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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XIV

XIV 

   

It was then so necessary for me to believe in order to live that I unconsciously concealed from myself the contradictions and obscurities of theology. But this reading of meanings into the rites had its limits. If the chief words in the prayer for the Emperor became more and more clear to me, if I found some explanation for the words "and remembering our Sovereign Most-Holy Mother of God and all the Saints, ourselves and one another, we give our whole life to Christ our God", if I explained to myself the frequent repetition of prayers for the Tsar and his relations by the fact that they are more exposed to temptations than other people and therefore are more in need of being prayed for-the prayers about subduing our enemies and evil under our feet (even if one tried to say that sin was the enemy prayed against), these and other prayers, such as the "cherubic song" and the whole sacrament of oblation, or "the chosen Warriors", etc.-quite two-thirds of all the services-either remained completely incomprehensible or, when I forced an explanation into them, made me feel that I was lying, thereby quite destroying my relation to God and depriving me of all possibility of belief.

그 당시 나는 살기 위하여 믿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하였으므로 나는 무의식적으로 신학의 모순들과 애매함 들을 나 자신에게서 숨겼다. 그러나 의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렇게 읽는 것은 그 한계가 있었다. 황제를 위한 기도에서 중요한 단어들이 나에게 점점 더 의미가 분명해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하나님의 지극하신 성모와 그리고 모든 성자들, 우리 자신들 그리고 서로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우리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게 바칩니다,’라고 하는 말씀에 어떤 설명을 찾았다 하더라도, 황제와 그의 친척들에 대해 자주 반복하는 기도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유혹에 더욱 노출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기도가 행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내게 설명을 하였다 하더라도-이 기도들은 원수를 우리의 발아래 누르고자 하는 것이었으니(심지어 죄악은 대적하여 기도하는 원수라고 말하려고 하더라도), 이들과 다른 기도들, 예를 들면 ‘천사의 노래’ 그리고 성체 봉헌식, 또는 ‘선택 받은 전사들’, 등이-모든 예식에서 거의 삼분의 이가- 완전히 이해될 수 없거나 또는 그것들에 설명을 가해 보려고 할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며, 그렇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나의 관계를 파괴하고 나에게서 모든 믿음의 기회를 박탈함을 느끼게 한다.

I felt the same about the celebration of the chief holidays. To remember the Sabbath, that is to devote one day to God, was something I could understand. But the chief holiday was in commemoration of the Resurrection, the reality of which I could not picture to myself or understand. And that name of "Resurrection" was also given the weekly holiday.*

나는 중요한 휴일에 대한 축하 행사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다. 안식을 기억함은, 그것은 하루를 하나님께 헌신하는 날로써,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휴일은 부활을 기념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현실은 나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이름은 또한 주일로 불리고 있었다.

And on those days the Sacrament of the Eucharist was administered, which was quite unintelligible to me. The rest of the twelve great holidays, except Christmas, commemorated miracles -- the things I tried not to think about in order not to deny: the Ascension, Pentecost, Epiphany, the Feast of the Intercession of the Holy Virgin, etc. At the celebration of these holidays, feeling that importance was being attributed to the very things that to me presented a negative importance, I either devised tranquillizing explanations or shut my eyes in order not to see what tempted me.

그리고 그런 날들은 성찬예식이 행해졌으며, 그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나머지 열두 가지 휴일은 기적들을 기념하고 있었다-부인하기 위하여 내가 생각해 내려고 하지 않는 것들: 예수 승천일, 오순절, 공현축일, 성모마리아 중재축일, 등이었다. 이러한 휴일들의 축하행사에서, 내게는 부정적인 중요함을 주는 바로 그런 것들에 중요함 들이 부여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서, 나를 시험하는 것들을 보지 않으려고 나의 눈을 감거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설명들을 꾸며 내었다.

Most of all this happened to me when taking part in the most usual Sacraments, which are considered the most important: baptism and communion. There I encountered not incomprehensible but fully comprehensible doings: doings which seemed to me to lead into temptation, and I was in a dilemma -- whether to lie or to reject them.

그 중에서도 이것은 내가 가장 흔한 성찬식- 세례식 및 성체배령식-에 참여할 때 일어났으며, 그것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곳에서 나는 납득이 안가는 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납득이 가는 일도 마주쳤다: 나를 시험으로 이끄는 것 같은 행위들, 그리고 나는 갈등에 빠졌다-거짓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거부할 것인가.

