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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In Brief


by Leo Tolstoy

Editor's Preface 

서 문 (序 文)

by F.A. Flowers III*

I.

Leo Tolstoy(1828-1910), one of the world’s great novelists, finished writing War and Peace in 1869 and Anna Karenina in 1877. Despite his success, fame, and fortune, Tolstoy was on the verge of suicide by the end of 1879. He had come to believe that his life was empty and had no meaning. This culminated in a spiritual crisis, which marked a dramatic turning point in both his personal and literary lives. Tolstoy soon began a spiritual journey, a journey that would last until his death in 1910.

레오 톨스토이(1828-1910),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소설가 중의 한 사람으로, 1869전쟁과 평화 그리고 1877년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했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 명예 및 부에도 불구하고, 1879년이 저물어갈 무렵에 자살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삶이 공허하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여겼다. 이로써 그는 정신적인 위기에 이르렀으며, 자신의 개인적 및 문학적인 삶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곧 영적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 여행은 1910년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II.

Leo Nikolaevich Tolstoy was born in 1828 on his family’s estate, Yasnaya Polyana, located in the Russian province of Tula. Born to power and privilege, Tolstoy received his early education from tutors and was raised in the Orthodox Christian Faith. The young aristocrat entered the University of Kasan in 1844, leaving in 1847 without receiving a degree. He left his Christian beliefs behind as well.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1828, 러시아의 툴라 지방에 있는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자신이 물려받게 되는 사유지에서 태어났다. 권력과 특권 속에 태어나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초기 교육을 가정 교사들로부터 받았으며 정통 교회의 신앙 아래서 양육되었다. 이 젊은 귀족은 1844년 카잔의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1847년 아무런 학위도 받지 않고 중퇴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기독교적인 신앙마저 버리고 말았다.

Tolstoy joined the Russian army in 1852 and fought bravely in the Crimean War. He left the army at the end of the war in 1856 and made two separate trips to Western Europe between 1857 and 1861. He subsequently took up residence at Yasnaya Polyana, which had then become his personal estate. Tolstoy married Sophie Andreyevna Behrs in 1862 and spend the next fifteen years managing his vast holding, fathering thirteen children, and writing his great masterpieces,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Tolstoy’s diaries, however, reveal an unhappy marriage.

톨스토이는 1852년 러시아 육군에 입대하였으며 크리미아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1856년 전쟁이 끝날 무렵 군대를 떠났다 그리고 1857년과 1861년 각기 두 번에 걸쳐서 서 유럽을 여행하였다. 그는 그후에 야스나야 폴리야나에 자리를 잡았으며, 당시에 그곳은 자신의 소유지가 되었다. 1862년 톨스토이는 소피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하였으며 그 후 15년 동안 자신의 방대한 소유지를 관리하며, 자신의 13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자신의 대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느라 보냈다. 톨스토이는, 그러나, 자신의 일기에 불행한 결혼이었다고 기록하였다.

By 1879, Tolstoy, at age fifty-one, was so depressed he would not go hunting because he feared he would turn his gun on himself. Like many others of his time, he believed that more knowledge would inevitably lead to the answer to his suffering. Accordingly, Tolstoy began reading in earnest both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works. He also corresponded with many illustrious men of his day. Neither science, philosophy, nor others, however, provided any answers.

1879년 경에, 톨스토이는, 51살의 나이에, 너무나 우울하여서 그는 사냥을 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총을 자기 자신에게 겨눌 것 같아서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대의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지식을 많이 갖게 되면 자신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필시 얻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작품들을 맹렬히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시대의 많은 저명한 인사들과 서신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과학도, 철학도 아니 다른 것들도 그러나 어떤 대답들을 주지 못했다.

Unable to find comfort in either knowledge or the examples of those wealthy men around him, Tolstoy undertook an in-depth study of Buddhism, Islam, and Christianity. He ultimately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solution to “the problem of life” could be found in the words and teaching of Jesus-but only if those words stripped of the official Church’s distortions and dogma. Tolstoy’s crisis and gradual renewal are described by William James in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부유한 사람들의 지식이나 예들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자, 톨스토이는, 불교, 이슬람교, 및 기독교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결국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예수의 말씀들에서-그러나 오직 이 말씀들에서 공식적인 교회들의 왜곡들과 교리들을 제거할 경우에만-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톨스토이의 위기와 점진적인 회복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묘사되고 있다.

Tolstoy, now a Christian, felt extremely ill at ease with the artificial and privileged life he had been leading. His desire for material things and his own personal ambition now caused him great moral distress. As a result, Tolstoy, in an effort to live life as revealed through the words of Jesus, condemned violence, gave up tobacco, alcohol, and other and worked long hours in the fields with the peasants. By 1890, Tolstoy, unwilling to own property any longer, divided his large estate into equal shares to be distributed to his wife and nine living children.

