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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by Leo Tolstoy



기독교적 삶의 개념은 이미 우리 사회에 생겨났다, 그리고 틀림없이 폭력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의 삶의 조직을 끝낼 것이다-그것이 언제가 되더라도.

The Condition and Organization of our Society are Terrible, but they Rest only on Public Opinion, and can be Destroyed by it-Already Violence is Regarded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the Number of those who are Ready to Serve the Government is Diminishing; and even the Servants of Government are Ashamed of their Position, and so often Do Not Perform their Duties-These Facts are all Signs of the Rise of a Public Opinion, which Continually Growing will Lead to No One being Willing to Enter Government Service-Moreover,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those Offices are of No Practical Use-Men already Begin to Understand the Futility of all Institutions Based on Violence, and if a Few already Understand it, All will One Day Understand it-The Day of Deliverance is Unknown, but it Depends on Men Themselves, on how far Each Man Lives According to the Light that is in Him.

우리 사회의 상황과 조직은 무섭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여론에 의지하며, 그것에 의해서 파괴될 수 있다-이미 폭력은 다른 관점으로부터 여겨지고 있다, 정부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정부의 관리들도 그들의 지위를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자주 그들의 의무들을 수행하지 않는다-이런 사실들은 여론이 생겨남의 모든 징표로서, 그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의지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정부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더욱이, 그런 관직들은 아무런 실용적 점점 가치가 없어진다-사람들은 이미 폭력에 기초하고 있는 모든 기관들의 무용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다 그것을 깨달을 것이다-구원의 날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 자신에게, 얼마나 깊이 제각기 사람이 그의 안에 있는 빛에 따라 사는가에 달려있다.

The position of Christian humanity with its prisons, galleys, gibbets, its factories and accumulation of capital, its taxes, churches, gin-palaces, licensed brothels, its ever-increasing armament and its millions of brutalized men, ready, like chained dogs, to attack anyone against whom their master incites them, would be terrible indeed if it were the product of violence, but it is preeminently the product of public opinion. And what has been established by public opinion can be destroyed by public opinion-and, indeed, is being destroyed by public opinion.

감옥들, 노예선, 교수대, 공장들 그리고 자본의 축적, 세금들, 교회들, 술집들, 허가받은 매춘굴, 마치 줄에 묶인 개떼들 처럼, 그들의 주인이 명령하면 누구라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짐승 같은 사람들의 군대와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독교 인류의 상황은 정말 그것이 폭력의 산물이라면 공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압도적으로 여론의 산물이다. 그리고 여론에 의해서 세워진 것은 여론으로서 파괴될 수 있다-그리고, 사실, 여론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다.

Money lavished by hundreds of millions, tens of millions of disciplined troops, weapons of astounding destructive power, all organizations carried to the highest point of perfection, a whole army of men charged with the task of deluding and hypnotizing the people, and all this, by means of electricity which annihilates distance, under the direct control of men who regard such an organization of society not only as necessary for profit, but even for self-preserva­tion, and therefore exert every effort of their ingenuity to preserve it-what an invincible power it would seem! And yet we need only imagine for a moment what will really inevitably come to pass, that is, the Christian social standard replacing the heathen social standard and estab­lished with the same power and universality, and the majority of men as much ashamed of taking any part in violence or in profiting by it, as they are to-day of thiev­ing, swindling, begging, and cowardice; and at once we see the whole of this complex, and seemingly powerful organization of society falls into ruins of itself without a struggle.

수억, 수천 만의 훈련된 군대들, 놀라우리만치 파괴적인 힘을 가진 무기들, 완성의 극치에 다다른 모든 조직들, 사람들을 속이고 마비시키는 임무를 띤 전체 사람들의 군대,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먼 거리에서도 전멸시키는 전기에 의해서, 그러한 사회 조직을 이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보존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기며, 그러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창의력을 통한 모든 노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직접 통제하기 위하여 재정이 낭비된다-그 얼마나 무너뜨릴 수 없는 힘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오직 잠시동안 실제 무슨 일이 일어 날 것인지 상상해 보기만 하면 된다, , 이교적 사회적 원리를 대체하고 똑 같은 힘과 보편성으로 성립된 기독적인 사회적 원리,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이익을 취함이나 폭력에 참가함을 그만큼 수치스러워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오늘날, 도둑질하며, 속이고, 애원하고 비겁하다; 그리고 당장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고 일견 강력한 전체 사회 조직이 투쟁하지도 않고서 멸망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된다.

And to bring this to pass, nothing new need be brought before men's minds. Only let the mist, which veils from men's eyes the true meaning of certain acts of violence, pass away, and the Christian public opinion which is spring­ing up would overpower the extinct public opinion which permitted and justified acts of violence. People need only come to be as much ashamed to do deeds of violence, to assist in them or to profit by them, as they now are of being, or being reputed a swindler, a thief, a coward, or a beggar. And already this change is beginning to take place. We do not notice it just as we do not notice the movement of the earth, because we are moved together with everything around us.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 나려면, 사람들의 마음 앞에 새로운 어떤 것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오직 사람들의 눈에서 특정한 폭력 행위들의 진정한 의미를 가리는 안개만 사라진다면, 솟아 올라오는 기독교적 여론이 폭력 행위들을 허용하고 정당화시켰던 소멸된 여론을 압도할 것이다. 사람들은 오직 폭력 행위들을 행함과, 그것들로서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제 만천하의 사기꾼이며, 도둑, 비겁자, 또는 거렁뱅이임을 부끄러워 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이미 이런 변화는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마치 지구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우리가 움직여 지기 때문이다.

