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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by Leo Tolstoy

   
   
CHAPTER VII.  7  

SIGNIFICANCE OF COMPULSORY SERVICE.

강제 병역 의무의 의미

Universal Compulsory Service is not a Political Accident, but the Furthest Limit of the Contradiction Inherent i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Origin of Authority in Society-Basis of Authority is Physi­cal Violence-To be Able to Perform its Acts of Violence Authority Needs a Special Organization-The Army-Authority, that is, Violence, is the Principle which is Destroying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Attitude of Authority to the Masses, that is, Attitude of Government to Working Oppressed Classes-Governments Try to Foster in Working Classes the Idea that State Force is Necessary to Defend Them from External Enemies-But the Army is Principally Needed to Preserve Government from its own Subjects-The Working Classes- Speech of M. de Caprivi-All Privileges of Ruling Classes Based on Violence-The Increase of Armies up to Point of Universal Service- Universal Compulsory Service Destroys all the Advantages of Social Life, which Government is Intended to Preserve-Compulsory Service is the Furthest Limit of Submission, since in Name of the State it Requires Sacrifice of all that can be Precious to a Man-Is Government Necessary?-The Sacrifices Demanded by Government in Compulsory Service have No Longer any Reasonable Basis-And there is More Advantage to be Gained by not Submitting to the Demands of the State than by Submitting to Them.

보편적 강제 병역의무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개념의 삶에 내재된 모순의 극치이다-사회에서 권력의 근원-권력의 기초는 신체적 폭력이다-폭력 행위들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권력은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다-군대-권력, , 폭력은 사회적 개념의 삶을 파괴하는 원리이다-권력의 대중들에 대한 태도, 억압받는 노동자 계급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정부들은 노동자 계급들에게 국가적인 군대가 그들을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상을 심어주려고 한다-그러나 군대는 원칙적으로 정부를 그 국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노동자 계급들-카프리비의 연설-지배 계급들의 모든 특권은 폭력에 의거한다-보편적 병역의무 지점까지의 군사력 증강-보편적 강제 병역의무는 정부가 보존해야하는 모든 사회적 삶의 이로움을 파괴한다-강제 병역 의무는 복종의 극한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소중한 모든 것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정부는 필요한가?-강제 병역 의무에 있어서 정부가 요구하는 희생들은 더 이상 어떤 이성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국가의 요구들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educated people of the upper classes are trying to stifle the ever-growing- sense of the necessity of transform­ing the existing social order. But life, which goes on growing more complex, and developing in the same direc­tion, and increases the inconsistencies and the sufferings of men, brings them to the limit beyond which they can­not go. This furthest limit of inconsistency is universal compulsory military service.

교육받은 사람들은 기존 사회 질서를 개혁하려는 필요에 대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각을 억누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삶은, 더욱 복잡해지고, 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그리고 사람들의 모순들과 고통들을 증가시키셔, 그들이 더 갈 수 없는 한계에 데려다 놓는다. 이러한 불일치의 극도의 한계가 보편적 강제 병역 의무이다.

It is usually supposed that universal military service and the increased armaments connected with it, as well as the resulting increase of taxes and national debts, are a passing phenomenon, produced by the particular political situation of Europe, and that it may be removed by certain political combinations without any modification of the inner order of life.

보편적 병역 의무와 그와 관련된 군비 확장은, 그 결과 세금과 국가 부채의 증가와 함께, 유럽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 의해 유발되는 일시적 현상이며, 그것은 삶의 내적인 질서를 수정하지 않고서도 어떤 정치적 짜맞추기로서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정되고 있다.

This is absolutely incorrect. Universal military service is only the internal inconsistency inherent i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carried to its furthest limits, and becom­ing evident when a certain stage of material development is reached.

이것은 절대적으로 맞지 않다. 보편적 병역 의무는 오직 사회적 개념의 삶에 내재된 내적인 모순으로서, 그 극한에 다달았으며, 특정한 물질의 발전의 단계에 도달할 때에 분명해진다.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we have seen, consists in the transfer of the aim of life from the individual to groups and their maintenance-to the tribe, family, race, or state.

사회적 개념의 삶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삶의 목적을 개인에서 무리와 그들의 유지-부족, 가족, 인종, 또는 국가-로 돌림에 있다.

I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it is supposed that since the aim of life is found in groups of individuals, individuals will voluntarily sacrifice their own interests for the interests of the group. And so it has been, and still is, in fact, in certain groups, the distinction being that they are the most primitive forms of association in the family or tribe or race, or even in the patriarchal state. Through tradition handed down by education and supported by religious sentiment, individuals without compulsion merged their interests in the interest of the group and sacrificed their own good for the general welfare.

사회적 개념의 삶은 삶의 목적이 개인들의 무리에서 찾아지므로, 개인들은 무리의 이해를 위해서 그들 자신의 이해들을 자발적으로 희생한다고 가정된다. 그리고 그래서, 사실상, 특정한 무리들에서는, 그들이 가족에서 또는 부족 또는 인종 또는 심지어 가부장적인 국가에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모임이라는 구별이 있어 왔으며, 아직도 있다. 교육에 의해서 전수되었으며 종교적 감정에 의해서 유지되어 온 전통을 통하여, 개인들은 강압없이 그들의 이해들을 무리의 이해에 병합하였으며 그들 자신의 이익을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했다.

But the more complex and the larger societies become, and especially the more often conquest becomes the cause of the amalgamation of people into a state, the more often individuals strive to attain their own aims at the public expense, and the more often it becomes necessary to restrain these insubordinate individuals by recourse to authority, that is, to violence. The champions of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usually try to connect the idea of authority, that is, of violence, with the idea of moral influ­ence, but this connection is quite impossible.

그러나 사회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커지며, 특히 더욱 더 잦아지는 정복이 사람들을 국가로 흡수하는 원인이 되며, 더욱 자주 개인들이 공공의 비용으로 그들 자신의 목적들을 성취하려고 애쓰며, 그리고 더욱 자주 이들 반항하는 개인들을 권력, , 폭력에 의거하여 억압할 필요가 있어 진다. 사회적 개념의 삶의 옹호자들은 주로 권력, , 폭력의 개념을 도덕적인 영향의 개념과 연결하려 시도하지만, 이런 연결은 심히 불가능하다.

The effect of moral influence on a man is to change his desires and to bend them in the direction of the duty required of him. The man who is controlled by moral influence acts in accordance with his own desires. Author­ity, in the sense in which the word is ordinarily understood, is a means of forcing a man to act in opposition to his desires. The man who submits to authority does not do as he chooses but as he is obliged by authority. Nothing can oblige a man to do what he does not choose except physical force, or the threat of it, that is-deprivation of freedom, blows, imprisonment, or threats-easily carried out-of such punishments. This is what authority consists of and always has consisted of.

사람에 대한 도덕적 영향의 효과는 그의 욕구들을 변화시켜서 그것들을 그들에게 요구되는 의무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도덕적인 영향에 의해서 통제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구들에 따라서 행동한다. 권력은, 그 단어가 평범하게 이해되는 의미에서, 사람을 그의 욕구에 반대로 행동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다.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권력에 의해서 명해지는 대로 행동한다. 신체적 폭력 또는 신체의 위협, 즉 그러한 처벌들의 위협-자유의 박탈, 가격, 투옥, 또는 협박-은 쉽게 실행되며-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이것이 권력이 의미하는 것이며, 언제나 의미하여 왔었던 것이다.

