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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cal Literature

성서문학

II. 신약성서 개관

1. [신약성서]의 경전

1) [신약성서] 27권

2) 경전화 과정

2. [신약성서]의 본문과 번역본

1) 본문비평

i) [신약성서] 사본의 상태

ii) 필기도구

iii) 오기의 유형

2) 본문과 사본들

i) 언셜(Uncial) 글씨체 사본들

ii)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

iii)파피루스 사본들

3) 초기 번역본들과 그리스어 [신약성서] 편집본들

i) 초기의 번역본들

ii) 후대 및 현대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편집본들

II. 신약성서 개관

1. [신약성서]의 경전

1) [신약성서] 27권

1~2세기에 씌어진 27권의 작은 책들이 모여 [신약성서]를 형성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경험하고 이해하고 해석한 교회 자체의 자기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초대 교회에서 유포된 여러 문헌들 가운데서 교회가 27권을 경전으로 구별했다. 경전(Canon)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카논(kanon)은 길이를 측량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법이나 표준을 뜻한다. 27권 외에도 [디다케 Didache](12사도의 교훈)·[베드로의 복음서]·[클레멘스의 첫째 편지]·[바르나바의 편지]·[베드로의 계시록]·[헤르메스의 목자서신] 등의 기록들이 유포되고 있었으나, 경전에 들지는 못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4세기까지 복음서 4권(마태·마가·누가·요한), 사도들의 행적 1권(사도), 21통의 편지(로마·Ⅰ 고린·Ⅱ 고린·갈라·에페·필립·골로·Ⅰ 데살·Ⅱ 데살·Ⅰ 디모·Ⅱ 디모·디도·필레·히브·야고·Ⅰ 베드·Ⅱ 베드·Ⅰ 요한·Ⅱ 요한·Ⅲ 요한·유다), 묵시록 1권(요한의 묵시록)을 경전으로 확정했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서]인 70인역 역시 초대 기독교가 받아들인 경전이다. 초대 기독교는 그들의 신약(새 언약)을 구원의 성취로 보았으므로, 구약을 구원의 약속으로 보고 이름을 구약(옛 언약)이라고 불렀다. [신약성서]는 교회가 없었더라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교회가 [신약성서]에 포함된 기록들을 읽고 성장하지 못했더라면 그런 기록을 경전으로 고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 경전화 과정

경전화 작업에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2세기말 이레나이우스가 열거한 [신약성서]는 4복음서, 바울로의 13서신 및 [베드로의 첫째 편지]·[요한의 첫째 편지]·[요한의 둘째 편지]·[요한의 묵시록]·[헤르마스의 목자서신](이 책은 나중에 경전에서 제외되었음)·[사도행전]이다. 디아테사론(Diatessaron : '4복음서를 통하여')도 널리 유포되어 읽히고 있었다.