It is true that the organization of society remains in its principal features just as much an organization based on violence as it was one thousand years ago, and even in some respects, especially in the preparation for war and in war itself, it appears still more brutal. But the rising Christian ideal, which must at a certain stage of development replace the heathen ideal of life, already makes its influence felt. A dead tree stands apparently as firmly as ever-it may even seem firmer because it is harder-but it is rotten at the core, and soon must fall. It is just so with the present order of society, based on force. The external aspect is unchanged. There is the same division of oppressors and oppressed, but their view of the significance and dignity of their respective positions is no longer what it once was.

사회 조직은 그 근본적인 특징에 있어서 천 년 전에 폭력에 기초하던 조직과 정말 똑같으며,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특히 전쟁의 준비나 전쟁 그 자체에서 훨씬더 잔인해 보인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어나고 있는 기독교적인 이상은, 그것은 특정한 발전의 단계에서 반드시 이교적인 삶의 이상을 대체해야 하는 것으로서, 이미 그 영향이 느껴지게 하고 있다. 죽은 나무는 겉으로 보기에도 여전히 단단한 것처럼 서있다-그것은 심지어 그것이 더 단단하기 때문에 더욱 확고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심층부터 썩었으며, 곧 넘어진다. 그것은 힘에 기초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질서와도 정말 똑같다. 외적인 양상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구별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중요함에 대한 시각 그리고 그들의 상대적인 입장들의 근엄함은 이제 과거에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The oppressors, that is, those who take part in govern­ment, and those who profit by oppression, that is, the rich, no longer imagine, as they once did, that they are the elect of the world, and that they constitute the ideal of human happiness and greatness, to attain which was once the highest aim of the oppressed.

억압하는 자들, , 정부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고 억압함으로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 , 부유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세상에서 선택된 자들이며, 과거에 억압받는 자들의 가장 큰 목적이던 인간의 행복과 위대함의 이상을 구성한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Very often now it is not the oppressed who strive to attain the position of the oppressors, and try to imitate them, but on the contrary the oppressors who voluntarily abandon the advantages of their position, prefer the con­dition of the oppressed, and try to resemble them in the simplicity of their life.

억압하는 자들의 지위를 얻으려고 애를 쓰고 그들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은 억압받는 자가 아니라, 반대로 의도적으로 그들의 지위의 이점들을 포기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상황을 선호하며, 그들의 삶의 단순함에서 그들을 닮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억압하는 자들임이 이제는 매우 흔하다.

Not to speak of the duties and occupations now openly despised, such as that of spy, agent of secret police, money­lender, and publican, there are a great number of professions formerly regarded as honorable, such as those of police officials, courtiers, judges, and administrative functionaries, clergymen, military officers, speculators, and bankers, which are no longer considered desirable positions by everyone, and are even despised by a special circle of the most respected people. There are already men who voluntarily abandon these professions which were once reckoned irre­proachable, and prefer less lucrative callings which are in no way connected with the use of force.

간첩, 비밀 경찰 요원, 사채업자, 징세원과 같이 오늘날 공개적으로 비난받는 의무들과 직업들은 말할 것도 없이, 경찰 공무원들, 비서관들, 판사들, 그리고 행정 기능직들, 성직자들, 군 장교들, 투기가들, 그리고 은행가들처럼, 이전에 명예롭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직업들이, 이제는 누구나에게 더 이상 바람직한 지위로서 여겨지지 않으며, 심지어 가장 존경받는 특별한 범주의 사람들에게 비난받는다. 이전에 나무랄데 없다고 여겨지던 이런 직업들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폭력의 사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수입이 적은 직업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다.

And there are even rich men who, not through religious sentiment, but simply through special sensitiveness to the social standard that is springing up, relinquish their in­herited property, believing that a man can only justly con­sume what he has gained by his own labor.

그리고 심지어, 종교적인 감정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솟아 나오는 사회적 규범에 민감함을 통하여, 사람은 오직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얻은 것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상속받은 재산을 포기하는 부자들도 있다.

The position of a government official or of a rich man is no longer, as it once was, and still is among non-Christian peoples, regarded as necessarily honorable and deserving of respect, and under the special blessing of God. The most delicate and moral people (they are generally also the most cultivated) avoid such positions and prefer more humble callings that are not dependent on the use of force.

정부 관리나 부유한 사람들의 지위는,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비기독교인들 사이에 아직도 그러한 것처럼, 더 이상 당연히 존경스럽고 존경을 받음직하다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가장 섬세하고 도덕적인 사람들(그들은 일반적으로 또한 가장 교양이 있다)은 그러한 지위들을 피하며 폭력의 사용에 의존하지 않는 좀더 낮은 직업들을 선호한다.

The best of our young people, at the age when they are still uncorrupted by life and are choosing a career, prefer the calling of doctor, engineer, teacher, artist, writer, or even that of simple farmer living on his own labor, to legal, administrative, clerical, and military positions in the pay of government, or to an idle existence living on their incomes.

우리의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도, 그들이 아직 삶에 의해서 오염되지 않은 나이에 그리고 진로를 선택할 때, 의사, 기술자, 교사, 예술가, 작가, 또는 심지어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농부의 직업을, 정부로부터 보수를 받는 법률, 행정, 성직, 그리고 군사 등의 지위보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게으른 존재보다 선호한다.

Monuments and memorials in these days are mostly not erected in honor of government dignitaries, or generals, or still less of rich men, but rather of artists, men of science, and inventors, persons who have nothing in common with the government, and often have even been in conflict with it. They are the men whose praises are celebrated in poetry, who are honored by sculpture and received with triumphant jubilations.

이 시대에는 기념물이나 기념비가 대체적으로 정부의 유명인사, 또는 장군들, 또는 부유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지기 보다는, 예술가들, 과학자들, 그리고 발명가들처럼 정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위하여 세워진다. 그들에 대한 찬양이 시에서 나타나고, 조각품으로 명예가 부여되고, 승리의 환호를 받는다.

