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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종교 탐방

교조신원운동 (敎祖伸寃運動)

민심을 현혹시킨다는 죄로 억울하게 죽은 동학교조 최제우의 죄를 사면시키기 위해 동학교도들이 전개한 운동.

밖으로 외세가 몰려오고 안으로 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1860년경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 창시되었다. 동학은 현세구복적인 순수 종교적 측면과 아울러 반봉건 반외세사상으로 발전하면서 날로 교세를 더해갔으며 특히 삼남일대에서 번성하였다. 이에 정부는 민심을 어지럽히는 사교(邪敎)로 동학을 탄압하였고, 교조 최제우를 체포하여 1864년(고종 1) '좌도혹민'(左道惑民)의 죄명으로 처형하였다. 그러나 2세 교주 최시형의 지도로 1870년(고종 7) 이후 동학은 다시 그 세력을 회복, 신장시켜 나갔다. 이러한 세력 신장을 바탕으로 1892년(고종 29) 1월에 열린 ' 삼례집회'에서 억울하게 죽은 최제우의 죄를 벗기기 위한 제1차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는 서병학(徐丙鶴)·서장옥(徐璋玉)이 적극 주장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집회에서는 동학의 공인과 동학교도에 대한 가렴주구의 금지가 요구되었다. 가렴주구를 중지하겠다는 전라감사 이경직(李耕稙)의 약속으로 집회는 해산되었으나, 가렴주구는 계속되었다. 1893년(고종 30) 3월 동학교도 40여 명이 서울에서 복합상소(伏閤上疏:대궐 앞에 엎드려 임금께 호소하는 것)로써 항거했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정부에서 상소를 올린 주모자들을 체포하는 등 강경책으로 나오자 서병학 등은 적극적인 시위 집회 방식을 택하였다. 4~5월에 열린 제2차 교조신원운동인 ' 보은집회'에서는 교조신원의 구호를 넘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정치적 구호까지 제기되었다. 보은집회가 열리는 동안 전라도 금구에서는 남접 교도들이 서장옥·손화중(孫和中)·전봉준 등의 지도 아래 따로 집회를 가졌다. 갑오농민전쟁으로 연결되는 금구집회에서는 '부패정권 타도, 외세 배격'의 구호가 전면에 내세워졌다. 처음에는 순수한 동학의 운동으로서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점 체제개혁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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