In spite of the unceasing efforts of those who happen to be in authority to conceal this and attribute some other sig­nificance to it, authority has always meant for man the cord, the chain with which he is bound and fettered, or the knout with which he is to be flogged, or the ax with which he is to have hands, ears, nose, or head cut off, or at the very least, the threat of these terrors. So it was under Nero and Ghenghis Khan, and so it is to-day, even under the most liberal government in the Republics of the United States or of France. If men submit to authority, it is only because they are liable to these punishments in case of non-submission. All state obligations, payment of taxes, fulfillment of state duties, and submission to punishments, exile, fines, etc., to which people appear to submit volun­tarily, are always based on bodily violence or the threat of it.

권력에 있게 되는 사람들이 이것을 숨기고 그것에 다른 어떤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멈추지 않는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오랏줄, 사람이 묶이고 매여 있는 사슬, 또는 그가 매질 당하는 가죽 채찍, 또는 손, , , 또는 머리가 잘려 지는 도끼, 또는 극히 최소한 이런 것들에 대한 두려움들을 의미했다. 그것은 네로나 징기스칸 치하에서 그러했으며, 그것은 심지어 오늘날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공화국들 같은 자유주의 정부 아래서도 그러하다. 만일 사람들이 권력에 복종한다면, 그것은 오직 불복종의 경우에 이들 처벌들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의 의무들, 세급의 납부, 국가의 의무 이행, 그리고 처벌에 복종, 추방, 벌금, 등은, 이것들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신체적 폭력이나 그것의 위협에 기초하고 있다.

The basis of authority is bodily violence. The possi­bility of applying bodily violence to people is provided above all by an organization of armed men, trained to act in unison in submission to one will. These bands of armed men, submissive to a single will, are what constitute the army. The army has always been and still is the basis of power. Power is always in the hands of those who control the army, and all men in power-from the Roman Caesars to the Russian and German Emperors-take more interest in their army than in anything, and court popularity in the army, knowing that if that is on their side their power is secure.

권력의 기초는 신체적 폭력이다. 신체적 폭력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가능성은 무엇보다 먼저 한 사람의 의지에 복종하여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도록 훈련 받은 무장한 사람들의 단체에서 준비된다. 이들 무장한 사람들의 무리들이, 단 한 사람의 의지에 복종하여서, 군대를 구성하는 것이다. 군대는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권력의 기초이다. 권력은 언제나 군대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다, 그리고 권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은-로마의 시저부터 러시아나 독일의 황제들 까지-무엇보다도 그들의 군대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군대에 비위를 맞추려 하며, 만일 그것이 그들의 편이라면, 그들이 권력은 안전함을 알고 있다.

The formation and aggrandizement of the army, indis­pensable to the maintenance of authority, is what has intro­duced into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the principle that is destroying it.

군대의 형성과 강화는, 권력의 유지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사회적 개념의 삶에 바로 그것을 파괴하는 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The object of authority and the justification for its exist­ence lie in the restraint of those who aim at attaining their personal interests to the detriment of the interests of society.

권력의 목적과 그것의 존재를 정당화함은 사회의 이익들에 해가 되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해들을 달성하려 의도하는 사람들을 억제함에 있다.

But however power has been gained, those who possess it are in no way different from other men, and therefore no more disposed than others to subordinate their own inter­ests to those of the society. On the contrary, having the power to do so at their disposal, they are more disposed than others to subordinate the public interests to their own. Whatever means men have devised for preventing those in authority from over-riding public interests for their own benefit, or for intrusting power only to the most faultless people, they have not so far succeeded in either of those aims.

그러나 아무리 힘이 얻어 졌더라도,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러므로, 결코 다른 사람들 보다도 그들 자신의 이익들을 사회의 이익에 종속시키고 싶은 생각을 더 가지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렇게 그들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력을 잡은 뒤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도 더욱 공공의 이익들을 자신들의 이익에 더욱 종속시키고 싶어한다. 권력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공공의 이익들을 유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권력을 오직 가장 결점이 없는 사람들에게 맡기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떤 수단을 강구하더라도, 그들은 여지껏 그들의 목적들 중의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All the methods of appointing authorities that have been tried, divine right, and election, and heredity, and ballot­ing, and assemblies and parliaments and senate-have all proved ineffectual. Everyone knows that not one of these methods attains the aim either of intrusting power only to the incorruptible, or of preventing power from being abused. Everyone knows on the contrary that men in authority-be they emperors, ministers, governors, or police officers-are always, simply from the possession of power, more liable to be demoralized, that is, to subordinate public interests to their personal aims than those who have not the power to do so. Indeed, it could not be other­wise.

시도 되었던 권력들을 임명하는 모든 방법들, , 신적인 권리, 그리고 선거, 그리고 세습제, 그리고 투표제, 그리고 집회들, 의회들 그리고 상원-모두가 실효성이 없다고 증명되었다. 이들 방법들 중에 한가지도 권력을 오직 부패하지 않는 자에게 위탁하거나, 권력이 남용되지 않도록 막으려는 목적 중의 하나를 달성하지 못함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대로 누구나 권력에 오른 사람들은-황제들, 장관들, 주지사들, 또는 경찰 공무원들 일지라도-언제나, 단순히 권력을 소유하기만 하면, 권력을 지니지 않는 사람들 보다도 더 부패되고, , 공공의 목적을 그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종속 시키려 하기 쉬움을 알고 잇다. 진정, 그것은 다르게 될 수가 없었다.

The state conception of life could be justified only so long as all men voluntarily sacrificed their personal interests to the public welfare. But so soon as there were indi­viduals who would not voluntarily sacrifice their own interests, and authority, that is, violence, was needed to restrain them, then the disintegrating principle of the coercion of one set of people by another set entered into the social conception of the organization based on it.

국가적 개념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자원해서 그들의 개인적 이해들을 공공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하는 한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자원해서 자신들의 이익들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 개인들 생기고, 권력, , 폭력이 그들을 억제하여야 되는 필요가 생기자 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강요되는 분열적인 윈리가 그것에 입각한 사회적 개념의 기구에 들어왔다.

For the authority of one set of men over another to attain its object of restraining those who override public interests for their personal ends, power ought only to be put into the hands of the impeccable, as it is supposed to be among the Chinese, and as it was supposed to be in the Middle Ages, and is even now supposed to be by those who believe in the consecration by anointing. Only under those conditions could the social organization be justified.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들을 위해서 공공의 이익들을 유린하는 사람들을 억제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권력에 대해서, 권력은 오직 결함이 없는 사람들이 손에 쥐어 져야 한다, 그것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생각되었으며, 그것은 중세 시대에도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기름부음에 의한 신성화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생각되어 지고 있다. 오직 그러한 조건들 아래서 사회적 기구들이 정당화 될 수 있다.

But since this is not the case, and on the contrary men in power are always far from being saints, through the very fact of their possession of power, the social organization based on power has no justification.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언제나 성자들이 되기는 커녕, 그들이 권력을 소유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때문에 권력을 기초로한 사회적 기구들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

Even if there was once a time when, owing to the low standard of morals, and the disposition of men to violence, the existence of an authority to restrain such violence was an advantage, because the violence of government was less than the violence of individuals, one cannot but see that this advantage could not be lasting. As the disposition of individuals to violence diminished, and as the habits of the people became more civilized, and as power grew more demoralized through lack of restraint, this advantage dis­appeared.

비록 낮은 수준의 도덕성과 사람들의 폭력에 대한 선호를 따르더라도, 정부의 폭력은 개인들의 폭력보다 덜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을 억제하는 권력의 존재가 이익이던 때가 있었다라도, 사람들은 이 이익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밖에 없었다. 개인들의 폭력에 대한 선호가 감소됨에 따라서, 그리고 사람들의 습관이 점점 문명화되어감에 따라서, 그리고 권력이 억제의 결여 때문에 더욱더 부패되고, 이런 이익이 사라졌다.