The best men of our day are all striving for such places of honor. Consequently the class from which the wealthy and the government officials are drawn grows less in number and lower in intelligence and education, and still more in moral qualities. So that nowadays the wealthy class and men at the head of government do not constitute, as they did in former days, the elite of society; on the con­trary, they are inferior to the middle class.

우리 시대의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명예의 자리들을 위해 애쓴다. 결국 부유한 자들과 정부 관료들에서 나오는 계급들은 점점 그 숫자가 그리고 그 지능과 교육이,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인 품성들에서 줄어든다. 그래서 오늘날 부유한 계급과 정부의 지도자 상부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엘리트를 구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중산 계급보다 더 열등하다.

In Russia and Turkey as in America and France, how­ever often the government change its officials, the majority of them are self-seeking and corrupt, of so low a moral standard that they do not even come up the elementary requirements of common honesty expected by the govern­ment. One may often nowadays hear from persons in authority the naive complaint that the best people are always, by some strange-as it seems to them-fatality, to be found in the camp of the opposition. As though men were to complain that those who accepted the office of hangman were-by some strange fatality-all persons of very little refinement or beauty of character.

미국 및 프랑스처럼, 러시아 및 터어키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자주 그 관료들을 바꾸더라도,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부패되었으며, 도덕적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들은 심지어 정부에 의해서 요구되는 보통의 정직함의 기초적인 의무사항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가장 좋은 사람들은 언제나-그들이 얼핏 보기에-어떤 이상한 운명에 의해서 반대 진영에서 발견된다는 순진한 불평을 권력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교수형 집행의 직책을 받아 들인 사람들은-어떤 이상한 운명에 의해서-모두 다 인품의 세련됨이나 우아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The most cultivated and refined people of our society are not nowadays to be found among the very rich, as used formerly to be the rule. The rich are mostly coarse money grubbers, absorbed only, in increasing their hoard, generally by dishonest means, or else the degenerate heirs of such money grubbers, who, far from playing any prominent part in society, are mostly treated with general contempt.

우리 사회의 가장 교양있고 세련된 사람들은, 과거에 원칙이 되어 왔던 것처럼, 부유한 사람들 자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천하게 돈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며, 일반적으로 부정직한 방법으로 오직 그들의 재물을 늘리면서, 또는 그러한 돈벌레들의 타락한 상속자들은, 사회에서 어떤 돋보이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대체적으로 전반적인 경멸을 받는다.

And besides the fact that the class from which the servants of government and the wealthy are drawn grows less in number and lower in caliber, they no longer them­selves attach the same importance to their positions as they once did; often they are ashamed of the ignominy of their calling and do not perform the duties they are bound to perform in their position. Kings and emperors scarcely govern at all; they scarcely ever decide upon an internal reform or a new departure in foreign politics. They mostly leave the decision of such questions to government institu­tions or to public opinion. All their duties are reduced to representing the unity and majesty of government. And even this duty they perform less and less successfully. The majority of them do not keep up their old unapproach­able majesty, but become more and more democratized and even vulgarized, casting aside the external prestige that remained to them, and thereby destroying the very thing it was their function to maintain.

그리고 정부의 관리들과 부유한 자들이 배출되는 계급은 그 숫자가 줄어 든다는 사실 외에,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지위들에 대해 똑 같은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가금 그들은 그들의 직업에 대한 불명예를 부끄러워하며, 그들의 직책상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들을 수행하지 않는다. 왕들과 황제들은 거의 통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내의 개혁이나 외국 정치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결정을 정부 기관들이나 여론에 맡긴다. 그들의 모든 의무들은 정부의 통일성과 위엄을 대표함에 그친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은 점점 더 이런 의무들을 수행함에 어려워 진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과거의 면책권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더 민주화되고 심지어 통속화 되어가며, 그들에게 남아 있던 외적인 위신은 던져버리고, 그러므로서 존재하기 위해 기능하는 바로 그 것을 파괴한다.

It is just the same with the army. Military officers of the highest rank, instead of encouraging in their soldiers the brutality and ferocity necessary for their work, diffuse education among the soldiers, inculcate humanity, and often even themselves share the socialistic ideas of the masses and denounce war. In the last plots against the Russian Government many of the conspirators were in the army. And the number of the disaffected in the army is always increasing. And it often happens (there was a case, indeed, within the last few days) that when called upon to quell disturbances they refuse to fire upon the people. Military exploits are openly reprobated by the military themselves, and are often the subject of jests among them.

그것은 군대도 마찬가지다. 고위급의 군 장교들은, 임무를 위한 잔인성과 난폭함을 그들의 병사들에게 권장하기 보다는, 병사들을 교육시키면, 인류애를 주입시키고, 종종 민중들의 사회주의적 개념들을 공유하고 전쟁을 비난한다. 최근의 러시아 정부에 대한 음모들은 많은 수의 음모자들이 군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반정부 인사들의 숫자는 항상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끔 (사실, 최근 몇일 전에 한 사건이 있었다) 소요를 진압하라고 명령 받았을 때, 그들은 사람들에게 사격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한다. 군사적 업적들은 군 스스로에 의해서도 공개적으로 비난받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가끔 조롱의 대상이다.

It is the same with judges and public prosecutors. The judges, whose duty it is to judge and condemn criminals, conduct the proceedings so as to whitewash them as far as possible. So that the Russian Government, to procure the condemnation of those whom they want to punish, never entrust them to the ordinary tribunals, but have them tried before a court martial, which is only a parody of justice. The prosecutors themselves often refuse to proceed, and even when they do proceed, often in spite of the law, really defend those they ought to be accusing. The learned jurists whose business it is to justify the violence of authority, are more and more disposed to deny the right of punishment and to replace it by theories of irresponsibility and even of moral insanity, proposing to deal with those they call criminals by medical treatment only.

