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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by Leo Tolstoy

   
   
CHAPTER VI.  6  

ATTITUDE OF MEN OF THE PRESENT DAY TO WAR.

전쟁에 대한 오늘날 사람들의 자세

People do not Try to Remove the Contradiction between Life and Con­science by a Change of Life, but their Cultivated Leaders Exert Every Effort to Obscure the Demands of Conscience, and Justify their Life; in this Way they Degrade Society below Paganism to a State of Prime­val Barbarism-Undefined Attitude of Modern Leaders of Thought to War, to Universal Militarism, and to Compulsory Service in Army- One Section Regards War as an Accidental Political Phenomenon, to be Avoided by External Measures only-Peace Congress-The Article in the Revue des Revues-Proposition of Maxime du Camp- Value of Boards of Arbitration and Suppression of Armies-Attitude of Governments to Men of this Opinion and What they Do-Another Section Regards War as Cruel, but Inevitable-Maupassant-Rod-A Third Section Regard War as Necessary, and not without its Advantages -Doucet-Claretie-Zola-Vogue.

사람들은 삶을 변화를 통해서 삶과 양심 사이의 모순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교양있는 지도자들은 양심의 요구를 흐리게 하고, 그리고 그들의 삶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런식으로 그들은 사회를 저급한 이교주의에서 원시적인 야만주의로 타락시킨다-전쟁, 전세계적인 군국주의 그리고 강압적인 군대 복무에 대한 현대 지도자들의 사상의 정의되지 않는 태도-한 분파는 전쟁을 우연한 정치적인 현상으로서 외적인 방법으로서만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평화회의-리뷰 리뷰의 논고들-맥심 드캄프의 주장-중재 위원회의 가지와 군대의 감축-이 의견에 대한 정부들의 태도와 그들 행한 것-다른 한 분파는 전쟁은 잔인하지만 피할 수 없다고 여긴다-로드-세번째 분파는 전쟁이 필요하며, 이익이 없지 않다고 여긴다-두스-클라레티-졸라-보그

the antagonism between life and the conscience may be removed in two ways: by a change of life or by a change of conscience. And there would seem there can be no doubt as to these alternatives.

삶과 양심의 반목은 두가지 방법으로 제거될 것이다: 삶의 변화에 의해서 또는 양심의 변화에 의해서. 그리고 이들 대안들에 관해서 아무런 의심이 없으리라 보인다.

A man may cease to do what he regards as wrong, but he cannot cease to consider wrong what is wrong. Just in the same way all humanity may cease to do what it regards as wrong, but far from being able to change, it cannot even retard for a time the continual growth of a clearer recogni­tion of what is wrong and therefore ought not to be. And therefore it would seem inevitable for Christian men to abandon the pagan forms of society which they condemn, and to reconstruct their social existence on the Christian principles they profess.

사람은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을 중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정말 똑같은 방법으로 모든 인류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할 수 있기는 커녕, 잘못되었으며 그러므로 잘못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의 지속적인 성장을 심지어 잠시라도 늦출수가 없다. 그리고 그러므로 기독교의 사람들이 그들이 비난하는 이교도적 형태의 사회를 포기하고 그들이 고백하는 기독교적 윈리들 위에 그들의 사회적 존재를 재건설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So it would be were it not for the law of inertia, as immu­table a force in men and nations as in inanimate bodies. In men it takes the form of the psychological principle, so truly expressed in the words of the Gospel, "They have loved darkness better than light because their deeds were evil." This principle shows itself in men not trying to recognize the truth, but to persuade themselves that the life they are leading, which is what they like and are used to, is a life perfectly consistent with truth.

그래서, 무력한 법률이 아니라면, 그러한 인식은 무생물처럼 사람들과 민족들에서 불변하는 힘일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그것은 심리적인 원리의 형태를 취하며, 복음서의 말씀들에서 너무나 진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의 행위들이 악하므로 그들은 빛보다는 어두움을 사랑하였다.” 이 원리 자체는 사람들이 진리를 인식하려 시도함이 아니라, 그들이 영위하고 있는 삶은, 그것은 그들이 좋아 하며 적응해온 것으로, 완벽하게 진리와 일치하는 삶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Slavery was opposed to all the moral principles advocated by Plato and Aristotle, yet neither of them saw that, because to renounce slavery would have meant the break up of the life they were living. We see the same thing in our modern world.

노예 제도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옹호하는 모든 도덕적인 원리들과 대치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의 아무도 그러한 점을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예 제도를 포기함은 그들이 영위하는 삶을 파괴함으로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현대 세계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있다.

The division of men into two castes, as well as the use of force in government and war, are opposed to every moral principle professed by our modern society. Yet the culti­vated and advanced men of the day seem not to see it.

정부와 전쟁에서 폭력의 사용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두가지 계급으로 나누는 것은 우리의 현대 사회가 고백하는 모든 도덕적 원리들에 대치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양있고 진보한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The majority, if not all, of the cultivated men of our day try unconsciously to maintain the old social conception of life, which justifies their position, and to hide from them­selves and others its insufficiency, and above all the necessity of adopting the Christian conception of life, which will mean the break up of the whole existing social order. They struggle to keep up the organization based o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but do not believe in it themselves, because it is extinct and it is impossible to believe in it.

전부는 아닐지라도, 우리시대의 대부분의 교양있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옛날의 사회적 개념의 삶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것이 불충분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적인 개념의 삶을 채택할 필요성을 숨기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존의 전체 사회 질서를 부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적 개념의 삶에 기초한 기구들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멸종하였으므로 그것을 믿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ll modern literature-philosophical, political, and artis­tic-is striking in this respect. What wealth of idea, of form, of color, what erudition, what art, but what a lack of serious matter, what dread of any exactitude of thought or expression! Subtleties, allegories, humorous fancies, the widest generalizations, but nothing simple and clear, noth­ing going straight to the point, that is, to the problem of life.

모든 현대 문학-철학, 정치, 그리고 예술적인-은 이점에서 두드러진다. 사상, 형식, 색깔이 얼마나 풍부한가, 얼마나 박식하며, 얼마나 예술적인가, 그러나 얼마나 진실함이 결여되었는가, 사상 또는 표현의 정확성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가! 교묘함들, 비유들, 해학적인 상상들, 가장 넓은 보편성을 가지지만, 단순하고 명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삶을, , 삶의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But that is not all; besides these graceful frivolities, our literature is full of simple nastiness and brutality, of argu­ments which would lead men back in the most refined way to primeval barbarism, to the principles not only of the pagan, but even of the animal life, which we have left be­hind us five thousand years ago.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러한 우아한 하찮은 것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학은 단순한 음담패설과 잔인함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러함의 논리들은 결국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다시 원시적인 야만주의로, 이교적인 원리로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물적인 삶의 원리로 이끌고 갈 것이며, 그러한 삶은 우리가 이미 오천년 전에 우리 뒤에 남기고 온 것이었다.

And it could not be otherwise. In their dread of the Christian conception of life which will destroy the social order, which some cling to only from habit, others also from interest, men cannot but be thrown back upon the pagan conception of life and the principles based on it. Nowa­days we see advocated not only patriotism and aristocratic principles just as they were advocated two thousand years ago, but even the coarsest Epicureanism and animalism, only with this difference, that the men who then professed those views believed in them, while nowadays even the advocates of such views do not believe in them, for they have no mean­ing for the present day. No one can stand still when the earth is shaking under his feet. If we do not go forward we must go back. And strange and terrible to say, the cultivated men of our day, the leaders of thought, are in reality with their subtle reasoning drawing society back, not to paganism even, but to a state of primitive barbarism.

그리고 그것은 달리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사회적 질서를 파괴할 기독교적인 개념의 삶을 무서워하여, 어떤 이들은 그것을 오직 습관으로서, 어떤이 들은 또한 흥미로서 붙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다시금 이교적 개념의 삶과 그것을 기초로한 원리들로 되돌아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애국주의와 귀족주의 원리들이 이천년 전에 옹호되었던 것처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장 저속한 쾌락주의 와 동물주의가 옹호되는 것을 보고 있으나, 오직 이런 차이일 뿐이다, , 그당시 그러한 시각들을 고백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믿었으나, 반면에 오늘날은 그러한 시각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도 그것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 시대에는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발 밑에서 땅이 흔들릴 때 아무도 조용히 서있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앞으로 가지 않는다면 뒤로 가야한다. 그리고 말하기가 이상하기도 하며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의 교양있는 사람들, 사상의 지도자들은, 사실상 그들의 교묘한 추론으로서 사회를 후퇴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이교주의로 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야만주의 상태로 말이다.

This tendency on the part of the leading thinkers of the day is nowhere more apparent than in their attitude to the phenomenon in which all the insufficiency of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is presented in the most concentrated form- in their attitude, that is, to war, to the general arming of nations, and to universal compulsory service.

오늘날의 지도적인 사상가들 측에서의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개념의 삶의 모든 불충분함이 가장 집약된 형태로서 제시되는 현상에 대한 태도에서 더욱 현저하다-, 전쟁에 대한, 국가들의 보편적인 무장, 그리고 세계적인 강압적 병역의무 등에 대한 태도에서 그러하다.

The undefined, if not disingenuous, attitude of modern thinkers to this phenomenon is striking. It takes three forms in cultivated society. One section look at it as an incidental phenomenon, arising out of the special political situation of Europe, and consider that this state of things can be reformed without a revolution in the whole internal social order of nations, by external measures of international diplomacy. Another section regard it as something cruel and hideous, but at the same time fated and inevitable, like disease and death. A third party with cool indifference consider war as an inevitable phenomenon, beneficial in its effects and therefore desirable.

만일 부정직하지 않다고 하더라고, 이런 현상들에 대한 현대 사상가들의 정의되지 않은 태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교양있는 사회에서 그것은 세가지 형태를 취한다. 한 계층은 그것을 유럽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의 상태는 국가들의 내적인 사회질서에서의 혁명이 없이, 국제 외교의 외적인 방법들오서 개혁될 수 있다고 여긴다. 다른 한 계층은 그것을 잔인하고 무서운 것으로 여기며, 동시에, 질병이나 죽음 같이, 운명이며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여긴다. 차가운 냉정함을 지닌 세번째 계층은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며, 그의 효과로서 이로움이 있으며, 그러므로,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Men look at the subject from different points of view, but all alike talk of war as though it were something absolutely independent of the will of those who take part in it. And consequently they do not even admit the natural question which presents itself to every simple man: "How about me-ought I to take any part in it?" In their view no question of this kind even exists, and every man, however he may regard war from a personal standpoint, must slavishly submit to the requirements of the authorities on the subject.

사람들은 다른 관점 들에서 그 주제를 바라본다, 그러나 모두 다 마찬가지로 전쟁은 마치 참가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절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제각기 단순한 사람에게 떠오르는 당연한 의문마저도 시인하지 않으려 든다: “나는 어떤가-나도 그것에 참여해야 되지 않는가?” 그들의 시각에는 이런 종류의 의문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자는, 그가 아무리 개인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볼지라도, 그 주제에 관한한 당국의 요구들에 노예처럼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The attitude of the first section of thinkers, those who see a way out of war in international diplomatic measures, is well expressed in the report of the last Peace Congress in Lon­don, and the articles and letters upon war that appeared in No. 8 of the Revue des Revues, 1891. The congress after gathering together from various quarters the verbal and written opinion of learned men opened the proceedings by a religious service, and after listening to addresses for five whole days, concluded them by a public dinner and speeches. They adopted the following resolutions:

첫번째 계층의 사상가들의 태도는, 국제 외교 대책을 통하여 전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로서, 최근의 런던 평화회의의 보고서에서, 그리고 1891년 리뷰리뷰 지의 8번에 나타난 전쟁에 관한 논문들과 서한들에 잘 표현되어있다. 박식한 사람들고 구성된 다양한 진영으로부터의 구두 및 서면 의견을 취합한 회의는 종교 예배를 통해서 절차를 열었다, 그리고 꼬박 5일 동안 연설들을 듣고나서, 공식 만찬과 연설들로서 그것들을 결론내렸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1. The congress affirms its belief that the brotherhood of man involves as a necessary consequence a brotherhood of nations.

“1. 회의는 사람들의 우애는 필연적인 결과로서 국가간의 우애를 포함한다.

"2. The congress recognizes the important influence that Christianity exercises on the moral and political progress of mankind, and earnestly urges upon ministers of the Gospel and other religious teachers the duty of setting forth the principles of peace and good will toward men. And it recommends that the third Sunday in December be set apart for that purpose.