The whole history of the last two thousand years is noth­ing but the history of this gradual change of relation between the moral development of the masses on the one hand and the demoralization of governments on the other.

과거 이천년의 전체 역사는 단지 한편으로 대중들의 도덕적 발전과 다른 한편으로 정부들의 부패 사이에서 이러한 관계의 점진적 변화이다.

This, put simply, is how it has come to pass.

이것이,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이 어떻게 일어 났는가이다.

Men lived in families, tribes, and races, at feud with one another, plundering, outraging, and killing one another. These violent hostilities were carried on on a large and on a small scale: man against man, family against family, tribe against tribe, race against race, and people against people. The larger and stronger groups conquered and absorbed the weaker, and the larger and stronger they became, the more internal feuds disappeared and the more the continuity of the group seemed assured.

사람들은 가족들, 부족들, 그리고 인종들로서, 약탈하며, 겁탈하며 서로를 죽이면서, 서로 반목하며 살았다. 이러한 폭력적 적대 행위들은 대규모로 그리고 소규모로 수행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적하고, 가족이 가족을, 부족이 부족을, 인종이 인종을, 사람들이 사람들을 대적하였다. 더욱 크고 강한 무리들은 더욱 약한 자들을 정복하고 흡수하였으며, 그들이 더욱 크고 강해지면, 더욱더 내적인 반목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무리들의 계속성이 더욱 보장이 되는 것 같았다.

The members of a family or tribe, united into one com­munity, are less hostile among themselves, and families and tribes do not die like one man, but have a continuity of existence. Between the members of one state, subject to a single authority, the strife between individuals seems still less and the life of the state seems even more secure.

가족 또는 부족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하여서, 그들 사이에서는 덜 적대적이다, 그리고 가족들과 부족들은 한 사람으로서 죽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의 연속성을 가진다. 한 국가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유일한 권력에 종속되어, 개인들 간의 투쟁은 훨씬 적어 보였고 국가의 삶은 심지어는 더욱 안전해 보였다.

Their association into larger and larger groups was not the result of the conscious recognition of the benefits of such associations, as it is said to be in the story of the Varyagi. It was produced, on one hand, by the natural growth of population, and, on the other, by struggle and conquest.

그들의 점점 더 큰 무리로의 연합은, 바리아기의 이야기에서 말해진 것처럼, 그러한 연합들의 이익들에 대한 의식적인 인식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구의 자연적 증가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투쟁과 정복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After conquest the power of the emperor puts an end to internal dissensions, and so the state conception of life justifies itself. But this justification is never more than temporary. Internal dissensions disappear only in propor­tion to the degree of oppression exerted by the authority over the dissentient individuals. The violence of internal feud crushed by authority reappears in authority itself, which falls into the hands of men who, like the rest, are frequently or always ready to sacrifice the public welfare to their personal interest, with the difference that their subjects cannot resist them, and thus they are exposed to all the demoralizing influence of authority. And thus the evil of violence, when it passes into the hands of authority, is always growing and growing, and in time becomes greater than the evil it is supposed to suppress, while, at the same time, the tendency to violence in the members of the society becomes weaker and weaker, so that the violence of authority is less and less needed.

정복 뒤에, 황제의 권력은 내분들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래서 국가적 개념의 삶은 그 자체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런 정당화는 결코 일시적인 것 이상은 아니다. 내적인 분열들은 오직 권력이 분열적인 개인들에게 행사되는 억압의 정도에 비례하여 사라진다. 권력에 의해서 분쇄되는 내적인 반목의 폭력은 권력 그 자체 안에서 다시 나타나며, 그것은,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빈번히 또는 항상 그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공공의 행복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수중에 떨어지고, 그것은 그들의 백성들이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권력의 모든 부패적인 영향에 노출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리하여 폭력의 악은, 권력의 수중에 들어 갔을 때, 언제나 성장하고 성장하여서, 결국은 억압해야 된다고 여겨지는 악보다 더 커지며, 한편,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에 있어서 폭력에 대한 경향은 점점 더 약해져서, 권력의 폭력은 점점 더 적게 필요하게 된다.

Government authority, even if it does suppress private violence, always introduces into the life of men fresh forms of violence, which tend to become greater and greater in proportion to the duration and strength of the government.

정부 권력은, 비록 개인적인 폭력을 억누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소개하며, 그것은 정부의 지속성과 힘에 비례하여 점점 더 커지려는 경향이 있다.

So that though the violence of power is less noticeable in government than when it is employed by members of society against one another, because it finds expression in submission, and not in strife, it nevertheless exists, and often to a greater degree than in former days.

결국, 비록 권력의 폭력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적대적일 때보다 두드러 지지 않더라도, 그것이 투쟁이 아니라 복종에서 표현을 찾기 때문에,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며, 흔히 과거의 시대보다 정도가 심할 수 있다.

And it could not be otherwise, since, apart from the demoralizing influence of power, the policy or even the unconscious tendency of those in power will always be to reduce their subjects to the extreme of weakness, for the weaker the oppressed, the less effort need be made to keep him in subjection.

그리고 그것은 다른 방향으로 성립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권력의 부패적인 영향과는 별도로, 권력을 지닌 자들의 정책이나 심지어 무의식적인 경향은 언제나 그들의 백성을 나약함의 극치로 몰아 넣는다, 왜냐하면, 피압박자가 약해지면 질수록, 그를 종속 상태로 유지하는 노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And therefore the oppression of the oppressed always goes on growing up to the furthest limit, beyond which it cannot go without killing the goose with the golden eggs. And if the goose lays no more eggs, like the American Indians, Negroes, and Fijians, then it is killed in spite of the sincere protests of philanthropists.

그리고 그러므로 피압박자들을 억압은 언제나 커져서 그 극한까지 계속해서 자라난다, 그것을 넘기 위해서는 황금알을 가진 거위를 죽이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마치 미국의 인디안들, 흑인들, 그리고 피지인들처럼, 그 거위가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다면, 박애주의자들의 진지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살해된다.

The most convincing example of this is to be found in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es of our epoch, who are in reality no better than the slaves of ancient times subdued by conquest.

이것에 대한 가장 납득이 가는 예는 우리 시대의 노동하는 계급들의 상태에서 발견되며, 사실상 그들은 옛날 정복으로 제압된 노예들보다 결코 낫지 않다.

In spite of the pretended efforts of the higher classes to ameliorate the position of the workers, all the working classes of the present day are kept down by the inflexible iron law by which they only get just what is barely neces­sary, so that they are forced to work without ceasing while still retaining strength enough to labor for their employers, who are really those who have conquered and enslaved them.

상위 계층들의 노동자들의 위치를 개선하려는 가식적인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모든 노동하는 계급들은 딱딱한 쇳덩어리 같은 법으로서 억압되어서 그들이 오직 간신히 필요한 것 만을 얻을 수 있으며, 결국 그들은 그들의 고용주들을 위하여 노동할 수 있는 힘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동안 쉬임없이 노동하도록 강요받으며, 고용주들은 실제로 정복한 자들이며 그들을 노예화하였다.

So it has always been. In ratio to the duration and increasing strength of authority its advantages for its sub­jects disappear and its disadvantages increase.

그것은 언제나 그렇게 진행되었다. 권력의 지속기간과 증가하는 힘에 비례하여 그 백성들을 위한 이익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불이익은 증가한다.