법관들과 검찰관 들도 마찬가지다. 법관들은, 그들의 의무가 범죄인들을 재판하고 선고하는 것이지만, 가능한 그들을 덮어 주려고 소송 절차를 진행한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그들이 처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고를 얻어내기 위해서, 결코 그들을 일반 법정에 맡기지 않으며 군사 법정에서 재판하려고 하며, 그것은 오직 정의를 흉내 낼 뿐이다. 검찰관들 스스로도 가끔 소송을 거부하며, 심지어 소송할 때에도, 가끔 법에 반대하여 그들이 기소하고 있는 자들을 실상 옹호할 때도 있다.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인 학식있는 변호사들도, 점점 더 처벌하는 권리를 부정하며, 그것을 책임없음 그리고 심지어 도덕적 정신이상의 이론들로서 대체하며, 그들의 범죄자들로 부르는 사람들을 오직 의학적 치료로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Jailers and overseers of galleys generally become the champions of those whom they ought to torture. Police officers and detectives are continually assisting the escape of those they ought to arrest. The clergy preach tolerance, and even sometimes condemn the use of force, and the more educated among them try in their sermons to avoid the very deception which is the basis of their position and which it is their duty to support. Executioners refuse to perform their functions, so that in Russia the death penalty cannot be carried out for want of executioners. And in spite of all the advantages bestowed on these men, who are selected from convicts, there is a constantly diminishing number of volunteers for the post. Governors, police officials, tax collectors often have compassion on the people and try to find pretexts for not collecting the tax from them. The rich are not at ease in spending their wealth only on them­selves, and lavish it on works of public utility. Land­owners build schools and hospitals on their property, and some even give up the ownership of their land and transfer it to the cultivators, or establish communities upon it. Millowners and manufacturers build hospitals, schools, savings banks, asylums, and dwellings for their work­people. Some of them form co-operative associations in which they have shares on the same terms as the others. Capitalists expend a part of their capital on educational, artistic, philanthropic, and other public institutions. And many, who are not equal to parting with their wealth in their lifetime, leave it in their wills to public institutions.

간수들과 노예선들의 감시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고문해야 하는 사람들의 옹호자가 된다. 경찰관리들 그리고 수사관들도 그들이 체포해야 되는 사람들의 탈출을 지속적으로 돕는다. 성직자들은 관용을 설교하고, 심지어 폭력의 사용을 비난하며, 그들 중에서 더 교육받은 자들은 그들의 설교에서 그들 지위의 기본이 되며,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에도 바로 그 기만을 피하려고 시도한다. 사행 집행자들은 그들이 맡은 일들을 수행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사형 집행자들의 부족으로 사형이 집행될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은 죄수들에게서 선발되어 왔는데, 이 사람들에게 수여되는 모든 이익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직책에 자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다. 총독들, 경찰관리들, 세무원들도 가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들이지 않는 구실을 찾으려고 한다. 부자들은 그들의 재물을 스스로를 위하여 소비함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 공공의 이익에 내어 놓는다. 지주들은 그들의 재산으로 학교들과 병원들을 세운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토지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경작자에게 양도하거나, 그 위에 공동체를 설립하기도 한다. 공장 소유자나 제조업자들도 병원들, 학교들, 저축은행, 수용소, 그리고 작업자들을 위한 숙소들을 짓는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몫을 향유하는 협력 단체를 만든다. 자본가들은 그들 자금의 일부를 교육, 예술, 인문 및 다른 기관들에 지출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일생에서 그들의 재산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유언으로서 재산들을 공공 기관들에 남긴다.

All these phenomena might seem to be mere exceptions, except that they can all be referred to one common cause. Just as one might fancy the first leaves on the budding trees in April were exceptional if we did not know that they all have a common cause, the spring, and that if we see the branches on some trees shooting and turning green, it is certain that it will soon be so with all.

이 모든 현상들이 모두 하나의 공통된 원인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은 단순히 예외처럼 보일지 모른다. 사월에 싹이 트는 나무들의 첫번째 잎들이, 그들이 모두 같은 원인에서, , 봄에서, 온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리고 우리가 어떤 나무들의 가지들이 싹이 나고 잎이 푸르러 지는 것을 볼 때, 곧 모든 것이 그럴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가 아마도 그것들이 예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So it is with the manifestation of the Christian standard of opinion on force and all that is based on force. If this standard already influences some, the most impressionable, and impels each in his own sphere to abandon advantages based on the use of force, then its influence will extend further and further till it transforms the whole order of men's actions and puts it into accord with the Christian ideal which is already a living force in the vanguard of humanity.

그래서 그것은 힘이나 힘에 기초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독교적 기준으로서의 여론의 형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이미 이런 기준이 어떤 사람들, 즉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 영향을 미치고, 각자에게 그 자신의 분야에서 힘의 사용에 기초한 이익들을 포기하라고 강요한다면, 그 영향력은 멀리 멀리 넓혀져서 사람들의 행위들의 전체 질서를 변형하고 인류의 선두에 서서 이미 살아 있는 힘인 기독교적인 이상에 부합하도록 만들 것이다.

And if there are now rulers, who do not decide on any step on their own authority, who try to be as unlike monarchs, and as like plain mortals as possible, who state their readiness to give up their prerogatives and become simply the first citizens of a republic; if there are already soldiers who realize all the sin and harm of war, and are not willing to fire on men either of their own or a foreign country; judges and prosecutors who do not like to try and to condemn criminals; priests, who abjure deception; tax-gatherers who try to perform as little as they can of their duties, and rich men renouncing their wealth-then the same thing will inevitably happen to other rulers, other soldiers, other judges, priests, tax-gatherers, and rich men. And when there are no longer men willing to fill these offices, these offices themselves will disappear too.