“2. 회의는 기독교가 인류의 도덕 및 정치적 진보에 행사하는 중요한 영향을 인정한다, 그리고 복음을 다루는 성직자들과 다른 종교 교사들에게 사람들을 위한 평화와 호의의 원리들을 체출할 의무를 진정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회의는 12월 세번째 일요일을 그러한 목적으로 정해둔다.

"3. The congress expresses the opinion that all teachers of history should call the attention of the young to the grave evils inflicted on mankind in all ages by war, and to the fact that such war has been waged for most inadequate causes.

“3. 회의는 모든 역사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전쟁에 의해서 모든 세대에서 인류에게 가해진 중대한 악행들과, 그러한 전쟁은 가장 적절하지 않은 이유들로서 행해졌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표현한다.

"4. The congress protests against the use of military drill in schools by way of physical exercise, and suggests the formation of brigades for saving life rather than of a quasi-military character; and urges the desirability of impressing on the Board of Examiners who formulate the questions for examination the propriety of guiding the minds of children in the principles of peace.

“4. 회의는 학교에서 육체적 단련을 통한 군사훈련을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며, 군사적인 것에 가까운 성격보다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단체 구성을 제안하고, 시험 문제를 제출하는 시험 위원회에 평화의 원리들에 따른 아동들의 마음들을 안내하는 정당성을 부여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요구한다.

"5. The congress holds that the doctrine of the Rights of Man requires that the aboriginal and weaker races, their territories and liberties, shall be guarded from injustice and fraud, and that these races shall be shielded against the vices so prevalent among the so-called advanced races of men. It further expresses its conviction that there should be concert of action among the nations for the accomplish­ment of these ends. The congress expresses its hearty appreciation of the resolutions of the Anti-slavery Confer­ence held recently at Brussels for the amelioration of the condition of the peoples of Africa.

“5. 회의는 사람의 권리에 대한 교리는 원주민과 약한 인류들, 그들의 영토들, 및 자유들이 불의와 기만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이들 인류들은 소위 진도된 인류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악의들에 맞서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의는 더 나아가서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국가간의 단합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표현한다. 회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최근에 브뤼셀에 열렸던 노예 반대 회의의 결정에 대해 진정한 고마움을 느낀다.

"6. The congress believes that the warlike prejudices and traditions which are still fostered in the various nation­alities, and the misrepresentations by leaders of public opinion in legislative assemblies or through the press, are often indirect causes of war, and that these evils should be counteracted by the publication of accurate information tending to the removal of misunderstanding between nations, and recommends the importance of considering the question of commencing an international newspaper with such a purpose.

“6. 회의는 여러 국가들에서 아직도 조장되고 있는 호전적인 편견들과 관습들, 그리고 입법기구나 언론의 여론 지도자들에 의한 오해들이 흔히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들이 되며, 이러한 해악들은 국가들 간의 오해를 제거함에 도움이되는 정확한 정보의 공개를 통해서 대응되어야 함을 믿으며,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한 국제적인 신문을 발행함에 관한 문제를 고려하는 중요성을 권고한다.

"7. The congress proposes to the Inter-parliamentary Conference that the utmost support should be given to every project for unification of weights and measures, coinage, tariff, postage, and telegraphic arrangements, etc., which would assist in constituting a commercial, industrial, and scientific union of the peoples.

“7. 회의는 국제 의원 회의에 도량형, 화페, 관세, 우편 및 전신 협약, 등의 통일에 관한 모든 계획들에 최대의 지원을 하여야 하며, 그로해서 사람들 사이의 상업적, 산업적 및 과학적인 결합을 도울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

“8. The congress, in view of the vast social and moral influence of woman, urges upon every woman to sustain the things that make for peace, as otherwise she incurs grave responsibility for the continuance of the systems of mili­tarism.

“8. 회의는, 여성들의 광범위한 사회적 및 도덕적 영향력을 고려하건대, 제각기 여성들이 평화를 구축하는 것들을 지원할 것을 촉구하며, 그렇지 않다면 군사주의 체제들의 지속에 지대한 책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9. The congress expresses the hope that the Financial Reform Association and other similar societies in Europe and America should unite in considering means for estab­lishing equitable commercial relations between states, by the reduction of import duties. The congress feels that it can affirm that the whole of Europe desires peace, and awaits with impatience the suppression of armaments, which, under the plea of defense, become in their turn a danger by keeping alive mutual distrust, and are, at the same time, the cause of that general economic disturbance which stands in the way of settling in a satisfactory manner the problems of labor and poverty, which ought to take prece­dence of all others.

“9. 회의는 재정 개혁 협회 및 기타 유럽과 아메리카의 단체들이, 수입세를 감면하므로서 국가들 간의 공정한 상업적 관계들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려함에 있어서 반드시 연합하여야된다는 희망을 표현한다. 회의는 전체 유럽은 평화를 바라며, 군사력 감축을 시급하게 기다리며, 군사력은 방어라는 구실하에, 상호 불신을 존속하게 하므로서 위험이 되며, 동시에 노동과 빈곤의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는 전반적인 경제적 불안의 원인이 되며, 노동과 빈곤의 문제들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해야 됨을 주장할 수 있음을 느낀다.

"10. The congress, recognizing that a general disarma­ment would be the best guarantee of peace and would lead to the solution of the questions which now most divide states, expresses the wish that a congress of representatives of all the states of Europe may be assembled as soon as possible to consider the means of effecting a gradual general disarmament.

“10. 회의는, 전반적 군비 축소가 평화에 대한 가장 좋은 보장이며, 현재 대체적으로 국가들을 분열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 모든 유럽 국가들의 대표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점진적이며 전반적인 군비축소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가능한 빨리 소집되어야 함을 표현한다.

"11. The congress, in consideration of the fact that the timidity of a single power might delay the convocation of the above-mentioned congress, is of opinion that the govern­ment which should first dismiss any considerable number of soldiers would confer a signal benefit on Europe and man­kind, because it would, by public opinion, oblige other governments to follow its example, and by the moral force of this accomplished fact would have increased rather than diminished the conditions of its national defense.

“11. 회의는, 단 한 국가라도 소극적이되면 상기에 언급한 회의의 소집이 지연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먼저 상당한 숫자의 병력을 해제하는 정부는 유럽과 인류들에게 상징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며, 그것은, 공공의 여론에 의해서, 다른 정부들을 그 예를 따르게 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사실의 도덕적인 힘에 의해서 그 정부의 국가적인 방어 상태를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12. The congress, considering the question of disarma­ment, as of peace in general, depends on public opinion, recommends the peace societies, as well as all friends of peace, to be active in its propaganda, especially at the time of parliamentary elections, in order that the electors should give their votes to candidates who are pledged to support Peace, Disarmament, and Arbitration.

“12. 회의는, 군비 축소의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평화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공공의 여론에 의존하며, 평화 단체들, 뿐만 아니라 모든 평화의 친구들이 그 선전에 있어서, 특히 의원 선거에서, 적극적일 것을 권고한다, 그리하여 유권자들은 평화, 군비축소, 및 중재를 공약하는 후보자들에게 투표할 것을 권고한다.

"13. The congress congratulates the friends of peace on the resolution adopted by the International American Con­ference, held at Washington in April last, by which it was recommended that arbitration should be obligatory in all controversies, whatever their origin, except only those which may imperil the independence of one of the nations involved.

“13. 회의는, 지난 4월 워싱톤에서 열린 국제 아메리카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에 대해, 그리고 그 결의 안에서 모든 분쟁들에 있어서 그들의 국적이 무엇이든 중재는 의무적이며, 다만 관련된 국가들 중의 하나의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들을 제외하기로한 것에 대해 평화의 친구들을 축하하는 바이다.

"14. The congress recommends this resolution to the attention of European statesmen, and expresses the ardent desire that similar treaties may speedily be entered into be­tween the other nations of the world.

“14. 회의는 이 결의안을 유럽의 정치가들이 주목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유사한 협정들이 조속히 세계의 다른 국가들 사이에 체결되기를 강렬한 희망으로 표현한다.

"15. The congress expresses its satisfaction at the adop­tion by the Spanish Senate on June 16 last of a project of law authorizing the government to negotiate general or special treaties of arbitration for the settlement of all dis­putes except those relating to the independence or internal government of the states affected; also at the adoption of resolutions to a like effect by the Norwegian Storthing and by the Italian Chamber.

“15. 회의는, 영향을 받는 국가들의 독립이나 자치 정부들에 관련된 경우들을 제외한 모든 분쟁들의 해결에 대한 중재에 관한 일반 또는 특별 협약들을 정부가 협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입법 계획을, 지난 6 16일 스페인 상원에서 채택한데 대해 만족을 표현한다; 그리고 노르웨이 국회와 이탈리아 의회의 유사한 결과에 대한 결의안들의 채택 또한 만족한다.

"16. The congress resolves that a committee be appointed to address communications to the principal political, religious, commercial, and labor and peace organizations, requesting them to send petitions to the governmental authorities praying that measures be taken for the formation of suitable tribunals for the adjudicature of international questions so as to avoid the resort to war.

“16. 회의는, 중요한 정치적, 종교적, 상업적, 그리고 노동과 평화에 대한 대화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위촉하고, 그리하여 전쟁에 의거하는 것을 피하도록 국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심판을 위한 적절한 재판소들의 형성을 위한 대책들이 취해지도록 기원하면서, 그들이 정부 당국들에 탄원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의결한다.

"17. Seeing (1) that the object pursued by all peace societies is the establishment of judicial order between nations, and (2) that neutralization by international treaties constitutes a step toward this judicial state and lessens the number of districts in which war can be carried on, the congress recommends a larger extension of the rule of neutralization, and expresses the wish, (1) that all treaties which at present assure to certain states the benefit of neutrality remain in force, or if necessary be amended in a manner to render the neutrality more effective, either by extending neutralization to the whole of the state or by ordering the demolition of fortresses, which constitute rather a peril than a guarantee for neutrality; (2) that new treaties in harmony with the wishes of the populations con­cerned be concluded for establishing the neutralization of other states.

“17. (1)모든 평화 단체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국가들 사이에 사법적인 질서를 확립함이다, 그리고 (2) 국제적인 협약에 의한 중립화는 이러한 사법적인 상태를 향한 한 걸음을 구성하며,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숫자를 줄이게 될 것을 지향하면서, 회의는 중립화 규정의 좀더 넓은 확장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은 희망을 피력한다: (1) 현재 특정한 국가들에게 중립의 이익을 확신시켜주는 모든 협정들이 효력을 발휘하거나, 만일 필요하다면, 중립을 국가의 전체 지역으로 확장하거나 또는 중립을 보장하기보다는 위협이 되는 요새들을 파괴토록 명령하여서 중립이 더욱 실효성을 띠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도록 한다; (2) 관계되는 국민들의 소원과 화합하는 새로운 협정들이 다른 국가들의 중립화를 확립하는데 포함되어야 한다.

"18. The sub-committee proposes, (1) that the annual Peace Congress should be held either immediately before the meeting of the annual Sub-parliamentary Conference, or immediately after it in the same town; (2) that the question of an international peace emblem be postponed sine die; (3) that the following resolutions be adopted:

“분과 위원회는 다음을 제안한다, (1) 연례 평화회의는 연례 분과 의원회의 모임 직전에, 또는 그 직후에 같은 도시에서 열려야 한다; (2) 국제 평화 휘장의 문제는 무기한으로 미루어 진다; (3) 다음과 같은 결의안이 채택된다.

"a. To express satisfaction at the official overture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addressed to the highest representatives of each church organization in Christendom to unite in a general conference to promote the substitution of international arbitration for war.

a. 전쟁대신 국제적인 중재를 조장하는 총회로서 연합하도록 하자는, 기독교국의 각 교회 기구의 최상위 대표자들에게 보내는 미국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건의들에 만족을 표명한다.

"b. To express in the name of the congress its profound reverence for the memory of Aurelio Saffi, the great Italian jurist, a member of the committee of the International League of Peace and Liberty.

b. 회의의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위대한 법학자이며,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 연맹 위원회의 회원인 아우렐리오 사피를 기념하여, 심오한 경의를 표명한다.

"(4) That the memorial adopted by this congress and signed by the president to the heads of the civilized states should, as far as practicable, be presented to each power by influential deputations.

“(4) 문명 국가들의 수반들에게 보내지는 이 회의에 의해서 채택이되고 회장에 의해 서명된 건의서는, 가능한 한, 영향력있는 대표자들에 의해서 각국에 제출되어야 한다.

