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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XII

XII
   

The consciousness of the error in reasonable knowledge helped me to free myself from the temptation of idle ratiocination. The conviction that knowledge of truth can only be found by living led me to doubt the rightness of my life; but I was saved only by the fact that I was able to tear myself from my exclusiveness and to see the real life of the plain working people, and to understand that it alone is real life. I understood that if I wish to understand life and its meaning, I must not live the life of a parasite, but must live a real life, and -- taking the meaning given to live by real humanity and merging myself in that life -- verify it.

이성적 지식에 오류가 있음을 의식함이 내가 무익한 추론에 대한 유혹에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진리의 지식은 삶에서 오직 찾아 진다는 확신이 내 인생의 올바름을 의심하게 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을 배타성으로부터 떼어 낼 수 있고, 평범한 노동하는 사람들의 진실된 인생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만이 오직 진실된 인생이라고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만이 나는 구해질 수 있었다. 내가 만일 인생과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기생충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되며 진실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진정한 인류애로 살기 위하여 주어진 의미를 택하며 나 자신을 그런 인생에 병합하여서-그것을 증명하여야 함을 깨달았다.

During that time this is what happened to me. During that whole year, when I was asking myself almost every moment whether I should not end matters with a noose or a bullet -- all that time, together with the course of thought and observation about which I have spoken, my heart was oppressed with a painful feeling, which I can only describe as a search for God.

그러한 시기에 이것이 바로 내게 일어 났던 일이다. 그 한 해 내도록, 올가미나 총알로서 매사를 끝내야 하는가를 매 순간 마다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때-그 모든 시간을, 내가 말한 생각과 관측의 과정과 함께, 나의 가슴은 고통스런 느낌에 억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하나님에 대한 탐구라고 묘사할 수 있다.

I say that that search for God was not reasoning, but a feeling, because that search proceeded not from the course of my thoughts -- it was even directly contrary to them -- but proceeded from the heart. It was a feeling of fear, orphanage, isolation in a strange land, and a hope of help from someone.

나는 말하건대 하나님에 대한 탐구는 추론이 아니라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그 탐구는 나의 생각들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그것은 심지어 그것들에 직접적인 반대였다-가슴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려움, 고아상태, 이상한 땅에서 고립,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희망할 때의 느낌이었다.

Though I was quite convinced of the impossibility of proving the existence of a Deity (Kant had shown, and I quite understood him, that it could not be proved), I yet sought for god, hoped that I should find Him, and from old habit addressed prayers to that which I sought but had not found. I went over in my mind the arguments of Kant and Schopenhauer showing the impossibility of proving the existence of a God, and I began to verify those arguments and to refute them. Cause, said I to myself, is not a category of thought such as are Time and Space. If I exist, there must be some cause for it, and a cause of causes. And that first cause of all is what men have called "God". And I paused on that thought, and tried with all my being to recognize the presence of that cause. And as soon as I acknowledged that there is a force in whose power I am, I at once felt that I could live. But I asked myself: What is that cause, that force? How am I to think of it? What are my relations to that which I call "God"? And only the familiar replies occurred to me: "He is the Creator and Preserver." This reply did not satisfy me, and I felt I was losing within me what I needed for my life. I became terrified and began to pray to Him whom I sought, that He should help me. But the more I prayed the more apparent it became to me that He did not hear me, and that there was no one to whom to address myself. And with despair in my heart that there is no God at all, I said: "Lord, have mercy, save me! Lord, teach me!" But no one had mercy on me, and I felt that my life was coming to a standstill.