And this has been so, independently of the forms of government under which nations have lived. The only difference is that under a despotic form of government the authority is concentrated in a small number of oppressors and violence takes a cruder form; under constitutional monarchies and republics as in France and America author­ity is divided among a great number of oppressors and the forms assumed by violence is less crude, but its effect of making the disadvantages of authority greater than its advantages, and of enfeebling the oppressed to the furthest extreme to which they can be reduced with advantage to the oppressors, remains always the same.

그리고 이것은, 백성들이 살아온 정부의 형태와는 별개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유일한 차이는 정부의 전제적 형태에 따라서 권력은 소수의 압제자들에 집중되며 폭력은 더욱 거친 형태를 가진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처럼 헌법적인 군주제나 공화제 아래서 권력은 많은 숫자의 압제자들로서 나누어지며 폭력에 의해서 취해지는 형태들은 덜 거칠지만, 권력의 불이익이 이익보다 크게 만드는 효과와, 피압박자를 최악의 상태로 약화시켜서 그들이 압제자들에 대한 이익에 있어서도 감소될 수 있는 효과는 언제나 똑같다.

Such has been and still is the condition of all the oppressed, but hitherto they have not recognized the fact. In the majority of instances they have believed in all simplicity that governments exist for their benefit; that they would be lost without a government; that the very idea of living without a government is a blasphemy which one hardly dare put into words; that this is the-for some reason terrible-doctrine of anarchism, with which a mental picture of all kinds of horrors is associated.

모든 압박받는 사람들의 상태는 그렇게 되어 왔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들에서 그들은 모든 단순함으로 정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정부가 없다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정부없이 산다는 생각 그 자체가 모독이라서 아무도 말로 표현할 엄두도 거의 내지 못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약간의 무서운 이유로서-무정부주의의 교리이며, 그로서 모든 종류의 공포들의 정신적 광경이 연상되어 있다고 믿었다.

People have believed, as though it were something fully proved, and so needing no proof, that since all nations have hitherto developed in the form of states, that form of organization is an indispensable condition of the develop­ment of humanity.

사람들은, 그것이 완전히 증명되었으며 그래서 아무런 증명도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국민들이 지금까지 국가들의 형태로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형태의 조직은 인류의 발전에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믿었다.

And in that way it has lasted for hundreds and thou­sands of years, and governments-those who happened to be in power-have tried it, and are now trying more zeal­ously than ever to keep their subjects in this error.

그리고 그런식으로 그것은 수백년 동안 그리고 수천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정부들은-권력에 있게된 사람들은-그것을 시도하였으며, 그리고 지금은 더욱 정열적으로 그들의 백성들을 이러한 오류 안에 붙들어 두려고 하고 있다.

So it was under the Roman emperors and so it is now.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sense of the uselessness and even injurious effects of state violence is more and more penetrating into men's consciousness, things might have gone on in the same way forever if governments were not under the necessity of constantly increasing their armies in order to maintain their power.

그것은 로마 제국에서도 그러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국가 폭력이 무익함과 심지어 해로운 효과들의 의미가 점점 더 사람들의 의식속에 파고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만일 정부들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이 군대들을 부단히 증가할 필요에 있지 않다면, 매사는 영원히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 갔을 것이다.

It is generally supposed that governments strengthen their forces only to defend the state from other states, in oblivion of the fact that armies are necessary, before all things, for the defense of governments from their own oppressed and enslaved subjects.

군대들이, 무엇보다 먼저, 그들 자신의 억압받으며 노예화된 백성들로부터 정부들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정부들이 오직 다른 국가들로부터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들이 군사력을 증강한다고 일반적으로 간주된다.

That has always been necessary, and has become more and more necessary with the increased diffusion of education among the masses, with the improved communication between people of the same and of different nationalities. It has become particularly indispensable now in the face of communism, socialism, anarchism, and the labor movement generally. Governments feel that it is so, and strengthen the force of their disciplined armies.

그것은 언제나 필요했으며, 대중들 사이에서의 교육이 점점 확산됨에 따라서, 똑같은 그리고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개선된 통신에 따라서, 점점 더 필요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그리고 노동 운동에 맞서기 위해서 특별히 없어서는 안되게 되었다. 정부들은 그것이 그렇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리고 그들의 훈련된 군대들의 힘을 강화시키고 있다.

In the German Reichstag not long ago, in reply to a question why funds were needed for raising the salaries of the under-officers, the German Chancellor openly declared that trustworthy under-officers were necessary to contend against socialism. Caprivi only said aloud what every statesman knows and assiduously conceals from the people. The reason to which he gave expression is essentially the same as that which made the French kings and the popes engage Swiss and Scotch guards, and makes the Rus­sian authorities of today so carefully distribute the recruits, so that the regiments from the frontiers are stationed in central districts, and the regiments from the center are stationed on the frontiers. The meaning of Caprivi's speech, put into plain language, is that funds are needed, not to resist foreign foes, but to buy under-officers to be ready to act against the enslaved toiling masses.

독일의 제국 의회에서, 얼마전에, 하급 장교들의 봉급을 올리는데 왜 기금들이 필요한가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여, 독일의 수상이 믿을 만한 하급 장교들이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카프리비는 오직 모든 정치인들이 알고 있으며 열심히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있는 것을 크게 말했다. 그가 표명을 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프랑스 왕들과 교황들이 스위스와 스코틀랜드 수비대와 교전하게 만든 것과 똑같다, 그리고 오늘날의 러시아 당국들이 조심스럽게 신병들을 배치하며, 그래서 전방들의 부대들이 중앙 지구에 배치되고, 중앙의 부대들이 전방에 배치된다. 카프리비의 연설의 의미는, 평범한 언어로서 풀어보자면, 기금이 필요하다, 그것은 외국의 적들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 고역에 처해진 대중들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로서 하급 장교들을 사기 위한 것이다.

Caprivi incautiously gave utterance to what everyone knows perfectly well, or at least feels vaguely if he does not recognize it, that is, that the existing order of life is as it is, not, as would be natural and right, because the people wish it to be so, but because it is so maintained by state violence, by the army with its bought under-officers and generals.

카프리비는 제각기 사람들이 완벽하게 알고 있거나, 적어도 그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막연하게 느끼는 것을 조심성 없이 입밖에 내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삶의 질서는 있는 그대로이며, 당연하며 옳은 것처럼, 사람들이 그것이 그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며,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 그들이 사들인 하급 장교들과 장군들을 가진 군대에 의해서, 그것이 그렇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If the laborer has no land, if he cannot use the natural right of every man to derive subsistence for himself and his family out of the land, that is not because the people wish it to be so, but because a certain set of men, the land­owners, have appropriated the right of giving or refusing admittance to the land to the laborers. And this abnormal order of things is maintained by the army. If the immense wealth produced by the labor of the working classes is not regarded as the property of all, but as the property of a few exceptional persons; if labor is taxed by authority and the taxes spent by a few on what they think fit; if strikes on the part of laborers are repressed, while on the part of capitalists they are encouraged; if certain persons appro­priate the right of choosing the form of the education, religious and secular, of children, and certain persons monopolize the right of making the laws all must obey, and so dispose of the lives and properties of other people-all this is not done because the people wish it and because it is what is natural and right, but because the government and ruling classes wish this to be so for their own benefit, and insist on its being so even by physical violence.