"(5) That the following resolutions be adopted: "a. A resolution of thanks to the presidents of the various sittings of the congress. "b. A resolution of thanks to the chairman, the secre­taries, and the members of the bureau of the congress. "c. A resolution of thanks to the conveners and members of the sectional committees. "d. A resolution of thanks to Rev. Canon Scott Holland, Rev. Dr. Reuen Thomas, and Rev. J. Morgan Gibbon for their pulpit addresses before the congress, and also to the authorities of St. Paul's Cathedral, the City Temple, and Stamford Hill Congregational Church for the use of those buildings for public services. "e. A letter of thanks to her Majesty for permission to visit Windfor Castle. ''f. And also a resolution of thanks to the Lord Mayor and Lady Mayoress, to Mr. Passmore Edwards, and other friends who have extended their hospitality to the members of the congress.

“(5) 다음과 같은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한다: “a. 회의의 다양한 분야의 회장들에 대한 감사의 결의. “b. 회의의 사무국의 의장, 서기들, 그리고 임원들에 대한 감사의 결의. “c. 분과별 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들에 대한 감사의 결의. “d. 신부 캐논 스콧 홀랜드, 신부 로이은 토마스 박사, 및 신부 J. 모건 기본의 회의를 위한 설교 연설에 대하여, 그리고 성 바오르 성당, 시립 사원, 및 스탬포드 힐 조합교회 당국들의 대중 집회들을 위해 그들의 건물들을 사용토록 함에 대한 감사의 결의. “e. 윈포 성 방문을 허락해준 전하에 대한 감사의 편지. “f. 그리고 또한 시장과 시장 부인, 파스모어 에드워드 씨, 그리고 회의의 회원들에 대한 그들의 호의를 두루 보여준 다른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결의.

"19. The congress places on record a heartfelt expres­sion of gratitude to Almighty God for the remarkable har­mony and concord which have characterized the meetings of the assembly, in which so many men and women of varied nations, creeds, tongues, and races have gathered in closest cooperation, and for the conclusion of the labors of the congress; and expresses its firm and unshaken belief in the ultimate triumph of the cause of peace and of the principles advocated at these meetings."

“19. 회의는 집회의 모임들을 두드러지게 한 놀라운 조화와 일치에 대하여, 여기에서 다양한 국적과, 신조와, 그리고 인종들의 너무나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긴밀히 협조하며 함께 모였으며, 그리고 회의의 노력들의 결과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가슴깊이 우러나는 감사의 표현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들 모임들에서 주장된 평화의 원인들과 원리들의 승리에 대한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표현한다.

The fundamental idea of the congress is the necessity (1) of diffusing among all people by all means the conviction of the disadvantages of war and the great blessing of peace, and (2) of rousing governments to the sense of the superi­ority of international arbitration over war and of the consequent advisability and necessity of disarmament. To attain the first aim the congress has recourse to teachers of his­tory, to women, and to the clergy, with the advice to the latter to preach on the evil of war and the blessing of peace every third Sunday in December. To attain the second object the congress appeals to governments with the sug­gestion that they should disband their armies and replace war by arbitration.

회의의 기본적인 사상은 (1) 모든 사람들 사이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전쟁의 불리한 점과 평화의 커다란 축복에 대한 확신을 전파함에 대한 필요성, 그리고 (2) 정부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국제적인 중재의 우선 순위를 지각하게 일깨우며, 군비축소의 필요성이다. 첫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회의는 역사 교사들, 여자들, 그리고 성직자들을 언급하였으며, 후자에게는 매년 12월 세번째 일요일 전쟁의 해악과 평화의 축복을 설교해 줄 것을 권고하였다. 두번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회의는 정부들이 그들의 군대를 해체할 것과 전쟁 대신 중재로 대체하는 제안으로 정부들에게 호소한다.

To preach to men of the evil of war and the blessing of peace! But the blessing of peace is so well known to men that, ever since there have been men at all, their best wish has been expressed in the greeting, "Peace be with you." So why preach about it?

사람들에게 전쟁의 해악과 평화의 축복을 설교하는 것! 그러나 평화의 축복은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서, 그 뒤로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면, 그들의 가장 좋은 소원이 인사말 속에 표현되었다.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그런데 왜 그것을 설교하는가?

Not only Christians, but pagans, thousands of years ago, all recognized the evil of war and the blessing of peace. So that the recommendation to ministers of the Gospel to preach on the evil of war and the blessing of peace every third Sunday in December is quite superfluous.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수천년 전부터, 모두가 전쟁의 해악과 평화의 축복을 깨달았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들이 매년 12월 세째 일요일에 전쟁의 해악과 평화의 축복을 설교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매우 쓸데 없는 것이다.

The Christian cannot but preach on that subject every day of his life. If Christians and preachers of Christianity do not do so, there must be reasons for it. And until these have been removed no recommendations will be effective. Still less effective will be the recommendations to govern­ments to disband their armies and replace them by inter­national boards of arbitration. Governments, too, know very well the difficulty and the burdensomeness of raising and maintaining forces, and if in spite of that knowledge they do, at the cost of terrible strain and effort, raise and maintain forces, it is evident that they cannot do otherwise, and the recommendation of the congress can never change it. But the learned gentlemen are unwilling to see that, and keep hoping to find a political combination, through which governments shall be induced to limit their powers themselves.

기독교인은 그의삶의 나날이 그 주제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의 설교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유들이 제거되고 나면 아무런 권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군대를 해산하고 그것들을 국제적인 중재 위원들로 대체하라고 정부에 권고할 필요는 더욱 없을 것이다. 정부들도 군대를 일으켜서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과 부담스러움을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서운 긴장과 노력을 지불하고라도, 그들이 군대를 일으켜서 유지한다면, 그들은 다른 식으로는 행동할 수 없으며, 평화 회의의 권고도 결코 그것을 변화 시킬 수 없다. 그러나 학식있는 신사들은 그것을 깨닫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하여 정치적인 협력을 찾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통하여 정부들은 그들의 권력들을 그들 스스로 제한하도록 유도된다.

"Can we get rid of war"? asks a learned writer in the Revue des Revues. "All are agreed that if it were to break out in Europe, its consequences would be like those of the great inroads of barbarians. The existence of whole nationalities would be at stake, and therefore the war would be desperate, bloody, atrocious.

“우리는 전쟁을 없앨 수가 있을까?” 어떤 지식인 작가가 리뷰리뷰에서 묻는다. “만일 전쟁이 유럽에서 발발한다면, 그 결과들은 마치 엄청난 수의 야만인들이 침략한 것과 같을 것임에 모두 동의한다. 전체 국가들의 준재가 위험에 빠지고, 그러므로 전쟁은 필사적이며, 유혈적이고, 잔인할 것이다.

"This consideration, together with the terrible engines of destruction invented by modern science, retards the moment of declaring war, and maintains the present temporary situa­tion, which might continue for an indefinite period, except for the fearful cost of maintaining armaments which are exhausting the European states and threatening to reduce nations to a state of misery hardly less than that of war itself.

“이런 생각은, 현대 과학에 의해서 발명된 무서운 파괴 엔진과 함께,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을 지연시킨다, 그리고 현재의 일시적인 상황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약없는 기간동안 계속될 것이다, 다만 유럽국가들을 소진하고 있으며, 전쟁 그 자체보다 거의 나을 것이 없는 불행한 상태로 국민들을 몰아 넣으려고 위협하는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무서운 비용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Struck by this reflection, men of various countries have tried to find means for preventing, or at least for softening, the results of the terrible slaughter with which we are threatened.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여러 국가들의 사람들이, 우리가 위협받고 있는 무서운 살륙들의 결과들을 예방하려고, 아니 적어도 완화시키려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Such are the questions brought forward by the Peace Congress shortly to be held in Rome, and the publication of a pamphlet, 'Sur le Desarmement.'

“바로 그런 것들이 로마에서 곧 열리게 될 평화 회의에서, 그리고, ‘군비 축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팜플렛에서 제출되는 문제들이다.

"It is unhappily beyond doubt that with the present organization of the majority of European states, isolated from one another and guided by distinct interests, the abso­lute suppression of war is an illusion with which it would be dangerous to cheat ourselves. Wiser rules and regula­tions imposed on these duels between nations might, how­ever, at least limit its horrors.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의 현재 기구는 서로에게 격리되어 있으며 특정한 이익들에 의해서 이끌리고 있어서, 전쟁의 절대적 억제는 우리 자신들을 위험스럽게 속이려하는 환상이라는 것은 불행하게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가들 사이의 이들 결투에 부과된 지혜로운 명령들과 규칙들은 적어도 그 공포들을 제한한다.

"It is equally chimerical to reckon on projects of disarma­ment, the execution of which is rendered almost impossible by considerations of a popular character present to the mind of all our readers. [This probably means that France can­not disband its army before taking its revenge.] Public opinion is not prepared to accept them, and moreover, the international relations between different peoples are not such as to make their acceptance possible. Disarmament imposed on one nation by another in circumstances threaten­ing its security would be equivalent to a declaration of war.

“군비 축소라는 계획들을 믿는다는 것은 오로지 황당무계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독자들의 마음에 현존하는 대중적인 성격들을 고려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아마도 프랑스는 그들의 복수를 행하기 전에는 그의 군대를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론은 그것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게다가, 상이한 사람들 사이의 국제 관계들은 그것들을 수용함을 가능케 하지 않는다.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에 의하여 한나라에 부과된 군비 축소는 전쟁 선언과도 맞 먹을 것이다.

"However, one may admit that an exchange of ideas be­tween the nations interested could aid, to a certain degree, in bringing about the good understanding indispensable to any negotiations, and would render possible a considerable reduction of the military expenditure which is crushing the nations of Europe and greatly hindering the solution of the social question, which each individually must solve on pain of having internal war as the price for escaping it externally.

“그러나, 관련 당사국들 간에 생각들을 교환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어떤 협상들에 없어서는 안될 이해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유럽의 국가들을 내리 누르며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을 심각하게 가로막는 군비 지출을 상당히 감축함을 가능케 할 것이며, 그들 사회적 문제는 그것을 외적으로 회피함에 대한 댓가로서 내적인 전쟁을 겪는 아픔으로 반드시 각자가 개인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We might at least demand the reduction of the enor­mous expenses of war organized as it is at present with a view to the power of invasion within twenty-four hours and a decisive battle within a week of the declaration of war. "We ought to manage so that states could not make the attack suddenly and invade each other's territories within twenty-four hours."

“우리는 전쟁 선언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침략할 수 있으며 일주일 이내에 결정적인 전투를 행할 힘을 목적으로 현재 조직된 엄청난 전쟁 지출비용의 감축을 적어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들이 갑자기 공격하여 24 시간 내에 서로의 국경을 침략할 수 없도록 운영하여야만 한다.”

This practical notion has been put forth by Maxime du Camp, and his article concludes with it. The propositions of M. du Camp are as follows: 1. A diplomatic congress to be held every year. 2. No war to be declared till two months after the inci­dent which provoked it. (The difficulty here would be to decide precisely what incident did provoke the war, since whenever war is declared there are very many such inci­dents, and one would have to decide from which to reckon the two months' interval.) 3. No war to be declared before it has be submitted to a plebiscitum of the nations preparing to take part in it. 4. No hostilities to be commenced till a month after the official declaration of war.

이런 실용적인 주장은 막심 드 캄프에의해 제출되었으며, 그의 논문은 그것으로 결론을 짓는다. 막심 드 캄프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1. 매년 외교회의가 열릴 것 2. 전쟁을 야기한 사건뒤 두달 동안 전쟁이 선포될 수 없다. (여기서 어려움은 정확히 어떤 사건이 전쟁을 유발시켰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선포될 때마다 너무나 많은 그러한 사건들이 있으며,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두달이라는 간격을 계산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3. 전쟁에 참가를 준비해야 하는 국민들의 투표에 회부하기 전에는 어떤 전쟁도 선포될 수 없다. 4. 공식적인 전쟁 선포가 있은 뒤 한달 이내에 어떤 적대 행위들도 시작되어서는 안된다.

"No war to be declared. No hostilities to be com­menced," etc. But who is to arrange that no war is to be declared? Who is to compel people to do this and that? Who is to force states to delay their operations for a certain fixed time? All the other states. But all these others are also states which want holding in check and keeping within limits, and forcing, too. Who is to force them, and how? Public opinion. But if there is a public opinion which can force governments to delay their operations for a fixed period, the same public opinion can force governments not to declare war at all.

