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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nfession

( 고백 )


by Leo Tolstoy

   
       
   

VII

VII
   

Not finding an explanation in science I began to seek for it in life, hoping to find it among the people around me. And I began to observe how the people around me -- people like myself -- lived, and what their attitude was to this question which had brought me to despair.

과학에서 설명을 찾지 못하자 나는 그것을 삶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것을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안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주변 사람들-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간 이 질문에 그들의 태도는 무엇인지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And this is what I found among people who were in the same position as myself as regards education and manner of life.

그리고 이것은 교육과 생활의 방법에 있어서 나와 같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찾은 것이다.

I found that for people of my circle there were four ways out of the terrible position in which we are all placed.

나의 범주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 모두가 처해있는 두려운 위치를 벗어나기 위해 네 가지 방법이 있음을 발견했다.

The first was that of ignorance. It consists in not knowing, not understanding, that life is an evil and an absurdity. People of this sort -- chiefly women, or very young or very dull people -- have not yet understood that question of life which presented itself to Schopenhauer, Solomon, and Buddha. They see neither the dragon that awaits them nor the mice gnawing the shrub by which they are hanging, and they lick the drops of honey. But they lick those drops of honey only for a while: something will turn their attention to the dragon and the mice, and there will be an end to their licking. From them I had nothing to learn -- one cannot cease to know what one does know.

첫 번째는 무지를 통한 방법이다. 그것은 인생은 악이며 불합리한 것을 모르거나 깨닫지 못함에 있다. 이런 류의 사람들-주로 여자들, 또는 매우 어리거나 또는 매우 둔한 사람들-은 쇼펜하우어, 솔로몬, 그리고 부처에게 제기된 인생의 질문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용이나 그들이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갉아 먹는 생쥐를 보지 못하며, 그러면서 그들은 꿀을 핥아 먹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꿀 방울을 오직 잠시만 핥아 먹는다: 무엇인가가 그들의 시선을 용이나 생쥐에게로 돌릴 것이며, 그러면 그들의 핥아 먹음은 끝이 난다. 나는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스스로가 아는 것을 그가 알기를 중단할 수 없다.

The second way out is epicureanism. It consists, while knowing the hopelessness of life, in making use meanwhile of the advantages one has, disregarding the dragon and the mice, and licking the honey in the best way, especially if there is much of it within reach. Solomon expresses this way out thus: "Then I commended mirth, because a man hath no better thing under the sun, than to eat, and to drink, and to be merry: and that this should accompany him in his labour the days of his life, which God giveth him under the sun.

두 번째의 탈출 방법은 쾌락주의이다. 인생의 희망 없음을 알고서,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하는 반면에, 용과 생쥐는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특히 손에 닫는 한 많이 있다면, 최선의 방법으로 꿀을 핥는다. 솔로몬은 이러한 탈출 방법을 그렇게 표현한다: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Therefore eat thy bread with joy and drink thy wine with a merry heart.... Live joyfully with the wife whom thou lovest all the days of the life of thy vanity...for this is thy portion in life and in thy labours which thou takest under the sun.... Whatsoever thy hand findeth to do, do it with thy might, for there is not work, nor device, nor knowledge, nor wisdom, in the grave, whither thou goest."

‘그러므로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 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That is the way in which the majority of people of our circle make life possible for themselves. Their circumstances furnish them with more of welfare than of hardship, and their moral dullness makes it possible for them to forget that the advantage of their position is accidental, and that not everyone can have a thousand wives and palaces like Solomon, that for everyone who has a thousand wives there are a thousand without a wife, and that for each palace there are a thousand people who have to build it in the sweat of their brows; and that the accident that has today made me a Solomon may tomorrow make me a Solomon's slave. The dullness of these people's imagination enables them to forget the things that gave Buddha no peace -- the inevitability of sickness, old age, and death, which today or tomorrow will destroy all these pleasures.