만일 노동자가 땅이 없다면, 각자의 사람이 자신과 그의 가족을 위해서 땅으로부터 먹을 것을 가져와야 할 자연적인 권리를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그것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어떤 집합의 사람들, 지주들이 노동자들에게 땅에 대한 사용 허가를 주거나 거절하는 권리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물들의 질서는 군대에 의해서 유지된다. 만일 노동하는 계급들의 노동으로 창출된 엄청난 부가 모든 사람들의 재산으로 여겨지지 않고, 소수의 예외적인 사람들의 재산으로 여겨진다면; 만일 노동이 권력에 의해 세금이 매겨지고, 세금들이 그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쓰여진다면; 만일 노동자들 쪽에서의 파업들이 진압되며, 반면에 자본가들 쪽은 장려된다면; 만일 특정한 사람들이 종교적 및 세속적 그리고 자녀 교육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를 차지하며, 특정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복종해야 하는 법들을 만드는 권리를 독점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목숨들과 재산들을 처분한다면-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적이고 옳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배 계급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것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며, 심지어는 신체적 폭력으로 그것이 그러게 되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Everyone, if he does not recognize this now, will know that it is so at the first attempt at insubordination or at a revolution of the existing order.

제각기 사람들은, 만일 그가 지금 이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기존 질서에 불복종하거나 혁명을 위한 첫번째 시도에서 그것이 그러함을 알 것이다.

Armies, then, are needed by governments and by the ruling classes above all to support the present order, which, far from being the result of the people's needs, is often in direct antagonism to them, and is only beneficial to the government and ruling classes.

그렇다면, 군대들은, 정부들에 의해서 그리고 지배 계급들에 의해서 무엇보다 먼저 현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며, 그것은, 사람들의 필요들의 결과 때문이기는 커녕, 종종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이며, 오직 정부와 지배 계급들에 이로운 것이다.

To keep their subjects in oppression and to be able to enjoy the fruits of their labor the government must have armed forces.

그들의 백성을 억압 상태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노동의 과실들을 즐기기 위해서, 정부는 반드시 군대를 가져야 한다.

But there is not only one government. There are other governments, exploiting their subjects by violence in the same way, and always ready to pounce down on any other government and carry off the fruits of the toil of its enslaved subjects. And so every government needs an army also to protect its booty from its neighbor brigands. Every government is thus involuntarily reduced to the necessity of emulating one another in the increase of their armies. This increase is contagious, as Montesquieu pointed out 150 years ago.

그러나 오직 한 정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백성들을 착취하는 다른 정부들도 있으며, 그들은 언제든지 다른 정부들을 덮쳐서 그들의 노예화된 백성들의 노동의 과실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각각의 정부들은 또한 이웃의 약탈자들로부터 그들의 전리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대가 필요하다. 제각기 정부는 이렇게 해서 부득이 그들의 군대의 증강에서 서로가 겨루어야 하는 필요까지 전락된다. 이러한 증강은, 몽테스키외가 150년 전에 지적하였듯이, 전염성이다.

Every increase in the army of one state, with the aim of self-defense against its subjects, becomes a source of danger for neighboring states and calls for a similar in­crease in their armies.

자기 백성들을 겨낭한 자기방어의 목적으로서, 한 국가의 군대에서의 제각기 증가는, 이웃 국가에게 위험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군대의 비슷한 증강을 요구한다.

The armed forces have reached their present number of millions not only through the menace of danger from neighboring states, but principally through the necessity of subduing every effort at revolt on the part of the sub­jects.

군대는 그들이 현재의 수백만의 숫자를 이웃 국가들의 위험의 위협때문 뿐만 아니라, 주로 백성들 쪽에서의 반항을 위한 모든 노력을 억압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Both causes, mutually dependent, contribute to the same result at once; troops are required against internal forces and also to keep up a position with other states. One is the result of the other. The despotism of a government always increases with the strength of the army and its external successes, and the aggressiveness of a govern­ment increases with its internal despotism.

두가지 이유들은, 상호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똑같은 결과에 기여한다; 군대는 내적인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 그리고 또한 다른 국가들과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요구된다. 전자는 후자의 결과이다. 정부의 독재는 언제나 군대의 힘과 외적인 성공들에 따라서 증가한다, 그리고 정부의 침략성은 내적인 독재에 따라서 증가한다.

The rivalry of the European states in constantly increasing their forces has reduced them to the necessity of having recourse to universal military service, since by that means the greatest possible number of soldiers is obtained at the least possible expense. Germany first hit on this device. And directly one state adopted it the others were obliged to do the same. And by this means all citizens are under arms to support the iniquities practiced upon them; all citizens have become their own oppressors.

끊임없이 그들의 병력을 증가하는 유럽 국가들의 대결은 그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병역 제도에 의존하도록 몰고 갔으며, 그러한 수단을 통해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숫자의 병사가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이런 장치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리고 한 국가가 그것을 채택하자 다른 국가들도 똑같이 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수단을 통하여 모든 시민들이 그들 위에 저질러 지는 범죄 행위를 지원하기 위해서 무기를 들어야 했으며; 모든 시민들이 그들 스스로의 압제자가 되었다.

Universal military service was an inevitable logical necessity, to which we were bound to come. But it is also the last expression of the inconsistency inherent i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when violence is needed to main­tain it. This inconsistency has become obvious in univer­sal military service. In fact, the whole significance of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consists in man's recognition of the barbarity of strife between individuals, and the transitoriness of personal life itself, and the transference of the aim of life to groups of persons. But with universal military service it comes to pass that men, after making every sacrifice to get rid of the cruelty of strife and the insecurity of existence, are called upon to face all the perils they had meant to avoid. And in addition to this the state, for whose sake individuals renounced their personal advantages, is exposed again to the same risks of inse­curity and lack of permanence as the individual himself was in previous times.

보편적 병역 의무는 피할 수 없는 논리적인 필요였으며, 그것에 우리는 묶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사회적 개념의 삶에 내재된 모순의 최후의 표현이며, 폭력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이런 불일치는 보편적 병역 의무에서 명백하다. 사실, 사회적 개념의 삶의 전체적인 중요성은 개인 사이의 투쟁의 야만성과 개인적인 삶 그 자체의 일시성을 사람들이 인식하며, 삶의 목적을 사람들의 무리들에 양도함에 있다. 그러나 보편적 병역 의무 때문에, 투쟁의 잔인함과 존재의 불안전함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한 뒤에, 사람들은 그들이 피하고자 의도하였던 모든 위험들을 맞이 하도록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더하여, 그들을 위하여 개인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이익들을 포기 하였으며, 개인 자신이 이전 시대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불안전한 위험들과 영속성의 결여에 노출된다.,

Governments were to give men freedom from the cruelty of personal strife and security in the permanence of the state order of existence. But instead of doing that they expose the individuals to the same necessity of strife, substituting strife with individuals of other states for strife with neighbors. And the danger of destruction for the individual, and the state too, they leave just as it was.

정부들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투쟁의 잔인함으로 부터의 자유와 존재에 있어서 국가 질서의 영속성을 주게된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대신, 이웃과의 투쟁 대신에 다른 국가의 개인들과의 투쟁으로 대치됨으로써, 그들은 개인들을 똑같은 투쟁의 필요에 노출시킨다. 그리고 개인 그리고 또한 국가의 파멸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그들은 있던 그대로 둔다.

Universal military service may be compared to the efforts of a man to prop up his falling house who so surrounds it and fills it with props and buttresses and planks and scaffolding that he manages to keep the house standing only by making it impossible to live in it.

보편적 병역 의무는, 자신의 무너져 가는 집에 받침대와 벽돌들과 판자들과 발판 등으로 둘러싸고 채워서 결국 집이 서있게는 하였지만 그 안에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만든 사람의 노력들과 비교될 것이다.

In the same way universal military service destroys all the benefits of the social order of life which it is employed to maintain.