“어떤 전쟁도 선포될 수 없다. 어떤 적대 행위들도 시작될 수 없다,” . 그러나 누가 어떤 전쟁도 선포될 수 없다는 것을 결정하는가? 누가 사람들이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지말라고 명령할 수 있는가? 누가 국가로 하여금 그들의 작전들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연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가? 다른 모든 국가들. 그러나 이런 다른 모든 국가들 또한 제지되어야 하며, 제한 속에 묶어 두어야 되며, 강제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국가들이다. 누가 그들을 강제한느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여론이다. 그러나 만일 정부들로하여금 그들의 행동들을 일정한 기간 동안 연기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여론이 있다면, 똑같은 여론은 정부로하여금 전쟁을 전혀 선포하지 않도록 강제할 수 있다.

But, it will be replied, there may be such a balance of power, such a ponderation de forces, as would lead states to hold back of their own accord. Well, that has been tried and is being tried even now. The Holy Alliance was noth­ing but that, the League of Peace was another attempt at the same thing, and so on.

그러나, 응답하건대, 힘의 균형이, ponderation de forces이 존재하여서 국가들이 자진하여 자제를 할 것이다고 할 것이다. 글쎄, 그것은 시도되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시도되고 있다. 신성동맹도 오직 그러하였고, 평화 연맹도 또하나의 똑같은 것에 대한 시도이며, 그렇고 그런 것이다.

But, it will be answered, suppose all were agreed. If all were agreed there would be no more war certainly, and no need for arbitration either.

그러나, 응답하건대, 만일 모두가 동의하였다고 가정해보라. 만일 모두가 찬성하였다면 확실이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재할 아무런 필요 또한 없다.

"A court of arbitration! Arbitration shall replace war. Questions shall be decided by a court of arbitration. The Alabama question was decided by a court of arbitration, and the question of the Caroline Islands was submitted to the decision of the Pope. Switzerland, Belgium, Denmark, and Holland have all declared that they prefer arbitration to war."

“중재 법정! 중재가 전쟁을 대체할 것이다. 문제들이 중재 법정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알라바마 문제는 중재 법정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리고 캐롤라인 섬의 문제도 교황의 결정에 회부되었다.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그리고 네덜란드도 모두 전쟁보다는 중재를 선호한다고 선언했다.

I dare say Monaco has expressed the same preference. The only unfortunate thing is that Germany, Russia, Aus­tria, and France have not so far shown the same inclination. It is amazing how men can deceive themselves when they find it necessary! Governments consent to decide their disagreements by arbitration and to disband their armies! The differences between Russia and Poland, between Eng­land and Ireland, between Austria and Bohemia, between Turkey and the Slavonic states, between France and Ger­many, to be soothed away by amiable conciliation!

나는 모나코도 똑같은 결정을 표명했다고 감히 말한다. 유일하게 불행한 일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이제까지 똑같은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그것을 필요하다고 여길때는 어떻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정부들은 그들의 분쟁들을 중재에 의해서 해결하기를 그리고 그들의 군대들을 해체하기로 동의한다! 러시아와 폴란드, 영국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 터어키와 슬라브 국가들, 프랑스와 독일의 분쟁들이 화기애애한 타협으로 완화될 수가 있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One might as well suggest to merchants and bankers that they should sell nothing for a greater price than they gave for it, should undertake the distribution of wealth for no profit, and should abolish money, as it would thus be ren­dered unnecessary.

상인들과 은행가들에게, 그들이 정한 것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지 말라, 아무런 이익 없이 부의 분배를 감행하라, 그리고 화폐를 폐지하라, 왜냐하면 이제 그래서 화폐는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라고 권유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But since commercial and banking operations consist in nothing but selling for more than the cost price, this would be equivalent to an invitation to suppress themselves. It is the same in regard to governments. To suggest to governments that they should not have recourse to violence, but should decide their misunderstandings in accordance with equity, is inviting them to abolish themselves as rulers, and that no government can ever consent to do.

그러나 상업 및 은행 활동은 오직 비용 가치 이상으로 판매하는데 있으므로, 자신들을 억제하라고 권유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정부들에 관해서도 똑같다. 정부들에게 폭력에 의거하지 말고 공평을 기하므로서 그들의 오해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은 그들에게 스스로 통치자임을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정부라도 결코 응할 수 없다.

The learned men form societies (there are more than a hundred such societies), assemble in congresses (such as those recently held in London and Paris, and shortly to be held in Rome), deliver addresses, eat public dinners and make speeches, publish journals, and prove by every means possible that the nations forced to support millions of troops are strained to the furthest limits of their endurance, that the maintenance of these huge armed forces is in opposition to all the aims, the interests, and the wishes of the people, and that it is possible, moreover, by writing numerous papers, and uttering a great many words, to bring all men into agreement and to arrange so that they shall have no antagonistic interests, and then there will be no more war.

학식있는 사람들이 단체를 형성하고 (그러한 단체들은 수백개가 넘는다), 회의들 참가하며 (예를 들면, 런던과 파리에서 최근에 열렸던 것들, 그리고 머지 않아 로마에서 열릴 것들), 강연을 하며, 공공 만찬에서 식사하며 연설하며, 잡지를 출판하며, 그리고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서 수백만명의 군대를 지원하도록 강요받는 국민들은 그들 인내의 최대 한계까지 늘어졌으며, 이렇게 엄청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의 모든 목적, 관심들, 그리고 희망들에 대치되며, 그리고 게다가, 무수한 논문들을 써나가고, 너무나 많은 말을 해대지만, 모든 사람들이 의견일치를 보게 하고 조정하여서 그들은 아무런 반목적인 이해들을 가지지 않으며, 그러므로 더 이상의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증명하려한다.

When I was a little boy they told me if I wanted to catch a bird I must put salt on its tail. I ran after the birds with the salt in my hand, but I soon convinced myself that if I could put salt on a bird's tail, I could catch it, and realized that I had been hoaxed.

내가 어릴 때 그들은 내게 말했다 만일 내가 새를 잡고 싶다면 그 꼬리에 소금을 묻혀야 된다고. 나는 손에다 소금을 들고서 새들을 쫓아 다녔다, 그러나 만일 내가 새의 꼬리에 소금을 묻힐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잡았을 것임을 곧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나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People ought to realize the same fact when they read books and articles on arbitration and disarmament.

사람들은 그들이 중재와 군비 축소에 대한 책들과 논문들을 읽을 때 똑같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If one could put salt on a bird's tail, it would be because it could not fly and there would be no difficulty in catching it. If the bird had wings and did not want to be caught, it would not let one put salt on its tail, because the specialty of a bird is to fly. In precisely the same way the specialty of government is not to obey, but to enforce obedience. And a government is only a government so long as it can make itself obeyed, and therefore it always strives for that and will never willingly abandon its power. But since it is on the army that the power of government rests, it will never give up the army, and the use of the army in war.

만일 누가 새의 꼬리에 소금을 묻힐 수 있다면, 그 새가 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그 새를 잡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만일 새가 날개가 있으며 잡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그의 꼬리에 소금을 묻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의 전공은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똑같은 식으로, 정부의 전공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자신에게 복종당하도록 할 수 있을 때 오로지 정부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언제나 정부는 그러한 것을 위해서 애를 쓸 것이며 결코 자발적으로 그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권력이 의존하는 것은 군대이기 때문에, 그것은 군대를, 그리고 전쟁에서 군대의 사용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The error arises from the learned jurists deceiving them­selves and others, by asserting that government is not what it really is, one set of men banded together to oppress another set of men, but, as shown by science, is the repre­sentation of the citizens in their collective capacity. They have so long been persuading other people of this that at last they have persuaded themselves of it; and thus they often seriously suppose that government can be bound by considerations of justice. But history shows that from Caesar to Napoleon, and from Napoleon to Bismarck, government is in its essence always a force acting in viola­tion of justice, and that it cannot be otherwise. Justice can have no binding force on a ruler or rulers who keep men, deluded and drilled in readiness for acts of violence-sol­diers, and by means of them control others. And so govern­ments can never be brought to consent to diminish the number of these drilled slaves, who constitute their whole power and importance.

정부는, 그것이 사실상 있는대로의 것,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억압하려고 뭉쳐진 것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서 보여 지듯이, 집합적인 능력을 가진 시민들의 대표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박식한 법학자들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기만함으로써 오류가 일어난다. 그들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에 대하여 설득하여 왔으므로 마침내 그들은 그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그들은 흔히 정부는 정의에 의한 사상들로서 구속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역사는 시저부터 나폴레옹까지, 그리고 나폴레옹부터 비스마르크까지, 정부는 그 본질에 있어서 언제나 정의를 유린하는 힘이었으며, 그리고 그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폭력적인 행동들에 대한 민첩성에 있어서 속임을 당하며 훈련 받은 사람들, 즉 병사들을 구속하며, 그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통치자나 통치자들에 대해서 정의는 아무런 의무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하므로, 정부들은 이러한 훈련된 노예들의 숫자들을 감소시키는데 따라질 수 없으며, 그들 노예들은 그들의 전체 권력과 중요성을 차지한다.

Such is the attitude of certain learned men to the contra­diction under which our society is being crushed, and such are their methods of solving it. Tell these people that the whole matter rests on the personal attitude of each man to the moral and religious question put nowadays to everyone, the question, that is, whether it is lawful or unlawful for him to take his share of military service, and these learned gentlemen will shrug their shoulders and not condescend to listen or to answer you. The solution of the question in their idea is to be found in reading addresses, writing books, electing presidents, vice-presidents, and secretaries, and meeting and speaking first in one town and then in another. From all this speechifying and writing it will come to pass, according to their notions, that governments will cease to levy the soldiers, on whom their whole strength depends, will listen to their discourses, and will disband their forces, leaving themselves without any defense, not only against their neighbors, but also against their own subjects. As though a band of brigands, who have some unarmed travel­ers bound and ready to be plundered, should be so touched by their complaints of the pain caused by the cords they are fastened with as to let them go again.

이러한 것들이 특정한 학식있는 사람들의 우리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는 모순에 대한 태도이며, 이러한 것들이 그것을 해결하는 그들의 방법들이다. 이 사람들에게 전체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도덕적 및 종교적인 질문, , 그의 몫의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제각기 사람들의 개인적인 태도에 달려있다고 말해보라, 그러면 이 박식한 신사들은 그들의 어깨을 움츠릴 것이며 거만하게도 당신의 말을 들으려하거나 답변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상에 있어서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강연들을 듣고, 책을 저술하며, 대통령들, 부대통령들, 그리고 서기들을 선출하며, 처음엔 이 도시에서 다음엔 다른 도시에서 모임을 가지며 연설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연설 만들기와 저술로부터, 그들의 견해들에 따르면, 정부들은 병사들을 징집하기를 멈출 것이고, 그들에게 정부들의 모든 권력이 의존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강연들을 들을 것이며, 그들의 군대들을 해제할 것이고, 반면에 그들 자신은 그들의 이웃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국민들에게도 어떤 방어도 하지 않는 일이 일어 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무리의 강도들이, 무장하지 않은 여행자들을 묶고서 약탈할 준비가 되었는데도, 그들이 묶여 있는 오랏줄이 가하는 고통에 대한 그들의 불평들에 너무나 감동하여 그들을 다시 놓아 주는 것과 같다.

Still there are people who believe in this, busy themselves over peace congresses, read addresses, and write books. And governments, we may be quite sure, express their sym­pathy and make a show of encouraging them. In the same way they pretend to support temperance societies, while they are living principally on the drunkenness of the people; and pretend to encourage education, when their whole strength is based on ignorance; and to support constitu­tional freedom, when their strength rests on the absence of freedom; and to be anxious for the improvement of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es, when their very existence depends on their oppression; and to support Christianity, when Christianity destroys all government.

아직도 이것을 믿으며, 평화 회의 문제로 분주하며, 강연들을 듣고, 책을 저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정부들은, 우리가 매우 확신하건대, 그들의 동정을 표현하며 그들을 격려하는 체한다.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금주 단체들을 지원하는 척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은 사람들이 취한 상태를 이용하여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체 권력은 무지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교육을 장려하는 척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전체 권력은 자유의 결여에 의지함에도 헌법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척한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들의 상태 개선을 염려하는 척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는 그들을 억압함에 있다; 그리고 기독교가 모든 정부를 파괴할 때에도 기독교를 지원하는 척한다.

To be able to do this they have long ago elaborated methods encouraging temperance, which cannot suppress drunkenness; methods of supporting-education, which not only fail to prevent ignorance, but even increase it; methods of aiming at freedom and constitutionalism, which are no hindrance to despotism; methods of protecting the working classes, which will not free them from slavery; and a Christianity, too, they have elaborated, which does not destroy, but supports governments.

