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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5. Make no distinction of nationality, but love foreigners as your own people.

5. 국가의 구분을 하지 말 것이며, 외국인을 당신 자신의 동포처럼 사랑하라.

And following that fourth commandment comes a fifth reference to the old law, and the fifth com­mandment (Matt. v. 43-8):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nd hate thine enemy [Lev. xix. 17, 18]: but I say un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 that ye may be sons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the unjust. For if ye love them that love you, what reward have ye? do not even the publicans the same? And if ye salute your brethren only, what do ye more than others? do not even the Gentiles the same? Ye therefore shall be perfect,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그리고 이러한 제 4 계명 다음에 옛 율법에 대한 다섯번째의 언급이 나오고, 제 5 계명이 나온다 (마태복음 5장 43-8절):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니[레위기 19장 17,18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나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Those verses formerly seemed to me to be an explanation, completion, and enforcement- I would even say an exaggeration- of the precept about not resisting the evil-doer. But having found a simple, applicable, and definite meaning in each passage that began with a reference to the ancient law, I anticipated that the same would be the case here. After each quotation a law was announced, and each verse of the commandment had a meaning and could not be omitted, and so it should be here also. The concluding words, repeated by Luke, that God does not make distinctions between people but sends His blessings upon all, and that you therefore should be like God, not making distinctions be­tween people, and should not do as the Gentiles do, but should love all men and do good to all alike-  those words were clear, and they appeared to me to be like a confirmation and explanation of some definite rule; but what that rule was it was long before I could discern.

그들 구절들은 내게 있어서 이전에는 악한 자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교훈에 대한 설명이며, 완성이고, 강행- 나는 심지어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옛 율법에 대한 참조로서 시작되는 각각의 구절에 들어 있는 단순하고, 실행가능하며, 그리고 명확한 의미를 깨닫고서, 나는 여기에서도 똑 같은 경우에 해당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각 옛 율법에 대한 인용이 있은 뒤에 새로운 율법이 선포되었으므로, 계명의 제각기 구절은 의미가 있었고 생략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기서도 역시 그와 같아야 할 것이다. 누가가 반복하면서 결론적인 말, 즉 하나님은 사람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며 그의 축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처럼, 사람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하고, 이방인들처럼 행동해서도 안되며,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고, 그들 모두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 그 말들은 명료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게 어떤 명확한 규칙에 대한 확인과 설명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규칙이 무엇이었는지를 내가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To love one's enemies. That seemed impossible. It was one of those beautiful phrases which can only be regarded as indications of an unattainable moral ideal. It was either too much, or nothing at all. One could abstain from injuring an enemy, but to love him was impossible. Christ could not prescribe an impossibility. Besides that, the very first words, the reference to the ancient law,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hou shall hate thine enemy', were questionable. In previous passages Christ quotes the actual, precise words of the Mosaic law, but here he uses words which had never been uttered. He appears to misrepresent the law.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그것은 오로지 도달할 수 없는 도덕적인 이상의 상징들로만 여겨질 수 있는 미사여구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너무 많은 것을 구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적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는 불가능한 것을 명령할 수 없다. 그것 뿐만 아니라, 옛 율법에 대한 언급, 즉 바로 첫번째 말들인, ‘너희의 원수을 미워하라는 것을 너희는 들었으나’라는 말은 의심스러웠다. 이전의 구절들에서 그리스도는 옛 율법 그대로를 인용하였으나, 여기서 그는 말해진 적이 없는 말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As in the case of my former perplexities, the com­mentaries on the Gospels explained nothing to me. They all admit that the words, 'Thou shalt hate thine enemy', do not occur in the Mosaic law, but no explanation of this incorrect citation is given. They speak of the difficulty of loving enemies and bad people; and in most cases they correct Christ's words and say it is impossible to love one's enemies, but possible not to wish them evil or to do them harm; incidentally it is suggested that one may and should expose, that is to say oppose, one's enemies; mention is made of various degrees of attainability of this virtue, so that the ultimate deduction to be made from the Church commentaries is that Christ, for some unknown reason, made an incorrect citation of the Mosaic law and uttered many beautiful, but really empty and inapplicable, words.

