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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2. Do not indulge yourself in sexual gratification. 2. 성적인 만족에 집착하지 말라.

After the first commandment the second revealed itself to me with equal clearness. It also begins with a reference to the ancient law. In Matt. v. 27-30 it is said: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by them of old time,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Exod. xx. 14]. But I say unto you, that whosoever looketh on a woman to lust after her hath committed adultery with her already in his heart. And if thy right eye causeth thee to stumble, pluck it out, and cast it from thee; for it is profitable for thee that one of thy members should perish, and not thy whole body be cast into hell. But if thy right hand causeth thee to stumble, cut it off and cast it from thee: for it is profitable for thee that one of thy members should perish, and not thy whole body go into hell.'

제 2의 계명이 또한 동일한 명료성을 가지고 나에게 나타났다. 마태복음 제5장 7절에서 30절까지에 옛 율법에 대해서 언급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애급기 20장 1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Matt. v. 31-2: 'It was said also, Whosoever shall put away his wife, let him give her a writing of divorcement [Deut. xxiv. i]. But I say unto you, everyone that putteth away his wife [besides the sin of adultery, gives her cause to commit adultery], and whosoever shall marry her that is put away committeth adultery.'

마태복음 5장 31절에 ‘또한 기록되었으니,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신명기 24장 1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도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The meaning of these words appeared to me to be this: a man should not admit even the thought that he can have connexion with any woman but the one with whom he first has sexual relations, and must never change her for another as was per­mitted by the Mosaic law.

이러한 말들의 의미는 내게 이렇게 보였다: 남자는 그가 제일 처음 성 관계를 가진 여성 외에 다른 여자와 결합할 생각조차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서 허용되던 것처럼 선택한 여성을 다른 여성과 바꿀 수 없다.

As in the First Commandment against anger we are advised to extinguish anger at its commence­ment, advice that is illustrated by the comparison with a man brought before a court of justice, so here Christ says that adultery arises from the fact that women and men regard each other as objects of desire. That this may not be so it is necessary to remove all that might arouse lust. One must avoid all that evokes lust, and having once united oneself with a woman must under no circumstances aban­don her, for the abandonment of wives causes de­pravity. The abandoned wives tempt other men and spread depravity abroad in the world.

분노를 금지하는 제 1 계명에서, 법정에 세워지는 사람과의 비교에 의한 예가 주는 충고와 같이, 우리가 분노가 시작될 때부터 분노를 끄라는 권고를 받는 것처럼,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서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에서 간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정욕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여야 한다. 우리는 정욕을 불러오는 모든 것을 피해야 하며, 일단 한 여자와 결합한 이상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내를 버림은 타락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버려진 아내는 다른 남자를 유혹하고 널리 세상에 타락을 퍼뜨린다.

The wisdom of this commandment impressed me. It removes all the evil that flows from sexual rela­tions. Men and women, knowing indulgence in sexual relations to lead to strife, should avoid all that evokes desire; and, knowing it to be the law of man's nature to live in couples, should unite with one another in couples and never under any cir­cumstances infringe these alliances; so that the whole evil of strife caused by sexual relations is removed by the fact that there are no solitary men or women left deprived of married life.

이 계명의 지혜는 나를 감동시켰다. 그것은 성 관계에서 흘러 나오는 모든 악들을 제거한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성 관계에 탐닉하는 것이 불화를 불러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정욕을 불러 일으키는 모든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한 쌍으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능의 법칙인 것을 알고 있으므로, 반드시 서로가 한 쌍이 되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이런 결합들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 관계에 의해서 발생하는 불화에 의한 모든 악은, 결혼 생활을 박탈당한 체 살아가는 고독한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서 제거된다.

But the words which had always surprised me when reading the Sermon on the Mount, except for the sin of adultery, understood in the sense that a man may divorce his wife if she has committed adultery, now struck me yet more forcibly.