[신약성서]의 경전의 범위를 뚜렷하게 밝힌 것으로서는 소위 '무라토리 경전'(Muratorian Canon)이 있다. 이것은 170~180년경에 로마에서 씌어진 것인데, 발견자 안토니오 무라토리의 이름을 따서 '무라토리 경전'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신약성서] 경전은 [마태오의 복음서], [마가의 복음서], [누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로의 13서신, [유다의 편지], [요한의 첫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 [요한의 묵시록]이다. 여기에는 [헤르마스의 목자서신]은 들어 있지 않다. 대신 [솔로몬의 지혜서]가 들어 있다. 사도성, 참교리, 광범위한 유포, 이 3가지가 2세기 경전의 기준으로 정해졌다. [헤르마스의 목자서신]·[클레멘스의 첫째 편지]·[디다케]는 교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고, 교리에 있어서도 벗어남이 없었으나 사도성이 없다는 것 때문에, 즉 사도 시대와 관련이 없고 사도가 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전에 들지 못했다. 3세기에 와서 오리게네스(254경 죽음)는 [신약성서]의 낱권 책들을 '아무런 논란없이 인정된 책들'과 '논란이 되고 있는 책들'로 나누었는데 4복음서, 바울로의 13서신, [베드로의 첫째 편 지], [요한의 첫째 편지], [사도행전], [요한의 묵시 록]은 전자에 속하고, [베드로의 둘째 편지]·[요한의 둘째 편지]·[요한의 셋째 편지]·[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야고보의 편지]·[유다의 편지]는 후자에 속했다. 이밖에 [이집트인의 복음서]·[도마의 복음서]는 그가 '가짜'(notha)로 분류했다. [디다케]·[바르나바의 편지]·[헤르마스의 목자서신]과 같은 책에다가 그는 '성서'(Scripture)라는 칭호를 붙이기는 했으나 경전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4세기에 유세비우스는 당시에 경전이 된 책의 명단을 보여준다. 논란이 없이 인정된 것은 4복음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포함한) 바울로의 14서신, [요한의 첫째 편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였다. 논란이 된 것은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교회 안에서 신도들 사이에 널리 읽히고 있던 [야고보의 편지]·[유다의 편지]·[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요한의 셋째 편지]였고, 또다른 한 부류는 '가짜'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불결하거나 불경한 것이 아닌 [바울로 행전]·[헤르마스의 목자서 신]·[베드로의 묵시록]·[바르나바의 편지]·[디다 케]·[히브리인의 복음서]와, '가짜'이면서 이교적인 [베드로의 복음서]·[요한행전] 등이었다. [요한의 묵시록]은 논란없이 인정된 명단에도 들어 있었고, '거짓'이기는 하지만 불결하거나 불경한 것이 아닌 책들의 명단에도 들어 있었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 때 현재의 [신약성서] 27권이 확정되었다.

 

2. [신약성서]의 본문과 번역본

1) 본문비평

i) [신약성서] 사본의 상태

[신약성서]의 경우 사본들이 많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사본을 제외하고도 3~18세기에 이르는 사본들이, 어림잡아서 복음서가 2,000여 권, [사도행전]과 바울로의 13서신 및 공동서신을 합한 것이 400여 가지, 성서 본문이 인용된 성구집이 2,000여 권에 이른다. 여기에다 교부들이 인용한 성서 구절까지 합치면 [신약성서] 본문을 베낀 사본들의 수는 실로 방대하다. [신약성서]는 이처럼 다른 일반 문학작품에 비해 사본의 수가 방대하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사본들을 모으고, 본문상의 차이를 비교하고, 각 사본의 연대, 그것이 씌어진 장소, 편집형태, 개정여부 등을 비교·검토해보면, 사본의 수가 엄청난 만큼이나 사본들 사이에 본문의 차이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교부들이 인용한 성서 구절은 기록된 본문전승을 반영하는 것도 있지만, 기억에 의존하여 인용한 것, 인용하다가 이문(異文 different reading)을 융합한 것, 병행구조를 조화시킨 것, 또는 개략적으로 내용만 인용한 것 등 여러 형태이다.

