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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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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anism 몬타누스 주의
Montanism, also called CATAPHRYGIAN HERESY, or NEW PROPHECY, a heretical movement founded by the prophet Montanus that arose in the Christian church in Phrygia, Asia Minor, in the 2nd century. Subsequently it flourished in the West, principally in Carthage under the leadership of Tertullian in the 3rd century. It had almost died out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although some evidence indicates that it survived into the 9th century. Cataphrygian Heresy, New Prophecy라고도 하며, 2세기 소아시아 프리지아의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예언자 몬타누스가 일으킨 이단운동이다. 3세기에 이르러 카르타고에서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의 지도로 번성했다. 이 운동은 9세기까지 존속했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지는 않지만 5, 6세기에 거의 소멸되었다.
The Montanist writings have perished, except for brief references preserved by ecclesiastical writers. The chief sources for the history of the movement are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Ecclesiastical History), the writings of Tertullian and Epiphanius, and inscriptions, particularly those in central Phrygia. 몬타누스주의자의 저서들은 교회 저술가들이 남긴 간단한 언급들을 빼고는 남은 것이 없다. 이 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주요자료는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를 비롯해 테르툴리아누스와 에피파니우스의 글과 비명(碑銘), 특히 프리지아 중부에서 발견된 비명들이다.
According to the known history, Montanus, a recent Christian convert, appeared at Ardabau, a small village in Phrygia, about 156. He fell into a trance and began to "prophesy under the influence of the Spirit." He was soon joined by two young women, Prisca, or Priscilla, and Maximilla, who also began to prophesy. The movement spread throughout Asia Minor. Inscriptions have indicated that a number of towns were almost completely converted to Montanism. After the first enthusiasm had waned, however, the followers of Montanus were found predominantly in the rural districts.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몬타누스는 156년경 프리지아에 있는 조그만 마을 아르다바우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입신(入神)의 상태에 빠져들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예언을 하기 시작한 두 젊은 여자, 곧 프리스카(또는 프리스킬라)·막시밀라와 손을 잡았다. 이 운동은 소아시아로 퍼져나갔는데 비명들의 기록에 의하면 많은 마을들이 거의 몬타누스주의로 개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의 열정이 시들자 주로 농촌지역에서만 몬타누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The essential principle of Montanism was that the Paraclete, the Spirit of truth, whom Jesus had promised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was manifesting himself to the world through Montanus and the prophets and prophetesses associated with him. This did not seem at first to deny the doctrines of the church or to attack the authority of the bishops. Prophecy from the earliest days had been held in honour, and the church acknowledged the charismatic gift of some prophets. (see also : Holy Spirit) 몬타누스주의의 기본원칙은 예수가 〈요한의 복음서〉에서 보내기로 약속한 보혜사(保惠師 Paraclete), 즉 진리의 성령이 몬타누스 및 그와 함께 하는 남녀 예언자들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몬타누스주의의 원칙이 교회의 교리들을 부정하거나 주교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예언이 존중되고 있었고 일부 예언자들의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교회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It soon became clear, however, that the Montanist prophecy was new. True prophets did not, as Montanus did, deliberately induce a kind of ecstatic intensity and a state of passivity and then maintain that the words they spoke were the voice of the Spirit. It also became clear that the claim of Montanus to have the final revelation of the Holy Spirit implied that something could be added to the teaching of Christ and the Apostles and that, therefore, the church had to accept a fuller revelation. 그러나 몬타누스주의자들의 예언은 새로운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참된 예언자들은 몬타누스처럼 의도적으로 강렬한 황홀경(엑스터시)과 수동적인 상태로 이끈 뒤 자기들이 하는 말이 성령의 소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자기가 성령의 마지막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몬타누스의 주장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으며, 따라서 교회는 보다 완전한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갖고 있음도 분명해졌다. 
Another important aspect of Montanism was the expectation of the Second Coming of Christ, which was believed to be imminent. This belief was not confined to Montanists, but with them it took a special form that gave their activities the character of a popular revival. They believed the heavenly Jerusalem was soon to descend on the Earth in a plain between the two villages of Pepuza and Tymion in Phrygia. The prophets and many followers went there, and many Christian communities were almost abandoned. 몬타누스주의의 또 하나의 중요한 면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기대였는데, 그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몬타누스주의자들만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그 신앙을 퍼뜨려 대중부흥운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달랐다. 그들은 하늘의 예루살렘이 이 땅, 곧 프리지아에 있는 페푸자와 티미온이라는 두 마을 사이의 들판에 곧 내려올 것이라고 믿었다. 예언자들과 많은 추종자들이 그곳에 갔고 많은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다.
In addition to prophetic enthusiasm, Montanism taught a legalistic moral rigorism. The time of fasting was lengthened, followers were forbidden to flee from martyrdom, marriage was discouraged, and second marriages were prohibited. 몬타누스주의는 예언하는 열정 외에도 엄격한 도덕률을 가르쳤다. 금식 기간을 늘리고, 순교를 피하지 않도록 했으며, 혼인을 장려하지 않았고 재혼은 금지했다. 
When it became obvious that the Montanist doctrine was an attack on the Catholic faith, the bishops of Asia Minor gathered in synods and finally excommunicated the Montanists, probably c. 177. Montanism then became a separate sect with its seat of government at Pepuza. It maintained the ordinary Christian ministry but imposed on it higher orders of patriarchs and associates who were probably successors of the first Montanist prophets. It continued in the East until severe legislation against Montanism by Emperor Justinian I (reigned 527-565) essentially destroyed it, but some remnants evidently survived into the 9th century.  몬타누스주의 교리가 가톨릭 신앙을 해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소아시아의 주교들은 교회회의를 열어 177년경에 마침내 몬타누스주의자들을 파문했다. 그 결과 몬타누스주의는 본부를 페푸자에 둔 한 분파가 되었고 일반 그리스도교의 성직(聖職)을 유지했으나 그 위에 총대주교와 초기 몬타누스주의 예언자들을 계승한 듯한 협동성직자(associate)라는 고위 성직을 두었다. 몬타누스주의는 동방교회에 계속 남아 있다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재위)가 이 종교운동을 금지하는 엄격한 법을 공포한 뒤에 근본적으로 말살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일부는 9세기까지 남아 있었던 증거가 있다. 

The earliest record of any knowledge of Montanism in the West dates from 177, and 25 years later there was a group of Montanists in Rome. It was in Carthage in Africa, however, that the sect became important. There, its most illustrious convert was Tertullian, who became interested in Montanism c. 206 and finally left the Catholic Church in 212-213. He primarily supported the moral rigorism of the movement against what he considered the moral laxity of the Catholic bishops. Montanism declined in the West early in the 5th century.

서방에 몬타누스주의가 알려졌다는 최초의 기록은 177년에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25년 후에는 로마에 한 무리의 몬타누스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분파가 중요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였다. 그곳에서 몬타누스주의로 개종한 사람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테르툴리아누스로서, 그는 206년경에 몬타누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어 212~213년에는 마침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그는 가톨릭 주교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했다고 생각하고서 주로 몬타누스주의의 엄격한 도덕률을 지지했다. 서방에서는 몬타누스주의가 5세기초에 수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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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