그런데 내가 산상수훈을 읽을 때면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던 말인, ‘음행한 연고 없이’라는 말은, 만일 그녀가 간음을 하였다면 자신의 아내와 이혼해도 좋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 지금 나에게 훨씬 더 강하게 충격을 주었다.

In addition to the fact that there is something undignified in the way of expressing this thought, putting this strange exception to the general rule (which is introduced like a note to a paragraph of a code of laws) beside profoundly important truths, the exception itself contradicts the fundamental thought.

이런 사상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무게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에 덧붙여서, 가장 심오한 진리들 옆에 일반적인 규칙에 대한 이런 이상한(법률 조항의 단락에 단서처럼 삽입된) 예외를 두는 것, 즉 예외 그 자체가 근본적인 사상에 모순되는 것이다.

I turned to the commentators, and they all (St. John Chrysostom and the others), and even the learned theological critics such as Reuss, admitted that these words meant that Christ sanctions divorce in case of a wife's adultery, and that in Matt. xix in Christ's remarks forbidding divorce, the words 'except for fornication' mean the same thing. I read and re-read chapter v. 32, and it seemed to me that it could not mean an approval of divorce. To verify this I referred to the contexts, and found in the Gospels of Matt. xix, Mark x, and Luke xvi, and in the First Epistle of Paul to the Corinthians, an explanation of the teaching of marriage inviola­bility without any exceptions.

나는 주석가들을 참조하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성 크리서스톰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로이스 같은 학식있는 신학 비평가들도, 이 말은 그리스도가 아내가 간음한 경우에 이혼을 허락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19장 9절의 이혼을 금지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인, ‘음행한 연고외에’도 똑 같은 의미라고 인정했다. 나는 5장 32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그것은 이혼을 승인함을 의미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문맥들을 참조하였으며, 마태복음 19장, 마가복음 10장, 그리고 누가복음 16장 등의 복음서에서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 어떤 예외도 없이 결혼파기는 불가능하다는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였다.

In Luke xvi. 18 it is said: 'Every one that putteth away his wife, and marrieth another, committeth adultery: and he that marrieth one that is put away from a husband committeth adultery.'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In Mark x. 5-12 it is also said, without any ex­ception: 'For your hardness of heart Moses wrote this commandment. But from the beginning of the creation, male and female made he them. For this caus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cleave unto his wife; and the twain shall become one flesh: so that they are no more twain, but one flesh. What therefore God hath joined together let no man put asunder. And in the house his disciples asked him again of this matter. And he said unto them, Whosoever shall put away his wife, and marry another, committeth adultery against her. And if she herself shall put away her husband, and be married to another, she committeth adultery.' The same is repeated in Matt. xix. 4-9.

마가복음10장 5~12절에도 어떠한 예외도 없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며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더라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묻자는데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마태목음19장 9절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In the First Epistle of Paul to the Corinthians, vii. 1-12, the idea of forestalling depravity by each husband and wife, when once they have united, not abandoning one another, but satisfying one another in sexual relations is developed. It is also plainly said that neither of them must on any account desert the other to have relations with someone else.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첫번째 서한, 7장 1~12절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한 번 결합하면 서로를 버리지 않고, 성 관계에서 서로를 만족시킴으로써, 각기 남편과 아내에 의한 타락을 미연에 방지하는 개념이 전개되어 있다. 그들 중의 어느 편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른 사람과 관계들을 가지기 위해서 상대방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By Mark, Luke, and Paul's Epistle divorce is not sanctioned. The sense of the explanation that a husband and a wife are one flesh, united by God- an explanation repeated in two of the Gospels- does not sanction divorce. By Christ's whole teaching which bids us forgive all and makes no exception in the case of an unfaithful wife, divorce is not sanctioned. The meaning of the whole passage, which explains that the dismissal of a wife is the cause of depravity, gives it no sanction.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바울의 서한에 의하면 이혼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결합되었다는 설명의 의미- 두 복음서에서 되풀이 되는 설명- 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하며 타락한 아내의 경우에서도 예외를 두지 않는 그리스도의 전체 가르침에 의해서, 이혼은 허용되지 않는다. 전체 구절의 의미는, 아내를 버림이 타락의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On what is the interpretation based which sanc­tions divorce from an adulterous wife? Only on the words in Matt. v. 32, which seemed to me so strange. They are interpreted by everyone to mean that Christ sanctions divorce if a wife commits adultery, and these same words are repeated in many of the copies of the Gospels and by many Fathers of the Church instead of the words except for fornication (Matt. xix. 5-9).