그것이 우리 부류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인생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다. 그들의 상황이 그들에게 역경보다는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들의 도덕적 둔감함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지위의 유리함이 우연이고, 누구나가 솔로몬처럼 수천의 아내와 궁전을 가질 수 있지 아니하며, 수천 명의 아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수천 명의 아내 없는 사람이 있으며, 그리고 궁전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지어야 했고; 그리고 오늘 나를 솔로몬으로 만든 우연이 나를 솔로몬의 노예로 만들 수 있음을 잊어버리게 한다. 이 사람들의 상상력의 둔함이 부처에게 아무런 평화를 주지 못한 것들-피할 수 없는 질병, 늙음, 그리고 죽음, 그리고 이것들은 오늘이나 내일 그 모든 즐거움 들을 파괴하여 버릴 것들-을 그들로 하여금 잊어 버리게 한다.

So think and feel the majority of people of our day and our manner of life. The fact that some of these people declare the dullness of their thoughts and imaginations to be a philosophy, which they call Positive, does not remove them, in my opinion, from the ranks of those who, to avoid seeing the question, lick the honey. I could not imitate these people; not having their dullness of imagination I could not artificially produce it in myself. I could not tear my eyes from the mice and the dragon, as no vital man can after he has once seen them.

우리 시대의 및 우리와 같은 인생의 방법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들 중의 일부가 그들의 사상과 상상력이 둔함을 철학이라고 부르며 이를 긍정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그들을, 나의 의견상이지만, 질문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꿀을 핥고 있는 사람들의 분류에서 제외하여 주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들을 흉내 낼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둔한 상상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의도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그 생쥐와 용으로부터 나의 눈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마치 어떤 생생한 사람도 그가 한번 그것들을 보고 나서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The third escape is that of strength and energy. It consists in destroying life, when one has understood that it is an evil and an absurdity. A few exceptionally strong and consistent people act so. Having understood the stupidity of the joke that has been played on them, and having understood that it is better to be dead than to be alive, and that it is best of all not to exist, they act accordingly and promptly end this stupid joke, since there are means: a rope round one's neck, water, a knife to stick into one's heart, or the trains on the railways; and the number of those of our circle who act in this way becomes greater and greater, and for the most part they act so at the best time of their life, when the strength of their mind is in full bloom and few habits degrading to the mind have as yet been acquired.

세 번째의 도피는 힘과 활력에 있다. 그것은, 자신이 인생을 악이고 불합리라고 깨달을 때에, 생명을 파괴하는데 있다. 일부 예외적으로 강인하며 모순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들에게 펼쳐진 장난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리고 살기 보다는 죽는 것이 나으며,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깨닫고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여 이 어리석은 장난을 재빨리 끝낸다, 수단들이 있으므로: 목에 밧줄을 감거나, 물, 가슴에 칼을 꽂으며, 또는 철길의 기차들로서; 그리고 이렇게 행동하는 우리들 부류의 그러한 사람들의 수는 점점 많이 늘어간다, 그리고 주로 그들은 그들의 인생의 가장 한창 때에 그렇게 행동한다, 그들의 마음의 힘이 가장 왕성하며 마음을 타락시키는 어떤 습관들이 아직 형성되기도 전에.

I saw that this was the worthiest way of escape and I wished to adopt it.

나는 이것이 도피의 가장 가치 있는 방법임을 깨닫고 그것을 채택하고 싶었다.

The fourth way out is that of weakness. It consists in seeing the truth of the situation and yet clinging to life, knowing in advance that nothing can come of it. People of this kind know that death is better than life, but not having the strength to act rationally-to end the deception quickly and kill themselves-they seem to wait for something. This is the escape of weakness, for if I know what is best and it is within my power, why not yield to what is best? ... I found myself in that category.

네 번째로 벗어나는 방법은 나약함이다. 상황의 진리를 깨닫고 그리고 인생에 매달린다, 그로부터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삶보다 낫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행동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거짓을 빨리 끝내고 자살할 힘-그들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나약 함으로서의 도피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고 그것이 나의 능력 안에 있다면, 왜 가장 좋은 것에 굴복하지 않겠는가?... 나는 자신이 그러한 범주에 있음을 알았다.

So people of my class evade the terrible contradiction in four ways. Strain my attention as I would, I saw no way except those four. One way was not to understand that life is senseless, vanity, and an evil, and that it is better not to live. I could not help knowing this, and when I once knew it could not shut my eyes to it. The second way was to use life such as it is without thinking of the future. And I could not do that. I, like Sakya Muni, could not ride out hunting when I knew that old age, suffering, and death exist. My imagination was too vivid. Nor could I rejoice in the momentary accidents that for an instant threw pleasure to my lot. The third way, having under stood that life is evil and stupid, was to end it by killing oneself. I understood that, but somehow still did not kill myself. The fourth way was to live like Solomon and Schopenhauer-knowing that life is a stupid joke played upon us, and still to go on living, washing oneself, dressing, dining, talking, and even writing books. This was to me repulsive and tormenting, but I remained in that position.