ii) 필기도구

헬레니즘 시대에 공적인 기록은 비석이나 금속판에 새겼다. 문학작품이나 편지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썼다. 잠시 동안만 기록해둘 것은 질그릇 조각(오스트라카)이나 밀랍판에 썼다. 파피루스 조각을 풀로 부치거나 양피지 조각을 꿰매어서 두루마리를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종교문헌이나 문학작품이 이런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다. [신약성서]를 베낀 교회는 두루마리보다는 책 형태인 코덱스를 사용했다. 재료는 파피루스로 된 것도 있고 양피지로 된 것도 있다. 앞뒤 양쪽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초기에는 주로 값싼 파피루스로 만든 코덱스를 사용했고,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비로소 값비싼 양피지 [신약성서] 사본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일찍 만들어진 [신약성서] 사본들이나 단편들은 파피루스에 씌어진 것들이다. 인쇄술이 발달될 때까지는 양피지가 가장 좋은 코덱스의 재료였다. 4~15세기의 [신약성서] 사본들은 양피지로 된 코덱스가 많다. 양피지 코덱스는 본래 씌어진 본문을 지우고 다시 쓰기도 했다. 이러한 사본을 '지우고 다시 쓴 사본'(palimsest : 그리스어로 '다시'라는 뜻의 palim, '지우다'라는 뜻의 psao를 합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이런 사본은 특수 처리를 하면 지워진 본문을 다시 재생해볼 수 있다. 때로는 이런 사본에서는 다시 쓴 본문보다 재생된 원래의 본문이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신약성서]시대에는 그리스어 글씨체가 대문자체(majuscules : uncials)와 소문자필기체(minuscules)의 2종류로 나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소문자 필기체가 주로 사용되었다. 4~9세기의 [신약성서] 사본 양피지에는 대문자 글씨체와 소문자 필기체가 함께 나타나지만 그후부터 11세기까지 나온 사본들은 모두 소문자 필기체로 기록되어 있다. 초기에 나온 [신약성서] 사본들에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가끔씩 연자(連字) 부호인 하이픈을 넣은 것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장·절의 구분도 되어 있지 않고, 구두점도 없으며, 오늘날 그리스어에서 볼 수 있는 억양이나 기음(氣音) 표시도 되어 있지 않다. 알파벳이 쭉 이어져 있을 뿐이다. 또 글자 위에 직선을 그어 표시한 약자들도 있다. 예를 들면 IC는 IHCOUC, 즉 '예수'의 약자이고, KC는 KYPIOC, 즉 '주'의 약자이다. 8~9세기의 사본에는 억양 표시와 기음 표시가 없다. 구두점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장이 구분된 것은 1200년경이고, 절이 구분된 것은 1550년경이다.

iii) 오기의 유형

사본을 베끼는 이들은 모본(母本)을 앞에 놓고 베끼기도 했고, 한 사람이 불러주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받아쓰기도 했다. 따라서 잘못 읽는 데서 생기는 오기, 잘못 듣는 데서 생기는 오기, 우연한 오기, 고의적 본문 변경에 따른 본문 이탈 등이 생기게 된다. 대문자체 사본의 경우에는 비슷하게 생긴 글자들 사이의 혼동에서 오는 오기들이 많이 발생했다. 초기 사본들에서는 관계대명사 OC(hos에 해당하는 글자)와 하느님의 약자 DC(DEOC, theos) 사이에 혼동이 발견된다. 중복오사와 중자탈오 현상도 보인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오기도 많다. 영어로 예를 들면, GODISNOWHERE는 'God is now here'(하느님이 여기에 계신다)로 읽을 수도 있고, 'God is nowhere'(하느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신다)로 읽을 수도 있다. 문맥에 따라 어떤 뜻으로 읽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동음이의어도 오기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이런 종류의 실수는 그리스어의 어떤 모음과 복모음 사이에 발음상의 뚜렷한 구분이 없던 초기 사본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e, i, u와 복모음 ei, oi, ui 등이 모두 '이'로 발음되었다. 철자가 다른데도 다 함께 '이' 발음을 내게 되는 것을 이타시즘(itacism : 또는 itacismo)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장 54·55절에서 nikos(승리)와 neikos(투쟁)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오기 neikos가 발생했다. 이런 이타시즘 현상은 복수 1인칭과 2인칭 대명사 '우리'(hemeis)와 '너희'(humeis)에서도 일어난다. he와 hu가 [hi]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다.

글씨체를 보고 사본의 연대를 측정하는 고문서학은 성서 사본의 연대측정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분야이다. 개인마다 필체가 다르듯이 세대마다 필체가 다르다. 방사능 연대 측정(radioactive-carbon text)도 있지만, 그것은 사본의 일부를 시험재료로 파괴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고, 고문서학의 필적감정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2) 본문과 사본들

