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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II

II

   

Some day I will narrate the touching and instructive history of my life during those ten years of my youth. I think very many people have had a like experience. With all my soul I wished to be good, but I was young, passionate and alone, completely alone when I sought goodness. Every time I tried to express my most sincere desire, which was to be morally good, I met with contempt and ridicule, but as soon as I yielded to low passions I was praised and encouraged.

언젠가 나는 나의 청년기의 십년 동안의 감동적이며 교훈적인 나의 인생의 이야기들을 서술할 것이다. 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경험을 가져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충심으로 선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젊고, 정열적이며 그리고 혼자였으며, 내가 선을 찾을 때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나의 가장 진지한 욕구를 표현하고자 시도할 때마다, 그것을 도덕적으로 선하여야 했는데, 나는 경멸과 비웃음을 받았으며, 그러나 내가 저속한 감정에 굴복하자마자 나는 찬사를 받았으며 격려를 받았다.

Ambition, love of power, covetousness, lasciviousness, pride, anger, and revenge-were all respected.

야망, 권력의 사랑, 탐욕, 호색, 교만, 분노, 그리고 복수-모두가 존경 받았다.

Yielding to those passions I became like the grown-up folk and felt that they approved of me. The kind aunt with whom I lived, herself the purest of beings, always told me that there was nothing she so desired for me as that I should have relations with a married woman: 'Rien ne forme un juene homme, comme une liaison avec une femme comme il faut'.* Another happiness she desired for me was that I should become an aide-de-camp, and if possible aide-de-camp to the Emperor. But the greatest happiness of all would be that I should marry a very rich girl and so become possessed of as many serfs as possible.

그런 감정에 내맡기면서 나는 마치 성인이 된 사람 같아졌으며 그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을 느꼈다. 나와 함께 살던 아주머니는, 그녀 자신은 존재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였는데, 언제나 나에게 말하기를, 내가 결혼한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만큼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Rien ne forme un juene homme, comme une liaison avec une femme comme il faut'. 그녀가 나에 대하여 바라는 다른 행복은 내가 무관이 되어야 하며, 그리고 가능하다면 황제의 전속 무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행복은 내가 매우 부자인 여자와 결혼하여 가능한 많은 농노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I cannot think of those years without horror, loathing and heartache. I killed men in war and challenged men to duels in order to kill them. I lost at cards, consumed the labor of the peasants, sentenced them to punishments, lived loosely, and deceived people. Lying, robbery, adultery of all kinds, drunkenness, violence, murder -- there was no crime I did not commit, and in spite of that people praised my conduct and my contemporaries considered and consider me to be a comparatively moral man.

나는 전율, 역겨움 그리고 마음의 고통이 없이는 그런 시절을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전쟁에서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다. 나는 카드게임에서 잃었고, 농부들의 노동을 소모 시켰으며, 그들을 처벌하였고, 방종하게 살았으며, 그리고 사람들을 속였다. 거짓말, 강도질, 모든 종류의 간음, 술 취함, 폭력, 살인-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함에도 사람들이 나의 행위를 칭찬하였다 그리고 나의 동년배의 사람들은 나를 비교적 도덕적인 사람으로 여겼으며 여기고 있다.

So I lived for ten years.

그렇게 나는 십 년을 살았다.

During that time I began to write from vanity, covetousness, and pride. In my writings I did the same as in my life to get fame and money, for the sake of which I wrote, it was necessary to hide the good and to display the evil. and I did so. How often in my writings I contrived to hide under the guise of indifference, or even of banter, those strivings of mine towards goodness which gave meaning to my life! And I succeeded in this and was praised.

그 시절 동안 나는 허영, 탐욕, 그리고 교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작품에서 명성과 돈을 얻기 위해서 나의 인생에서처럼 같은 일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위해 글을 썼으며, 선을 숨기고 악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였으며 그렇게 하였다. 나의 작품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무관심 또는 농담을 가장하여, 나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선을 향한 나의 노력을 숨기려고 기도하였던가! 그리고 나는 이것에 성공하였고 칭송을 받았다.

At twenty-six years of age* I returned to Petersburg after the war, and met the writers. They received me as one of themselves and flattered me. And before I had time to look round I had adopted the views on life of the set of authors I had come among, and these views completely obliterated all my former strivings to improve-they furnished a theory which justified the dissoluteness of my life.

