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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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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한민족의 형성

국민은 거의 모두가 한민족(韓民族) 또는 한족(韓族)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2년 현재 한민족을 구성하는 인구는 약 7,150만 명으로 이들 한민족은 세계 각 지역의 여러 나라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들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남한에 4,400만 명, 북한에 2,300만 명, 중국에 200만 명,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에 100만 명, 일본에 75만 명, 소련에 50만 명, 라틴아메리카·유럽·중동·동남아 및 기타 지역에 25만 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하나의 민족으로서 일체감을 가지는 까닭은 한민족의 계통과 형성 및 이동과정에서 신화·역사·체질·문화, 특히 언어의 공통된 특질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한민족이 모두 단군(檀君)의 자손이라고 믿는 것은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古朝鮮)의 첫 임금인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보는 <단군신화>에서 연유한다. 그것은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의 아들인 단군이 BC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는 건국신화이다.

그러나 전세계 인류 중에서 한민족이 차지하는 위치와 민족의 계통분류 및 그들의 이동역사에 따르면 한민족의 형성시기는 훨씬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체적 형질의 특징으로 볼 때, 세계의 3대인종인 황색 몽골 인종(Mongloid), 백색 코카서스 인종(Coca-soid), 흑색 니그로 인종(Negroid) 중에서 한민족은 몽골 인종에 속한다. 한민족은 피부 색깔뿐만 아니라 곧은 머리카락과 짧은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고 눈꺼풀이 겹쳐져 있으며, 둔부에 몽골 반점이 있는 등 몽골 인종의 공통된 신체적 형질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몽골 인종은 그들의 집단이동과 지역분포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체적 형질과 생활양식에 차이가 생겨서 고시베리아족(Paleo-Siberians)과 신시베리아족(Neo-Siberians)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 한민족은 신시베리아족에 속하며, 언어의 특성에 따른 알타이어족(Altaic language family)과 우랄어족(Uralic language family) 중에서 한민족의 언어는 터키족·몽골족·퉁구스족의 언어와 더불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민족들은 제4빙하기의 후기구석기시대까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Yenisei) 강과 알타이 산 기슭에 살고 있었다. 그후 기온이 상승하여 빙하가 녹으면서 후기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때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으로 이동했다. 터키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북쪽까지, 몽골족은 지금의 외몽골을 거쳐 중국의 장성 및 만주 북쪽까지, 퉁구스족은 흑룡강 유역까지, 그리고 한민족은 중국 동북부인 만주 서남부의 랴오닝[遼寧] 지방을 거쳐 한반도 남부까지 이동하여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서 초기 농경시대에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형성 및 이동 과정에서 발전된 문화는 지금까지 남아 있어 후기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의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역사상 고대의 중국문헌에 나타나는 숙신(肅愼)·조선(朝鮮)·한(韓)·예(濊)·맥(貊)·동이(東夷) 등의 여러 민족들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우리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랴오닝 지방의 한민족은 북부의 초원지대에서 목축을 하는 한편 남부의 평야지대에서 농경을 주로 하면서 농경·목축 문화를 발전시켰고, 한반도 남부까지 내려온 한민족은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목축을 버리고 농경에만 집중하면서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발전시켰다. 이처럼 오늘의 중국 랴오닝 지방과 한반도에서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전시킨 한민족이 하나의 단일 민족으로서 부족연맹체의 족장사회를 통합하여 고대국가를 성립시킨 것이 바로 고조선(古朝鮮)이다. 그 이후 국가가 나누어져서 몇 개의 새로운 독립국가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통합되는 역사적 과정은 매우 복잡했지만 민족은 하나의 단일민족으로서 한민족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민족의 언어