i) 언셜(Uncial) 글씨체 사본들

17, 18세기에 알려진 대표적인 언셜 글씨체 사본들은 A, D, Dp, Ea, C 사본 등이다.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A)는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5세기초의 사본으로서, 복음서는 비잔틴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나머지 [신약성서]의 각 책들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1627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영국의 왕 찰스에게 증정한 것으로서 1751년 이래 지금까지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코덱스 베자 칸타브리기엔시스(D)는 5세기의 사본으로서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 번역문의 대조판 사본이다. 4복음서, [사도행전], [요한의 셋째 편지]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Dea로 표시된다. D는 서방 본문 전승을 반영하며, e는 evangelia, 곧 복음서를 가리키고, a는 acta, 곧 [사도행전]을 가리킨다. Dea의 [누가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많이 다르다. 코덱스 베자는 뚜렷하게 길거나 뚜렷하게 짧은 본문들을 가지고 있으며, 독립된 편집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의 경우 다른 사본에 비해 코덱스 베자는 1/10이나 길다. Dea는 신학자이며 고전 학자인 테오도르 베자가 1562년 프랑스 리옹의 한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다. 테오도르 베자는 이 사본을 1581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에 기증했다. 그때부터 이 사본을 베자 칸타브리기엔시스라고 했다.

코덱스 클라로몬타누스(Dp) 역시 서방 본문이다. 여기에는 바울로 서신과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들어 있다. Dp라고 할 때 P는 바울로 서신을 가리킨다. Dp는 때로 D2로도 표기된다. Dea를 얻을 무렵과 같은 시기에 취득했다. 그러나 Dp를 얻은 장소는 클레르몽 수도원이었다. 그래서 이 사본을 클라로몬타누스라고 한다. 이 사본은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코덱스 라우디아누스(Ea)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조 [사도행전]인데 영국의 대주교 로드가 1636년에 옥스퍼드의 보들레이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6세기와 7세기초에 속하는 사본이다. Dea와 일치하는 데가 많다. 서방 본문이면서 비잔틴 본문과의 혼합을 보이기도 한다. 코덱스 에프라임(시리아 리스크립투스, C)은 재생 양피지 사본이다. 본래 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이다. 본래 씌어 있던 것은 5세기의 성서 사본이었으나, 12세기에 그것을 지우고 지운 본문 위에 4세기 시리아 교회의 교부였던 에프라임시루스의 설교를 썼다. 1700년경 프랑스의 설교가이자 학자인 피에르 알릭스가 발견했다. 티셴도르프가 화학 약품을 써서 본래 거기에 씌어 있던 [신약성서] 본문을 60%까지 해독하여 1843년에 출판했다. 5세기 이후 그 성서 본문은 두 사람의 교정자가 교정했지만, 전체적으로 비잔틴 본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19세기까지 발견된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다. 이런 사본들은 본문 비평에 큰 자료를 제공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 더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S·B·W·O 등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S)는 1859년 티셴도르프가 시나이 반도 산타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했다. 이전에 1844년 4세기의 성서 사본 43쪽이 발견되었는데, [구약성서]의 일부는 빠져 있지만 4세기의 [신약성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티셴도르프는 S사본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하고 그 사본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에게 증정했다. 이 사본은 1933년까지 레닌그라드에 있다가 1933년 소련이 이것을 영국박물관에 10만 파운드에 팔았다. 옥스퍼드 출판부에서는 이미 1911년에 이 사본의 복사본을 출판한 바 있다. S의 본문 형태는 부분적으로는 서방 본문 형태를 지니고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계통에 속한다.

코덱스 바티카누스(B)는 4세기 중엽의 사본으로서, 1475년 이래 바티칸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1889~ 90년과 1904년에 사진판으로 나온 적이 있다. [신약성서]에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9장 14절 이후가 없고, 목회서신·[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요한의 묵시록]이 없다. B사본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라서는 S사본보다 약간 고대의 것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강하게 번역하는 B사본과 S사본은 둘 다 같은 때에, 곧 콘스탄티누스가 성서 50부를 제작하도록 명령했을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B사본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반영하는 아주 초기의 사본으로서 가장 귀중한 고대 그리스어 본문이다.

