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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Adoptionism

양자론 (養子論)

Adoptionism, either of two Christian heresies: one developed in the 2nd and 3rd centuries and is also known as Dynamic Monarchianism (see Monarchianism ); the other began in the 8th century in Spain and was concerned with the teaching of Elipandus, archbishop of Toledo. Wishing to distinguish in Christ the operations of each of his natures, human and divine, Elipandus referred to Christ in his humanity as "adopted son" in contradistinction to Christ in his divinity, who is the Son of God by nature. The son of Mary, assumed by the Word, thus was not the Son of God by nature but only by adoption. (see also Index: Christ, two natures of) 양자론은 다음의 기독교의 두가지 이단설 중의 하나이다: 그 한 가지는 2~3세기에 발전했던 '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이며; 다른 하나는 과 8세기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톨레도의 대주교 엘리판두스의 가르침과 관련된 이단설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과 신성의 두 본성을 구분하고자 한 엘리판두스는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그 본질상 하느님의 아들인 신적인 그리스도와 구별해서 '양자'(養子)라고 불렀다. 따라서 '말씀'에 의해 수태된 마리아의 아들은 본질상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양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참고 : 그리스도 양성론). 
Opposition to this view of Christ was expressed, which led Pope Adrian I to intervene and condemn the teaching. Elipandus gained the support of Felix, bishop of Urgel, who eventually engaged in a literary duel with Alcuin of York over the doctrine.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곧 반박을 받았고, 교황 아드리아누스 1세가 개입하여 이 가르침을 단죄했다. 엘리판두스는 우르헬의 주교 펠릭스의 지지를 받았는데, 결국 펠릭스는 이 교리를 놓고서 요크의 앨퀸과 문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In 798 Pope Leo III held a council in Rome that condemned the "Adoptionism" of Felix and anathematized him. Felix was forced to recant in 799 and was placed under surveillance. Elipandus remained unrepentant, however, and continued as archbishop of Toledo, but the Adoptionist view was almost universally abandoned after his death. It was temporarily revived in the 12th century in the teachings of Peter Abelard and his followers.

798년 교황 레오 3세는 로마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펠릭스의 '양자론'을 단죄하고 그를 파문했다. 799년 펠릭스는 이 견해를 어쩔 수 없이 철회하고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판두스는 회개하지 않고 계속 톨레도의 대주교직을 수행했다. 그가 죽은 뒤 양자론은 거의 전지역에서 영향력을 잃었다가 12세기에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 및 그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에서 잠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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