나의 이전의 당혹했던 경우들처럼, 복음서들에 대한 주석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에 동의 하지만, 이런 부정확한 인용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수들과 악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고쳐서 원수를 사랑하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에게 악을 원하지 않는 것이나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적들을 적발할 수도 있으며 적발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에 대한 성취 가능성의 다양한 정도가 언급되고 있어서, 교회의 주석들의 궁극의 결론은, 그리스도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세의 율법을 부정확하게 인용하였으며 많은 훌륭하지만, 사실 텅 빈 그리고 실행 불가능한 말들을 하였다는 것이다.

It seemed to me that this was unsatisfactory. There should be some clear and definite meaning here, as in the first four commandments. And to understand this meaning I first of all tried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incorrect citation from the law: hate your enemies. It is not for nothing that Christ, before each of his injunctions, quoted the words of the law: 'Thou shalt not kill, shalt not commit adultery', &c., and contrasted those words with his own doctrine. Without understanding what was alluded to in the words he cites from the old law one cannot understand what he enjoined. In the commentaries it is plainly said, what cannot but be admitted, that he cites words which are not found in the law; but it is not explained why he did so, nor what this incorrect citation means. It seemed to me that one had first to explain what Christ may have meant when he cited those words which do not occur in the law. And I asked myself: What can the words mean which Christ has in­correctly quoted from the Mosaic law? In all his former citations of the law only one precept of the ancient law is quoted, as: 'Thou shalt not kill;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Thou shalt not forswear thyself; A tooth for a tooth.' And in connexion with that single precept Christ's corresponding doctrine is announced. Here, however, two precepts are cited and contrasted one with the other;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nd hate thine enemy', so that evidently the basis of the new law should deal with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injunctions of the ancient law in reference to neighbors and enemies. And to under­stand more clearly wherein that difference lay, I asked myself: What do the words 'neighbor' and 'enemy' mean in Gospel language? And, on consulting the dictionaries and concordances of the Bible, I convinced myself that 'neighbor', when used by a Jew, always meant, and only meant, a Jew. That meaning of 'neighbor' is found also in the Gospel parable of the Good Samaritan. Accord­ing to the view of the Jewish lawyer who asked 'Who is my neighbor?' a Samaritan could not be a neighbor. A similar definition of 'neighbor' is given in Acts vii. 27. 'Neighbor', in the language of the Gospels, means fellow-countryman, a man of one's own people. Therefore, surmising that the contrast Christ is setting up in this passage by citing the words of the law,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hou shalt love thy neighbor and hate thine enemy', lies in the contrast of fellow-countrymen with foreigners, I asked myself what was an 'enemy' in the Jewish conception, and I found confirmation of my conjecture. The word 'enemy' is used in the Gospels almost always in the sense not of a personal foe but of a public, national enemy (Luke i. 71-4; Matt. xxii. 44; Mark xii. 36; Luke xx. 43, &c.). The singular number used for the word 'enemy' in these verses, in the phrase 'hate thine enemy', indicated to me that the national enemy is referred to. The singular number refers to the collective whole of the enemy people. In the Old Testament the conception of a hostile people is always ex­pressed in the singular.