그래서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은 네가 지 방법으로 무서운 모순을 회피한다. 내가 아무리 관심을 가져보아도, 그들 네 가지 외의 방법은 보지 못했다. 한가지 방법은 인생이 의미 없으며, 헛되고, 악이란 것과 그리고 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을 깨닫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일단 그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에서 나의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인생을 미래를 생각함이 없는 것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석가모니와 같이 나도, 늙음, 고통, 그리고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 사냥을 하러 타고 나갈 수가 없었다. 나의 상상력은 너무나 생생하다. 잠시 동안 나의 운명에 쾌락을 던져주는 순간적인 우연들에 기뻐할 수도 없었다. 세 번째 방법은, 인생이 악이며 어리석다고 깨닫고서, 자살함으로써 그것을 끝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지만, 어쨌든 자살하지 않았다. 네 번째 방법은 솔로몬과 쇼펜하우어처럼 사는 것이다-인생은 우리에게 펼쳐진 어리석은 장난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살아가며, 자신을 씻고, 입고, 먹으며, 말하며, 그리고 심지어 책도 써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역겨웠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그런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I see now that if I did not kill myself it was due to some dim consciousness of the invalidity of my thoughts. However convincing and indubitable appeared to me the sequence of my thoughts and of those of the wise that have brought us to the admission of the senselessness of life, there remained in me a vague doubt of the justice of my conclusion.

나는 이제 내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나의 생각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약간의 희미한 의식 탓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나의 생각들의 그리고 우리를 인생이 무의미함을 인정하게 만든 현자의 생각들의 연속이 내게 납득이 가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게는 나의 결론의 정당성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남아 있었다.

It was like this: I, my reason, have acknowledged that life is senseless. If there is nothing higher than reason (and there is not: nothing can prove that there is), then reason is the creator of life for me. If reason did not exist there would be for me no life. How can reason deny life when it is the creator of life? Or to put it the other way: were there no life, my reason would not exist; therefore reason is life's son. Life is all. Reason is its fruit yet reason rejects life itself! I felt that there was something wrong here.

그것은 이것과 같았다: 나, 나의 이성은 인생이 무의미함을 인정하였다. 이성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면(그것은 없다: 아무것도 있다고 증명할 수 없다), 이성은 나를 위한 인생의 창조자이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에게서도 인생은 없다. 어떻게 이성이 인생의 창조자이면서 인생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것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자면: 인생이 없다면, 나의 이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인생의 아들이다. 인생은 모든 것이다. 이성은 그 열매이다 그러나 이성은 인생 자체를 거부한다! 나는 여기에 무엇인가 오류가 있다고 느꼈다.

Life is a senseless evil, that is certain, said I to myself. Yet I have lived and am still living, and all mankind lived and lives. How is that? Why does it live, when it is possible not to live? Is it that only I and Schopenhauer are wise enough to understand the senselessness and evil of life?

인생은 의미 없는 악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살아 왔고 아직도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살았고 살아간다. 어떻게 그러한가? 왜 살며, 언제 살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 오직 나와 쇼펜하우어만이 인생의 무의미함과 악을 깨달을 만큼 현명한가?

The reasoning showing the vanity of life is not so difficult, and has long been familiar to the very simplest folk; yet they have lived and still live. How is it they all live and never think of doubting the reasonableness of life?

인생이 헛됨을 보여주는 추론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장 단순한 사람에게도 친숙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간다. 어떻게 그들은 모두 살면서 인생의 이성의 합당함을 의심하기를 결코 생각하지 않는가?

My knowledge, confirmed by the wisdom of the sages, has shown me that everything on earth-organic and inorganic -is all most cleverly arranged-only my own position is stupid. And those fools-the enormous masses of people -know nothing about how everything organic and inorganic in the world is arranged; but they live, and it seems to them that their life is very wisely arranged! ...

