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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Arianism

아리우스주의

Arianism, a Christian heresy first proposed early in the 4th century by the Alexandrian presbyter Arius. It affirmed that Christ is not truly divine but a created being. Arius' basic premise was the uniqueness of God, who is alone self-existent and immutable; the Son, who is not self-existent, cannot be God. Because the Godhead is unique, it cannot be shared or communicated, so the Son cannot be God. Because the Godhead is immutable, the Son, who is mutable, being represented in the Gospels as subject to growth and change, cannot be God. The Son must, therefore, be deemed a creature who has been called into existence out of nothing and has had a beginning. Moreover, the Son can have no direct knowledge of the Father since the Son is finite and of a different order of existence. (see also : Christ, two natures of) 4세기초 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가 처음 주장한 그리스도교 이단설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실제로는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기본 전제는 스스로 존재하며 불변하는 하느님의 유일성이었다. 반면에 성자(聖子)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신성은 유일한 것이어서 나누거나 전가할 수 없으며 신성은 불변하기 때문에 복음서에 나타난 성장하고 변화하는 성자는 하느님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자는 무(無)로부터 존재하게 되었으며, '시작'이 있는 피조물로 본다. 게다가 성자는 유한하고 존재 질서가 다르기 때문에 성부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참고: 그리스도 양성론)
According to its opponents, especially the bishop Athanasius, Arius' teaching reduced the Son to a demigod, reintroduced polytheism (since worship of the Son was not abandoned), and undermined the Christian concept of redemption since only he who was truly God could be deemed to have reconciled man to the Godhead. 아리우스주의를 반박한 사람들, 특히 주교 아타나시우스에 따르면,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성자를 반신(半神)으로 전락시켰고 성자에 대한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신론(polytheism)을 다시 도입했으며, 참된 하느님인 성자만이 사람과 하느님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구속 개념을 훼손했다고 논박했다.
The controversy seemed to have been brought to an end by the Council of Nicaea (AD 325), which condemned Arius and his teaching and issued a creed to safeguard orthodox Christian belief. This creed states that the Son is homoousion to Patri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thus declaring him to be all that the Father is: he is completely divine. In fact, however, this was only the beginning of a long-protracted dispute. (see also Index: Nicaea, Creed of) 이 논쟁은 니케아 공의회(325)가 아리우스와 그의 교리를 정죄하고,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조를 공포함으로써 끝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신조는 성자가 '성부와 하나의 본질을 갖고 있다'(homoousion t Patri)라고 진술하며, 이로써 성자가 성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완전한 신이라고 공포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아주 긴 논쟁의 시작일 뿐이었다. 
From 325 to 337, when the emperor Constantine died, the Arian leaders, exiled after the Council of Nicaea, tried by intrigue to return to their churches and sees and to banish their enemies. They were partly successful. 325년부터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337년까지 니케아 공의회 이후 축출되었던 아리우스주의 지도자들이 음모를 꾸며 과거에 일했던 교회와 교구로 돌아와 그들의 적들을 쫓아내려고 했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공했다. 
From 337 to 350 Constans, sympathetic to the orthodox Christians, was emperor in the West, and Constantius II, sympathetic to the Arians, was emperor in the East. At a church council held at Antioch (341), an affirmation of faith that omitted the homoousion clause was issued. Another church council was held at Sardica (modern Sofia) in 342, but little was achieved by either council. (see also Index: Antioch, Council of) 337~350년 정통 그리스도교도들에게 호의적이던 콘스탄스는 서로마 황제가 되었고,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인 콘스탄티우스 2세는 동로마 황제가 되었다. 안티오크에서 열린 공의회(341)는 '호모우시온'(homoousion)을 삭제한 신앙 진술을 공포했다. 342년에 사르디카(지금의 소피아)에서 또다른 공의회가 열렸지만, 두 공의회는 소득 없이 끝났다.
In 350 Constantius became sole ruler of the empire, and under his leadership the Nicene party (orthodox Christians) was largely crushed. The extreme Arians then declared that the Son was "unlike" (anomoios) the Father. These anomoeans succeeded in having their views endorsed at Sirmium in 357, but their extremism stimulated the moderates, who asserted that the Son was "of similar substance" (homoiousios) with the Father. Constantius at first supported these homoiousians but soon transferred his support to the homoeans, led by Acacius, who affirmed that the Son was "like" (homoios) the Father. Their views were approved in 360 at Constantinople, where all previous creeds were rejected, the term ousia ("substance," or "stuff") was repudiated, and a statement of faith was issued stating that the Son was "like the Father who begot him." (see also Index: Constantinople, Council of)

350년 콘스탄티우스가 제국의 유일한 군주가 되자 그의 지배하에 니케아파(정통 그리스도교도들)는 널리 박해를 받았다. 그때 극단적인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는 성부와 '같지 않다'(anomoios)고 선언했다. 이 '아노모이오스'주의자들은 357년 시르미움에서 자기들의 견해를 승인받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성자가 성부와 '비슷한 본질'(homoiousios)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온건론자들을 자극했다. 콘스탄티우스는 처음에는 이 '호모이우시오스'주의자들을 지지했으나 곧 입장을 바꾸어 성자가 성부와 '같다'(homoios)고 주장한 아카키우스가 이끄는 '호모이오스'주의자들을 지지했다. 36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승인하여 기존의 모든 신조를 배척했고, '우시아'(ousia:본질 또는 물질)라는 용어를 거부했으며, 성자는 '그를 낳은 성부와 같다'고 하는 신앙 진술을 공포했다.