간음한 아내와의 이혼을 허용한다는 해석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오직 마태복음 5장 32절의 말들이며, 그 말은 내게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만일 아내가 간음죄를 범하면 그리스도가 이혼을 허용함을 의미한다고 해석되며, ‘음행한 연고 때문에’라는 말 대신에, 이와 똑 같은 말들이 많은 성서 사본들과 많은 교부들에 의해서 반복된다.

Again I began to consider these words, but it was long before I could understand them. I saw that there must be a mistake in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but where the mistake lay I was long unable to discover. The mistake was evident. Con­trasting his commandment with the law of Moses under which any man, as is there said, who hates his wife, can dismiss her and give her a writing of divorcement, Christ says: 'But I say unto you, that everyone that putteth away his wife,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or, besides the cause of fornication], causeth her to commit adultery.' These words present no antithesis to the Mosaic law, nor even any decision as to whether one may, or may not, divorce. It is only said that putting away a wife gives her occasion to commit adultery.

나는 다시 이 말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번역과 해석에서 틀림없이 오류가 있음을 알았으나,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오랫동안 발견하지 못했다. 오류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스도의 계명과, 자신의 아내를 미워하는 누구라도, 기록된 것처럼, 아내를 버리고 이혼 증서를 주는 모세의 율법을 대비하면서, 그리스도는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는 자는 이는 저도 간음하게 함이요.’ 이 말들은 모세의 율법과 아무런 대조가 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해답이 없다. 오직 아내를 버림은 그녀에게 간음할 기회를 준다고 말하고 있다.

And then suddenly an exception is made in the case of a wife guilty of adultery. This exception concerning a wife guilty of adultery when the matter in hand related to the husband, would in any case be strange and unexpected, and occurring where it does it is simply stupid, for it destroys even such doubtful meaning as the verse otherwise had. It is said that putting away a wife occasions her to commit adultery, and it then allows you to put away a wife guilty of adultery; as though a wife guilty of adultery will then no longer commit adultery.

그런데 갑자기 간음한 아내의 경우에 예외를 두었다. 눈 앞의 문제가 남편과 관련된 경우 아내의 간음에 대한 이런 예외는 어쨌든 이상하고 의외일 것이며, 그것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단순히 어리석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 예외는 심지어 그 구절이 반대의 경우에 가지고 있던 의심스러운 의미조차 파괴하기 때문이다. 아내를 버리는 것은 그녀에게 간음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간음한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은 마치 간음한 아내는 이제 더 이상 간음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But, more than that, when I examined this passage more carefully I noticed that it does not even make sense grammatically. It is said that everyone that putteth away his wife,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causeth her to commit adultery, and the sentence ends! It refers to a man, and says that if he puts away his wife he gives her occasion to commit adultery. Why is it said, saving for the cause of the wife's adultery? If it were said that a man divorcing his wife for any cause except her com­mission of adultery, commits adultery, then the sentence would be correct. As it is, to the gram­matical subject everyone that putteth away, there is no predicate except causeth. How can that predicate relate to the words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It is impossible to 'cause, saving for the wife's fornication'! Even if with the words 'saving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were included the words 'the wife's', or 'her' (which is not done), even then those words could not relate to the predicate 'causeth'. These words in the accepted interpretation are related to the predicate, putteth away, but putteth away is not the chief predicate: the chief predicate is causeth. Why is 'except for the cause of fornication' wanted? With adultery or without it a husband who puts away his wife equally causeth. The ex­pression reads as though someone were to say: 'Whoso depriveth his son of food, except for [or besides] the sin of cruelty, causeth him to be cruel.' Such an expression evidently cannot imply that the father may deprive his son of food if the son is cruel. If it has any meaning it can only be that the father who deprives his son of food, besides the sin of being cruel himself, causes the son too to be cruel. So the Gospel expression would have a meaning if, instead of the words the sin of fornication, it read 'the sin of voluptuousness, dissoluteness, or anything of that kind, expressing not an action but a quality.