톨스토이는, 이제 기독교인으로써, 자신이 영위하였던 인위적이며 특권을 지닌 삶에 대해 극도로 불편하게 느꼈다. 자신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개인적 야망은 이제 그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뇌를 느끼게 하였다. 결국, 톨스토이는,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계시된 대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에서, 폭력을 정죄하였고, 담배, 술 등을 끊었으며 농부들과 함께 들판에서 오랜 시간을 노동하였다. 1890년에, 톨스토이는, 자신의 재산을 더 이상 소유하고 싶지 않아서, 그의 방대한 소유지를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 자신의 아내와 생존해 있는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III.

From 1879 until his death in 1910, Tolstoy devoted his prodigious literary talents primarily to the production of a large number of works on religious, moral, and social themes. They include My Confession(1879), What I Believe(1884), My Religion(1884),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1894), and What Is Religion And Of What Does It Consist?(1902). Tolstoy also wrote The Gospel In Brief during this time of spiritual journey. Tolstoy’s religious works attracted many followers, as well as fierce opposition. Some of those most vigorously opposed included members of his own family. The Russian Orthodox Church excommunicated Tolstoy in 1901 because of his challenge to both the Church and the State.

1879년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톨스토이는 자신의 천재적인 문학적 재능들을 오로지 종교적, 도덕적 및 사회적 주제들에 관한 방대한 양의 작품들의 저술에 쏟았다. 그것들은 나의 고백(1879), 나는 무엇을 믿는가(1884), 나의 종교(1884), 하나님의 왕국은 너의 안에 있다(1894) 그리고 무엇이 종교이며 그것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1902) 등을 포함한다. 톨스토이는 또한 영적인 여정의 기간 동안에 복음 요약도 집필하였다. 톨스토이의 종교적 작품들은 많은 추종자들 뿐만 아니라 맹렬한 적대자들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 중에서 가장 줄기찬 반대자들은 자기 자신의 가족의 구성원들이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1901년 톨스토이를 파문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도전 때문이었다.

Tolstoy believed that the existence of God could neither be proved nor disproved and that the meaning of life lay beyond the limits of our minds. Tolstoy also believed that Church officials and official Church Doctrine interfered with one’s ability to live a relatively peaceful life on a daily basis without significant pain and suffering. According to Tolstoy, the official Church held itself out as an institution for making life better when, in truth, it was an institution allowing men to lead false lives. The Christian Church of late-nineteenth-century Russia, Tolstoy maintained, represented the same darkness and evil against which Jesus had struggled. The official Church allowed believers to rationalize virtually any kind of inhumane treatment and yet still be assured of some sort of afterlife. But Jesus, Tolstoy wrote, did not teach this.

톨스토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고 믿었으며, 삶의 의미는 우리들 마음의 한계 너머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톨스토이는 또한 성직자들과 공식적인 교회의 교리들이 심각한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 나날이 비교적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저해한다고 믿었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공식 교회는 삶을 더 개선토록 만드는 제도로서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거짓된 삶을 영위하도록 인도하는 제도였다고 한다. 19세기 말의 러시아의 기독교 교회는,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바, 예수가 싸워 왔던 것과 똑같은 암흑 및 악을 대변하고 있다고 하였다. 공식 교회는 믿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종류를 불문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들을 합리화하도록 허락하며 그러면서도 아직 어떤 종류의 사후의 삶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톨스토이는 기록한다.

Tolstoy observed further that the fundamental tenets of the Church created a society in which one could not determine whether a person was attempting to lead a Christian life simply by examining his or her actions. The Church elevated belief and faith to some other sphere, separate and independent from life itself. The Church, Tolstoy wrote, either ignored Jesus’s teachings altogether or distorted them on the few occasions it did choose to consider them. This ambiguous moral framework resulted from the Church’s theological focus on questions such as Jesus’s divinity and the holiness of the Bible. Tolstoy, on the other hand, believed that the words and teachings of Jesus, when stripped of the official Church’s distortions, dogma, and ritual, would not cause privation and suffering, but, instead, would actually put an end to almost all of the suffering humankind experiences on a daily basis.

톨스토이는 나아가서 교회의 기본 강령은 어떤 사람이 단순히 자신의 행위들을 검토하면서 기독교적인 삶을 영위하려 하고 있는지도 분별될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교회는 삶 그 자체와 별개이며 독립된, 어떤 다른 범주의 믿음과 신앙으로 끌어 올렸다. 톨스토이는 기록한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그것들을 왜곡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그것들을 전혀 고려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애매한 도덕적인 틀은 예수의 신성과 성경의 신성함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인 초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한편으로, 예수의 말씀들과 가르침들이, 공식 교회의 왜곡들, 교리, 및 의례들이 제거된다면, 궁핍과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인류가 나날이 경험하고 있는 거의 모든 고통들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믿었다.