스물 여섯 살에 나는 전쟁 뒤에 페테스부르크로 돌아갔으며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하나로 받아 들였으며 나를 치켜세웠다. 나는 주위를 돌아다 볼 틈도 없이 나와 함께하는 일단의 작가들의 삶에 대한 시각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들 시각은 옛날 내가 개선하고자 하던 모든 노력들을 완전히 지워버렸다-그들은 나의 인생의 방종함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공급하였다.

The view of life of these people, my comrades in authorship, consisted in this: that life in general goes on developing, and in this development we-men of thought-have the chief part; and among men of thought it is we-artists and poets-who have the greatest influence. Our vocation is to teach mankind. And lest the simple question should suggest itself: What do I know, and what can I teach? it was explained in this theory that this need not be known, and that the artist and poet teach unconsciously. I was considered an admirable artist and poet, and therefore it was very natural for me to adopt this theory. I, artist and poet, wrote and taught without myself knowing what. For this I was paid money; I had excellent food, lodging, women, and society; and I had fame, which showed that what I taught was very good.

저작업에서 나의 동료들인, 이런 사람들의 삶에 대한 시각은 이런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인생은 발전해 나간다, 그리고 이 발전에서 우리-사고하는 사람들-가 주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고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예술가들과 시인들이다. 우리의 직업은 인류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의문-나는 무엇을 아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이 제기되지 않도록, ‘이것은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예술가와 시인은 무의식 중에 가르친다’고 이 이론에서 설명되었다. 나는 칭찬 받는 예술가이자 시인이었으며, 그리므로 내가 이러한 이론을 채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였다. 예술가이자 시인인 나는 나 자신도 무엇인지 모르면서 집필하고 가르쳤다. 이 일로 해서 나는 돈은 받았으므로, 나는 뛰어난 음식, 숙소, 여자들, 그리고 사회를 가졌다, 그리고 나는 명성을 가졌으며, 그것은 내가 가르친 것이 매우 좋다는 것을 나타냈다.

This faith in the meaning of poetry and in the development of life was a religion, and I was one of its priests. To be its priest was very pleasant and profitable. And I lived a considerable time in this faith without doubting its validity. But in the second and still more in the third year of this life I began to doubt the infallibility of this religion and to examine it. My first cause of doubt was that I began to notice that the priests of this religion were not all in accord among themselves. Some said: We are the best and most useful teachers; we teach what is needed, but the others teach wrongly. Others said: No! we are the real teachers, and you teach wrongly. And they disputed, quarrelled, abused, cheated, and tricked one another. There were also many among us who did not care who was right and who was wrong, but were simply bent on attaining their covetous aims by means of this activity of ours. All this obliged me to doubt the validity of our creed.

시의 의미와 인생의 발전에 대한 이런 믿음은 종교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위한 사제들 중의 하나였다. 그것의 사제가 됨은 매우 유쾌하며 돈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상당한 시간을 그 정당함을 의심하지도 않고 이런 신앙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의 두 번째 해에, 그리고 세 번째 해에 더욱 더, 나는 이 종교의 무결성에 대해 의심하며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의심에 대한 첫번째 원인은 이러한 종교의 사제들이 자신들 사이에서도 일치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음이다. 어떤 사람들이 말했다: 우리는 가장 훌륭하며 가장 유익한 교사들이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가르치며 다른 사람들은 엉터리로 가르친다.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교사들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엉터리로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논쟁하고, 싸우고, 욕하고, 사기치고 그리고 기만하였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 중에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관심이 없는 대신에, 우리들의 이러한 활동을 수단으로 오직 그들의 탐욕스러운 목적을 달성하는데 열중인 사람들도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우리 교리의 정당성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Moreover, having begun to doubt the truth of the authors' creed itself, I also began to observe its priests more attentively, and I became convinced that almost all the priests of that religion, the writers, were immoral, and for the most part men of bad, worthless character, much inferior to those whom I had met in my former dissipated and military life; but they were self-confident and self-satisfied as only those can be who are quite holy or who do not know what holiness is. These people revolted me, I became revolting to myself, and I realized that that faith was a fraud.

게다가, 작가들의 교리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한 그 사제들을 좀더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종교의 거의 모든 사제들, 즉 작가들이, 비도덕적이며, 그리고 대부분이, 악하며, 가치 없는 인격의 소유자들이며, 나의 이전의 방탕하던 군대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 보다도 더욱 열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아주 성스럽거나 아니면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자기확신과 자만에 차있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혐오감을 주었고, 나는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나는 그런 신앙이 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But strange to say, though I understood this fraud and renounced it, yet I did not renounce the rank these people gave me: the rank of artist, poet, and teacher. I naively imagined that I was a poet and artist and could teach everybody without myself knowing what I was teaching, and I acted accordingly.