그리고 만일 이제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어떤 발걸음도 결정하지 않으며, 군주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 가능한 평범한 인간들처럼 되려하고, 그들의 특권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단순히 공화국의 첫번째 시민이 되겠다고 선언한다면; 만일 이미 전쟁의 모든 죄악과 해악을 깨닫고, 자신의 나라라 외국의 사람들에게 총을 쏘지 않으려는 병사들이 있다면; 범죄인들을 재판하고 선고하려 하지 않는 법관들이나 검찰관들이 있다면; 기만을 포기하는 성직자들; 그들의 임무로서 가능한 적게 수행하려는 세무원이 있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재산을 포기하려는 부자들이 있다면-그때는 똑 같은 일들이 다른 통치자들, 다른 병사들, 다른 법관들, 성직자들, 세무원들, 그리고 부자들에게도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관직들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들 관직들 자체도 역시 사라질 것이다.

But this is not the only way in which public opinion is leading men to the abolition of the prevailing order and the substitution of a new order. As the positions based on the rule of force become less attractive and fewer men are found willing to fill them, the more will their uselessness be apparent.

그러나 우위를 차지하는 질서의 폐지와 새로운 질서로 대체함으로 여론이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힘에 의한 통치에 기초한 지위들이 점점 매력이 없어지면 질수록 그것들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면 질수록, 그것들의 무익함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Everywhere throughout the Christian world the same rulers, and the same governments, the same armies, the same law courts, the same tax-gatherers, the same priests, the same rich men, landowners, manufacturers, and capital­ists, as ever, but the attitude of the world to them, and their attitude to themselves is altogether changed.

기독교 세계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이전과 똑 같은 통치자들, 똑 같은 정부들, 똑 같은 군대들, 똑 같은 법정들, 똑 같은 세무원들, 똑 같은 성직자들, 똑 같은 부자들, 지주들, 제조업자들, 그리고 자본가들이지만, 그들에 대한 세상의 태도가, 자신들에 대한 그들이 태도가 함께 변한다.

The same sovereigns have still the same audiences and interviews, hunts and banquets, and balls and uniforms; there are the same diplomats and the same deliberations on alliances and wars; there are still the same parliaments, with the same debates on the Eastern question and Africa, on treaties and violations of treaties, and Home Rule and the eight-hour day; and one set of ministers replacing another in the same way, and the same speeches and the same incidents. But for men who observe how one news­paper article has more effect on the position of affairs than dozens of royal audiences or parliamentary sessions,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these audiences and interviews and debates in parliaments do not direct the course of affairs, but something independent of all that, which cannot be concentrated in one place.

똑같은 군주들이 여전히 똑 같은 알현들과 면담들, 사냥들과 연회들, 무도회와 제복들을 가진다; 똑 같은 외교관들과 동맹국들과 전쟁들에 대한 똑 같은 회의들이 있다; 여전히 똑 같은 의회들, 동양과 아프리카, 협정들 및 협약들의 위반, 지방자치 하루 여덟시간에 대한 논의들이 있다; 그리고 똑 같은 방법으로 한 무리의 각료들을 다른 사람들로 대체하며, 똑 같은 연설들, 똑 같은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신문의 기사들이 수십번의 국왕을 알현함 또는 국회의 회의들보다도 정세들에 대한 입장에 효과를 가지는지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알현들 그리고 면접들 그리고 국회에서의 논의들이 문제들의 과정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어떤 것이 이끌며, 그것들은 한 곳에 집중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The same generals and officers and soldiers, and cannons and fortresses, and reviews and maneuvers, but no war breaks out. One year, ten, twenty years pass by. And it becomes less and less possible to rely on the army for the pacification of riots, and more and more evident, conse­quently, that generals, and officers, and soldiers are only figures in solemn processions-objects of amusement for governments-a sort of immense-and far too expensive- corps de ballet.

똑같은 장군들과 장교들 및 사병들, 그리고 대포들과 요새들, 그리고 열병식과 전략들이 있지만 아무런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 년, 십 년, 이십 년이 지나간다. 그리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에 의존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그래서 결국은 장군들, 장교들, 사병들은 오직 발레단의 엄숙한 행진들-정부의 즐거움을 위한 대상물들-일종의 너무나 방대한-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에 참가하는 인물들임이 점점 더 명백해진다.

The same lawyers and judges, and the same assizes, but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the civil courts decide cases on the most diverse grounds, but regardless of justice, and that criminal trials are quite senseless, be­cause the punishments do not attain the objects aimed at by the judges themselves. These institutions therefore serve no other purpose than to provide a means of liveli­hood for men who are not capable of doing anything more useful.

똑같은 변호사들과 법관들, 똑 같은 재판들이지만, 시민 법정들은, 정의와는 관계없이, 가장 다양한 근거들로서 사건들을 해결하며, 범죄 심리는 너무나 무의미하며, 그것은 처벌들이 법관들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들을 얻지 못하기 때문임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이런 기관들은 그러므로 이런 일 말고는 더 이상 효과적인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목적외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The same priests and archbishops and churches and synods, but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they have long ago ceased to believe in what they preach, and therefore they can convince no one of the necessity of believing what they don't believe themselves.

똑같은 사제들, 대주교들, 교회들과 종무원이지만, 그들은 오래전에 그들이 설교하는 것을 믿기를 중단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믿지 않는 것을 믿을 필요를 아무에게도 확신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진다.

The same tax collectors, but they are less and less capa­ble of taking men's property from them by force, and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people can collect all that is necessary by voluntary subscription without their aid.