이런 일이 가능토록 하기 위하여, 정부들은 오래 전에 교묘하게 준비했다, 금주를 장려하는 방법들로서 술취함을 억제할 수 없으며, 교육을 지원하는 방법들로서 무지함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것을 증가시키며; 자유와 헌법 보장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방법들이 폭정을 막을 수 없으며; 노동자 계급들을 보호하는 방법들이 그들을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교묘히 준비했다; 그리고 기독교 역시 그들이 교묘하게 준비를 하였으므로, 정부들을 파괴하기는 커녕 지원하고 있다.

Now there is something more for the government to encourage-peace. The sovereigns, who nowadays take counsel with their ministers, decide by their will alone whether the butchery of millions is to be begun this year or next. They know very well that all these discourses upon peace will not hinder them from sending millions of men to butchery when it seems good to them. They listen even with satisfaction to these discourses, encourage them, and take part in them.

이제 정부들로서는 장려해야 할 것이 좀더 있다-평화가 그것이다. 군주들은, 오늘날에는 그들의 각료들에게서 조언들 듣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의지만으로 수백만의 도살이 올해 시작될 것인지 내년인지 결정한다. 평화에 대한 이러한 강연들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느껴질 때 수백만의 사람들을 도살장으로 보내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이들 강연들을 만족스럽게 경청하며, 그들을 장려하며, 그리고 그 일에 참여한다.

All this, far from being detrimental, is even of service to governments, by turning people's attention from the most important and pressing question: Ought or ought not each man called upon for military service to submit to serve in the army?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주의를 가장 중요하며 당면한 문제들로부터 돌림으로써, 정부에 해롭기는 커녕 심지어는 도움을 주고 있다: 각자의 사람들은 군대에 복무하기 위하여 병역의무에 소집되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Peace will soon be arranged, thanks to alliances and congresses, to books and pamphlets; meantime go and put on your uniform, and prepare to cause suffering and to endure it for our benefit," is the government's line of argu­ment. And the learned gentlemen who get up congresses and write articles are in perfect agreement with it.

“평화는, 동맹들과 회의들, 책들과 팜플렛들 덕택으로, 곧 정착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나가서 너의 제복을 입으라, 그리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고통을 주고 그것을 인내할 준비를 하라,” 는 것이 정부의 주장 방침이다. 그리고 회의들을 설립하고 논문들을 기고하는 학식있는 신사들은 그것과 완전히 합의하고 있다.

This is the attitude of one set of thinkers. And since it is that most beneficial to governments, it is also the most encouraged by all intelligent governments.

이것이 일단의 사상가들의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부들에게 가장 이로운 것이므로, 그것은 또한 모든 지혜로운 정부들에의해서 장려되는 것이다.

Another attitude to war has something tragical in it. There are men who maintain that the love for peace and the inevitability of war form a hideous contradiction, and that such is the fate of man. These are mostly gifted and sensi­tive men, who see and realize all the horror and imbecility and cruelty of war, but through some strange perversion of mind neither see nor seek to find any way out of this posi­tion, and seem to take pleasure in teasing the wound by dwelling on the desperate position of humanity. A notable example of such an attitude to war is to be found in the celebrated French writer Guy de Maupassant. Looking from his yacht at the drill and firing practice of the French soldiers the following reflections occur to him:

전쟁에 대한 다른 태도들은 그 점에 대해서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 평화에 대한 사랑과 전쟁의 불가피함이 소름끼치는 모순을 만들며 그것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가장 재능있고 예민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전쟁의 모든 공포, 어리석음 및 잔인함을 보면서 깨닫는다, 그러나 마음의 어떠한 왜곡으로 인해서 이러한 입장을 벗어날 방법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인류의 절망적인 입장을 사색하면서 상처를 건드리는 것에 쾌락을 찾는다. 전쟁에 대한 그러한 태도의 두드러진 예는 유명한 프랑스 작가 가이 드 모파상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요트에 올라서 프랑스 병사들의 훈련과 사격 연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그에게 떠올랐다:

"When I think only of this word war, a kind of terror seizes upon me, as though I were listening to some tale of sorcery, of the Inquisition, some long past, remote abomi­nation, monstrous, unnatural.

“나는 이 전쟁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일종의 공포가 나를 사로잡는다, 마치 내가 어떤 마법의, 이교자 재판, 약간 오래 된 과거의 먼 혐오스러운 것, 괴물같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When cannibalism is spoken of, we smile with pride, proclaiming our superiority to these savages. Which are the savages, the real savages? Those who fight to eat the conquered, or those who fight to kill, for nothing but to kill?

“살인 만행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부심으로 미소지으며, 이런 야만인에 대한 우리의 우월함을 칭찬한다. 어느 쪽이 야만인들인가, 진짜 야만인 들인가? 정복당한 자를 먹기 위해서 싸우는 자들인가, 아니면, 죽이기 위해서, 오로지 죽이기 위해서 싸우는 자들인가?

"The young recruits, moving about in lines yonder, are destined to death like the flocks of sheep driven by the butcher along the road. They will fall in some plain with a saber cut in the head, or a bullet through the breast. And these are young men who might work, be productive and useful. Their fathers are old and poor. Their mothers, who have loved them for twenty years, worshiped them as none but mothers can, will learn in six months' time, or a year perhaps, that their son, their boy, the big boy reared with so much labor, so much expense, so much love, has been thrown in a hole like some dead dog, after being dis­emboweled by a bullet, and trampled, crushed, to a mass of pulp by the charges of cavalry. Why have they killed her boy, her handsome boy, her one hope, her pride, her life? She does not know. Ah, why?

“젊은 보충병들은, 저쪽의 전선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백정에 의해서 길을 따라서 몰려 가는 양떼들 같이 죽을 운명이다. 그들은 군도로 머리가 잘리거나 가슴에 총알이 관통하여 평원에 넘어 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을 하면 생산적이며 유익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나이가 들고 가난하다. 그들의 어머니들도, 그들을 이십년 동안 사랑했으며, 그들을 오로지 어머니들 만이 할 수 있는 숭배를 하였으며, 육개월 이내에, 아마도 일 년내에 그들의 아들, 그들의 아니, 그렇게 많은 애를 써서 양육한 큰 아이가, 그렇게 귀중하고, 그렇게 사랑했건만, 죽은 개처럼 구멍에 던져져서, 총에 맞아 창자가 기어 나오고, 밟히고, 부서져서, 기병대의 공격으로 반죽 덩어리가 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왜 그녀의 아들을, 그녀의 멋진 아이를, 그녀의 유일한 희망을, 그녀의 자랑을, 그녀의 생명을 죽였는가? 그녀는 모른다. 아니, 왜 그런가?

"War! fighting! slaughter! massacres of men! And we have now, in our century, with our civilization, with the spread of science, and the degree of philosophy which the genius of man is supposed to have attained, schools for training to kill, to kill very far off, to perfection, great num­bers at once, to kill poor devils of innocent men with fam­ilies and without any kind of trial.

“전쟁! 싸움! 도살! 사람들을 살륙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세기에, 우리의 문명으로, 과학의 확산과 사람의 천재성이 달성하게 되어있는 철학의 정도로서, 죽이기 위해서, 멀리까지, 완전하게, 한꺼번에 대량으로 살상하기 위해, 어떤 심리도 거치지 않고서 가족들을 가진 무고한 사람들로서 가련한 자들을 죽이는 교육을 하는 학교를 우리는 이제 가지고 있다.

"And what is most bewildering is that the people do not rise against their governments. For what difference is there be­tween monarchies and republics! The most bewildering thing is that the whole of society is not in revolt at the word war."

“그리고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부들을 반대하여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주국가 들과 공화국가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전체 사회가 전쟁이라는 말에 반대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Ah! we shall always live under the burden of the ancient and odious customs, the criminal prejudices, the ferocious ideas of our barbarous ancestors, for we are beasts, and beasts we shall remain, dominated by instinct and changed by nothing. Would not any other man than Victor Hugo have been exiled for that mighty cry of deliverance and truth? 'To-day force is called violence, and is being brought to judgment; war has been put on its trial. At the plea of the human race, civilization arraigns warfare, and draws up the great list of crimes laid at the charge of con­querors and generals. The nations are coming to under­stand that the magnitude of a crime cannot be its extenua­tion; that if killing is a crime, killing many can be no extenuating circumstance; that if robbery is disgraceful, invasion cannot be glorious. Ah! let us proclaim these absolute truths; let us dishonor war!'

“아! 우리는 언제나 퀘퀘묶고 혐오스런 관습들, 범죄적인 편견들, 우리의 야만적인 선조들의 난폭한 사상들 같은 짐 아래서 살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능에 의해 지배되며, 어느 것에 의해서도 변화되지 않음으로써, 짐승들이며, 우리는 언제나 짐승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빅토르 위고 조차도 해방과 진리의 거대한 외침으로 인해서 추방되지 않았던가? ‘오늘난 힘은 폭력으로 불리며, 심판을 받고 있다; 전쟁은 심판대에 올려졌다. 인류의 탄원으로 문명은 전쟁의 죄를 묻는다, 그리고 정복자들과 장군들을 고발하는 범죄들에 대한 방대한 목록들이 작성한다. 국민들은 범죄의 규모가 그 정상 참작이 될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만일 살인이 범죄라면,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정상참작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없다; 만일 강도질이 수치스럽다면, 침략은 명예로울 수가 없다. ! 이같은 절대적 진리들을 선언합시다; 전쟁을 불명예로 여깁시다!’

"Vain wrath," continues Maupassant, "a poet's indigna­tion. War is held in more veneration than ever.

“공허한 분노이다,” 라고 모파상은 계속한다, “일개 시인의 분노일 뿐이다. 전쟁은 예전보다 더욱 찬미되어 진다.

"A skilled proficient in that line, a slaughterer of genius, Von Moltke, in reply to the peace delegates, once uttered these strange words:

“그 방면에 숙련된 명인, 천재적인 도살자인, 본 몰트키는, 평화 사절단들에게 응답하여 한번은 이와같이 이상한 말들을 내뱉았다:

"'War is holy, war is ordained of God. It is one of the most sacred laws of the world. It maintains among men all the great and noble sentiments-honor, devotion, virtue, and courage, and saves them in short from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 ‘전쟁은 성스럷다, 전쟁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법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위대하며 고귀한 감정들을 유지시켜 준다-명예, 헌신, 미덕, 그리고 용기, 그리고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구해준다.’

"So, then, bringing millions of men together into herds, marching by day and by night without rest, thinking of nothing, studying nothing, learning nothing, reading nothing, being useful to no one, wallowing in filth, sleeping in mud, living like brutes in a continual state of stupefaction, sacking towns, burning villages, ruining whole populations, then meeting another mass of human flesh, fall­ing upon them, making pools of blood, and plains of flesh mixed with trodden mire and red with heaps of corpses, having your arms or legs carried off, your brains blown out for no advantage to anyone, and dying in some corner of a field while your old parents, your wife and children are perishing of hunger-that is what is meant by not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그래서, 그렇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을 함께 떼를 지어서, 쉬지도 않고 밤과 낮으로 행군하며,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으며, 오물 속을 뒹굴며, 진흙탕에서 잠자고, 끊임없이 마비 상태로 짐승같이 살며, 도시들을 약탈하고, 마을들을 불태우며, 전체 백성들을 멸망하게 하며, 그리고나서 다른 무리들의 인간의 살덩어리들을 만나며, 그들위에 넘어지고, 피의 웅덩이와 밟혀진 진흙에 섞인 살점들 그리고 시체 더미들로 붉게 물든 평원들을 만들며, 당신들의 팔이나 다리들이 날아가고, 당신의 머리들이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면서 날아가 버리고, 들판의 한 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당신의 노 부모들, 당신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은 배고픔으로 죽어가고 있다-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로 빠져들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Warriors are the scourge of the world. We struggle against nature and ignorance and obstacles of all kinds to make our wretched life less hard. Learned men-bene­factors of all-spend their lives in working, in seeking what can aid, what be of use, what can alleviate the lot of their fellows. They devote themselves unsparingly to their task of usefulness, making one discovery after another, enlarging the sphere of human intelligence, extending the bounds of science, adding each day some new store to the sum of knowledge, gaining each day prosperity, ease, strength for their country.