Never shall I forge the painful feeling I experienced the day I received the Eucharist for the first time after many years. The service, confession, and prayers were quite intelligible and produced in me a glad consciousness that the meaning of life was being revealed to me. The Communion itself I explained as an act performed in remembrance of Christ, and indicating a purification from sin and the full acceptance of Christ's teaching. If that explanation was artificial I did not notice its artificiality: so happy was I at humbling and abasing myself before the priest -- a simple, timid country clergyman -- turning all the dirt out of my soul and confessing my vices, so glad was I to merge in thought with the humility of the fathers who wrote the prayers of the office, so glad was I of union with all who have believed and now believe, that I did not notice the artificiality of my explanation. But when I approached the altar gates, and the priest made me say that I believed that what I was about to swallow was truly flesh and blood, I felt a pain in my heart: it was not merely a false note, it was a cruel demand made by someone or other who evidently had never known what faith is.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성제품을 받은 날 내가 경험한 고통스런 느낌을 결코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예배, 고백, 그리고 기도는 매우 잘 이해되었으며, 인생의 의미가 내게 드러나는 즐거운 느낌을 내 안에 만들어 주었다. 나는 성체배령 자체를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행위로 설명하였으며, 그것은 죄로부터 깨끗하게 됨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완전히 받아들임을 의미하고 있었다. 만일 그러한 설명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나는 그 인위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성직자들-단순하며, 소심한 시골 목사-이 나의 영혼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나의 악행들을 고백하게 하는 앞에서 나를 겸손히 하고 낮추는 일에 너무나도 행복했었으며, 너무나도 즐겁게도 기도 절차를 쓴 교부들의 겸양에 대해 생각에 잠겼으며, 믿고 있거나 이제 믿는 모든 사람들과 너무나 즐거이 연합하는 나머지 나의 설명이 인위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제단의 문에 다가갈 때, 그리고 성직자가 나로 하여금 내가 삼키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살이며 피라고 믿는다고 말하라고 할 때, 나는 나의 가슴에 고통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거짓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앙이 무엇인지 결코 안 적이 없음이 분명한 어떤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한 잔인한 요구였다.

I now permit myself to say that it was a cruel demand, but I did not then think so: only it was indescribably painful to me. I was no longer in the position in which I had been in youth when I thought all in life was clear; I had indeed come to faith because, apart from faith, I had found nothing, certainly nothing, except destruction; therefore to throw away that faith was impossible and I submitted. And I found in my soul a feeling which helped me to endure it. This was the feeling of self-abasement and humility. I humbled myself, swallowed that flesh and blood without any blasphemous feelings and with a wish to believe. But the blow had been struck and, knowing what awaited me, I could not go a second time.

나는 이제 스스럼 없이 그것은 잔인한 요구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오직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할 때의 청년기이던 위치에 더 이상 있지 않았다; 나는 사실, 신앙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분명히 파멸 말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신앙을 던져 버리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그래서 순종했다. 그리고 나의 영혼에서 그것을 견디게 도와 주는 감정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자기 비하와 겸손의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을 낮추고, 그 고기와 피를 아무런 모욕적인 느낌이 없이 그리고 믿으려는 소원을 가지고 삼켰다. 그러나 그 충격은 가해졌으며, 나를 기다리는 것을 알고, 두 번째는 갈 수 없었다.

I continued to fulfil the rites of the Church and still believed that the doctrine I was following contained the truth, when something happened to me which I now understand but which then seemed strange.

나는 교회의 의식들을 계속해서 실천했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따르는 교리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때에 지금은 깨닫고 있지만 그 때는 이상하게 여겨지던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I was listening to the conversation of an illiterate peasant, a pilgrim, about God, faith, life, and salvation, when a knowledge of faith revealed itself to me. I drew near to the people, listening to their opinions of life and faith, and I understood the truth more and more. So also was it when I read the Lives of Holy men, which became my favourite books. Putting aside the miracles and regarding them as fables illustrating thoughts, this reading revealed to me life's meaning. There were the lives of Makarius the Great, the story of Buddha, there were the words of St. John Chrysostom, and there were the stories of the traveller in the well, the monk who found some gold, and of Peter the publican. There were stories of the martyrs, all announcing that death does not exclude life, and there were the stories of ignorant, stupid men, who knew nothing of the teaching of the Church but who yet were saved.

나는 문맹인 농부와 순례자의 하나님, 신앙, 인생, 그리고 구원에 관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에 신앙의 지식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인생과 죽음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들었으며, 진리를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성자들의 삶을 읽을 때 또한 그러했으니, 그것들은 나의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 되었다. 기적들은 제쳐두고 그것들을 생각을 밝혀주는 우화라고 하여도, 이러한 독서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밝혀 주었다. 위대한 마카리우스의 인생, 부처 이야기가 있었으며, 성 요한 크리서스톰의 이야기도 있었으며, 그리고 우물에 빠진 나그네 이야기, 금 덩어리를 발견한 중, 그리고 선술집 주인 피터도 있었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모두 다 죽음이 인생을 몰아내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교회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구원 받은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But as soon as I met learned believers or took up their books, doubt of myself, dissatisfaction, and exasperated disputation were roused within me, and I felt that the more I entered into the meaning of these men's speech, the more I went astray from truth and approached an abyss.

그러나 내가 학식을 가진 신자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책을 들자마자, 나 자신에 대한 의혹, 불만, 그리고 성난 논쟁이 나의 안에서 들끓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의 설교의 의미에 빠져들면 들수록, 점점 진리에서 멀어져서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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