려고 했다. 신비주의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장 크게 힘쓰는 사람은 궁극적 혁명인 의식의 혁명을 자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신비적 정신의 구조를 통해 의식(意識)의 문화도 전망해볼 수 있다.

Macropaedia

참고문헌

    종교체험

  •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사회학연구 10) : E. 뒤르켐, 노치준 외 역, 민영사, 1992
  • 나와 너 : M. 부버, 김천배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1
  • 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 - 신화, 무속, 그리고 종교체험 : 김광일, 교문사, 1991
  • 신비체험과 신앙 : 황영철 편저, 나비, 1988
  • 종교와 예술(미술선서 63) : 게라두스 반 데르 레우흐, 윤이흠 역, 열화당, 1988
  • 성스러움의 의미 : R. 오토, 김희성 역, 분도출판사, 1987
  • 수피의 가르침 : 아드레흐 샤흐, 박상준 역, 고려원, 1987
  •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 H. 베르그송, 강영계 역, 탐구당, 1985
  • 성과 속 - 종교의 본질 : M. 엘리아데, 이동하 역, 학민사, 1983
  • Religion and Empiricism : J. E. Smith, 1967
  • Our Experience of God : H. D. Lewis, 1959
  • The Sociology of Religion : Joachim Wach, 1944
  • The Structure of Religious Experience : John MacMurray, 1936(reprinted 1971)
  • Worship : Evelyn Underhill, 1936(reprinted 1957)
  • A Common Faith : John Dewey, 1934
  • Religion in the Making : A. N. Whitehead, 1926
  •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 William James,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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