똑같은 세금 징수원들이지만, 그들은 폭력으로 사람들로부터 재산을 취할 수 없게 되며, 사람들의 그들의 도움이 없이도 자진 납부에 의해 필요한 모든 것을 거둘 수 있음이 점점 분명해진다.

The same rich men, but it becomes more and more evi­dent that they can only be of use by ceasing to administer their property in person and giving up to society the whole or at least a part of their wealth.

똑같은 부자들이지만, 그들은 오직 그들의 재산을 개인적으로 관리함을 그만 두고 그들 재산의 전체 또는 적어도 일부라도 사회에 양도함으로서 쓸모 있어짐이 점점 분명해진다.

And when all this has become absolutely evident to everyone, it will be natural for men to ask themselves: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분명할 때,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질문함이 당연해질 것이다:

"But why should we keep and maintain all these kings, emperors, presidents, and members of all sorts of senates and ministries, since nothing comes of all their debates and audiences? Wouldn't it be better, as some humorist sug­gested, to make a queen of India-rubber?"

“하지만 그들의 모든 논의들과 알현들로서 아무것도 얻어질 수 없는데, 우리는 왜 이 모든 왕들, 황제들, 대통령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의회들 및 각료들의 구성원들을 유지해야 하는가? 어떤 해학가가 말했듯이, 인도 고무로 여왕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은가?

And what good to us are these armies with their generals and bands and horses and drums? And what need is there of them when there is no war, and no one wants to make war? and if there were a war, other nations would not let us gain any advantage from it; while the soldiers refuse to fire on their fellow-countrymen.

그리고 장군들, 악대들, 말들 그리고 드럼들을 가진 이들 군대들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리고 전쟁이 없다면 그리고 아무도 전쟁을 벌이고 싶어하지 않는데, 그들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전쟁이 있다면, 다른 국가들이 우리가 그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음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병사들은 그들의 동족에게 총질을 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And what is the use of these lawyers and judges who don't decide civil cases with justice and recognize them­selves the uselessness of punishments in criminal cases?

그리고 만일 이들이 민사 사건들을 정의로서 해결하지 않으며, 그들 스스로도 형사 사건들의 처벌의 무익함을 인정한다면, 이들 변호사들과 법관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And what is the use of tax collectors who collect the taxes unwillingly, when it is easy to raise all that is wanted without them?

그리고 세금 징수관들이 없이도 필요한 모든 것을 쉽게 모금할 수 있다면, 억지로 세금들을 거두어야 하는 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What is the use of the clergy, who don't believe in what they preach?

자신들이 설교하는 것을 믿지 않는 성직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And what is the use of capital in the hands of private persons, when it can only be of use as the property of all?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재산으로 오직 가치가 있을 수 있을 때, 개인들의 손에 있는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And when once people have asked themselves these questions they cannot help coming to some decision and ceasing to support all these institutions which are no longer of use.

그리고 일단 사람들 스스로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되면, 그들은 어떤 결정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이 모든 기관들을 지지함을 중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But even before those who support these institutions decide to abolish them, the men who occupy these posi­tions will be reduced to the necessity of throwing them up.

그러나 이런 기관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폐지하려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들 지위들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던져 버려야 하는 필요로 귀결될 것이다.

Public opinion more and more condemns the use of force, and therefore men are less and less willing to fill positions which rest on the use of force, and if they do occupy them, are less and less able to make use of force in them. And hence they must become more and more superfluous.

여론은 더욱더 힘의 사용을 비난한다, 그러므로, 힘의 사용에 의존하는 지위들을 차지함을 점차 바라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것들을 차지한다면, 그들 안에서도 점점 힘의 사용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틀림없이 점점 더 쓸모없는 것이 된다.

I once took part in Moscow in a religious meeting which used to take place generally in the week after Easter near the church in the Ohotny Row. A little knot of some twenty men were collected together on the pavement, engaged in serious religious discussion. At the same time there was a kind of concert going on in the buildings of the Court Club in the same street, and a police officer noticing the little group collected near the church sent a mounted policeman to disperse it. It was absolutely un­necessary for the officer to disperse it. A group of twenty men was no obstruction to anyone, but he had been stand­ing there the whole morning, and he wanted to do some­thing. The policeman, a young fellow, with a resolute flourish of his right arm and a clink of his saber, came up to us and commanded us severely: "Move on! what's this meeting about?" Everyone looked at the policeman, and one of the speakers, a quiet man in a peasant's dress, answered with a calm and gracious air, "We are speaking of serious matters, and there is no need for us to move on; you would do better, young man, to get off your horse and listen. It might do you good"; and turning round he continued his discourse. The policeman turned his horse and went off without a word.

나는 이전에 모스크바의 오토니 거리에 있는 교회 근처에서 부활절 뒤에 주로 행해지는 종교적인 회합에 참여했다. 이십여명의 조그만 무리가 노상에 함께 모여서 진지한 종교적 토론을 시작했다. 동시에 똑 같은 거리에의 법원 회관 건물에서 일종의 음악회가 있었다, 그리고 교회 근처에 모인 조그만 무리를 경찰관이 알아차리고 그들을 해산하기 위해서 기마 경찰을 보냈다. 관리가 그 무리를 해산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스무명의 무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대항하지도 않았으나, 그는 저녁 내내 그곳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 행하려고 하였다. 젊은 사람인 그 경관은, 그의 오른 팔과 그의 소리나는 군도를 강하게 휘두르며, 우리에게 다가와서 위협적으로 물었다: “가시오! 이 모임의 목적이 무엇이오?” 모두가 그 경찰관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연사중의 한 사람인, 농부의 옷을 입은 조용한 남자가 조용하며 우아한 분위기로 대답했다, “우리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젊은 분, 말에서 내려 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신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는 그의 강연을 계속했다. 그 경관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의 말을 돌려서 가버렸다.