비록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함이 불가능하다고(칸트는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매우 확신하고 있었지만, 나는 하나님을 찾았으며, 나는 그분을 찾을 것을 희망하였으며, 그리고 옛날 습관대로 내가 찾는 대상에 대해 기도를 하였으나 찾지를 못했다.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함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칸트와 쇼펜하우어의 주장들을 새겨보았다, 그리고 그들 주장들을 검증하고 그것들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내가 생각하기로, 시간이나 공간처럼 생각의 범주가 아니다. 내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그것에 대한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원인에 대한 원인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러한 첫번째 원인은 사람들이 부르는 ‘하나님’이다. 나는 그런 생각에 머물렀다, 그리고 혼신을 다하여 그러한 원인의 존재를 깨닫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내가 어떤 힘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마자, 나는 당장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내게 물었다: 그러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러한 힘은? 어떻게 그것을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나의 관계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오직 친근한 대답이 내게 나타났다: ‘그는 조물주이며 보호자이다.’ 이 대답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인생에 필요한 것을 나의 안에서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두려워졌다 그리고 내가 찾던 그분에게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나를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기도를 하면 할 수록 그분이 나를 듣지 않으며, 나 자신을 위탁할 상대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서 하나님은 없다는 절망감으로, 나는 말했다: ‘주님, 자비를 베푸사, 저를 구원해 주소서!’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이 정지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But again and again, from various sides, I returned to the same conclusion that I could not have come into the world without any cause or reason or meaning; I could not be such a fledgling fallen from its nest as I felt myself to be. Or, granting that I be such, lying on my back crying in the high grass, even then I cry because I know that a mother has borne me within her, has hatched me, warmed me, fed me, and loved me. Where is she -- that mother? If I have been deserted, who has deserted me? I cannot hide from myself that someone bored me, loving me. Who was that someone? Again "God"? He knows and sees my searching, my despair, and my struggle."

그러나 계속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는 어떠한 원인 또는 이유 또는 의미 없이 세상에 왔을 수가 없다는 결론으로 돌아갔다; 내가 자신을 느끼는 것처럼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 같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그렇다고 인정하자, 높은 잔디에 나의 등을 대고 누워서, 심지어는 그리고 나서 나는 운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가 자신의 배 안에 나를 배었으며, 나를 품었으며, 나를 따뜻하게 하고, 나를 먹였고,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그 어머니-는 어디 있는가? 만일 내가 버려졌다면, 누가 나를 버렸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나를 배었으며,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그 어떤 사람은 누구인가? 다시, ‘하나님?’ 그분은 나의 탐구, 나의 절망, 그리고 나의 몸부림을 아시며 보시고 계신다.

"He exists," said I to myself. And I had only for an instant to admit that, and at once life rose within me, and I felt the possibility and joy of being. But again, from the admission of the existence of a God I went on to seek my relation with Him; and again I imagined that God-our Creator in Three Persons who sent His Son, the Saviour-and again that God, detached from the world and from me, melted like a block of ice, melted before my eyes, and again nothing remained, and again the spring of life dried up within me, and I despaired and felt that I had nothing to do but to kill myself. And the worst of all was, that I felt I could not do it.

‘그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오직 순간적으로 그것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즉시 인생이 나의 안에서 일어 났으며, 그리고 나는 존재의 가능성과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부터 나와 그분과의 관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하나님을 상상했다-자신의 아들인, 구세주를 보내신 삼위일체 중의 우리의 창조주-그리고 다시 그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떨어져서, 한 덩어리의 얼음처럼 녹았으며, 나의 눈 앞에서 녹았다, 그리고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인생의 샘은 나의 안에서 말라 버렸으며, 나는 절망하고 자살하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내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점이다.

Not twice or three times, but tens and hundreds of times, I reached those conditions, first of joy and animation, and then of despair and consciousness of the impossibility of living.

두 번 세 번이 아니라 열번 백 번씩이나 , 나는 그러한 상태에 도달했다, 처음에는 기쁨과 생기 넘침으로, 그리고 나서는 절망과 삶의 불가능성의 인식으로서이다.

I remember that it was in early spring: I was alone in the wood listening to its sounds. I listened and thought ever of the same thing, as I had constantly done during those last three years. I was again seeking God.

그것은 이른 봄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숲속에 혼자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내가 지난 삼년 동안 끊임없이 행한 것처럼, 나는 결코 같은 것을 듣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Very well, there is no God," said I to myself; "there is no one who is not my imagination but a reality like my whole life.