똑같이 보편적 병역 의무는 유지하기 위해서 채택한 삶의 사회적 질서의 모든 이익들을 파괴한다.

The advantages of social organization are security of property and labor and associated action for the improve­ment of existence-universal military service destroys all this.

사회적 조직의 이익들은 번영과 노동의 안전이며 존재의 개선을 위한 관련 활동이다-보편적 병역 의무는 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The taxes raised from the people for war preparations absorb the greater part of the produce of labor which the army ought to defend.

전쟁 준비들을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거둔 세금들은 군대가 반드시 방어해야하는 노동에 의한 생산의 휠씬 큰 부분을 흡수한다.

The withdrawing of all men from the ordinary course of life destroys the possibility of labor itself. The danger of war, ever ready to break out, renders all reforms of social life vain and fruitless.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을 철수시킴은 노동 그 자체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전쟁의 위험은, 언제나 발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사회적 삶의 모든 개혁들을 헛되고 무익하게 만든다.

In former days if a man were told that if he did not acknowledge the authority of the state, he would be ex­posed to attack from enemies domestic and foreign, that he would have to resist them alone, and would be liable to be killed, and that therefore it would be to his advantage to put up with some hardships to secure himself from these calamities, he might well believe it, seeing that the sacrifices he made to the state were only partial and gave him the hope of a tranquil existence in a permanent state. But now, when the sacrifices have been increased tenfold and the promised advantages are disappearing, it would be a natural reflection that submission to authority is absolutely useless.

과거 시절에 만일 어떤 사람이, 만일 그가 국가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국내 및 국외의 적들에게 노출되며, 혼자서 그들을 막아야 하며, 살해되기 쉽고, 그러므로 이러한 재앙들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약간의 고통들을 참는 것이 그의 이익이라고 들었다면, 그는 당연히 그것을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국가들 위해서 행한 희생들은 오직 부분적이라서 영속적인 국가에서 조용한 존재의 희망을 줄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희생들이 열배나 증가되었으며, 약속한 이익들이 사라지고 있을 때, 그것은 권력에 대한 복종이 절대적으로 무익하다는 자연적인 생각일 것이다.

But the fatal significance of universal military service, as the manifestation of the contradiction inherent in the social conception of life, is not only apparent in that. The greatest manifestation of this contradiction consists in the fact that every citizen in being made a soldier becomes a prop of the government organization, and shares the responsibility of everything the government does, even though he may not admit its legitimacy.

그러나 보편적 병역 의무의 치명적인 의미는, 사회적 개념의 삶에 내재된 모순에서 드러난 것처럼, 오직 그것에서 명백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모순의 가장 큰 표시는 제각기 시민이 병사가 되는 것이 정부 조직의 받침이 되며, 비록 그가 그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행하는 모든 것의 책임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있다.

Governments assert that armies are needed above all for external defense, but that is not true. They are needed principally against their subjects, and every man, under universal military service, becomes an accomplice in all the acts of violence of the government against the citizens without any choice of his own.

정부들은 군대들이 무엇보다도 외적인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백성에 맞서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보편적 병역 의무를 진 제각기의 사람은, 자기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폭력 행위들에 있어서 공범이 된다.

To convince oneself of this one need only remember what things are done in every state, in the name of order and the public welfare, of which the execution always falls to the army. All civil outbreaks for dynastic or other party reasons, all the executions that follow on such disturbances, all repression of insurrections, and military intervention to break up meetings and to suppress strikes, all forced extor­tion of taxes, all the iniquitous distributions of land, all the restrictions on labor-are either carried out directly by the military or by the police with the army at their back. Any­one who serves his time in the army shares the responsi­bility of all these things, about which he is, in some cases, dubious, while very often they are directly opposed to his conscience. People are unwilling to be turned out of the land they have cultivated for generations, or they are un­willing to disperse when the government authority orders them, or they are unwilling to pay the taxes required of them, or to recognize laws as binding on them when they have had no hand in making them, or to be deprived of their nationality-and I, in the fulfillment of my military duty, must go and shoot them for it. How can I help asking myself when I take part in such punishments, whether they are just, and whether I ought to assist in carrying them out?

스스로가 이것을 납득하기 위해서, 그는 오직, 질서와 공공의 행복의 이름으로, 모든 국가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기억하기만 하면되며, 그 일들의 실행은 언제나 군대에 맡겨진다. 왕조나 다른 정당의 이유들에 의한 모든 시민의 소요, 그러한 소동 뒤에 따르는 모든 처형들, 폭동들에 대한 모든 진압, 그리고 집회를 중지시키며, 파업들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 개입, 모든 강제된 세금의 강탈, 모든 불법적인 토지의 분배, 그리고 노동에 대한 모든 제한들은-군대에 의해서 직접 집행되거나 군대를 등에 업은 경찰에 의해서 집행된다. 자신의 시간을 군대에서 복무한 사람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게되며, 어떤 경우들에는, 이점에 대하여 그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것들은 매우 흔히 자신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대치된다. 사람들은 수 세대 동안 그들이 재배하던 땅에서 쫓겨나고 싶어하지 않으며, 정부가 그들에게 명령할 때 흩어지고 싶지 않으며, 그들에게 요구되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으며, 그들이 법률을 만듬에 있어서 그들 참여하지 않은 법률을 그들에게 의무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들의 국적을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그리고 나는, 나의 병역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서 그것을 위해 총을 쏘아야 한다. 내가 그러한 처벌들에 참여할 때, 어떻게 내가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들이 정당한지, 그리고 그것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내가 도와야만 하는지?

Universal service is the extreme limit of violence neces­sary for the support of the whole state organization, and it is the extreme limit to which submission on the part of the subjects can go. It is the keystone of the whole edifice, and its fall will bring it all down.

보편적 의무는 전체 국가 조직을 지지함에 필요한 폭력의 극단적 한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백성들의 측면에서 복종이 가야하는 극단적 한계이다. 그것은 전체 건물의 초석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면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The time has come when the ever-growing abuse of power by governments and their struggles with one another has led to their demanding such material and even moral sacrifices from their subjects that everyone is forced to reflect and ask himself, "Can I make these sacrifices? And for the sake of what am I making them? I am expected for the sake of the state to make these sacrifices, to re­nounce everything that can be precious to man-peace, family, security, and human dignity." What is this state, for whose sake such terrible sacrifices have to be made? And why is it so indispensably necessary? "The state," they tell us, "is indispensably needed, in the first place, because without it we should not be protected against the attacks of evil-disposed persons; and secondly, except for the state we should be savages and should have neither religion, culture, education, nor commerce, nor means of communication, nor other social institutions; and thirdly, without the state to defend us we should be liable to be conquered and en­slaved by neighboring peoples."

정부들의 점점 증가하는 권력 남용과 그들 서로간의 투쟁들이 그러한 물질 및 심지어 도덕적 희생들 마저 백성들로부터 요구함에 이르러서, 모두가 숙고해 보고 다음과 같이 자문하는 때가 왔다: “내가 이런 희생들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그것들을 하는가? 나는 국가를 위해서 이런 희생들을 하며, 사람들에게 귀중한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되어 있다-평화, 가족, 안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이 국가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새 그런 무서운 희생들이 행해져야 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그렇게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필요한가?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국가는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필요하다, 첫번째로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로부터 보호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두번째로, 국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야만인들이며, 종교, 문화, 교육도 갖지 못할 것이며, 상업도, 통신 수단도, 다른 사회적 제도들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국가가 우리를 방어함이 없다면, 우리는 이웃의 민족들에게 틀림없이 정복당해서 노예가 될 것이다.”