That is just what should be done in all cases of violence.

그것이 바로 모든 폭력 사건들에서 행해져야 할 것이다.

The officer was bored, he had nothing to do. He had been put, poor fellow, in a position in which he had no choice but to give orders. He was shut off from all human existence; he could do nothing but superintend and give orders, and give orders and superintend, though his super­intendence and his orders served no useful purpose what­ever. And this is the position in which all these unlucky rulers, ministers, members of parliament, governors, generals, officers, archbishops, priests, and even rich men find themselves to some extent already, and will find them­selves altogether as time goes on. They can do nothing but give orders, and they give orders and send their mes­sengers, as the officer sent the policeman, to interfere with people. And because the people they hinder turn to them and request them not to interfere, they fancy they are very useful indeed.

그 관리는 지루해 졌으며, 그는 할 일이 없었다. 불쌍하게도 그는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졌다. 그는 모든 인류의 존재로부터 차단되었다; 그는 감독하고 명령만을 내린다, 명령을 내리고 감독할 뿐이다, 비록 그의 감독과 그의 명령은 도대체 아무런 목적에도 쓸모가 없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로 불행한 이 모든 통치자들, 각료들, 국회 의원들, 총독들, 장군들, 장교들, 대주교들, 사제들, 그리고 심지어 부유한 자들 이미 어느 정도 깨닫고 있으며 시간이 감에 따라서 스스로를 완전히 깨닫게 되는 처지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명령만 내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명령을 내리고 그들의 사자들을 보낸다, 경찰서장이 경찰관을 사람들에게 개입하도록 보내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방해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돌아보고 간섭하지 말라고 요청하므로, 자신들이 정말로 매우 유익한 존재인지 상상하고 있다.

But the time will come and is coming when it will be perfectly evident to everyone that they are not of any use at all, and only a hindrance, and those whom they interfere with will say gently and quietly to them, like my friend in the street meeting, "Pray don't interfere with us." And all the messengers and those who send them too will be obliged to follow this good advice, that is to say, will leave off galloping about, with their arms akimbo, interfering with people, and getting off their horses and removing their spurs, will listen to what is being said, and mixing with others, will take their place with them in some real human work.

그러나 그들이 전혀 쓸모가 없으며, 오직 장애가 될 뿐이며, 그들이 간섭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드럽고 조용하게, 마치 거리의 모임에서 만난 나의 친구처럼, “보시오, 우리에게 간섭하지 마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명백할 때가 올 것이며, 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신들과 그들을 보내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유익한 충고를 따라야만 하는,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팔을 허리에 올리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간섭하는 것을 멈추고, 그들의 말에서 내려, 박차를 제거하고, 그들이 대화는 것에 귀를 귀울이고, 그들과 어울림으로서, 진정으로 인간적인 일을 함으로서 그들과 함께 자리해야만 할 것이다.

The time will come and is inevitably coming when all institutions based on force will disappear through their uselessness, stupidity, and even inconvenience becoming obvious to all.

힘에 의거하고 있는 모든 기관들이 무익함과 어리석음, 심지어 불편함이 모두에게 명백해짐으로 인해서 사라지는 때가 올 것이며 필연적으로 오고 있다.

The time must come when the men of our modern world who fill offices based upon violence will find themselves in the position of the emperor in Andersen's tale of "The Emperor's New Clothes," when the child seeing the emperor undressed, cried in all simplicity, "Look, he is naked!" And then all the rest, who had seen him and said nothing, could not help recognizing it too.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관직들을 차지하는 우리의 현대 세계의 사람들이 안데르센의 벌거숭이 임금님의 이야기 같은 입장을 겪게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황제가 옷을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아이가 그야말로 천진난만하게 소리질렀다, “보세요, 옷을 벗었어요!” 그리고 그때, 모든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도 아무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The story is that there was once an emperor, very fond of new clothes. And to him came two tailors, who prom­ised to make him some extraordinary clothes. The emperor engages them and they begin to sew at them, but they explain that the clothes have the extraordinary prop­erty of remaining invisible to anyone who is unfit for his position. The courtiers come to look at the tailors' work and see nothing, for the men are plying their needles in empty space. But remembering the extraordinary property of the clothes, they all declare they see them and are loud in their admiration. The emperor does the same himself. The day of the procession comes in which the emperor is to go out in his new clothes. The emperor undresses and puts on his new clothes, that is to say, remains naked, and naked he walks through the town. But remembering the magic property of the clothes, no one ventures to say that he has nothing on till a little child cries out: "Look, he is naked!"

이야기는 이러했다. 옛날에 어떤 황제가 있었는데, 새 옷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에게 두 재봉사가 와서는 그에게 어떤 보기드문 옷들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황제는 그들을 고용하였으며 그들은 옷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옷이 너무나 특이해서 그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하들이 와서 재봉사의 작업을 쳐다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늘을 허공에 대고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옷의 특이한 재질을 기억하고서는, 그들 모두가 옷이 보인다고 주장하고, 큰 목소리로 칭찬을 덧붙였다. 황제 자신도 똑같이 행동하였다. 황제가 그의 새로운 옷을 입고서 바깥 행차를 하는 날이 왔다. 황제는 옷을 벗고 그의 새로운 옷을 입었다, 말하자면,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가는 동안 벌거숭이인 채로였다. 그러나 옷의 놀라운 재질을 기억하고는, 아무도 감히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떤 아이가 소리질렀다: “보세요,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

This will be exactly the situation of all who continue through inertia to fill offices which have long become use­less directly someone who has no interest in concealing their uselessness exclaims in all simplicity: "But these people have been of no use to anyone for a long time past!"