Despite his strong beliefs and vigorous efforts, however, Tolstoy, at age eighty-two, was unhappy and felt that he had failed to live his life as a true Christian should. Leaving home secretly one night in 1910, Tolstoy mysteriously disappeared. He died a few days later of natural causes in a small railway station in Astapovo on November 22, 1910. Thousands of people throughout the world mourned his death. Denied a religious funeral by the Church, Tolstoy was laid to rest on his estate at Yasnaya Polyana.

자신의 강한 신념들과 왕성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톨스토이는, 82살의 나이에, 불행하였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 감에 실패하였다고 느꼈다. 1910년 어느 날 밤에 몰래 집을 떠나면서, 톨스토이는 괴이하게 사라졌다. 그는 며칠 지나서 1910 11 22일 아스타포보의 어느 작은 기차 역에서 자연적인 원인으로써 사망했다. 전 세계의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교회에서 종교적인 장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리야나의 자신의 소유지에 안장되었다.

IV.

Tolstoy’s The Gospel In Brief is a work that Tolstoy extracted from a larger work. Both were banned by the Russian time. Tolstoy’s The Gospel In Brief was the first published in Switzerland. The translation reproduced in this edition is taken from a book entitled My Confession, My Religion, The Gospel in Brief, published by Charles Scribner’s Sons in 1922.

톨스토이의 복음요약은 톨스토이가 자신의 방대한 작업에서 발췌한 것이다. 당시에 둘 다 출판이 금지되었다. 톨스토이의 복음요약은 먼저 스위스에서 발행되었다. 이번 출판에서 재간행 되는 번역본은 나의 고백, 나의 종교, 복음요약 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1922년 찰스 스크리브너의 아들들이 간행했던 것이다.

In The Gospel In Brief, Tolstoy uses “the four Gospels into one,” seeking “a solution to the problem of life and not of a theological or historical question.” That is why Tolstoy “was indifferent to know whether Jesus Christ is or is not God, and from whom proceeds the Holy Spirit.” In The Gospel In Brief, Tolstoy sets aside the questions upon which the Church had for so long focused, such as those relating to Jesus’s genealogy, the divinity of Christ, miracles attributed to him, and the sacredness of the Bible. Tolstoy does not broach these issues because they do not constitute a part of Jesus’s teachings. By setting such matters aside, Tolstoy is able to focus exclusively on the teachings of Jesus. The words and teachings of Jesus contained in The Gospel In Brief are based Tolstoy’s concentrated study and interpretation of the original Greek versions of the four Gospels, as opposed to later translations. Tolstoy’s fusing of “the four Gospels into one” constitutes an effort to help humankind determine how to live in a chaotic and indifferent world.

복음요약에서 톨스토이는 신학적 또는 역사적이 아니라, 삶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4 복음서를 하나로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로부터 성령이 나오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는지의 이유이다. 복음요약에서, 톨스토이는 교회가 그토록 오랫동안 초점을 두어오던 문제들-예수의 족보, 그리스도의 신성, 그가 행하였다는 기적들, 및 성서의 신성함에 대한 문제들-은 던져버렸다. 톨스토이는 이런 사안들을 끄집어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의 일부분을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들을 젖혀둠으로써, 톨스토이는 예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복음요약에 담겨있는 예수의 말씀들과 가르침들은 톨스토이의 집적된 연구와 4 복음서의 그리스어 원문들의 해석에 입각한 것이며, 최근의 번역본들에 대치된다. 톨스토이가 “4 복음서를 하나로 통합한 것은 인류가 혼란스럽고 냉혹한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을 구성하는 것이다.

V.

Tolstoy’s The Gospel In Brief had a profound impact on many of its readers, including one particular renowned reader of Tolstoy, Ludwig Wittgenstein (1889-1951),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nd yet elusive personalities in the history of modern philosophy. During the early months of the World War I, Wittgenstein’s regiment participated in the absurdly incompetent Galician campaign, in which there were more than 600,000 casualites. The great suffering Wittgenstein witnessed made him feel completely alone and abandoned. Soon after arriving in Galicia, he found himself in a small bookshop in Tarnow, which contained just one book: Tolstoy on the Gospels. He bought The Gospel In Brief, merely because there was no other, and started reading it on September 1, 1914. Wittgenstein began receiving benefits from the book almost immediately. He “read and re-read it, and thenceforth had it always with him, under fire and at all times.”