코덱스 와싱토니아누스(W : 또는 프리리아누스) 는 4복음서 사본이다. 4복음서 순서가 서방 본문식으로(Dea처럼) 마태오·요한·누가·마가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것은 미국인 사업가이며 자선가인 C. L. 프리어가 1906년에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지금은 워싱턴 D. C.의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예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명 '프리어 복음서'라고도 한다. W사본은 4~5세기경에 몇 가지 서로 다른 계통의 사본을 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잔틴 본문 형태, 고대 라틴어역을 닮은 서방 본문 형태, 카이사리아 본문 형태,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다른 사본과 비교해볼 때 특이한 것은 [마가의 복음서]의 16장 9~20절 안에서 14~15절이, 다른 사본과는 달리 더 길게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코덱스 코리데티아누스(θ)는 9세기 사본으로서, 그것이 발견된 카스피아 해 부근 카프카스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의 이름 코리데티를 따서 부른다. 4복음서의 사본으로서 마태오·누가·요한은 대부분의 비잔틴 사본들과 유사한 본문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마가는 3~4세기에 오리게네스가 사용했던 카이사리아 본문 형태와 유사한 본문을 가지고 있다. 이 사본은 그루지야의 수도 티플리스에 있다.

ii)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은 대다수가 9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극히 일부가 초기의 본문을 반영하고 있다. 20세기초 영국의 학자 K. 레이크가 '가계 1'(family 1 : f1, '레이크 그룹'이라고도 함)로 알려진 초서체 사본들의 계보를 추적해냈다. f1에 속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 1, 118, 131, 209는 12~14세기경 씌어진 것들로서, θ사본에 반영된 3~4세기의 카이사리아 본문 형태와 유사한 본문을 지니고 있다. 19세기에 W. H. 페라르는 f13을 발견했다. 여기에 속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은 13, 16, 124, 346인데, 일명 '페라르 그룹'이라고도 한다. 비록 일부는 후대(11~15세기)의 본문을 반영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카이사리아 본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초서체의 여왕'이라고도 하는 사본 33은 9~10세기의 것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요한의 묵시록]을 제외한 [신약성서] 전체가 다 들어 있다. B사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사도행전]과 바울로의 13서신은 비잔틴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교회에서 낭독되는 그리스어 성구집(Lectionaries)에 인용된 성서 본문도 대다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을 반영하지만, 일부는 언셜 글자체 사본들을 반영한다. 성구집의 본문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여기에 반영된 본문 형태는 고대까지 소급되는 것들도 있다.  

iii)파피루스 사본들


이집트의 사막에 보관되어 있던 파피루스 사본들은 2~8세기의 [신약성서] 사본들이다. 금세기 최근 20여 년 동안에 발견된 [신약성서] 파피루스 단편 사본들이 출판되었다. 76개의 [신약성서] 단편 사본들 중에 반 이상이 2~4세기의 것이다. 파피루스 사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P52이다. 130~140년의 것으로서 현존하는 [신약성서]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쪽 면에는 [요한의 복음서] 18장 31~33절이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18장 37~38절이 기록되어 있는 코덱스형 사본 조각으로서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와 비슷하다. 현재 맨체스터의 존 라일런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30년대초 영국의 채광기술자 A. 체스터 비티가 이집트에서 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 3개를 취득했다. 1934~37년 출판되었는데, P45, P46, P47로 분류되어 더블린에 있는 그의 개인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다. P45, 일명 ' 비티 성서 파피루스 I'(일부는 빈에 있음) 사본은 30쪽이나 되는데, 3세기초나 중엽의 코덱스로서 [마태 오의 복음서]·[마가의 복음서]·[누가의 복음서]·[요한의 복음서]·[사도행전] 등의 본문을 보여준다. 복음서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워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카이사리아 본문 이전 형태로 생각된다. P46,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미시간대학교의 파피루스 222를 포함)는 86쪽이다. 3세기초(200)의 코덱스로서 바울로 서신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 지]·[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 지]·[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떤 부분은 많이 지워져 있으나, P46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반영한다. P47, 일명 '비티성서 파피루스Ⅲ'은 3세기의 사본이며, [요한의 묵시록] 9장 10절에서 17장 2절의 본문이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묵시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사본은 아니다. 본문 형태는 A, C, S를 닮았다. 이밖에도 P66, P48, P72, P75, P74 등이 있다. P66은 146쪽이나 되는데, 파손된 부분이 더러 있는 [요한의 복음서] 사본이다. 제21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코덱스는 200년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원본보다 100년 뒤의 것이다. 본문은 P45처럼 혼합 본문이지만, 초기 알렉산드리아 본문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P66과 다른 보드머 파피루스들은 스위스의 고본 수집가 마르틴 보드머가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156~161년에 출판되었다. 제네바 근교에 있는 보드머 개인 도서실에 보관되어 있다. P48은 3세기의 [사도행전] 사본으로 플로렌스의 한 도서실에 있다. [사도행전] 23장 11~17절, 23~29절 본문을 가지고 있다. P75(보드머 파피루스 ⅩⅣ와 ⅩⅤ)는 2~3세기의 [누가의 복음서]와 [요한의 복음서] 사본이다. 본문은 B와 일치하는 곳이 많으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의 전신인 P66, P45 등과 유사한 점이 많다. P74(보드머 파피루스 ⅩⅦ)는 6~7세기의 [사도행전]과 공동서신 사본이다. [사도행전]은 S 및 A와 유사하다.