‘그래 좋아, 하나님은 없다,’ 나는 생각했다, ‘나의 상상이 아니라 나의 전체 인생 같은 현실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He does not exist, and no miracles can prove His existence, because the miracles would be my imagination, besides being irrational.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기적도 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적은 비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나의 상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But my perception of God, of Him whom I seek," I asked myself, "where has that perception come from?" And again at this thought the glad waves of life rose within me. All that was around me came to life and received a meaning. But my joy did not last long. My mind continued its work.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인식함, 내가 찾는 그분에 대하여,’ 나는 생각했다, ‘그런 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을 생각하자 인생의 기쁜 파도들이 나의 안에서 일어났다.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생기를 찾았으며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그 작업을 계속했다.

"The conception of God is not God," said I to myself. "The conception is what takes place within me. The conception of God is something I can evoke or can refrain from evoking in myself. That is not what I seek. I seek that without which there can be no life." And again all around me and within me began to die, and again I wished to kill myself.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의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내가 불러 올 수 있거나 또는 나 스스로 불러 오기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면 어떤 인생도 없게 되는 그것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나의 주변과 나의 안의 모든 것이 죽어가지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But then I turned my gaze upon myself, on what went on within me, and I remembered all those cessations of life and reanimations that recurred within me hundreds of times. I remembered that I only lived at those times when I believed in God. As it was before, so it was now; I need only be aware of God to live; I need only forget Him, or disbelieve Him, and I died.

그러나 그리고 나서 나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렸다, 나의 안에서 계속되는 것에, 그리고 나의 안에서 수백 번이나 되풀이되는 인생의 중단과 다시 살아남의 모든 것을 기억해보았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러한 때에 오직 살아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살기 위해서 나는 오직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오직 그분을 잊어 버리거나 그분을 믿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나는 죽었다.

What is this animation and dying? I do not live when I lose belief in the existence of God. I should long ago have killed myself had I not had a dim hope of finding Him. I live, really live, only when I feel Him and seek Him. "What more do you seek?" exclaimed a voice within me. "This is He. He is that without which one cannot live. To know God and to live is one and the same thing. God is life."

이런 살아남과 죽어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나는 살지 못한다. 내가 그분을 발견하고자 하는 희미한 희망이 없었다면 나는 오래 전에 자살하였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다, 진실로 살아 있다, 오직 내가 그분을 느끼고 그분을 찾을 때. ‘더 이상 무엇을 찾는가?’ 나의 안에 있는 소리가 소리쳤다. ‘이것이 그분이다. 그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그분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는 것은 하나이고 같은 일이다. 하나님은 인생이다.’

"Live seeking God, and then you will not live without God." And more than ever before, all within me and around me lit up, and the light did not again abandon me.

‘하나님을 찾으며 살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없이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 보다도 훨씬, 나의 안에서 그리고 나의 주변에서 모든 것이 밝아 졌다, 그리고 그 빛은 다시 나를 버리지 않았다.

And I was saved from suicide. When and how this change occurred I could not say. As imperceptibly and gradually the force of life in me had been destroyed and I had reached the impossibility of living, a cessation of life and the necessity of suicide, so imperceptibly and gradually did that force of life return to me. And strange to say the strength of life which returned to me was not new, but quite old -- the same that had borne me along in my earliest days.

그리고 나는 자살에서 구원되었다. 언제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 났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느낄 수 없이 그리고 서서히 나의 안에 있던 인생의 힘이 파괴되었으며 나는 삶의 불가능성, 인생의 중단, 그리고 자살의 필요성에 도달했다, 그리고 느낄 수 없이 그리고 서서히 인생의 힘이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인생의 힘을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아주 오래 전의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상할 것이다-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에 나를 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I quite returned to what belonged to my earliest childhood and youth. I returned to the belief in that Will which produced me and desires something of me. I returned to the belief that the chief and only aim of my life is to be better, i.e. to live in accord with that Will. And I returned to the belief that I can find the expression of that Will in what humanity, in the distant past hidden from me, has produced for its guidance: that is to say, I returned to a belief in God, in moral perfection, and in a tradition transmitting the meaning of life. There was only this difference, that then all this was accepted unconsciously, while now I knew that without it I could not live.