“병사들은 세상의 골치거리다. 우리는 우리의 불쌍한 삶이 덜 힘들도록 만들기 위하여 자연과 무지와 모든 종류의 장애들을 맞서서 투쟁한다. 학식있는 사람들은-모든 것들의 후원자로서-무엇을 도와 줄 수 있는지, 무엇이 유익한지, 그들 동료들의 운명을 덜어 줄 수 있는 것들 찾으면서, 그들의 삶을 일하면서 보낸다. 발견에 발견을 계속하면서, 인간 지능의 영역을 넓히면서, 과학의 한계를 넓히면서, 지식의 더미 위에 약간씩 새로운 것을 나날이 더해가면서, 그들의 국가들 위해서 나날이 번영, 안락, 힘을 더해 가면서, 그들은 유익함을 위한 그들의 작업에 몸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들을 헌신한다.

"War breaks out. In six months the generals have destroyed the work of twenty years of effort, of patience, and of genius.

“전쟁은 일어난다. 여섯달 안에 장군들은 이십년 동안의 노력, 인내 그리고 천재성의 작업을 파괴해 버렸다.

"That is what is meant by not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We have seen it, war. We have seen men turned to brutes, frenzied, killing for fun, for terror, for bravado, for ostentation. Then when right is no more, law is dead, every notion of justice has disappeared. We have seen men shoot innocent creatures found on the road, and suspected because they were afraid. We have seen them kill dogs chained at their masters' doors to try their new revolvers. We have seen them fire on cows lying in a field for no rea­son whatever, simply for the sake of shooting, for a joke.

“우리는 그것, 전쟁을 겪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짐승들로 변하고, 미쳐버려서, 재미 삼아서, 두려워서, 용기로서, 허풍으로 살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럴때 더이상 옳은 것은 없고, 법은 죽은 것이 되었으며, 모든 정의의 신조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길위에서 발견한 무고한 짐승들을 쏘아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두려워 하기 때문에 의심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권총을 시험하려고 주인의 문에 묶인 개들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들이 들판에 누워 있는 소들에게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막연히 쏘는 것 자체를 위하여, 재미로 총질하는 것을 보았다.

"That is what is meant by not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Going into a country, cutting the man's throat who defends his house because he wears a blouse and has not a military cap on his head, burning the dwellings of wretched beings who have nothing to eat, breaking furniture and steal­ing goods, drinking the wine found in the cellars, violating the women in the streets, burning thousands of francs' worth of powder, and leaving misery and cholera in one's track-

“시골에 들어 서면서,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에 군모를 쓰지 않았다고 집을 지키려는 사람의 목을 베고, 먹을 것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의 거처들을 불태우며, 가구를 부수고, 물건들을 훔치며, 지하실에서 발견한 포도주를 마시고, 거리에서 여자들을 겁탈하며, 수천 프랑의 값이 나가는 분말들을 불태우고, 그리고 그들의 가는 곳에 불행과 콜레라를 남긴다-

"That is what is meant by not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What have they done, those warriors, that proves the least intelligence? Nothing. What have they invented? Cannons and muskets. That is all. "What remains to us from Greece? Books and statues. Is Greece great from her conquests or her creations? "Was it the invasions of the Persians which saved Greece from falling into the most hideous materialism? "Were the invasions of the barbarians what saved and regenerated Rome? "Was it Napoleon I. who carried forward the great intel­lectual movement started by the philosophers of the end of last century? "Yes, indeed, since government assumes the right of anni­hilating peoples thus, there is nothing surprising in the fact that the peoples assume the right of annihilating govern­ments. "They defend themselves. They are right. No one has an absolute right to govern others. It ought only to be done for the benefit of those who are governed. And it is as much the duty of anyone who governs to avoid war as it is the duty of a captain of a ship to avoid shipwreck. "When a captain has let his ship come to ruin, he is judged and condemned, if he is found guilty of negligence or even incapacity. "Why should not the government be put on its trial after every declaration of war? If the people understood that, if they themselves passed judgment on murderous govern­ments, if they refused to let themselves be killed for nothing, if they would only turn their arms against those who have given them to them for massacre, on that day war would be no more. But that day will never come."

“보잘 것없는 지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들 병사들이 무엇을 해내었는가? 아무것도. 그들이 무엇을 발명하였는가? 대포들과 소총들. 그것이 전부다. “그리스로부터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적들과 형상들. 그리스는 정복들로서 위대한가 아니면 창조들로서 위대한가? “그리스가 가장 추한 물질주의로 빠지는 것으로부터 구한 것이 페르시아인들의 침략들인가? “로마를 구하고 재건한 것이 야만인들의 침략들이었는가? “지난 세기 말엽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위대한 지적인 움직임을 추진한 것이 나폴레옹 1세 였는가? “정말로 그렇다, 이렇게 정부가 사람들을 전멸시킬 수 있는 주장하므로, 사람들이 정부들을 전멸시킬 권리를 주장한다는 사실이 전혀 놀라운 것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방어한다. 그들이 옳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통치받는 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선박의 선장의 의무가 배가 난파됨을 피하게 함인 것처럼 전쟁을 피하는 것이 통치하는 사람의 의무이다. “선장이 그의 배가 파손되도록 둘 때, 만일 그가 직무태만이나 심지어 무능함으로 유죄라면, 그는 심판받고 기소된다. “왜 정부는, 각기 전쟁 선언이 끝난 뒤에, 심판대에 올려지면 아니되는가? 만일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았다면, 만일 그들이 살인적인 정부들에게 스스로 심판을 내렸다면, 만일 그들이 쓸모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거졀하였다면, 만일 그들이 단지 그들에게 대학살을 위해 무기를 준 사람들에게 그것을 돌렸다면, 바로 그날 전쟁은 더이 상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The author sees all the horror of war. He sees that it is caused by governments forcing men by deception to go out to slaughter and be slain without any advantage to them­selves. And he sees, too, that the men who make up the armies could turn their arms against the governments and bring them to judgment. But he thinks that that will never come to pass, and that there is, therefore, no escape from the present position. "I think war is terrible, but that it is inevitable; that compulsory military service is as inevi­table as death, and that since government will always desire it, war will always exist."

작가는 전쟁의 모든 공포를 알고 있다. 그는 정부가 사람들을 속임수로서 강요하여 나가서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음에도 살륙하고 살해되도록 함으로써 전쟁이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그는 또한 군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무기들을 정부에 맞서서 돌릴 수도 있으며 그들을 심판에 올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므로,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쟁이 무섭지만, 그것은 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강압적인 병역의무는 죽음처럼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부가 언제나 그것을 바라고 있으므로, 전쟁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So writes this talented and sincere writer, who is endowed with that power of penetrating to the innermost core of the subjects which is the essence of the poetic faculty. He brings before us all the cruelty of the inconsistency between men's moral sense and their actions, but without trying to remove it; seems to admit that this inconsistency must exist and that it is the poetic tragedy of life.

이 재능있고 진지한 작가는 그렇게 쓰고 있다, 그는 시적인 능력의 정수인 그들 주제의 가장 깊은 핵심에 침투하는 힘을 부여받았다. 그는 우리들 앞에 사람들의 도덕적 자각과 그들의 행동들 사이의 불일치의 모든 잔인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불일치는 반드시 존재하며 그것이 삶의 시적인 비극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다.

Another no less gifted writer, Edouard Rod, paints in still more vivid colors the cruelty and madness of the present state of things. He too only aims at presenting its tragic features, without suggesting or foreseeing any issue from the position.

다른 재능이 없는 작가인, 에두아르 로드는 훨씬더 생생한 색깔로서 현재의 사물의 상태를 그린다. 그 역시도 오직 그것의 비극적인 특징만을 나타내려 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어떤 결과를 제시하거나 예견하지는 않는다.

“What is the good of doing anything? What is the good of undertaking any enterprise? And how are we to love men in these troubled times when every fresh day is a menace of danger? . . . All we have begun, the plans we are developing, our schemes of work, the little good we may have been able to do, will it not all be swept away by the tempest that is in preparation? . . . Everywhere the earth is shaking under our feet and storm-clouds are gathering on our horizon which will have no pity on us.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어던 사업을 책임지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새로운 날마나 위험의 협박인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시작한 모든 것, 우리가 발전시키고 있는 계획들, 우리의 작업 계획들, 우리가 행할 수 있었던 조그만 유익들, 대기하고 있는 폭풍우에 의해서 모두 쓸려 가버리지 않겠는가?... 도처에서 지구는 우리 발 아래서 흔들리고 있으며, 우리에게 아무런 연민도 가지지 않는 우리의 수평선에 폭풍 구름이 모이고 있다.

"Ah! if all we had to dread were the revolution which is held up as a specter to terrify us! Since I cannot imagine a society more detestable than ours, I feel more skeptical than alarmed in regard to that which will replace it. If I should have to suffer from the change, I should be consoled by thinking that the executioners of that day were the vic­tims of the previous time, and the hope of something better would help us to endure the worst. But it is not that remote peril which frightens me. I see another danger, nearer and far more cruel; more cruel because there is no excuse for it, because it is absurd, because it can lead to no good. Every day one balances the chances of war on the morrow, every day they become more merciless.

“아! 만일 우리가 두려워 해야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무섭게 할 유령으로서 들려진 혁명이라면! 나는 우리의 사회보다 더 역겨운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할 것에 대해 경고받기 보다는 더욱 회의적임을 느낀다. 내가 변화로부터 고통받아야 했다면, 그날의 집행자들은 과거의 희생자들이며, 좀더 나은 어떤 것에 대한 기대가 우리가 최악의 것을 참도록 도와 주리나는 생각에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먼 위험이 아니다. 나는 가까이에 있으며 훨씬 더 잔인한 다른 위험을 본다; 그것은 더욱 잔인하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변명이 없으며, 부조리하며,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사람들은 내일의 전쟁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날마다 그들은 더욱 잔인해진다.

"The imagination revolts before the catastrophe which is coming at the end of our century as the goal of the progress of our era, and yet we must get used to facing it. For twenty years past every resource of science has been ex­hausted in the invention of engines of destruction, and soon a few charges of cannon will suffice to annihilate a whole army. No longer a few thousands of poor devils, who were paid a price for their blood, are kept under arms, but whole nations are under arms to cut each other's throats. They are robbed of their time now (by compulsory service) that they may be robbed of their lives later. To prepare them for the work of massacre, their hatred is kindled by per­suading them that they are hated. And peaceable men let themselves be played on thus and go and fall on one another with the ferocity of wild beasts; furious troops of peaceful citizens taking up arms at an empty word of command, for some ridiculous question of frontiers or colonial trade interests-Heaven only knows what. . . They will go like sheep to the slaughter, knowing all the while where they are going, knowing that they are leaving their wives, knowing that their children will want for food, full of misgivings, yet intoxicated by the fine-sounding lies that are dinned into their ears. They will march without revolt, passive, resigned- though the numbers and the strength are theirs, and they might, if they knew how to co-operate together, establish the reign of good sense and fraternity, instead of the barbarous trickery of diplomacy. They will march to battle so deluded, so duped, that they will believe slaughter to be a duty, and will ask the benediction of God on their lust for blood. They will march to battle trampling underfoot the harvests they have sown, burning the towns they have built-with songs of triumph, festive music, and cries of jubilation. And their sons will raise statues to those who have done most in their slaughter.

“우리 시대의 진보의 목적으로서 우리 세기의 말엽에 다가오는 대참사 앞에서 상상이 몸서리친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직면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과거 이십년 동안 과학을 통한 모든 자원들이 파괴 엔진들을 발명함에 소모되었다, 그리고 곧 대포 몇 방이면 전체 군대를 전멸 시키기에 족할 것이다. 더 이상 수천명의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의 피에 대한 댓가를 지불받으며, 무장을 하지 않고, 전체 국민들이 상대방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 무장을 한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시간을 강탈당하여서(강압적인 병역의무로 인하여) 나중에는 그들의 목숨마져 강탈당한다. 대살륙 작업에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증오받고 있다고 설득하여 그들의 증오에 불이 붇게 된다. 그리고 평화스러운 사람들이 그렇게 농락을 당하고 나아가서 서로에게 난폭한 짐승들처럼 포악하게 달려든다; 평화스런 시민들의 성난 군대가, 전방의 약간 웃기는 문제나 식민지의 교역의 이해를 빌미로 하는, 비어있는 명령 한마디에 무기를 든다-하늘이 오직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은 도살되는 양들처럼 갈것이다, 그들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아내들을 떠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의 자녀들이 먹을 것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걱정이 가득차 있지만, 그들의 귀에 멍하게 울리는 그럴듯한 거짓말에 취해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얌전하게 행군할 것이다-비록 숫자에 있어서나 힘에 있어서 그들의 것이지만, 그들이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좋은 감정과 동포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외교라고 하는 야만적인 속임수 대신에. 그들은 그렇게 현혹이되고 속아서 전투로 행군해 간다, 결국 그들은 살륙을 그들의 의무로 믿고, 그들의 피에 대한 욕망에 대해 하나님께 은총을 내리라고 기도한다. 그들은 그들이 심어 놓은 곡식들 발아래 밟으며, 그들이 지은 도시를 불태우면서 전투에 나아간다-승리의 노래들과, 축배의 음악, 즐거움의 환성을 지르면서.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은 그들의 살륙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의 동상을 세울 것이다.