"Except for the state," they say, "we should be exposed to the attacks of evil-disposed persons in our own country."

국가가 없었다면,”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나라 안에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에 노출 될 것이다.”

But who are these evil-disposed persons in our midst from whose attacks we are preserved by the state and its army? Even if, three or four centuries ago, when men prided themselves on their warlike prowess, when killing men was considered an heroic achievement, there were such persons; we know very well that there are no such persons now, that we do not nowadays carry or use firearms, but everyone professes humane principles and feels sympathy for his fellows, and wants nothing more than we all do-that is, to be left in peace to enjoy his existence undisturbed. So that nowadays there are no special malefactors from whom the state could defend us. If by these evil disposed persons is meant the men who are punished as criminals, we know very well that they are not a different kind of being like wild beasts among sheep, but are men just like ourselves, and no more naturally inclined to crimes than those against whom they commit them. We know now that threats and punishments cannot diminish their number; that that can only be done by change of environment and moral influence. So that the justification of state violence on the ground of the protection it gives us from evil-disposed persons, even if it had some foundation three or four centuries ago, has none whatever now. At present one would rather say on the contrary that the action of the state with its cruel methods of punishment, behind the general moral standard of the age, such as prisons, galleys, gibbets, and guillotines, tends rather to brutalize the people than to civilize them, and consequently rather to increase than diminish the number of malefactors.

그러나 우리들 중에서 이런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는 국가와 군대에 의해서 보호받는가? 비록 삼 사 세기 전에 사람들이 그들의 호전적인 용기를 자랑스러워 했을 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영웅적인 업적으로 여겨졌을 때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결코 그런 사람이 없으므로 우리는 오늘날 총을 지니고 다니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제각기 사람들은 따뜻한 신조들을 고백하고, 그의 동포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우리 모두가 하는 것 이상으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가 방해받지 않으면서 즐기도록 평화스럽게 놓여 있다. 그래서 오늘날은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악인들이 없다. 만일 이렇게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범죄자로 처벌받을 사람들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양들 속에 있는 난폭한 짐승들처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며,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것 보다도 결코 더 이상의 범죄들에 선천적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협박들과 처벌들로서 범죄의 숫자들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것은 오직 환경의 변화와 도덕적인 감화로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우리에게 주는 보호를 구실로한 국가 폭력의 정당화는, 비록 그것이 삼 사 세기 전에는 약간의 근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전혀 있을 수가 없다. 현재는 반대로 사람들은, 잔인한 처벌 방법들을 가진 국가의 행위는, 시대의 일반적인 도덕적인 기준 뒤에서, 예를 들면, 감옥들, 노예선, 교수대, 그리고 단두대 들은,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보다는 잔인하게 만들기 쉬우며, 결국, 악인들의 숫자를 줄이기 보다는 늘이기 쉽다고 차라리 말할 것이다.

"Except for the state," they tell us, "we should not have any religion, education, culture, means of communication, and so on. Without the state men would not have been able to form the social institutions needed for doing any­thing." This argument too was well founded only some centuries ago.

국가가 없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 우리는 어떤 종교, 교육, 문화, 통신 수단 등도 가질 수 없다. 국가가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들을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논리 역시 오로지 몇 세기 전이라면 너무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If there was a time when people were so disunited, when they had so little means of communication and interchange of ideas, that they could not co-operate and agree together in any common action in commerce, economics, or education without the state as a center, this want of common action exists no longer. The great extension of means of com­munication and interchange of ideas has made men com­pletely able to dispense with state aid in forming societies, associations, corporations, and congresses for scientific, economic, and political objects. Indeed government is more often an obstacle than an assistance in attaining these aims.

만일 사람들이 너무나 분열되었으며, 그들이 너무나 빈약한 통신 및 사상들의 교환 수단들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어서 그들이 서로 협력할 수 없고, 상업, 경제, 또는 교육에서 국가를 추축으로 하지 않으면 어떠한 공통의 행동에도 합의할 수 없다면, 이런 공통의 행동의 필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 및 사상들의 교류 수단들의 커다란 확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단체들, 협회들, 기업들, 그리고 과학, 경제, 정치적인 목적들을 위한 회의들을 형성함에 완전히 국가의 도움이 없어도 되도록 만들었다. 사실 정부는 이들 목적들을 달성함에 있어서 도움이 되기 보다는 종종 장애가 된다.

From the end of last century there has hardly been a single progressive movement of humanity which has not been retarded by the government. So it has been with abolition of corporal punishment, of trial by torture, and of slavery, as well as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liberty of the press and the right of public meeting. In our day governments not only fail to encourage, but directly hinder every movement by which people try to work out new forms of life for themselves. Every attempt at the solution of the problems of labor, land, politics, and religion meets with direct opposition on the part of government.

지난 세기 말엽부터, 정부에 의해서 저지 받지 않았던 단 한건의 인류의 진보적 운동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것은 체형, 고문에 의한 심리, 노예제도에서 그러했으며, 뿐만 아니라 출판의 자유 및 대중 집회의 권리 확립에서 그러했다. 우리 시대에는 정부들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는 모든 운동을 장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저지한다. 노동, 토지, 정치, 그리고 종교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위한 모든 시도들은 정부 측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반대를 만난다.

"Without governments nations would be enslaved by their neighbors." It is scarcely necessary to refute this last argument. It carries its refutation on the face of it. The government, they tell us, with its army, is necessary to defend us from neighboring states who might enslave us. But we know this is what all governments say of one another, and yet we know that all the European nations profess the same principles of liberty and fraternity, and therefore stand in no need of protection against one another. And if defense against barbarous nations is meant, one-thousandth part of the troops now under arms would be amply sufficient for that purpose. We see that it is really the very opposite of what we have been told. The power of the state, far from being a security against the attacks of our neighbors, exposes us, on the contrary, to much greater danger of such attacks. So that every man who is led, through his compulsory service in the army, to reflect on the value of the state for whose sake he is expected to be ready to sacrifice his peace, security, and life, cannot fail to perceive that there is no kind of justifi­cation in modern times for such a sacrifice.

정부가 없다면 국민들은 이웃 사람들에 의해서 노예가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논리는 거의 논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말한다, 군대를 가진 정부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이웃 국가들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모든 정부들이 서로에 대해 말하는 것임을 안다, 그리나 우리는 모든 유럽의 국민들이 똑같은 자유와 형제애의 원리들을 고백하여, 그로므로 서로에 대항하여 보호될 필요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야만적인 민족들에 대항하는 방어를 의미한다면, 지금 무장하고 있는 군대의 천분의 일만 해도 그러한 목적에 풍부하여 넉넉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진실로 우리가 들은 것의 너무나 정반대임을 안다. 국가의 권력은, 우리의 이웃 국가들의 공격들에 대응하는 안전이기는 커녕, 반대로, 우리를 그러한 공격들 보다 훨씬 큰 위험에 노출 시킨다. 그래서, 군대에서 자신의 강제 복무를 통하여, 그가 누구를 위하여 그의 평화, 안전 그리고 생명을 희생하도록 예정되었는지 국가에 대한 가치를 숙고하게 되는 제각기 사람들은, 그러한 희생에 대하여 현대에는 어떤 종류의 정당화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And it is not only from the theoretical standpoint that every man must see that the sacrifices demanded by the state have no justification. Even looking at it practically, weighing, that is to say, all the burdens laid on him by the state, no man can fail to see that for him personally to comply with state demands and serve in the army, would, in the majority of cases, be more disadvantageous than to refuse to do so.

