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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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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弘益人間)

포용과 조화의 세계관 ' 홍익인간'

단군신화는 한민족의 시조가 단군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일차적 내용은 역사적으로 전해진 객관적 자료의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라는 주관적 민족의식으로 이전된다. 이러한 주관적 민족의식은 국난을 당할 때마다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곤 한다. 국가와 민족이 처한 역사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의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고, 그 결집을 위해 단군이 언제나 강조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예컨대, 우리 민족은 혈연·언어·문화·지역 공동체이며, 더 나아가 특히 국제 정세의 변동상황에서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갖는다. 이러한 복합적인 공동체의식을 지닌 민족은 지구상에 우리말고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객관적 사실을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늘 경험하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신화적 내용을 우리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공동체의식을 갖는 데 단군신화가 역사적으로 살아 기능한다. 단군신화는 민족의식 안에 살아 있다.

단군이 민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신화 형식으로 전해졌다는 이유 때문에, 살아 있는 단군신화의 역사적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혼선이 일어난다. 우선 신화를 거부하는 성향을 지닌 서양의 현대사상이나 동서양의 고전종교의 교의학적 입장에서 각각 단군신화의 내용을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또는 그 역사적 타당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이른바 극우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단군에 대한 기사는 신화의 차원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2가지 태도들은 신화의 역사적 역동성을 이해하는 데 각각 한계가 있다.

먼저 단군신화를 거부하는 태도는,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라고 믿는 우리의 단일민족 의식을 거부하거나 또는 어떤 의미에서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반대로 단군신화가 역사적 사실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신화적 표현과 역사적 사실 기술 사이의 엄연한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시하는 오류를 드러낸다. 확신은 논리적 오류를 보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단군신화는 마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와 같은 곤욕을 안겨준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의 조상을 영원히 단군으로 부를 것이다. 그리고 민족역량의 통합이 역사적으로 요청될 때, 과거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살아 기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에 담긴 사상적 내용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사유방식의 원형을 반영한다.

우리 민족의 정체감과 단군신화의 역사적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단군신화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단군신화의 내용과 역사적 상황

모든 국조신화(國祖神話)는 신화적 영웅인 국조의 신성신분(神聖身分)을 밝히는 것을 그 신화적 중심주제로 삼는다. 단군신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만 신화는 특정한 사실의 시원(始源)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그 사실의 본질을 설명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단군이 천신인 환인과 환웅의 혈연임을 강조함으로써 단군의 신성신분을 밝힐 뿐만 아니라, 단군의 후손인 한민족이 당연히 신성한 민족이라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신화는 현존하는 사실이나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 논리로 설명하는 이야기 체계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나르시스 신화는 초여름 물가에 자신의 모습을 하늘하게 드리우고 하염없이 서 있는 수선화의 모습을 통해 자기편집증적인 인간 본성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만약 이 신화의 이야기를 수선화, 곧 나르시스라는 님프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이 이야기는 허구가 된다. 그런 님프는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선화의 모습에서 자기편집증적 인간 본성을 보게 된다면, 이 신화는 현존하는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을 매우 정교하게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의 논리와 기능에 대해 동양인들은 고대로부터 잘 파악했다. 수나라 때 가상(嘉祥) 길장(吉藏)대사는 "만약 불(火)이라는 말이 불 자체(火卽)라면, 불이야 하고 말하는 순간, 입술이 타버릴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불이라는 말은 불이라는 현상이 아니면서도 불을 대표한다. 불이라는 용어는 불 자체의 상징이다. 이처럼 수선화는 현존하는 인간 본성의 한 현상을 상징한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는 신화의 상징적 설명이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화를 상식 논리로 하여 현존하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신화의 상징적 표현은 그 자체가 상식논리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신화의 내용은 신화적 논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화적 표현의 내용이 그 자체가 상식 논리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나르시스라는 님프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화적 표현 역시 신화적 상징 논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군신화는 국조에 대한 신성신분을 천명하고, 아울러 한민족의 신성성을 드러내는 2가지 의도를 함축한다. 이는 단군신화가 민족시원의 역사적 사건을 민족애라는 가치관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체적인 신화 내용을 살펴보자.

단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가 〈삼국유사 三國遺事〉이다. 〈삼국유사〉의 기이편(紀異篇)에 나오는 고조선조(古朝鮮條)에 실린 단군신화는 3개의 이야기 판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판은 〈위서 魏書〉에 씌어 있는 내용을 들어, 고조선의 건국 연대와 위치를 비정(批正)하는 내용이고, 2번째 판은 〈고기 古記〉에 씌어진 신화 내용을 소개한 부분이며, 3번째 판은 단군이 언제 어디서 죽었는가를 중국 사서(史書)와 비교해 추정한 내용이다. 첫번째 판과 3번째 판은 편찬자인 일연이 쓴 부분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신화의 원형을 담은 부분은 2번째 판이다. 일연은 〈고기〉로 일컬어지는 책을 보았거나 들은 내용을 2번째 판에 옮긴 것이다. 신화의 원형은 기본적으로 4개의 이야기 소재로 구성된다.