그러나 말하기가 이상하지만, 비록 내가 이 사기를 깨닫고 포기하였지만, 그러나 나는 이 사람들이 나에게 준 지위-예술가, 시인, 그리고 교사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순진하게도 나는 시인이며 예술가며 그리고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면서 모든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상상하였으며, 나는 그렇게 행동하였다.

From my intimacy with these men I acquired a new vice: abnormally developed pride and an insane assurance that it was my vocation to teach men, without knowing what.

이러한 사람들과 나의 친분으로 해서 나는 새로운 악을 얻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직업이라는 비정상적으로 발전된 자만심과 제정신이 아닌 확신이 그것이다.

To remember that time, and my own state of mind and that of those men (though there are thousands like them today), is sad and terrible and ludicrous, and arouses exactly the feeling one experiences in a lunatic asylum.

그 시절, 그리고 나 자신의 정신 상태와 다른 사람들(비록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수천이나 되지만)의 상태를 회상하자면, 슬프고 무서우며 우스꽝스럽다, 그리고 정확히 정신 병원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We were all then convinced that it was necessary for us to speak, write, and print as quickly as possible and as much as possible, and that it was all wanted for the good of humanity. And thousands of us, contradicting and abusing one another, all printed and wrote-teaching others. And without noticing that we knew nothing, and that to the simplest of life's questions: What is good and what is evil? we did not know how to reply, we all talked at the same time, not listening to one another, sometimes seconding and praising one another in order to be seconded and praised in turn, sometimes getting angry with one another-just as in a lunatic asylum.

우리는 그때 모두가 연설하며, 글을 쓰고, 그리고 가능한 빨리 그리고 가능한 많이 출판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모두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필요한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중의 수천은, 서로를 반대하고 욕을 하면서, 모두가 출판하고 글을 썼다-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모두 동시에 말했으며,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때로는 나중에 지지 받고 칭찬 받기 위하여 서로를 지지하고 칭찬하며, 대로는 서로에게 화를 내었다-마치 정신병원에서처럼

Thousands of workmen laboured to the extreme limit of their strength day and night, setting the type and printing millions of words which the post carried all over Russia, and we still went on teaching and could in no way find time to teach enough, and were always angry that sufficient attention was not paid us.

수천명의 직공들이 밤낮으로 힘이 다 빠지도록 노동하였다, 활자를 맞추고 수백만의 단어들을 인쇄하여 우체부가 러시아 전역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가르치기를 계속하고, 아무리 해도 가르칠 충분한 시간을 찾지 못하고, 그리고 언제나 우리에게 충분한 관심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었다.

It was terribly strange, but is now quite comprehensible. Our real innermost concern was to get as much money and praise as possible. To gain that end we could do nothing except write books and papers. So we did that. But in order to do such useless work and to feel assured that we were very important people we required a theory justifying our activity. And so among us this theory was devised: "All that exists is reasonable. All that exists develops. And it all develops by means of Culture. And Culture is measured by the circulation of books and newspapers. And we are paid money and are respected because we write books and newspapers, and therefore we are the most useful and the best of men." This theory would have been all very well if we had been unanimous, but as every thought expressed by one of us was always met by a diametrically opposite thought expressed by another, we ought to have been driven to reflection. But we ignored this; people paid us money and those on our side praised us, so each of us considered himself justified.

그것은 무섭게도 이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당히 이해가 될 법하다. 우리의 진정한 내면의 관심은 가능한 많은 돈과 칭찬을 얻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리는 책과 신문을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쓸모없는 일을 하고 우리가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자신 있게 느끼려면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 시켜주는 이론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이 이론이 고안된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발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문화 때문에 발전한다. 그리고 문화는 책과 신문의 유포로서 측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받으며 존경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책과 신문을 쓰고, 그리고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용하고 훌륭하다.” 이 이론은 우리가 만장 일치였다면 모든 것이 잘 되었을 것이 그러나 우리들 중의 하나가 표현하는 모든 사상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서 표현되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상을 만났으므로, 우리는 심사숙고로 몰려야만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무시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돈을 지불했으며 우리측의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했다, 그래서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여겼다.

It is now clear to me that this was just as in a lunatic asylum; but then I only dimly suspected this, and like all lunatics, simply called all men lunatics except myself.

이것은 마치 정신 병원에 있는 것과 똑같음이 이제 나에게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때 나는 단지 이것을 희미하게 의심하였다, 그리고 모든 정신병자들처럼, 단순히 모든 사람들을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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