After Constantius' death (361), the orthodox Christian majority in the West consolidated its position. The persecution of orthodox Christians conducted by the (Arian) emperor Valens (364-378) in the East and the success of the teaching of Basil the Great of Caesarea, Gregory of Nyssa, and Gregory of Nazianzus led the homoiousian majority in the East to realize its fundamental agreement with the Nicene party. When the emperors Gratian (367-383) and Theodosius I (379-395) took up the defense of orthodoxy, Arianism collapsed. In 381 the second ecumenical council met at Constantinople. Arianism was proscribed, and a statement of faith, the Nicene Creed, was approved. 콘스탄티우스가 죽은(361) 후 서로마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정통 그리스도교는 그 입장을 강화했다. 동로마(아리우스파) 황제 발렌스(364~378 재위)가 정통파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했지만 카이사리아의 바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가르침이 널리 퍼진 뒤에 동로마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호모이우시오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니케아파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라티아누스(367~383 재위)와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 재위) 같은 황제들이 정통파 견해를 옹호하자 아리우스주의는 무너지고 말았다.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주의를 금지했고 니케아 신조를 승인했다. 

Although this ended the heresy in the empire, Arianism continued among some of the Germanic tribes to the end of the 7th century. In modern times some Unitarians are virtually Arians in that they are unwilling either to reduce Christ to a mere human being or to attribute to him a divine nature identical with that of the Father. The Christology of Jehovah's Witnesses, also, is a form of Arianism; they regard Arius as a forerunner of Charles Taze Russell, the founder of their movement.

이로써 제국 안에서 이단설은 뿌리뽑혔지만, 아리우스주의는 7세기말까지 일부 게르만 부족들 사이에서 계속 존속했다. 오늘날에도 일부 유니테리언파가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그가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아리우스주의자들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론도 아리우스주의의 한 형태이다. 그들은 아리우스를 '여호와의 증인' 운동을 시작한 찰스 타즈 러셀의 선구자로 여긴다.

Semi-Arianism

반(半) 아리우스주의(主義)
semi-Arianism, a 4th-century Trinitarian heresy in the Christian church. Though it modified the extreme position of Arianism, it still fell short of the church's orthodox teaching that Father, Son, and Holy Spirit are of the same substance. (see also Trinity) 4세기에 생긴 그리스도교의 이단으로, 아리우스주의의 극단적인 입장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성부·성자·성령이 동일한 실체(實體)라는 교회의 정통적인 가르침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Arius held that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were three separate essences (ousiai) or substances (hypostaseis) and that the Son and Spirit derived their divinity from the Father, were created in time, and were inferior to the Godhead. Semi-Arians, however, admitted that the Son was "like" (homoiousios) the Father but not of one substance (homoousios) with him. This doctrinal controversy, revolving around two words distinguished by a single iota ({iota} ), gave rise to the popular expression, "It makes not one iota of difference." To Orthodox Christians, however, the iota was of great importance. Both Arianism and semi-Arianism were condemned at the Council of Nicaea (325).

아리우스는 성부·성자·성령이 독립된 3본질(ousiai) 또는 실체(hypostaseis)이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게서 신성(神性)을 물려받았을 뿐 유한한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아리우스주의자들은 성자가 성부와 '닮았으나'(homoiousios) '동일 본질'(homoousios)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어의 '요타'(ι) 1자로 구별되는 2단어를 둘러싼 이 교리 논쟁 때문에 "그것은 요타 하나만큼의 차이도 없다"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통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그 요타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아리우스주의나 반아리우스주의 모두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포되었다(325).

Arius

아리우스

Arius (b. c. 250, Libya--d. 336, Constantinople [now Istanbul, Tur.]), Christian priest of Alexandria, Egypt, whose teachings gave rise to a theological doctrine known as Arianism (q.v.), which, in affirming the created, finite nature of Christ, was denounced by the early church as a major heresy.  아리우스, 250경 리비아~336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성직자로서, 그의 가르침 때문에 아리우스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사상이 생겼는데, 아리우스주의란 그리스도가 피조되고 유한한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상으로 초기 교회의 정통교리에 도전하는 주요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An ascetical, moral leader of a Christian community in the area of Alexandria, Arius attracted a large following through a message integrating Neoplatonism, which accented the absolute oneness of the divinity as the highest perfection, with a literal, rationalist approach to the New Testament texts. This point of view was publicized about 323 through the poetic verse of his major work, Thalia ("Banquet"), and was widely spread by popular songs written for labourers and travelers. 알렉산드리아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금욕적· 도덕적 지도자인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집대성하여 가르침으로써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성의 절대적 단일성만이 최고의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고,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하면서도 합리주의적인 해석을 하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323년경 그의 주요작품 [연회 Thalia]의 시 구절을 통해 공포되었고, 노동자와 여행자를 위한 대중가요를 통해 널리 퍼졌다.
The Council of Nicaea, in May 325, declared Arius a heretic after he refused to sign the formula of faith stating that Christ was of the same divine nature as God. Influential support from colleagues in Asia Minor and from Constantia, the emperor Constantine I's daughter, succeeded in effecting Arius' return from exile and his readmission into the church after consenting to a compromise formula. Shortly before he was to be reconciled, however, Arius collapsed and died while walking through the streets of Constantinople.

325년 5월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는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똑같은 신성을 지녔다는 신조에 서명하기를 거절하는 아리우스를 이단자로 선언했다. 소아시아에 있는 동료들과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딸 콘스탄티아의 영향력 있는 지지로 인해 아리우스는 추방 상태에서 돌아올 수 있었고, 타협신조에 동의한 뒤 교회로 다시 입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해를 하기 바로 직전 콘스탄티노플 거리를 걷다가 쓰러져 죽었다.

(참고: Euseb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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