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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XI

XI
   

And remembering how those very beliefs had repelled me and had seemed meaningless when professed by people whose lives conflicted with them, and how these same beliefs attracted me and seemed reasonable when I saw that people lived in accord with them, I understood why I had then rejected those beliefs and found them meaningless, yet now accepted them and found them full of meaning. I understood that I had erred, and why I erred. I had erred not so much because I thought incorrectly as because I lived badly. I understood that it was not an error in my thought that had hid truth from me as much as my life itself in the exceptional conditions of epicurean gratification of desires in which I passed it. I understood that my question as to what my life is, and the answer-and evil-was quite correct. The only mistake was that the answer referred only to my life, while I had referred it to life in general. I asked myself what my life is, and got the reply: An evil and an absurdity. And really my life -- a life of indulgence of desires -- was senseless and evil, and therefore the reply, "Life is evil and an absurdity", referred only to my life, but not to human life in general. I understood the truth which I afterwards found in the Gospels, "that men loved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for their works were evil. For everyone that doeth ill hateth the light, and cometh not to the light, lest his works should be reproved."* I perceived that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life it is necessary first that life should not be meaningless and evil, then we can apply reason to explain it. I understood why I had so long wandered round so evident a truth, and that if one is to think and speak of the life of mankind, one must think and speak of that life and not of the life of some of life's parasites. That truth was always as true as that two and two are four, but I had not acknowledged it, because on admitting two and two to be four I had also to admit that I was bad; and to feel myself to be good was for me more important and necessary than for two and two to be four. I came to love good people, hated myself, and confessed the truth. Now all became clear to me.

그들의 인생이 믿음과 충돌하는 사람들이 고백하였을 때 그들의 바로 그 믿음들이 어떻게 나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며 무의미하게 보였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믿음과 일치하여 사는 것을 보았을 때 이러한 똑같은 믿음이 어떻게 나를 끌어당겼으며 이성적으로 보였는지를 기억하면서, 내가 왜 그때 그러한 믿음을 버렸으며 그것들이 의미 없다고 여겼으며, 그러나 이제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의미가 가득찬 것으로 여기는지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내가 오류를 범했으며, 왜 범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악하게 산 것 만큼 틀리게 생각했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나온 쾌락주의적인 욕구의 만족의 예외적인 상태에서의 나의 인생 자체 만큼이나, 나를 진리로부터 숨겨온 나의 생각에 오류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 대답-그리고 악-은 매우 정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일한 오류는 대답은 오직 나의 인생을 참조하였고, 반면에 나는 그것을 일반적인 인생에 참조하였다. 나는 나의 인생이 무엇인지 자문하였으며, 이 대답을 얻었다: 악 그리고 모순이다. 그리고 진실로 나의 인생은-욕망에 집착한 인생-무의미하며 악이었다, 그리고 그러므로, ‘인생은 악이며 모순이다’라고 하는 대답은, 오직 나의 인생을 언급함이며, 인간의 인생 전체를 말함이 아니었다. 나는 나중에 복음서에서 찾은 진리를 깨달았다-‘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나는, 인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생이 무의미하거나 악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요하며,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성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알았다. 나는 내가 왜 오랫동안 그렇게 분명한 진리의 주위를 방황했는지 깨달았으며, 그리고 인류의 인생을 생각하고 말하려면, 그는 반드시 그러한 인생을 생각하고 말해야 하며 몇몇 인생의 기생충의 인생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진리는 이 곱하기 이는 사인 것 만큼 언제나 진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이이는 사를 인정하면 나는 또한 내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 이이는 사보다 더욱 중요하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나 자신을 미워하며, 그리고 진리를 고백하였다. 이제 모든 것이 내게 명백해졌다.

What if an executioner passing his whole life in torturing people and cutting off their heads, or a hopeless drunkard, or a madman settled for life in a dark room which he has fouled and imagines that he would perish if he left -- what if he asked himself: "What is life?" Evidently he could get no other reply to that question than that life is the greatest evil, and the madman's answer would be perfectly correct, but only as applied to himself. What if I am such a madman? What if all we rich and leisured people are such madmen? And I understood that we really are such madmen. I at any rate was certainly such.

자신의 전 인생을 사람들을 고문하며 그들의 머리를 자르는데 보낸 사형수, 또는 희망이 없는 주정뱅이 또는 미친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자신이 망쳐버린 그리고 그가 떠난다면 죽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방안에서 인생을 받아 들인다면 어떻겠는가-그가 자신에게 ‘인생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한다면 어떻겠는가? 분명히 그는 그 질문에 대하여 인생은 최대의 악이라는 것 외의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미친 사람의 대답은 완벽하게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내가 그런 미친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나는 우리가 정말로 그런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찌하였든 정말로 그러하였다.