그러나 그것 이상으로, 나가 이 구절을 좀더 세밀하게 조사하였을 때 그것은 심지어 문법적으로도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음행한 연고 없이 그 아내를 버리는 자는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라고 되어 있으며, 여기서 문장은 끝난다. 이것은 남편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아내를 버린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간음을 범할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왜 ‘음행한 연고 외에’라고 말했을까? 만일 아내가 간음함을 제외한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간음을 저지르는 자이다라고 말하였다면, 문장은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버리는 자는’의 문법적 주어에 대해서, ‘원인을 주다’외에는 술어가 없다. 어떻게 이 술어가 ‘간음한 연고 외에’라는 말에 연결될 수 있겠는가? ‘아내의 간음한 연고 외에, 원인을 주다’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간음한 연고 외에’라는 말에, ‘아내의’, 또는 ‘그녀의’ (그렇게 되지 않았다)라는 말들이 포함되더라도, 그 말들은 술어 ‘원인을 주다’와 관계될 수 없다. 인정되는 해석에서 이 말들은 술어인 ‘버리다’와 관계되지만, ‘버리다’는 주된 술어가 아니다: 주된 술어는 ‘원인을 주다’이다. ‘간음한 연고 외에’는 왜 필요한 것일까? 간음을 하였든 아니하였든 자신의 아내를 버리는 남편은 똑같이 간음에 대한 원인을 준다. 위의 표현은 마치 누군가가 다음처럼 말하는 것과 같다: ‘잔인하다는 죄 외에 자신의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자는 그를 잔인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분명히 만일 아들이 잔인하다면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음을 의미할 수가 없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은 오직 자신의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아버지는, 자신이 잔인함의 죄 외에도, 아들 역시 잔인하게 하는 것이다일 수 있다. 그래서 만일, ‘간음의 죄’라는 말 대신에, 정욕의 죄, 방탕의 죄, 또는 그런 종류의 말, 즉 행위가 아니라 성질을 나타내는 말로서 읽는다면 복음서의 표현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And I asked myself: Is it not simply said that he who puts away his wife, besides being himself guilty of dissoluteness (since people divorce one wife in order to take another), causes his wife also to com­mit adultery? If the word 'fornication' in the text is expressed by a word that may also mean dis­soluteness, the meaning is clear.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의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자신이 방탕하다는(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내를 버리기 때문이다) 죄 외에도, 그의 아내에게도 간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단순히 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원전에서 ‘간음’이란 말이 또한 방탕함을 의미하는 말로서 표현된다면, 그 의미는 분명해진다.

What has so often happened in such cases occurred again this time. The text confirmed my supposition so that no further doubt about it was possible.

이러한 경우에 흔히 일어 나던 일이 이번에도 다시 일어났다. 원전이 나의 추정을 확신하여 주었으므로 그런 추정 대한 어떤 더 이상의 의심도 불가능했다.