"The destiny of a whole generation depends on the hour in which some ill-fated politician may give the signal that will be followed. We know that the best of us will be cut down and our work will be destroyed in embryo. We know it and tremble with rage, but we can do nothing. We are held fast in the toils of officialdom and red tape, and too rude a shock would be needed to set us free. We are enslaved by the laws we set up for our protection, which have become our oppression. We are but the tools of that autocratic abstraction the state, which enslaves each individual in the name of the will of all, who would all, taken individually, desire exactly the opposite of what they will be made to do.

“전체 세대의 운명은 조금 불운한 정치가가 뒤이은 신호를 보내는 시간에 달려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들은 잘려 버릴 것이며 우리의 업적은 초기에 파괴될 것임을 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서 분노로 떤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관료들과 관료주의의 고통에 꽉 매여 있다, 그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면 너무나 큰 충격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려고 세운 법들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을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독재적 관념의 도구일 뿐이며, 그 국가는, 각 개인을 모든 사람들의 의지의 이름으로 에속시키고, 우리는 모두 정확히, 개별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행하도록 명령받은 것의 정반대를 원하고 있다.

"And if it were only a generation that must be sacrificed! But there are graver interests at stake.

그리고 만일 그것이 한 세대 만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희생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곳엔 더욱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다:

"The paid politicians, the ambitious statesmen, who exploit the evil passions of the populace, and the imbeciles who are deluded by fine-sounding phrases, have so embit­tered national feuds that the existence of a whole race will be at stake in the war of the morrow. One of the elements that constitute the modern world is threatened, the con­quered people will be wiped out of existence, and whichever it may be, we shall see a moral force annihilated, as if there were too many forces to work for good-we shall have a new Europe formed on foundations so unjust, so brutal, so sanguinary, stained with so monstrous a crime, that it cannot but be worse than the Europe of today-more iniquitous, more barbarous, more violent.

“민중들의 나쁜 정열들을 악용하고, 돈을 받는 정치배들, 야망있는 정치가들, 그리고 그럴듯한 궤변들에 속는 바보들이, 너무나 국가간의 반목을 심화시켜서 전체 인류의 존재가 내일의 전쟁의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가 위협받고 있으며, 정복당한 사람들은 존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 되더라도, 우리는 도덕적인 힘이 전멸되는 것을 볼 것이며, 마치 너무나 많은 세력들이 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우리는 너무나 부당하고, 너무나 잔인한, 너무나 피를 좋아하는, 너무나 괴물같은 범죄들로 물들은 토대들 위에 새로운 유럽을 세워서, 그것은 오늘날의 유럽보다 더욱 악하며-더욱 사악하며, 더욱 야만적이며, 더욱 폭력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Thus one feels crushed under the weight of an immense discouragement. We are struggling in a cul de sac with muskets aimed at us from the housetops. Our labor is like that of sailors executing their last task as the ship begins to sink. Our pleasures are those of the condemned victim, who is offered his choice of dainties a quarter of an hour before his execution. Thought is paralyzed by anguish, and the most it is capable of is to calculate-interpreting the vague phrases of ministers, spelling out the sense of the speeches of sovereigns, and ruminating on the words attrib­uted to diplomatists reported on the uncertain authority of the newspapers-whether it is to be to-morrow or the day after, this year or the next, that we are to be murdered. So that one might seek in vain in history an epoch more insecure, more crushed under the weight of suffering."

“그렇게 하여, 우리는 굉장한 실망의 무게아래 무너짐을 느낀다. 우리는 지붕들 위에서소총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의 노력은 마치 배가 가라 앉기 시작할 때 선원들이 그들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함과 같다. 우리의 쾌락들은 선고 받은 희생자의 것과 같아서, 그들은 그의 처형 십오분 전의 맛있는 음식을 제공받음과 같다. 고통으로 생각이 마비되고, 생각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계산해 보는 것이다-장관들의 모호한 궤변들을 해석해보고, 통치자들의 연설의 의미를 한자씩 적어보며, 그리고 신문들에 확실하지 않은 출처로서 보고되는 외교관들의 발언들에 대해 되새김질 해보면서-우리가 살해되는 것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를 계산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부질없이 역사상에서 고통의 압박 아래 있던 더욱더 불안전하고 억압받는 시대를 찾아보기도 할 것이다.”

Here it is pointed out that the force is in the hands of those who work their own destruction, in the hands of the individual men who make up the masses; it is pointed out that the source of the evil is the government. It would seem evident that the contradiction between life and con­science had reached the limit beyond which it cannot go, and after reaching this limit some solution of it must be found.

여기서 힘은 그들 자신의 파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손 안에, 대중을 구성하는 사람 개개의 사람들의 손 안에 있음이 지적된다; 악의 근원은 정부임이 지적되고 있다. 삶과 양심의 갈등은 그것이 갈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한계에 도달한 뒤에는 어떤 해답이 반드시 찾아져야 한다.

But the author does not think so. He sees in this the tragedy of human life, and after depicting all the horror of the position he concludes that human life must be spent in the midst of this horror.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인간의 삶의 비극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위치의 모든 공포들을 묘사한 뒤에, 인간의 삶은 이러한 공포 가운데서 지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So much for the attitude to war of those who regard it as something tragic and fated by destiny.

전쟁을 어떤 비극적이며 운명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것은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The third category consists of men who have lost all con­science and, consequently, all common sense and feeling of humanity.

세번째 범주는 모든 양심을 잃어 버렸으며, 결국, 인류에 대한 모든 일반적 감정과 느낌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구성된다.

To this category belongs Moltke, whose opinion has been quoted above by Maupassant, and the majority of military men, who have been educated in this cruel superstition, live by it, and consequently are often in all simplicity convinced that war is not only an inevitable, but even a necessary and beneficial thing. This is also the view of some civilians, so-called educated and cultivated people.

이 범주에 몰트케가 포함되며, 그의 의견은 모파상이 위에서 인용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군인들은, 이러한 잔인한 미신으로 교육받고서, 그것으로 살고 있으며, 그리고 결국 흔히 너무나 단순하게 전쟁은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며 이로운 것이라고 납득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 소위 교육받았으며 교양있는 일부 시민들의 시각이다.

Here is what the celebrated academician Camille Doucet writes in reply to the editor of the Revue des Revues, where several letters on war were published together:

여기에 저명한 학술회 회원인 카미유 두스가 리뷰리뷰 지의 편집자에게 대답하여 쓴 것이 있으며, 전쟁에 관한 몇가지 편지들이 함께 출판되었다.

"dear sir: When you ask the least warlike of acade­micians whether he is a partisan of war, his answer is known beforehand. "Alas! sir, you yourself speak of the pacific ideal inspir­ing your generous compatriots as a dream. "During my life I have heard a great many good people protest against this frightful custom of international butchery, which all admit and deplore; but how is it to be remedied? "Often, too, there have been attempts to suppress duel­ing; one would fancy that seemed an easy task: but not at all! All that has been done hitherto with that noble object has never been and never will be of use. "All the congresses of both hemispheres may vote against war, and against dueling too, but above all arbitrations, conventions, and legislations there will always be the per­sonal honor of individual men, which has always demanded dueling, and the interests of nations, which will always demand war. "I wish none the less from the depths of my heart that the Congress of Universal Peace may succeed at last in its very honorable and difficult enterprise. "I am, dear sir, etc., "Camille Doucet."

“삼가 아룁니다: 귀하께서 학술회원 중에서 가장 비 호전적인 사람에게 그가 전쟁을 지지하는가를 물을 때, 그의 대답은 미리 알려져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당신 자신은 자신의 너그러운 동포들에게 꿈처럼 감명주는 평화의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평생을 통하여 나는 국제적 학살의 놀라운 관행에 대하여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며, 그것에 대해 모두가 인정하며 비통해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처방이 있었습니까? “역시, 가끔, 결투를 억제하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쉬운 일인 것처럼 상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고상한 목적에 대해 여태까지 행해진 모든 것은 결코 소용이 없었으며, 결코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양쪽 반구들의 모든 국회들이 전쟁에 그리고 결투 역시 반대 투표를 할것입니다, 그러나 중재들, 협약들, 그리고 입법들에 앞서서 언제나 각자의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명예라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결투를 요구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국가들의 이익들도 있으니, 그것들은 언제나 전쟁을 요구합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만국평화회의가 마침내 매우 명예롭고 어려운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카미유 두스

The upshot of this is that personal honor requires men to fight, and the interests of nations require them to ruin and exterminate each other. As for the efforts to abolish war, they call for nothing but a smile.

이 편지의 요지는 사람들을 싸우게 하는 것은 개인적인 명예이다, 그리고 국가들이 이익들이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망하게 하고 전멸시키려한다는 것이다. 전쟁을 폐지하려는 노력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오직 미소만 지을 뿐이다.

The opinion of another well-known academician, Jules Claretie, is of the same kind.

다른 저명한 학술회원, 줄 클라레티의 의견도 똑같은 것이다.

"dear sir [he writes]: For a man of sense there can be but one opinion on the subject of peace and war. "Humanity is created to live, to live free, to perfect and ameliorate its fate by peaceful labor. The general harmony preached by the Universal Peace Congress is but a dream perhaps, but at least it is the fairest of all dreams. Man is always looking toward the Promised Land, and there the harvests are to ripen with no fear of their being torn up by shells or crushed by cannon wheels. . . But! Ah! but-- since philosophers and philanthropists are not the controll­ing powers, it is well for our soldiers to guard our frontier and homes, and their arms, skillfully used, are perhaps the surest guarantee of the peace we all love. "Peace is a gift only granted to the strong and the reso­lute. "I am, dear sir, etc., "JULES CLARETIE."

“삼가 아룁니다: 상식을 지닌 사람으로서 평화와 전쟁의 주제에 관해서는 오직 한가지 의견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류는 평화스런 노동으로 살아가며, 자유롭게 살며,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하고 개선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만국평화회의에서 호소되는 보편적인 화합은 그러나 아마도 꿈이며, 그러나 적어도 모든 꿈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약속된 땅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곡식들은 포탄들에 의해서 찢겨지거나 대포 바퀴들에 의해서 뭉개질 두려움이 없이 익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 그러나-철학자들과 박애주의자들이 권력들을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병사들이 우리의 국경과 가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들, 능숙하게 사용된다면, 아마도 우리가 사랑하는 평화의 가장 확실한 보장이 될 것입니다. “평화는 오직 강하고 굳센자들에게 인정된 선물입니다. “줄 클라레트

The upshot of this letter is that there is no harm in talk­ing about what no one intends or feels obliged to do. But when it comes to practice, we must fight.

이 편지의 요지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으며 의무로서 여기지 않는 것을 토론하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부딪히면, 우리는 싸워야 한다.

And here now is the view lately expressed by the most popular novelist in Europe, Emile Zola:

그리고 여기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인 에밀 졸라가 최근에 표명한 견해가 있다:

"I regard war as a fatal necessity, which appears inevita­ble for us from its close connection with human nature and the whole constitution of the world. I should wish that war could be put off for the longest possible time. Nevertheless, the moment will come when we shall be forced to go to war. I am considering it at this moment from the standpoint of universal humanity, and making no reference to our mis­understanding with Germany-a most trivial incident in the history of mankind. I say that war is necessary and bene­ficial, since it seems one of the conditions of existence for humanity. War confronts us everywhere, not only war be­tween different races and peoples, but war too, in private and family life. It seems one of the principal elements of progress, and every step in advance that humanity has taken hitherto has been attended by bloodshed.

“나는 전쟁을 숙명적인 필요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 및 세계의 전체적인 구성과 긴밀한 관계로부터 우리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전쟁이 가능한한 오랬동안 지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에 나가야만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이 순간 그것을 보편적 인류의 관점으로부터 고려하고 있으며, 독일과 관련한 우리의 오해-인류의 역사상 가장 사소한 사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쟁이 필요하며 이롭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를 위한 존재의 조건들 중의 하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쟁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대면하고 있다, 인종들과 사람들 간의 전쟁 뿐만 아니라, 사적이며 가족적인 삶에서도 역시 전쟁이 있다. 전쟁은 진보의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밟아 온 진보에서의 걸음마다 유혈이 동반되어 왔다.