이것은 오랫동안 쓸모 없어져 버린 관직들을 게으름으로 채워 오던 모든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 그들이 무용함을 숨기는 것이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누군가가 너무나 솔직하게 소리지름과 정확하게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과거부터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쓸모 없었다.”

The condition of Christian humanity with its fortresses, cannons, dynamite, guns, torpedoes, prisons, gallows, churches, factories, customs offices, and palaces is really terrible. But still cannons and guns will not fire them­selves, prisons will not shut men up of themselves, gallows will not hang them, churches will not delude them, nor customs offices hinder them, and palaces and factories are not built nor kept up of themselves. All those things are the work of men. If men come to understand that they ought not to do these things, then they will cease to be. And already they are beginning to understand it. Though all do not understand it yet, the advanced guard understand and the rest will follow them. And the advanced guard cannot cease to understand what they have once understood; and what they understand the rest not only can but must inevitably understand hereafter.

요새들, 대포들, 다이너마이트, 총들, 어뢰들, 감옥득, 교수대들, 교회들, 공장들, 세관들, 그리고 궁전들을 가진 기독교적인 인류의 상황은 진실로 무섭다. 그러나 아직도 대포들과 총들은 스스로 그들에게 쏘지 않을 것이며, 감옥들은 스스로 사람들을 가두지 않을 것이며, 교수대가 그들을 매지 않을 것이고, 교회들이 그들을 속이지 않을 것이며, 어떤 세관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며, 궁전들과 공장들이 스스로 세우고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사람들의 작품이다.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멈출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들은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비록 아직 모두가 그것을 깨닫지는 않지만, 앞서 가는 사람들은 깨달으며, 나머지는 그들 뒤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들은 일단 깨달은 것을 깨닫기를 중단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을 것을 나머지 사람들은 앞으로 필연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So that the prophecy that the time will come when men will be taught of God, will learn war no more, wi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reaping-hooks, which means, translating it into our language, the fortresses, prisons, barracks, palaces, and churches will remain empty, and all the gibbets and guns and cannons will be left unused, is no longer a dream, but the definite new form of life to which mankind is approaching with ever-increasing rapidity.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침 받고,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으며, 그들의 칼들을 쳐서 쟁기로 만들며, 그들의 창은 곡식용 낫으로 만드는 때가 올것이라는 예언은, 이것을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요새들, 감옥들, 병영들, 궁전들, 그리고 교회들이 비워지며, 모든 교수대와 총들과 대포들이 사용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더 이상 꿈이 아니라 계속 증가하는 속도로 인류가 다가가는 확실한 새로운 삶의 형태이다.

But when will it be?

그러나 그것이 언제일까?

Eighteen hundred years ago to this question Christ answered that the end of the world (that is, of the pagan organization of life) shall come when the tribulation of men is greater than it has ever been, and when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that is, the possibility of a new organ­ization of life, shall be preached in the world unto all nations. (Matt. xxiv. 3-28.) But of that day and hour knowetn no man but the Father only (Matt. xxiv. 3-6), said Christ. For it may come any time, in such an hour as ye think not.

1800년 전에 이 질문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세상의 끝 (, 이교적 삶의 조직의 끝)은 사람들의 시련이 이때 까지 있어온 것보다 클 때,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이, , 새로운 삶의 조직의 가능성이 세상에서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될 때에 (마태복음 24 3-28) 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마태복음 24 3-6)고 그리스도는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때에 언제든지 올 것이기 때문이다.

To the question when this hour cometh Christ answers that we cannot know, but just because we cannot know when that hour is coming we ought to be always ready to meet it, just as the master ought to watch who guards his house from thieves, as the virgins ought to watch with lamps alight for the bridegroom; and further, we ought to work with all the powers given us to bring that hour to pass, as the servants ought to work with the talents entrusted to them. (Matt. xxiv. 43, and xxvi. 13, 14-30.)

이 때가 언제 올 것인가의 질문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대답한다, , 우리는 알 수 없으며, 그러나 그 때가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집을 도둑으로부터 지키는 주인이 반드시 바라 보듯이, 처녀가 신랑을 위해서 불을 밝혀 들고서 반드시 바라 보듯이 우리는 언제나 그 때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하며; 그리고 나아가서, 하인들이 반드시 그들에게 맡겨진 재능으로 일해야 하듯이, 우리는 반드시 그 때가 오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힘을 다하여 일해야 한다. (마태복음 24 43, 24 13, 14-30)

And there could be no answer but this one. Men can­not know when the day and the hour of the kingdom of God will come, because its coming depends on themselves alone.

그리고 이것 말고는 어떤 대답도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하나니의 왕국이 올 날과 시간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오는 날은 오직 스스로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The answer is like that of the wise man who, when asked whether it was far to the town, answered, "Walk!"

그 대답은 마치,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물어 왔을 때, “걸어라!”라고 대답한 현명한 사람의 대답과 같다.

How can we tell whether it is far to the goal which humanity is approaching, when we do not know how men are going toward it, while it depends on them whether they go or do not go, stand still, slacken their pace or hasten it?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 그들이 가는지, 아니 가는지, 가만히 서있는지, 걸음이 느려지는지 서두르는지가 그들에게 달려 있는데, 인류가 다가가고 있는 목적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말할 수가 있는가?

All we can know is what we who make up mankind ought to do, and not to do, to bring about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And that we all know. And we need only each begin to do what we ought to do, we need only each live with all the light that is in us, to bring about at once the promised kingdom of God to which every man's heart is yearning.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인류를 구성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를 이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가슴이 염원하는 약속된 하나님의 왕국이 당장 이룩되려면, 우리는 오직 각자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행하기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오직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빛과 함께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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