나에게는 이런 해석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기에도, 앞의 4가지 계명들처럼, 어떤 명료하고 명확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고한 율법으로부터의 부정확한 인용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스도가, 그의 처음의 명령들에 앞서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의 율법의 말들을 인용하고, 이 말씀들을 자기 자신의 가르침과 대조한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가 옛 율법으로부터 인용하는 말씀들 속에 암시된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가 명령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주석서들에는, 그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리스도가 율법에서 발견되지 않는 말들을 인용한다는 것을 명백히 말한다, 그러나 왜 그가 그렇게 하였는지, 그리고 이런 부정확한 인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먼저 그리스도가 율법에 나타나지 않은 말들을 인용하였을 때 무엇을 의미하려 하였는지를 우리가 설명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부정확하게 인용한 말씀들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그의 이전의 모든 인용들에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이에는 이’처럼 오직 옛 율법의 단일한 가르침이 인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단일의 교리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상응하는 교리가 선포되었다. 여기서는, 그러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을 들었다’는 말로서 두 가지 교리가 인용되어서 서로가 대비되고 있다, 그래서 명백히 새로운 율법의 기초는 이웃들과 원수들과 관련되는 차이점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복음서의 언어에서 ‘이웃’이라는 말과 ‘원수’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나는 사전들과 성서 색인들을 참조하여 본 결과, 유태인들이 사용하던 ‘이웃’은 언제나 그리고 유일하게 ‘유태인’을 의미했음을 확신했다. 그러한 ‘이웃’이라는 뜻은 또한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복음서의 비유에서도 발견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묻는 유태인 율법 선생의 시각에 의하면 사마리아인은 이웃일 수가 없었다. ‘이웃’에 관한 유사한 정의가 사도행전 7장 27절에 나온다. 복음서의 언어에서 ‘이웃’은 동포, 즉 자기 자신의 민족의 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을 인용함으로써 제시하는 대조는 동포와 외국인과의 대조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유태인들의 생각에서 ‘원수’란 무엇인지를 자문하였으며, 나의 가정에 대한 확증을 발견하였다. 복음서에서 ‘원수’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개인적인 적이 아니라 공공의, 국가적인 원수의 의미로서 사용되었다 (누가1장 71~74, 마태 22장 44절, 마가 12장 35절, 누가 20장 43절 그 외 다른 구절). 이 구절들의,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구에서 ‘원수’라는 말에 사용된 단수는 국가적인 원수를 간주하는 것을 나에게 암시하였다. 단수는 적대 민족의 집합적인 전체를 언급하는 것이다. 구약 성서에서 적대 민족의 개념은 언제나 단수로 표현된다.

And as soon as I understood this the difficulty was immediately removed as to why and how Christ, after previously always quoting the precise words of the law, could here cite words which had never been uttered. I had only to understand the word 'enemy' in the sense of national enemy, and 'neighbor' in the sense of compatriot, for that difficulty to disappear. Christ speaks of how, in the Mosaic law, the Jews were told to treat their national enemy. All those passages, scattered through different books of the Bible, in which they are bidden to oppress, slay, and exterminate other tribes, Christ sums up in the one expression, to 'hate' - to harm- the enemy. And he says: Ye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hat you should love your own people and hate your nation's enemy, but I say to you that you should love all men without dis­crimination of the race to which they belong. And as soon as I understood the words in this way the other and chief difficulty was disposed of, as to how one should understand the words, 'love your enemies'. It is impossible to love one's personal enemies. But one can love a hostile people in the same way that one does one's own. And it became plain to me that Christ is speaking of the fact that everyone is taught to consider the people of his own race as his 'neighbors' and to consider other nations as 'enemies', but that he bids us not to do so. He says: The law of Moses makes a distinction be­tween Jews and Gentiles, the national enemy, but I say unto you, that you should not make that dis­tinction. And in fact both in Matthew and Luke, following this commandment, he says that before God all men are equal; the sun rises and the rain falls for them all. God does not distinguish between the peoples, but does good to all alike; so should men also do to all without distinction of nationality, and not as the Gentiles who divide themselves into different nations.

내가 이것을 이해하자마자, 그리스도가, 이전에는 언제나 정확하게 율법의 말들을 인용하다가,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던 말들을 인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즉각 제거되었다. 그런 어려움이 사라지기 위해서 나는 오직 국가의 적이라는 뜻으로의 ‘원수’, 그리고 동포라는 뜻으로의 ‘이웃’을 이해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 아래서 유태인들이 그들의 국가의 적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를 말한다. 성경의 서로 다른 책들에 흩어져 있으면서, 다른 부족들을 억압하고 살인하며 몰살할 것을 명령하는 그 모든 구절들을, 그리스도는, 원수를 ‘미워하다’- 해를 입히다- 라는 단 하나의 표현으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고 너희 나라의 원수를 미워하라’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속한 인종을 구별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말씀들을 이렇게 이해하자 마자, 다른 큰 문제, 즉, ‘너의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가 해결되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듯이 적대 민족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종족의 사람들을 ‘이웃’으로 여기고, 다른 민족들을 ‘원수’로 여기도록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는 것이 내게 명백해졌다. 그는 말한다: 모세의 율법은 국가의 적으로서, 유태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차별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러한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이 계명에 뒤이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태양이 떠오르며 비가 내린다. 하나님은 민족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에게 평등하게 복을 준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자기들을 여러 다른 국가들로서 나누는 이방인들처럼 하지 말고, 국적의 구분 없이 모두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So that, once again, from different sides a plain, important, clear, and applicable meaning of Christ's words confirmed itself for me. Again, instead of misty expressions of vague philosophy, a clear, definite, important, and practicable rule discloses itself: not to make distinctions between one's own and other nations and not to do all the things that flow from making such distinctions; not to bear enmity to foreign nations; not to make war or to take part in warfare; not to arm oneself for war, but to behave to all men, of whatever race they may be, as we behave to our own people.