톨스토이의 복음요약은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 중에는 톨스토이를 읽는 특별히 유명한 한 명의 독자가 있었으니, 그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으로서, 현대 철학 역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며, 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1차 세계대전의 몇 달 동안, 비트겐슈타인의 연대는 어처구니 없이 형편없는 갈리시아 전투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6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이 겪은 엄청난 고통은 그를 완전히 홀로 방황하게 만들었다. 갈리시아에 도착하자 마자, 그는 타르노브에 있는 조그만 서점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오직 한 권의 책--톨스토이의 복음서--만이 있었다. 그는 복음요약을 샀다, 그 이유는 그저 다른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1914 9 1일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거의 즉각적으로 그 책으로부터 도움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부터 줄곧 포화 세례를 받는 중에도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다.”

Tolstoy’s The Gospel In Brief did indeed captivated Wittgenstein. He wrote in his diary that “I say Tolstoy’s words over and over again in my head,” and he was able to recite whole passages by heart. Wittgenstein also recommended Tolstoy’s book anyone in distress, explaining to one such friend in 1915 that “this book virtually kept me alive... you cannot imagine what an effect it can have upon a person.” Wittgenstein’s comrades referred to him as “the man with the gospels.”

톨스토이의 복음요약은 진정 비트겐슈타인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와 같이 썼다, “나는 톨스토이의 말들을 나의 머리 속에서 되풀이 해서 말해 보았다,” 그리고 그는 전체 구절들을 외워서 인용할 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톨스토이의 책을 역경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권유하였다, 그리고 1915년 그러한 처지의 한 친구에게, “이 책이 사실상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너는 이것이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동료들은 그를 복음서를 지닌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Tolstoy’s teachings, as Wittgenstein quickly learned, required man to renounce the flesh and the gratification of his own desires and will. Man must also make himself independent of outward circumstances in order to serve the spirit, which is in all men and which makes all sons of God. Wittgenstein tried to live the Tolstoyan ideal of a simple life until his death in 1951. One of his first steps after returning from the war was to give away the immense fortune he inherited upon his father’s death in 1912. Thereafter, a great simplicity, at times even an extreme frugality, became characteristic of Wittgenstein’s life.

톨스토이의 가르침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즉시 배웠듯이, 사람에게 육신과 자기 자신의 욕망들 및 의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있으며 모두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는, 영을 섬기기 위하여 외면적인 상황들에서 반드시 자신을 독립하여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1951년 죽을 때까지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톨스토이적인 이상으로 살려고 했다. 전쟁에서 돌아오고 나서 그의 첫번째 행보는 1912년 자신의 부친의 사망으로 물려받은 거대한 재산을 거저 주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지극한 단순함, 때로는 심지어 극도의 검소함이 비트겐슈타인의 삶의 특징이 되었다.

Both Wittgenstein and Tolstoy understood that the question of the meaning of life was not an academic question and that words were inadequate to explain the meaning of life. Tolstoy also understood that the meaning or “sense” of life could not be found in any individual passage of the Gospels. But Tolstoy did believe that a sense of life becomes clear through an inner understanding derived from the simplicity, clarity, and harmony contained in Jesus’s teachings as whole. The Gospel In Brief contributes to this process of understanding by emphasizing that one’s well-being may well depend upon not what has happened in the world around him, but, rather, upon one’s spiritual condition. Or, as Jesus said, the Kingdom of God “has neither time nor place, because the Kingdom of God, the one which I preach, is within you.”

비트겐슈타인과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가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며 삶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말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톨스토이는 또한 삶의 뜻 또는 의미는 복음서의 어떤 동떨어진 구절에서 발견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는 전체로서의 예수의 가르침에 담겨있는 단순함, 명료함, 그리고 조화에서 나오는 내적인 깨달음을 통하여 분명해진다는 것을 믿었다. 복음요약은 사람의 행복은 자신의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보다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에 기여한다. 아니, 예수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왕국은 시간도 장소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설교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

1997. 

   

 ] 위로 ] 머리말 ] 서언 : 삶의 깨달음 ] I. 하나님의 아들 ] II. 하나님을 섬김 ] III. 삶의 근원 ] IV. 하나님의 나라 ] V. 진리의 삶 ] VI. 거짓된 삶 ] VII. 아버지와 한 몸 ] VIII. 삶은 영원하다. ] IX. 시험 ] X. 시험과의 싸움 ] XI. 고별 강연 ] XII. 영의 승리 ] 각 장의 요약 ] 요약복음 (전체) ] Notes ] [ Flowers 의 서문 ] Maude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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