 

3) 초기 번역본들과 그리스어 [신약성서] 편집본들

i) 초기의 번역본들

[신약성서]가 씌어지던 무렵 지중해 동반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통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로마가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을 때 북아프리카·소아시아·갈리아·스페인 등에서는 라틴어가 새 언어로 등장했다(3세기경). 그리하여 고대 라틴어 곧 이탈리아어 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약성서]의 경우 히에로니무스가 고대 라틴어 역과 그리스어 사본들을 참고하면서 라틴어 복음서 개정작업을 했다. 4세기말에는 [신약성서] 라틴어 번역 불가타가 나왔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63)의 관심 중 하나가 라틴어 역의 개정이었는데, 1592년에 클레멘스 8세의 이름을 딴 클레멘스 불가타가 나와서 권위본으로 인정을 받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후 다시 불가타 개정 작업을 시작했다. 시리아의 에데사와 서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사용되지 않고, 시리아어(아람어와 관련된 셈어 중 하나)가 사용되고 있었다. 2세기에 나온 [디아테사론]의 원어는 시리아어였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고대 시리아어 역 사본은 단편만 남아 있다. [페시타 시리아어 역](Syrpesh로 표기됨)은 4세기에 이루어진 역본이다. [신약성서] 27권 중 22권이 들어 있으며 번역본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필록세니아(Syrphil)와 하클리(Syrharc) 역본은 6~7세기의 것으로서 신약 27권이 다 들어 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어 역(Syrpal)은 5세기에 번역된 것이지만 지금은 11~12세기의 성구집을 통해서 알려져 있고, 다른 시리아어 역과는 다른 본문 형태를 지녔다.

이집트에서는 3~6세기에 콥트어 역이 나왔다. 남쪽(상이집트)에서는 사히딕 역(Copsah), 북쪽(하이집트)에서는 보하이릭 역(Copboh)이 나왔다. 둘 다 엄격한 직역이며, 2~3세기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본문 형태를 반영한다. 드물게 서방 본문 형태도 발견된다.

고트어 역은 4세기에 선교사 울필라스가 비잔틴 본문형태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5세기의 아르메니아어 역은 시리아어 역에서 거듭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어 본문에서 번역되었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어 역본이 4~5세기에 나왔으며, 5세기에는 그루지야어 역, 6세기에는 누비아어 역, 6~7세기에는 에티오피아어 역이 나왔다.

ii) 후대 및 현대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편집본들

18세기의 [신약성서] 편집본들은 새로운 사본의 증거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소위 '공인본문'이라고 하는 텍스투스 레셉투스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 편집본들의 한계가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1719년에는 영국의 수학자 겸 신학자였던 웰스가 텍스투스 레셉투스를 버리고 그것보다 더 고대의 사본들을 가지고 [신약성서]를 새로 편집했다. 1720년에 고대의 본문을 회복하려고 초기의 사본으로 되돌아가서 [신약성서]를 다시 편집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무시되어버리고 말았다. 1734년에 독일 루터교 성서학자 J. A. 벵겔은 사본들뿐만 아니라 사본의 계보들도 구별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고, 본문 비평의 기준을 계획했다. 1730~ 51년에 나온 J. J. 베트슈타인판 [신약성서]에는 옛 문헌이나 랍비들의 인용 자료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그가 편집한 본문보다는 본문에 관한 그의 이론이 더 탁월하다. 1767년에는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J.S. 제믈러가 벵겔의 사본 계보 분류를 더욱 정확하게 다듬었다.