그리고 제각기 사람이 국가에 의해서 요구되는 희생들은 아무런 정당성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함은 오직 이론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다. 심지어 그것을 실제적으로 바라 보고, 다시 말한다면, 국가에 의해서 자신에게 얹혀진 모든 부담들을 저울질 해보면, 그가 개인적으로 국가의 요구들에 응하여 군대에 복무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들에서,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욱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If the majority of men choose to submit rather than to refuse, it is not the result of sober balancing of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but because they are induced by a kind of hypnotizing process practiced upon them. In submitting they simply yield to the suggestions given them as orders, without thought or effort of will. To resist would need independent thought and effort of which every man is not capable. Even apart from the moral signifi­cance of compliance or non-compliance, considering material advantage only, non-compliance will be more advantageous in general.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하기 보다는 복종하기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이익들과 불이익들의 냉정한 저울질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에게 실행된 일종의 최면 과정에 이끌린 것이다. 복종한다는 것은 그들이 생각이나 의지의 노력 없이 단순히 그들에게 명령으로 주어진 사항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저항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는 독립적인 생각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심지어 복종 또는 불복종의 도덕적 의미를 떠나서, 물질적인 이익을 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불복종이 일반적으로 더욱 이로울 것이다.

Whoever I may be, whether I belong to the well-to-do class of the oppressors, or the working class of the oppressed, in either case the disadvantages of non-com­pliance are less and its advantages greater than those of compliance. If I belong to the minority of oppressors the disadvantages of non-compliance will consist in my being brought to judgment for refusing to perform my duties to the state, and if I am lucky, being acquitted or, as is done in the case of the Mennonites in Russia, being set to work out my military service at some civil occupation for the state; while if I am unlucky, I may be condemned to exile or imprisonment for two or three years (I judge by the cases that have occurred in Russia), possibly to even longer imprisonment, or possibly to death, though the probability of that latter is very remote.

내가 누구이던 간에, 내가 압제자들 같은 부유한 계급에 속하든, 압박받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든, 양자의 경우에 있어서 불복종의 불이익들이 적으며, 그 이익들은 복종의 그것들보다 크다. 만일 내가 압제자들의 소수에 속한다면 불복종의 불이익은 국가에 대한 나의 의무들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함에 대한 심판을 받음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다행스럽다면, 방면이 되어서 또는 러시아의 메노나이트들의 경우처럼, 국가를 위한 어떤 시민 업무에 나의 병역 의무를 수행하도록 배치될 것이다; 반면에 내가 불행하다면, 나는 이 삼 년 동안 추방이나 투옥을 선고받을 것이다(나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들로서 판단해 본다), 아마도 좀 더 긴 투옥, 또는 아마도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비록 후자의 확률은 거의 멀지만.

So much for the disadvantages of non-compliance.

불복종의 불이익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이다.

The disadvantages of compliance will be as follows: if I am lucky I shall not be sent to murder my fellow-creatures, and shall not be exposed to great danger of being maimed and killed, but shall only be enrolled into military slavery. I shall be dressed up like a clown, I shall be at the beck and call of every man of a higher grade than my own from corporal to field-marshal, shall be put through any bodily contortions at their pleasure, and after being kept from one to five years I shall have for ten years afterward to be in readiness to undertake all of it again at any minute. If I am unlucky I may, in addition, be sent to war, where I shall be forced to kill men of foreign nations who have done me no harm, where I may be maimed or killed, or sent to certain destruction as in the case of the garrison of Sevastopol, and other cases in every war, or what would be most terrible of all, I may be sent against my own com­patriots and have to kill my own brothers for some dynastic or other state interests which have absolutely nothing to do with me.

복종의 불이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내가 운이 좋다면 나의 동포 인간들을 살해하러 보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병신이 되거나 살해되는 커다란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병역 노예로서 등록될 것이다. 나는 광대처럼 입혀지고, 하사부터 육군 원수까지 나보다 높은 계급의 모든 사람이 시키며 부르는대로 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장난에 따라서 어떠한 신체적 기합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년 내지 오년 동안 붙잡혀 있다가 10년동안 어느 순간에라도 그 모든 것을 다시 수행하도록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내가 운이 나쁘다면, 게다가, 나는 전쟁에 보내질 것이며, 그곳에서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외국 국민들을 살해하도록 명령을 받으며, 그곳에서 나는 병신이 되거나 살해되거나, 각기 전쟁에서 세바스토폴 수비대 및 다른 경우들 처럼 특정한 파멸의 장소로 보내질 것이거나, 또는 가장 공포스러운 것으로서, 나의 동포들에 대항하여 보내질 것이며 절대적으로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왕권이나 다른 국가적 이해들을 위하여 나 자신의 형제들을 죽여야 할 것이다.

So much for the comparative disadvant­ages.

비교적인 불이익들은 이정도로 해두자.

The comparative advantages of compliance and non-compliance are as follows:

복종과 불복종의 비교적 이익들은 다음과 같다:

For the man who submits, the advantages will be that, after exposing himself to all the humiliation and perform­ing all the barbarities required of him, he may, if he escapes being killed, get a decoration of red or gold tinsel to stick on his clown's dress; he may, if he is very lucky, be put in command of hundreds of thousands of others as brutalized as himself; be called a-field-marshal, and get a lot of money.

복종하는 사람에 있어서 이익들은, 자신을 모든 수모에 노출시키고 그에게 요구되는 모든 야만 행위들을 수행한 다음에, 만일 그가 살해되는 것을 피한다면, 그는 아마도 적색 또는 금색의 금속 조각을 그의 광대 제복에 달게 될 것이다; 그는, 운이 매우 좋다면, 자신과 같이 짐승처럼 되어버린 수만명의 지휘를 맡을 것이며; 육군 원수로 불리어서, 많은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The advantages of the man who refuses to obey will con­sist in preserving his dignity as a man, gaining the approba­tion of good men, and above all knowing that he is doing the work of God, and so undoubtedly doing good to his fellow-men.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이익들은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존하고, 선한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며,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동포들에게 선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앎에 있다.

So much for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both lines of conduct for a man of the wealthy classes, an op­pressor. For a man of the poor working class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will be the same, but with a great increase of disadvantages. The disadvantages for the poor man who submits will be aggravated by the fact that he will by taking part in it, and, as it were, assenting to it strengthen the state of subjection in which he is held him­self.

부유한 계급들, 즉 압제자인 사람의 행위에서 두가지 방향의 이익들과 불이익들에 대해서 이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사람에게 있어서 이익들과 불이익들은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불이익들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복종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불이익들은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말하자면, 그것에 동의함으로써, 그를 매어 놓은 종속의 상태를 강화시킨다는 사실에 의해서 가중될 것이다.

But no considerations as to how far the state is useful or beneficial to the men who help to support it by serving in the army, nor of the advantages or disadvantages for the individual of compliance or non-compliance with state demands, will decide the question of the continued exist­ence or the abolition of government. This question will be finally decided beyond appeal by the religious con­sciousness or conscience of every man who is forced, whether he will or no, through universal conscription, to face the question whether the state is to continue to exist or not.

그러나 군대에 복무함으로써 국가를 지지하기를 돕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얼마나 깊이 유익한지 또는 이익이 되는지에 대해서, 또는 국가의 명령들에 복종함 또는 불복종함에 있어서 개인에 대한 이익들 또는 불이익들에 관한 어떠 고려들도, 정부의 지속적인 존재나 폐지의 문제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종교적인 자각에 또는 제각기 사람의 양심을 초월하여 결국 결정될 것이며, 그는 원하든 말든, 보편적인 징병제도를 통하여, 국가가 계속적으로 존속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직면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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