The first thing that caught my eye on looking at the Greek text was that the word is translated by the same word 'fornication' that is used to translate the word, , which is quite a different word. But perhaps these words are synonymous, or are used in the Gospels alterna­tively? I looked up all the dictionaries, both the general dictionary and the Gospel dictionary, and I saw that the word which corresponds to the Hebrew zono, and to the Latin fornicatio, the Ger­man Hurerei, French libertinage, and the English 'incontinence', has a most definite meaning, and never in any dictionary has meant or can mean the act of fornication, adultere, Ehebruch, as it is trans­lated. It means a sinful condition or quality, and never an action, and should not be translated by 'fornication'. Moreover, I see that the word 'adultery', and 'to commit adultery', is everywhere in the Gospels, and even in these verses, represented by the word . And I only had to correct this evidently intentional error in translation for the meaning given by the commentators on this passage and on the passage in chap. xix to become quite impossible, and for it to become indubitable that relates to the husband.

그리스어 원전을 쳐다보았을 때 나의 시선을 끈 첫번째의 것은, 가, 상당히 다른 말인 를 번역할 때 사용되는, ‘간음’과 똑 같은 말에 의해서 번역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말들은 동의어이거나, 복음서에서 대체어로서 사용되는 것일까? 나는 일반 사전은 물론 복음 사전까지 모든 사전들을 찾아 보았다, 그리하여, 는, 히브리어로 zono, 그리고 라틴어로 fornicatio, 독일어로 Hurerei, 불어로 libertinage, 및 영어로 incontinence와 일치하는 것으로, 매우 명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번역되어 있는 것처럼, 결코 어떤 사전에서도 간음 행위, adultere, Ehebruch를 의미했거나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죄를 지은 상태나 성질을 의미하며, 결코 행위를 의미하지 않으며, ‘간음’으로 번역될 수 없다. 또한, ‘간음’, 그리고 ‘간음을 하다’는 말은 복음서 어느 곳에나 있으며, 심지어 이런 구절 들에서 라는 말로 나타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과 19장의 구절에 관하여 주석가에 의해서 주어진 의미가 불가능하도록, 그리고 그것이 의혹이 없어져서 가 남편에게 관련 되도록, 번역에 있어서 이런 명백한 의도적인 오류를 바로잡아야만 했다.

The translation anyone knowing Greek would make is this: -besides, - the guilt, - of dissoluteness, - causes, her, - to commit adultery; and the result is, word for word: 'he who puts away his wife, be­sides the sin of dissoluteness, causes her to commit adultery.'

다음은 그리스어를 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번역이다: - 이외에, - 죄악, 방종의, - …하게하다, - 그녀의, - 간음하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방탕의 죄 이외에 아내와 이혼하는 자는 아내에게 간음하게 하는 것이니라.’

The same sense is found in ch. xix. One need but correct the erroneous translation of the word , and replace the word 'fornication' by the word 'dissoluteness', for it to become plain that the words: cannot refer to the wife. And as the words can only mean 'besides the husband's sin of dissoluteness', so the   in ch. xix can only refer to the husband's dissoluteness. The words are- , word for word: 'if not from dissolute­ness.' And this meaning appears: that Christ, replying in this passage to the belief of the Pharisees, who supposed that if a man left his wife, not to live dissolutely but in order to marry another woman, he was not committing adultery- Christ says that the leaving of one's wife, i.e. the cessation of marital relations with her, even if not occasioned by dis­soluteness, but done for the sake of marriage- union with another, is also adultery. And a plain meaning results which accords with the whole teaching, with the context, with the grammar, and with logic.

똑 같은 의미가 19장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는 오직 잘못된 말인 의 잘못된 번역을 교정하고, ‘간음’이란 말을 ‘방종’으로 바꾸면, 는 아내에게 적용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는 오직 ‘남편의 방탕한 죄’를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19장의 는 오직 남편의 방종함을 가리킬 수 있다. 이 말은- 이고, 한마디로: ‘만일 방종함에 의해서가 아니라면’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구절에서, 만일 방종스럽게 살려고 함이 아니라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떠난다면, 그는 간음하는 것이 아니라는 바리새인들의 믿음에 대답한 것으로- 그리스도는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 즉, 그녀와의 부부관계를 중단하는 것은, 심지어 방종함이 원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목적으로 행해진다 하더라도, 역시 간음함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전체 의미, 문맥, 문법, 그리고 논리와 일치되는 간단한 의미로 귀결된다.