독일의 학자이며 제믈러의 제자였던 J. J. 그리스바흐(1745~1812)는 본문 계보 분류를 콘스탄티노플 본문군(群)보다 앞서 있던 서방 본문군과 알렉산드리아 본문군을 포함시키는 데 적용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본문비평의 과학적 법칙을 따라 본문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법칙 중에 아직도 유용한 것은 "어려운 본문이 쉽게 읽히는 본문보다 더 원문에 가깝다"든가, "짧은 본문이 긴 본문보다 더 원문에 가깝다"는 것 등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언어학자 카를 라흐만은 텍스투스 레셉투스는 무시하고 4세기 이전의 사본들을 사용하며 [신약성서]를 비평적으로 편집했다(1831). 티셴도르프의 시나이티쿠스 사본(S)과 그가 편집한 [신약성서](제8판, 1864) 사본들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으며, 풍부한 본문비평 장치를 제공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두 성서 학자, B.F. 웨스트컷과 F.J.A. 호트는 시나이티쿠스 사본과 바티카누스 사본을 사용하여 [신약성서]를 새로 편집했고, 본문을 중성적인 본문군(B, S, 가장 순수하고 오래된 동방 본문), 알렉산드리아 본문군(알렉산드리아에서 발전되는 동안 잘 다듬어진 중성 본문), 서방 본문군(D, 고대 시리아어, 고대 라틴어, 서방 교부들), 시리아 본문군(Ae와 비잔틴 전승) 등 4개 본문군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본문 가계도는 제임스왕 역본의 대본이었던 텍스투스 레셉투스가 아주 열악한 사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여기에 반해 영어 개역 표준역(RSV)은 바티카누스 사본(B) 및 시나이티쿠스 사본(S)과 같은 우수한 본문 형태를 대본으로 번역된 것임을 보여주었다. H. 폰 조덴이 또다른 비평적 편집본을 펴냈다(1902~ 13). 이 편집본에서는 사본군에 대한 그의 해박한 이론보다는 괄목할 만한 본문비평 장치가 더 귀중하다. 영국 학자 B. H. 스트리터는 웨스트콧과 호트의 사본 분류를 개정했는데(1924), 스트리터는 본문군을 알렉산드리아 본문군, 카이사리아 본문군, 안티오크 본문군, 유럽의 서방 본문군, 아프리카의 서방 본문군 등 5개 계통으로 나누었다.

현재 널리 읽히고 있는 비평적 편집본은 네스틀레-알란트의 '그리스어 [신약성서]'(Novum Testamentum Graece : 26판, 1983)이다. 에버하르트 네스틀레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처음 편집하여 출판한 것은 1898년이었다. 그것은 19세기 [신약성서] 본문 연구의 결과들인 티셴도르프, 웨스트콧-호트, 웨이머스(1886, 1901년 이후부터는 B. 바이스) 등의 본문을 기본 본문으로 삼았다. 에버하르트 네스틀레는 이들 세 종류의 그리스어판을 비교해가면서 다수의 사본들이 일치하는 다수결 본문(majority text)을 만들었다. 그의 아들 에르빈 네스틀레가 1927년에 그리스어 [신약성서] 13판을 낼 때 사본 비교, 번역본 비교, 교부들의 인용구 비교 등이 첨가되면서 본문비평 장치가 더 확대되었다. 1952년 21판을 낼 때부터는 쿠르트 알란트가 네스틀레의 그리스어 [신약성서] 편집에 가담했다. 1965년의 25판부터는 '네스틀레-알란트'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네스틀레-알란트의 25판은 1930년대 이후 새로 발견된 200년경의 파피루스 사본들을 본문 재구성에 반영시킨 것이다. 이것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 세계성서공회연합회(United Bible Societies)의 그리스어 [신약성서](The Greek New Testament : 196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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