And indeed a bird is so made that it must fly, collect food, and build a nest, and when I see that a bird does this I have pleasure in its joy. A goat, a hare, and a wolf are so made that they must feed themselves, and must breed and feed their family, and when they do so I feel firmly assured that they are happy and that their life is a reasonable one. Then what should a man do? He too should produce his living as the animals do, but with this difference, that he will perish if he does it alone; he must obtain it not for himself but for all. And when he does that, I have a firm assurance that he is happy and that his life is reasonable. But what had I done during the whole thirty years of my responsible life? Far from producing sustenance for all, I did not even produce it for myself. I lived as a parasite, and on asking myself, what is the use of my life? I got the reply: "No use." If the meaning of human life lies in supporting it, how could I -- who for thirty years had been engaged not on supporting life but on destroying it in myself and in others -- how could I obtain any other answer than that my life was senseless and an evil? ... It was both senseless and evil.

그리고 정말로 새는 날아야 하며, 먹을 것을 구하고 그리고 둥지를 만들어야 하도록 만들어 졌다, 그리고 새가 이렇게 행동함을 내가 볼 때, 나는 그러함에서 즐거움을 갖게 된다. 염소, 토끼, 그리고 늑대는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며, 그들의 가족을 키우고 먹여야 하며, 그들이 그렇게 할 때, 나는 그들이 행복하며 그들의 삶이 합당한 것임을 강하게 확인됨을 느낀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역시 동물들처럼 그의 삶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가 있다, 만일 혼자서 그것을 행한다면 그는 멸망할 것이다; 그는 반드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인생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행할 때, 그는 행복하며 그의 인생은 이성적이라는 강한 확신을 나는 가진다. 그러나 나의 책임져야 하는 인생의 전체 삼십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삶의 수단을 만들어 내기는 커녕, 나는 심지어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생산하지 않았다. 나는 기생충으로 살았다 그리고 나에게 나의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자문을 하여, ‘쓸모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만일 인간의 인생의 의미가 인생을 받드는데 있다면, 나-삼십년 동안 인생을 받드는데 참여하지 않으며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인생을 파괴하였으니-나는 어찌하여 나의 인생은 무의미하며 악이라는 대답 이외의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무의미하였으며 악이었다.

The life of the world endures by someone's will -- by the life of the whole world and by our lives someone fulfills his purpose. To hop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at will one must first perform it by doing what is wanted of us. But if I will not do what is wanted of me, I shall never understand what is wanted of me, and still less what is wanted of us all and of the whole world.

세상의 인생은 누군가의 뜻에 의하여 지속된다-전세계의 인생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의하여 누군가가 그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한 뜻의 의미를 깨닫고자 희망한다면, 그는 먼저 반드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나에게 요구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게 요구되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고 전세계에 요구되는 것은 더욱더 깨닫지 못할 것이다.

If a naked, hungry beggar has been taken from the cross-roads, brought into a building belonging to a beautiful establishment, fed, supplied with drink, and obliged to move a handle up and down, evidently, before discussing why he was taken, why he should move the handle, and whether the whole establishment is reasonably arranged -- the begger should first of all move the handle. If he moves the handle he will understand that it works a pump, that the pump draws water and that the water irrigates the garden beds; then he will be taken from the pumping station to another place where he will gather fruits and will enter into the joy of his master, and, passing from lower to higher work, will understand more and more of the arrangements of the establishment, and taking part in it will never think of asking why he is there, and will certainly not reproach the master.

만일 헐벗고 굶주린 어떤 거지가 사거리에서 붙들려서 어떤 훌륭한 시설에 소속된 건물에 들어가서, 먹고, 마실 것을 공급 받으며, 그리고 손잡이를 아래 위로 움직여야 된다고 명령 받으면,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가 왜 붙들려 왔는지, 왜 그 손잡이를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전체 시설이 합리적으로 배치되었는지를 논의하기 전에, 그 거지는 제일 먼저 손잡이를 움직여야 한다. 그가 손잡이를 움직이면 그는 그것이 펌프를 작동시키며, 펌프는 물을 나오게 하며 물은 정원의 바닥에 물을 댄다; 그러면 그는 양수장에서 과일을 수확하는 다른 장소로 붙들려 갈 것이며 그의 주인의 기쁨 안에 들 것이고, 낮은 일에서부터 더 높은 일을 하게 되고, 점점 더 그 시설의 구조들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것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결코 묻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틀림없이 주인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So those who do his will, the simple, unlearned working folk, whom we regard as cattle, do not reproach the master; but we, the wise, eat the master's food but do not do what the master wishes, and instead of doing it sit in a circle and discuss: "Why should that handle be moved? Isn't it stupid?" So we have decided. We have decided that the master is stupid, or does not exist, and that we are wise, only we feel that we are quite useless and that we must somehow do away with ourselves.

그래서 주인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즉, 배우지 못하였으며 일하는 사람들은, 주인에게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명한 우리는 주인의 음식은 먹지만 주인이 바라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행하는 대신에 둘러 앉아서 논쟁을 벌인다: ‘저 손잡이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바보짓이 아닌가?’ 그렇게 하여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주인이 어리석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현명하고, 우리는 오직 너무나 쓸모없다고 느끼며, 우리는 어쨌든 반드시 우리 자신들을 없애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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