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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갑진개화운동 (甲辰開化運動)

동학교단이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와 합동하여 1904년 8월부터 1906년 9월까지 추진한 근대화 개혁운동.

갑진혁신운동 혹은 갑진신생활운동이라고도 한다. 갑오농민전쟁 후 동학교단은 농민전쟁의 주도세력과 일정한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3대 교주 손병희를 중심으로 국내조직을 정비하여 이를 바탕으로 근대화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그 주요내용은 입헌군주제 하의 근대적 법률국가의 설립, 식산흥업정책과 인재양성, 교육·계몽활동 등이었다. 동학교단은 근대화 추진의 주도체로서 동학교도들을 정치운동조직으로 재편성한 민간 정치단체인 민회(民會)의 설립을 추진했다. 동학교단은 근대화개혁의 연대세력으로서 일본을 상정했는데, 이는 손병희를 비롯한 지도부의 아시아 연대론에 따른 것으로, 일본과의 동맹체결 후 외교활동을 통해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권회복을 성취하려 한 것이다. 그나마 이들의 일본공동출병론·동맹국론은 근본적으로 일본의 침략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에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불응으로 민회설립이 실패하자, 일진회와의 결합을 통해 우회적으로 일본과 유대를 맺고자 했다. 손병희는 일본에서 일진회 고문 가무치[神鞭知常]와 교섭하는 동시에, 국내조직 책임자인 이용구(李容九)로 하여금 실질적인 일진회 조직자인 송병준(宋秉畯)과 협상하게 했다. 결국 동학교단은 국내조직 전체가 1904년 12월 일진회에 합류했으나, 결합된 조직은 일진회 계열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즉 일진회는 중앙조직, 동학교단은 하위조직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갑진개화운동을 주도한 양 계열은 사회경제적 기반과 목표에서 차이가 있었다. 동학 계열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부농·중소지주·자유상인과 지방의 중간계급들이 조직의 재원을 조달하고 주요간부직을 차지했다. 반면 일진회 계열은 주로 구독립협회 회원, 일본 망명·연수·유학경력을 가진 자들과 전직관료, 대지주들이었다. 이에 따라 동학 계열은 조선독립을 전제하면서 대외 의존하에 근대화를 성취해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반면, 일진회 계열은 일본에 주권을 양도하여 일본의 연방으로 안주하려 했다. 특히 정치·교육 활동 등은 일진회 계열이 조직의 주도권을 장악한 까닭에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내정개혁 활동과 병행하여 일본과의 유대를 위해 러일전쟁 수행에 일본군이 필요로 하는 철도부설·군수품조달 및 수송작업·밀정 등으로 활동했다. 또한 철도습격 등 반일운동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했다.

동학교단이 갑진개화운동에서 보인 활동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부농·중소지주·자유상인·지방의 중간계급들의 입장에서의 반봉건근대화운동이었다. 그러나 반제민족주의의 형성이라는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즉 전근대적 규제로부터의 자유와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일본과 타협함으로써 성취하려는 부르주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일진회 계열에 의한 중앙조직 장악과 국내 교단간부들의 일진회 계열로의 이탈, 그리고 동학교단의 개혁노선이 안고 있는 계급적 한계로 이들이 지향한 근대주권국가의 수립은 좌절되었다. 이후 동학교단은 자신들의 개혁노선을 관철시키고자 자강운동 계열과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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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