① 환인이라는 천신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을 펴기 위해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천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② 이 신시에는 환웅이 천계에서 데려온 '3,000 무리'가 주세력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와 같은 천문기상을 조정하는 도사들이 포함되었으며, 또한 곡식·수명·질병을 포함해 360가지의 인간사를 관장했다. ③ 곰과 범 각각 1마리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기를 원하니, 환웅은 그들에게 시련의 조건을 주었는데, 곰이 이 시련을 극복해 여인이 되었다. ④ 환웅과 여인 사이에 단군이 태어나니, 그가 단군왕검이며, 고조선의 시조이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줄거리의 내용이 된다. 환웅이 이끄는 강력한 천계무리가 곰과 범으로 상징되는 선주민의 지역에 들어왔다. 강력한 이주민의 요구에 곰 무리가 순응해 새로운 연합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연합세력을 고조선이라 이름했으며, 그 연합세력을 주도한 영웅이 단군이었다.

모든 국조 또는 시조 신화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고대 시조 신화는 청동기 시대에 나타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청동기라는 가공할 신무기를 쓰는 부족은 아직도 석기를 쓰고 있던 주위의 부족들을 정복해 오래지 않아 거대한 부족연합체를 이룬다. 그 연합체가 고대 왕조의 출발이었다. 고조선 역시 이러한 부족연합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발달된 청동기 세력의 주도 아래 주위의 부족들을 포함한 연합체를 형성해 나타난 왕조가 고조선이었다. 그 역사적 과정을 주도한 위인을 우리는 단군으로 기려왔다.

단군이란 용어는 거의 동시에 씌어진 13세기의 두 자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단군은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쌓을 단(壇)자를, 그리고 이승휴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에는 박달나무 단(檀)자를 쓴다. 신화적 사유의 맥락에서 보면, 이들 가운에 어느 하나를 썼다고 해서 신화의 논리나 의미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단군이 한문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문을 쓰기 이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말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신은 청동기 시대를 전후한 대부분의 고대 민족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하늘님', 또는 지고신(至高神) 개념과 같다.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주재하는 하늘님은 인간외적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의 천(天)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하늘님은 중국의 천과 다른 신념 체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천 사상은 주대(周代)에 시작해 한대(韓代)에 완성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사상에 근거한다. 이 사상은 자연과 우주의 질서, 사회와 역사의 질서, 인간 정신 내면의 질서가 하나의 원리에 근거한다는 세계관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세계관은 천산(天山)을 하나 넘어 중앙아시아에 가면, 절대진리로 인정되지 못한다. 중국 문화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는 중국의 삼재사상에 근거한 천 개념이 없다. 인도는 중국과 다른 세계관을 갖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유일신관도 중국의 천개념과 상이하다. 이처럼 중국의 천 사상이 비록 오랫동안 한문의 영향을 받아온 한민족(韓民族)에게는 절대진리로 여겨질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여러 세계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문의 영향을 받기 이전, 고조선의 건국 초기에 우리 민족은 중국과 다른 하늘님 개념을 가졌던 것이다.한민족의 청동기 시대는 북방의 기마민족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시작되었다. 북방의 기마족들은 고대로부터 하늘님을 '텡그리'라 불렀다. 이런 맥락에서 단군은 아마도 텡그리의 사음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이러한 추론을 입증할 자료가 불충분하다. 그러나 단군신화가 한문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형성되었다는 사실만은 여기서 분명해진다.

홍익인간과 민족정서

단군의 신화에는 형이상학적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다만 환웅이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내려왔다는 홍익인간이라는 개념이 나올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찾아내기에는 신화의 이야기가 너무 짧다. 예컨대 홍익인간이란 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은 매우 개방적인 개념이다. '좋은 것이 좋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방적인 지적 태도는 한국 종교사 전반에서 나타난다. 한국 종교사에는 2가지 상반되는 태도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순수전통주의이고, 둘째는 관용·포용주의이다. 한국에는 고전적이고 순수한 유교전통이 아직도 중국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고전적 대승불교 역시 송대(宋代) 이후에 중국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대가람에 아직도 남아 있다. 새벽 4시에 매일같이 새벽예배를 보는 교회는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한국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 교회는 고전적 신앙 열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외부에서 받아들일 때, 그 순수전통을 열정적으로 지킨다. 순수전통주의는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방적 태도가 순수전통주의의 안내자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 종교사상가들은 고대로부터 유·불·선 삼교의 융합을 시도했다. 그만큼 한국인은 포용적이다. 포용은 개방의 다른 이름이다. 아마도 한국인은 특정한 세계관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종교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지닌다.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는 한층 더 그 포용성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한국인은 경우에 따라 유교인이면서 불교인이고 또 기독교인이며, 때로는 무속인으로서의 행동과 의식을 갖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한다.