현자들의 지혜에 의해 확인된 나의 지식은, 지상의 모든 것은-유기체 및 무기체-거의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으나-오직 나의 위치만 어리석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 어리석은 사람들-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의 유기 및 무기의 모든 것들이 배치되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그들의 인생은 매우 현명하게 안배된 것처럼 보인다!...

And it struck me: "But what if there is something I do not yet know? Ignorance behaves just in that way. Ignorance always says just what I am saying. When it does not know something, it says that what it does not know is stupid. Indeed, it appears that there is a whole humanity that lived and lives as if it understood the meaning of its life, for without understanding it could not live; but I say that all this life is senseless and that I cannot live.

그리고 나의 생각은: ‘그렇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가? 무지는 바로 그런 양상을 띤다. 무지는 언제나 내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무지가 무엇인가를 모른다면, 자신이 모르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참으로, 살았으며 살아가는 전체 인류가 마치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인생은 무의미하며 나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Nothing prevents our denying life by suicide. Well then, kill yourself, and you won't discuss. If life displeases you, kill yourself! You live, and cannot understand the meaning of life- then finish it, and do not fool about in life, saying and writing that you do not understand it. You have come into good company where people are contented and know what they are doing; if you find it dull and repulsive-go away!"

‘아무것도 우리가 자살로서 인생을 부인함을 막지 못한다. 글쎄 그렇다면, 자살하라, 그러면 당신은 논쟁하지 않는다. 인생이 당신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자살하라! 당신은 살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그렇다면 그것을 끝내라, 그리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당신이 깨닫지도 못하는 것을 말하고 기록하면서. 당신은 좋은 회사에 입사하였으며 그곳의 사람들은 만족하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당신이 그것이 지루하고 지겨우면-가버려라!

Indeed, what are we who are convinced of the necessity of suicide yet do not decide to commit it, but the weakest, most inconsistent, and to put it plainly, the stupidest of men, fussing about with our own stupidity as a fool fusses about with a painted hussy? For our wisdom, however indubitable it may be, has not given us the knowledge of the meaning of our life. But all mankind who sustain life -millions of them-do not doubt the meaning of life.

정말로, 자살의 필요성을 깨닫고 아직 실행할 결심을 하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는 가장 나약하며, 가장 모순되며, 그리고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그려 놓은 여자를 바보가 법석 떠는 것처럼 우리들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법석 떠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의 지혜는, 아무리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도,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을 지속하는 모든 인류-그들 중의 수백만-는 인생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는다.

Indeed, from the most distant time of which I know anything, when life began, people have lived knowing the argument about the vanity of life which has shown me its senselessness, and yet they lived attributing some meaning to it.

참으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먼 시간부터, 인생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내게 그 무의미함을 보여준 인생의 헛됨에 대한 주장을 알면서 살아 왔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인생에 약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았다.

From the time when any life began among men they had that meaning of life, and they led that life which has descended to me. All that is in me and around me, all, corporeal and incorporeal, is the fruit of their knowledge of life. Those very instruments of thought with which I consider this life and condemn it were all devised not by me but by them. I myself was born, taught, and brought up thanks to them. They dug out the iron, taught us to cut down the forests, tamed the cows and horses, taught us to sow corn and to live together, organized our life, and taught me to think and speak. And I, their product, fed, supplied with drink, taught by them, thinking with their thoughts and words, have argued that they are an absurdity! "There is something wrong," said I to myself. "I have blundered somewhere." But it was a long time before I could find out where the mistake was.

사람들 사이에 어떤 인생이 시작되던 때부터 그들은 그 인생의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나에게 전해 내려온 그런 인생을 이끌어 갔다. 나의 안에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육체적 및 비육체적 모두는 그들의 인생의 지식의 열매이다. 내가 이런 인생을 숙고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그들 생각의 도구들 자체는 모두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고안되었다. 그들 덕택에 나 자신은 태어나고, 교육 받고, 그리고 양육되었다. 그들은 쇠를 파내었고, 우리들에게 숲을 베어내기를 가르쳤으며, 소와 말을 길들이고, 옥수수를 심기와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쳤으며, 우리의 인생을 조직화하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의 산물인 나는, 먹혀지고, 음료수를 공급 받고, 그들에 의해 교육 받으며, 그들의 사상과 말로서 생각하면서, 그것들이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무엇인가가 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디선가 실수했다.’ 그러나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내가 찾아 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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