민족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언어이다. 우리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질은 그들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와 그 언어를 표현하는 문자, 즉 '한글'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은 물론 전세계의 각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해외 동포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글을 쓰고 있다. 한국어가 전세계의 언어 가운데서 차지하는 위치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세계의 3,000여 개 언어 중에서 언어사용인구의 규모로 볼 때 20위 안에 들 정도로 큰 언어라고 평가되고 있다. 또 한국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어 및 일본어와 함께 3대 문명어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는 우리말에 한자 어휘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사성이 거의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 간에도 약간의 유사성이 보이기는 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어는 계통적으로 오히려 터키어·몽골어·퉁구스어를 포함하는 알타이어족과 더 가까운 친족관계를 가지고 있다. 알타이어족은 구조에 있어서 교착어(膠着語)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전치사를 쓰지 않고 후치사인 조사를 쓰며, 성과 수를 표시하는 일정한 규칙이 없고, 모음조화의 현상이 뚜렷하며, 품사의 배열에 있어 동사가 마지막에 오는데 그러한 특성들을 한국어도 많이 가지고 있다.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들 중에서도 한국어는 특히 퉁구스어와 가장 가까운 친족관계에 있다. 한국어가 퉁구스어와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퉁구스·만주 여러 민족들이 흑룡강 유역을 비롯한 만주지방에 살았다는 지리적 인접성 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음운체계(音韻體系)·문법체계·어휘에 있어서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퉁구스어는 일반적으로 퉁구스만주어 또는 만주퉁구스어라고도 불리며 그 분포 지역은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중국의 동북부 만주지역, 신장웨이우얼[新彊維吾爾] 자치구, 몽골 인민공화국의 일부지역 등 광범위하게 걸쳐 있으나 그 언어사용인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전체를 포함하여 1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금(金)나라를 세우고 한국의 북쪽 땅을 자주 침범했던 여진족(女眞族)의 언어도 퉁구스계의 언어이며, 만주어는 청(淸)나라의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알타이어족 특히 퉁구스만주어와 공통되는 한국어의 구조적 특질은 음운체계와 문법체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음운체계에서 볼 때 한 단어 안에서 모음들이 동화현상을 일으키는 모음조화가 뚜렷하고, 단어의 첫머리에 오는 자음에 제약이 있는 것은 두 언어의 공통된 특질이다. 즉 한국어는 이미 15세기에 '아, ?_ 오'와 '어, 으, 우' 등 두 계열의 대립이 뚜렷한 모음조화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어의 첫머리에 2개 이상의 자음이 허용되지 않았고, '마'와 같은 유음(流音)이 단어의 첫머리에 오는 것을 기피했다. 문법체계에 있어서는 앞에서 알타이어족의 특성으로 지적한 바와 같은 교착어의 특성을 한국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 때부터 이미 확립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어의 경어법(敬語法)은 알타이어족의 다른 언어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조적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휘에 있어서도 한국어에는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특수한 어휘가 많다.

한국어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의 한국어는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고구려·옥저·예 등 북쪽 갈래의 부여계(夫餘系) 언어와 진한·변한·마한을 포함한 삼한의 남쪽 갈래인 한계(韓系) 언어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 2갈래의 언어는 원래 근원이 같은 공동의 조상이 되는 조어(祖語)에서 나왔으나 오랫동안 격리되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하는 과정을 겪게 됨에 따라서 차이가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 조어가 바로 부여·한 공통어(夫餘韓共通語)인데 이것이 오늘날 한국어의 역사를 추적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단계의 것으로 생각된다. 북쪽 갈래의 부여계 언어는 뒤에 고구려어로 이어지고, 남쪽 갈래의 한계 언어는 신라와 백제의 언어로 이어진다. 이 단계까지는 한국어의 고유 문자를 가지지 못하고 표의문자(表意文字)인 중국의 한자를 빌려 표음문자(表音文字)와 같이 이용한 이두(吏讀) 문자를 만들어 썼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신라 때의 향가(鄕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공동 조어에서 분화된 2갈래의 언어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다시 하나의 언어로 통일되어 당시의 도읍이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방언이 통일된 신라의 표준어가 되었다. 그뒤 고려의 건국에 따라 새로운 도읍 개성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방언이 고려의 표준어로 바뀌었으며, 그것은 조선에도 그대로 이어져 고려의 중앙어가 오늘의 한국어 모습으로 굳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어가 하나의 통일된 언어일지라도 지역에 따른 변이(變異), 즉 방언이 다양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 방언에는 육지의 방언과는 다른 옛 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각 도의 방언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함경도 방언과 경상도 방언이 특히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려시대 이후 경상도 사람들이 함경도로 많이 이주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또 각 지역의 방언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제주도 방언을 제외하고는 한국어의 방언들이 일상적인 회화에 소통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조선시대 초기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로 한국어는 한글이라는 고유한 문자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국어는 소리와 문자가 변화를 겪어 몇 개의 글자와 사성(四聲)을 나타내는 방점(예컨대 ㆆ, ㅸ, △, ㆁ, ㆍ 등)이 없어졌고, 한일합병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어와 한글을 쓰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한편 한국인에게 일본어를 강제로 쓰게 하는 등 언어의 수난을 겪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으로 갈라져서 언어의 이질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해방 직후에는 일제강점기의 언어탄압정책의 영향으로 한동안 일본어의 잔재가 우리말에 남아 있었고, 남한에서는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새로운 문물·제도·과학기술의 도입과 더불어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외래어가 분별없이 들어와 한국어와 혼용되는 경향이 있으며, 북한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어의 영향 및 북한 자체의 언어정책에 따라 분단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언어가 이질화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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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