"Men have talked, and still talk, of disarmament, while disarmament is something impossible, to which, even if it were possible, we ought not to consent. I am convinced that a general disarmament throughout the world would involve something like a moral decadence, which would show itself in general feebleness, and would hinder the pro­gressive advancement of humanity. A warlike nation has always been strong and flourishing. The art of war has led to the development of all the other arts. History bears wit­ness to it. So in Athens and in Rome, commerce, manu­factures, and literature never attained so high a point of development as when those cities were masters of the whole world by force of arms. To take an example from times nearer our own, we may recall the age of Louis XIV. The wars of the Grand Monarque were not only no hindrance to the progress of the arts and sciences, but even, on the contrary, seem to have promoted and favored their develop­ment."

“사람들은 군비 축소에 대해서 논의해 왔으며, 아직도 논의하고 있다, 반면에 군비 축소는 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비록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나는 전 세계적인 보편적 군축은 도덕적인 퇴조와 같은 것을 포함하며, 그것 자체가 보편적 나약함을 나타내며, 그리고 인류의 진보적 전진을 방해하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호전적인 국가는 언제나 강성하였으며 번영하였다. 전쟁의 기술은 다른 모든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테나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상업, 제조 및 문학은, 그들 도시들이 무기의 힘에 의한 전체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 때보다, 결코 높은 발전 위치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 자신의 시대에 근접한 시대를 예를 든다면, 우리는 루이14세의 시대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왕조의 전쟁들은 예술과 과학들의 진보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대로, 그들의 발전을 진흥하고 애호하였던 것 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전쟁은 유익한 것이다!

So war is a beneficial thing!

 

But the best expression of this attitude is the view of the most gifted of the writers of this school, the academician de Vogue. This is what he writes in an article on the Military Section of the Exhibition of 1889: "On the Esplanade des Invalides, among the exotic and colonial encampments, a building in a more severe style overawes the picturesque bazaar; all these fragments of the globe have come to gather round the Palace of War, and in turn our guests mount guard submissively before the mother building, but for whom they would not be here. Fine sub­ject for the antithesis of rhetoric, of humanitarians who could not fail to whimper over this juxtaposition, and to say that 'ceci tuera cela,' that the union of the nations through science and labor will overcome the instinct of war. Let us leave them to cherish the chimera of a golden age, which would soon become, if it could be realized, an age of mud. All history teaches us that the one is created for the other, that blood is needed to hasten and cement the union of the nations. Natural science has ratified in our day the mys­terious law revealed to Joseph de Maistre by the intuition of his genius and by meditation on fundamental truths; he saw the world redeeming itself from hereditary degenera­tions by sacrifice; science shows it advancing to perfection through struggle and violent selection; there is the state­ment of the same law in both, expressed in different formulas. The statement is disagreeable, no doubt; but the laws of the world are not made for our pleasure, they are made for our progress. Let us enter this inevitable, neces­sary palace of war; we shall be able to observe there how the most tenacious of our instincts, without losing any of its vigor, is transformed and adapted to the varying exigencies of historical epochs."

그러나 이러한 태도에 대한 가장 훌륭한 표현은 이 부류의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재능있는 사람으로서, 학술회원인 드 보그의 시각이다. 이것이 1889년 전시회의 군사부문에 관한 논문에 그가 썼던 것이다: “[병자의 산책]에서, 이국적이며 식민지적인 야영지들 사이에, 엄격한 스타일의 건물은 아름다운 시장을 위압한다; 전체 지구의 이 모든 파편들은 전쟁의 궁전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객들은 모건물 앞에 복종하며 경비를 섰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위해서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다. 수사법상의, 대조가 되는 훌륭한 주제, 이러한 대치에 대해 흐느끼며 이것이 저것을 죽였다 (ceci tuera cela)’ 라고, 과학과 노동을 통한 국민들의 결합은 전쟁의 본능을 극복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박애주의자들의 훌륭한 주제가 아닌가. 그들이 황금시대의 키메라를 소중히 하도록 놓아두자, 만일 그것이 깨달아 진다면, 곧 진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는 이것은 저것을 위해 창조되었다, 피는 국가들의 연합을 재촉하고 굳게하는데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자연 과학은 우리 시대에 그의 천재적 직관과 근본적인 진리들에 대한 명상으로 조셉 드 메스터에게 밝혀진 신비한 법칙을 승인하였다; 그는 세상이 희생을 통한 세습적인 쇠퇴로서 자신을 회복한다고 보았다; 과학은 그것이 투쟁과 폭력적인 선택을 통하여 완성으로 진행한다고 보여 준다; 동시에 다른 공식들로서 표현되었으나 똑같은 법에 대한 선언이 있다. 그 선언은 의심할 바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법들은 우리의 쾌락을 위해서 만들어 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우리의 진보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런 피할 수 없으며 필수적인 전쟁의 성에 들어가자; 우리는 거기서 우리의 완강한 본능들이, 그 힘을 잃지도 않은 채, 어떻게 역사 시대들의 다양한 요구들에 변형되며 적응되어 가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M. de Vogue finds the necessity for war, according to his views, well expressed by the two great writers, Joseph de Maistre and Darwin, whose statements he likes so much that he quotes them again.

E. M. 보그는 그의 시각에 따라서, 두 작가들 조셉 드 마리와 다아윈에 의해서 잘 표현된, 전쟁에 대한 필요성을 찾으며, 그들의 선언들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그는 다시 그들을 인용한다.

"dear sir [he writes to the editor of the Revue des Revues]: You ask me my view as to the possible success of the Universal Congress of Peace. I hold with Darwin that violent struggle is a law of nature which overrules all other laws; I hold with Joseph de Maistre that it is a divine law; two different ways of describing the same thing. If by some impossible chance a fraction of human society-all the civilized West, let us suppose-were to succeed in suspend­ing the action of this law, some races of stronger instincts would undertake the task of putting it into action against us: those races would vindicate nature's reasoning against human reason; they would be successful, because the cer­tainty of peace-I do not say place, I say the certainty of peace-would, in half a century, engender a corruption and a decadence more destructive for mankind than the worst of wars. I believe that we must do with war-the criminal law of humanity-as with all our criminal laws, that is, soften them, put them in force as rarely as possible; use every effort to make their application unnecessary. But all the experience of history teaches us that they cannot be alto­gether suppressed so long as two men are left on earth, with bread, money, and a woman between them. "I should be very happy if the Congress would prove me in error. But I doubt if it can prove history, nature, and God in error also. "I am, dear sir, etc. "E. M. DE VOGUE."

“삼가 아룁니다[그는 리뷰리뷰 지의 편집자에게 쓴다]: 당신은 저에게 만국평화회의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나의 시각을 묻습니다. 폭력적인 투쟁이 모든 다른 법들을 상쇄하는 자연법이라는 다아윈과 견해를 같이 합니다; 나는 그것이 신의 법이라는 조셉 드 메스터의 견해와 같이 합니다; 그것들은 똑같은 것을 묘사하는 두가지 다른 방법들입니다. 만일 어떤 불가능한 기회에 인간 사회-가정컨대, 모든 문명화된 유럽-의 한 파편이 이런 법의 작용를 지연시키는데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더 강한 본능들을 가진 어떤 인종들이 우리를 반대하며 그것을 작용시키는 임무를 맡을 것입니다: 그 종족들은 자연의 논리가 인간의 논리에 비해서 옳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확실함-나는 장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평화의 확실함을 말합니다-이 반세기 만에, 가장 최악의 전쟁들보다 더 인류에게 있어서 파괴적인 부패와 쇠퇴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전쟁-인류의 형법-이 있어야 하며, 우리의 모든 형법들처럼, , 그것들을 보완하고 그것들을 가능한한 적게 적용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그것들의 적용을 불필요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의 경험은, 지상에 두 사람이 남았으며, 그들 사이에 빵과, , 그리고 한 여자가 있을 때처럼, 오랫동안 전적으로 억제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평화회의가 내가 오류에 빠졌음을 증명한다면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 본성, 그리고 하나님도 오류에 빠졌다고 증명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습니다. “보그

This amounts to saying that history, human nature, and God show us that so long as there are two men, and bread, money and a woman-there will be war. That is to say that no progress will lead men to rise above the savage con­ception of life, which regards no participation of bread, money (money is good in this context) and woman possible without fighting.

이것은 역사, 인간의 본성, 그리고 하나님이, 만일 두 사람 그리고 빵, , 그리고 여자가 있다면-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함과 같다. 어떤 진보도 사람들을 야만적인 개념의 삶보다 위로 인간들을 끌어 당겨 세울 수 없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야만적인 삶은 싸움을 하지 않고는 빵, (이런 점에서 돈은 좋다) 그리고 여자가 개입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They are strange people, these men who assemble in Con­gresses, and make speeches to show us how to catch birds by putting salt on their tails, though they must know it is impossible to do it. And amazing are they too, who, like Maupassant, Rod, and many others, see clearly all the hor­ror of war, all the inconsistency of men not doing what is needful, right, and beneficial for them to do; who lament over the tragedy of life, and do not see that the whole tragedy is at an end directly men, ceasing to take account of any unnecessary considerations, refuse to do what is hate­ful and disastrous to them. They are amazing people truly, but those who, like De Vogue and others, who, professing the doctrine of evolution, regard war as not only inevitable, but beneficial, and therefore desirable-they are terrible, hideous, in their moral perversion. The others, at least, say that they hate evil, and love good, but these openly declare that good and evil do not exist.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평화 회의에 집결하여 새의 꼬리에 소금을 묻힘으로써 새를 잡는 방법을 보여주는 연설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놀랍다, 그들은 모파상, 로드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전쟁의 모든 공포를, 사람들이 행함에 있어서 필요하며, 정당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하지 않는 모든 모순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들은 삶의 비극에 대하여 슬퍼한다, 그리고 전적인 비극은 궁극적으로 바로 사람들에게 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불필요한 생각들에 신경씀을 그만두고, 그들에게 증오스럽고 재앙이 되는 것을 거절하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놀라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드 보그 및 다른 사람들은 진화의 교리를 주장하면서, 전쟁을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이로운 것이며, 그러므로 바람직하다고 여긴다-그들은 그들의 도덕적인 왜곡에 있어서 무서우며, 소름끼친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공연히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All discussion of the possibility of re-establishing peace instead of everlasting war-is the pernicious sentimentality of phrasemongers. There is a law of evolution by which it follows that I must live and act in an evil way; what is to be done? I am an educated man, I know the law of evolu­tion, and therefore I will act in an evil way. "Entrons au palais de la guerre." There is the law of evolution, and therefore there is neither good nor evil, and one must live for the sake of one's personal existence, leaving the rest to the action of the law of evolution. This is the last word of refined culture, and with it, of that overshadowing of con­science which has come upon the educated classes of our times. The desire of the educated classes to support the ideas they prefer, and the order of existence based on them, has attained its furthest limits. They lie, and delude themselves, and one another, with the subtlest forms of decep­tion, simply to obscure, to deaden conscience.

영원한 전쟁 대신에 평화를 재확립함에 대한 가능성의 모든 논의는 공언가들의 해로운 감상적 행위이다. 진화에 대한 법칙이 있어서 나는 반드시 악한 방법으로 살며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나는 교육받은 사람이다, 나는 진화의 법칙을 안다, 그리고 그러므로 나는 악한 방법대로 행동할 것이다. “전쟁의 궁전에 들어간다 (Entrons au palais de la guerre.) 진화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선도 없으며 악도 없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인 존재를 위해서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은 진화의 법칙의 작용에 맏겨야 한다. 이것이 세련된 문화의,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 시대의 교육받은 계급들의 위에 쒸워져 있는 그러한 양심의 그림자의 최후의 말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사상들 그리고 그것들을 기초로하는 존재의 질서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받은 계급들의 욕구는 가장 먼 한계에 도달했다. 가장 정교한 형태의 기만으로, 단순히 양심을 혼탁하게하고 죽이기위해서 그들은 거짓말하며 자신들과 서로를 속인다.

Instead of transforming their life into harmony with their conscience, they try by every means to stifle its voice. But it is in darkness that the light begins to shine, and so the light is rising upon our epoch.

그들의 삶을 그들의 양심과의 조화로 변형하는 대신에, 그들은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여 그 목소리를 억누른다. 그러나 빛이 빛나기 시작하는 것은 어두움에서이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 시대 위에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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