And this clear and simple meaning, flowing from the words themselves and from the whole teaching, I had to discover with the greatest difficulty. In­deed, read the verse in German or in French, where it is plainly said pour cause d'infidelite, and, a mains que cela ne soit pour cause d'infidelite, and can you guess that it means something quite different? The word parektov", which in all the dictionaries means excepte, ausgenommen, besides, is translated by a whole sentence- a mains que cela ne soit; the word porneiva" is translated infidelite, Ehebruch, fornication. And on this intentional perversion of the text rests an inter­pretation which infringes the moral, religious, grammatical, and logical sense of Christ's words.

그러므로 말 자체로부터 그리고 전체 의미로부터 흘러 나오는, 이토록 명료하고 단순한 의미를, 나는 엄청난 어려움 끝에 발견해야만 했다. 정말, 독일어나 불어로 번역된 구절을 읽어보라, 그곳에는 단순히 pour cause d’infidelite, 그리고, a mains que cela ne soit pour cause d’infidelite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말은, 모든 사전에서 excepte, ausgenommen, besides를 의미하는데, 전체 문장a moins que cela ne soit으로 번역되며; infidelite, Ehebruch, 간음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이런 고의적인 원문의 왜곡 위에 그리스도의 말씀의 도덕적, 종교적, 문법적, 그리고 논리적 의미가 놓여있다.

Again I was confirmed in the terrible but joyful truth that the meaning of Christ's teaching is plain and simple and its statements are important, but that interpretations of it, based on a wish to justify existing evil, have so obscured it that it has to be rediscovered with difficulty. It became plain to me that if the Gospels had been discovered half burnt or obliterated it would have been easier to recover their meaning than it is now, when dishonest interpretations have been applied to them with the direct purpose of perverting and hiding the meaning of the teaching. In this case it was still plainer than in the former that some private aim of justifying the divorce of some Ivan the Terrible had been the reason for obscuring the whole doctrine of marriage.

나는 다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명확하고 단순하며 그의 명제는 중요하지만, 그것의 해석들은, 기존의 악을 정당화하려는 희망 위에 바탕을 두고서, 가르침을 너무나 모호하게 만들어서 어려움 끝에 재발견되어야 했다는, 무섭고도 기쁜 진리를 확인하였다. 만일 복음서들이 절반이 불타거나 제거되었다면 그것들의 의미를 되찾음이, 비양심적인 해석들이 가르침의 의미를 왜곡하고 숨기려는 노골적인 목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지금보다는 쉬웠을 것임이 내게 명백해졌다. 폭군 이반과 같은 자들이 이혼을 정당화하려는 어떤 개인적인 목적이 결혼에 관한 전체 교리를 흐리게 한 이유가 되어왔던 과거보다는, 이 경우가 훨씬 쉬웠다.

As soon as one rejects the commentaries, in place of what was obscure and indefinite the definite and clear second commandment of Christ reveals itself.

우리가 주석들을 거부하자 마자, 모호하고 막연하던 구절 대신에 그리스도의 정확하고 명료한 제 2의 계명이 나타난다.

Do not make the desire for sexual relations into an amusement; let every man, if he is not a eunuch- that is, if he needs sexual relations- have a wife, and each wife a husband, and let the husband have only one wife and the wife only one husband, and under no pretext infringe the sexual union of one with the other.

성 관계에 대한 욕구를 쾌락으로 삼지 말라; 모든 남자가, 만일 성불구가 아니라면- 즉, 그가 성 관계들을 필요로 한다면- 아내를, 각각의 아내는 남편을 가지게 하라, 그리고 남편들은 오직 아내를 그리고 아내는 오직 남편을 가지게 하라, 그리고 어떤 구실로도 전자와 후자의 성적인 결합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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