나는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속하는 것에 깊이 돌아 왔다. 나를 만들어 냈으며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그 의지(뜻)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왔다. 나의 인생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목적은 나아지는 것, 즉, 그러한 의지에 따라 사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내게 숨겨져 있던 먼 과거에서, 인류가 그들의 지침으로 만들어 낸 것에서 그러한 의지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돌아 왔다: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인 완성에서,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전해주는 전통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돌아왔다. 오직 이러한 차이가 있었다, 즉, 그 당시는 이 모든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여졌으나, 지금은 그것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What happened to me was something like this: I was put into a boat (I do not remember when) and pushed off from an unknown shore, shown the direction of the opposite shore, had oars put into my unpractised hands, and was left alone. I rowed as best I could and moved forward; but the further I advanced towards the middle of the stream the more rapid grew the current bearing me away from my goal and the more frequently did I encounter others, like myself, borne away by the stream. There were a few rowers who continued to row, there were others who had abandoned their oars; there were large boats and immense vessels full of people. Some struggled against the current, others yielded to it. And the further I went the more, seeing the progress down the current of all those who were adrift, I forgot the direction given me. In the very centre of the stream, amid the crowd of boats and vessels which were being borne down stream, I quite lost my direction and abandoned my oars. Around me on all sides, with mirth and rejoicing, people with sails and oars were borne down the stream, assuring me and each other that no other direction was possible. And I believed them and floated with them. And I was carried far; so far that I heard the roar of the rapids in which I must be shattered, and I saw boats shattered in them. And I recollected myself. I was long unable to understand what had happened to me. I saw before me nothing but destruction, towards which I was rushing and which I feared. I saw no safety anywhere and did not know what to do; but, looking back, I perceived innumerable boats which unceasingly and strenuously pushed across the stream, and I remembered about the shore, the oars, and the direction, and began to pull back upwards against the stream and towards the shore.

내게 일어난 것은 이와 같다: 나는 배에 태워져서(언제인지 기억 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강가에 내려졌다, 강가와 반대쪽으로, 나의 미숙한 손에 노가 들려져 있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졌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노를 저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흐름의 중앙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흐름은 더욱 빨라져서 나를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으며 점점 자주, 나와 같이, 흐름에서 떨어져 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계속 노를 저어 가는 사람도 몇 있었으며 그들의 노를 던져버린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을 가득 태운 커다란 배와 넓은 객선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흐름에 맞서서 싸웠으며, 다른 사람들은 흐름에 굴복했다. 그리고 내가 더욱더 나아 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표류하는 흐름 아래로의 진행을 보면서, 내게 주어진 방향을 잃어 버렸다. 흐름의 가장 중앙에는, 아래로 흘러가는 배와 객선들의 무리 가운데서, 나는 심히 나의 방향을 잃고 나의 노들을 놓아 버렸다. 나의 주변의 모든 측면은, 환희와 기쁨으로, 돛대와 노를 가진 사람들이 흐름의 아래로 떠 가고 있었으며, 나와 서로들에게 다른 어떤 방향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믿고서 그들과 함께 표류했다. 그리고 나는 멀리 떠내려 갔다; 멀리 가면서 내가 박살 날 것 같은 요란한 물살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배들이 그 안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기억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게 무엇이 일어 났는지 깨달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앞에서 오직 파멸만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며, 그것을 두려워 했다. 나는 어디에서도 안전을 찾을 수 없었으며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러나, 뒤를 보면서, 나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흐름을 밀면서 가는 수많은 배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강가, 노, 그리고 방향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 흐름에 맞서서 그 강가를 향해서 뒤로 노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That shore was God; that direction was tradition; the oars were the freedom given me to pull for the shore and unite with God. And so the force of life was renewed in me and I again began to live.

그 강가는 하나님이었다; 그 방향은 전통이었다; 그 노들은 강가로 끌고 가서 하나님과 연합하도록 내게 주어진 자유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인생의 힘은 나의 안에서 다시 새로워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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