순수전통주의와 포용주의는 외견상으로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이들이 개방적 정신태도에서 비롯되는 점에서 같다. 또한 이들은 비록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조화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점에서도 같다. 예컨대 포용주의가 조화를 이상으로 삼는 점에 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절대적 확신은 2가지로 표현된다. 하나는 자신의 신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타종교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배타적 절대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신념은 타종교의 결점들이 모두 보완되었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포용적 절대주의이다. 한국의 창조적인 종교사상가들은 예외 없이 포용적 절대주의의 태도를 보여준다. 포용적 절대주의가 조화를 이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효·지눌·퇴계·율곡 등 한국 지성사의 거봉들은 자기 신념체계 안에서 포용적인 태도로 조화를 추구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한결같이 지성적·개방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방적이란 절대자나 천 또는 불법과 같은 선험적(先驗的) 전제를 갖지 않거나 그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세적이다. 중국의 유교사상 역시 현세적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에는 천(天)과 같이 도덕규범을 이상화하는 선험적 전제가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고유 문화전통에는 선험적 전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정서는 경험적이다. 이를 종합해 한국인의 정서 또는 사유상식은 경험적 현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개방정신, 그 미래지향적 가능성

경험적이고 현세적인 한국인의 사유방식은 유교·불교·유일신관과 같이 세계문화사 형성에 주역할을 담당했던 고전문화의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세련된 형이상학 체계와 우주론을 갖춘 고전적 세계관을 한국 문화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한국 문화는 세계종교의 고전사상들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여, 현재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고전문화의 보관소가 되었다. 예컨대 유교·불교·기독교와 같은 세계 종교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현대 우리 문화를 대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과거 1세기 전의 조선에서도, 이웃 나라 일본이나, 유럽과 미국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종교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이러한 다종교·다문화 상황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적 개방성과 무관하지 않다. 개방성은 가치혼돈의 안내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사에는 가치혼돈 상황이 되풀이해 나타난다. 홍익인간의 사상적 불확정성과 연관된다.

그러나 개방성과 경험적 현세주의는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지성적 태도가 될 것이다. 세계가 점점 더 좁아지고 가깝게 되면서 모든 종교와 사상이 공존하게 되어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한 선험적 전제를 지닌 고전적 세계관의 배타성보다는 지성적 개방성이 보다 절실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선험적 당위론을 벗어난 개방적 태도는 경험적 현세주의 맥락을 띄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개방적 태도는 자기반성이라는 이성적 자기성찰이 있을 때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기성찰을 거친 홍익인간은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지닌다. 여기서 세종조에 일어난 단군 연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매우 세련된 형이상학 체계로 무장된 성리학자들이 국조 단군에 관한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연구했다. 세종조는 이처럼 민족애의 맥락 안에서 성리학이라는 특정한 고전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그 지성적 조화의 태도가 세종조의 문예부흥를 일으켰던 것이다. 민족애라는 가치관이 살아 있는 신화로 기능할 때 찬란한 문예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나아가서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민족이 망국의 상황에 처했을 때, 민족의 정체성을 단군의 이름으로 되찾으려 노력했다. 이는 마치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유린된 민족 자존심을 되세우기 위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단군신화를 실은 것과 같다. 민족애의 역사적 역동성이 단군신화로 살아나는 사례들이다.

한국의 정신유산의 맥락에서 자신의 사상을 다듬고 빚은 이들만 문화사에 창조적인 사상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에 외래사상을 수용한 지성인들이었다. 따라서 특정한 사상가를 해당 종교의 신념체계의 맥락에서만 평가할 경우 한국의 지성인이 지닌 사상적 특성을 간과하게 되고, 아울러 그 평가가 특정한 세계관에 얽매이는 이론적 교구주의에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한국사상의 미래지향적 계발과 승화를 위해 한국의 전통적 정서에 대한 천착이 다시 한번 더 요청된다.

윤이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한국종교사회연구소 소장. 저서로〈단군, 그 이해와 자료〉(공저)·〈한국종교연구〉(권1∼3)·〈일제의 한국민족종교 탄압책〉등역서〈세계종교사〉(존 로크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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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