그래서, 다시 한번, 여러 면에서, 간단하며, 중요하고, 명료한, 그리고 적용이 가능한 그리스도의 말씀들의 의미가 나에게 확인되었다. 다시금, 모호한 철학 같은 애매한 표현들 대신에, 명료하고, 명확하며, 중요하고, 그리고 적용이 가능한 규칙이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민족과 다른 민족간의 차이를 두지 말라, 그리고 그러한 차별들로서 빚어지는 모든 것들을 행하지 말라; 외국의 국가들에게 증오를 가지지 말라; 전쟁을 위해서 무장하지 말라, 그러나, 그들이 어떤 인종이더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민족을 대하듯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라.

This was all so clear and simple that I was astonished I had not understood it immediately.

이것들은 모두, 너무나 명료하고 단순하여서 나는 내가 그것을 즉시 깨닫지 못하였음에 놀라와 했다.

The cause of my not having understood it was the same as the cause of my not having promptly understood the prohibition of law-courts and of oaths. It was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that those courts- which are opened with a religious ceremony and blessed by 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the guardians of Christ's teaching- that those same courts are incompatible with a confession of Christ, being directly opposed to him. Yet more difficult was it to guess that the very oath ad­ministered to all men by the guardians of the law of Christ is directly prohibited by that law; but to guess that what in our life are considered not merely necessary and natural but most excellent and brave - the love of one's fatherland, its defense, its exaltation, resistance to its enemies, and so forth-  are not merely offences against the law of Christ but a plain repudiation of it- to guess that this is so, was very difficult. Our life has so diverged from the teaching of Christ that that very divergence has become the chief hindrance to our understanding his teaching. We have so disregarded and for­gotten all he said about our way of life- his injunction not merely not to kill, but not even to hate any man; not to defend ourselves but to turn the other cheek and to love our enemies- that now, being accustomed to call people who devote their lives to killing, 'the Christ-loving army', being ac­customed to hear prayers addressed to Christ for victory over our enemies, to pride ourselves on slaying, and having made of the sword a holy symbol of murder (until a man without a sword, without a dagger, is a man to be held in contempt) - it now seems to us that Christ did not forbid war and that if he had forbidden it he would have said so more explicitly

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재판 및 맹세의 금지를 즉시 깨닫지 못했던 이유와 똑 같았다. 그들 법정은- 그것들은 엄숙한 종교적인 의식으로 개정되고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수호자로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축복받고 있다- 그들 똑 같은 법정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함과 양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것을 깨닫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수호자들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이 행하도록 하는 바로 그 맹세가 바로 그 율법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금지된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필요하며 당연할 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하며 용감하다고 여겨지는 것- 자신의 조국, 조국의 수호, 조국의 찬양, 조국의 원수들에 저항함, 등에 대한 사랑- 이 그리스도의 율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명백히 부정함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 이러한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너무나 멀리 이탈해 있어서 바로 그 이탈이 그의 가르침을 깨달음에 있어서의 주된 장애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대해서 말했던 모든 것을 너무나 무시하고 잊어버려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 뿐만 아니라 어느 사람도 미워하지 말라; 우리 자신을 방어하지 말고 다른 뺨을 돌려대며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잊어버리서- 오늘날에는, 오로지 살인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군대’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져 있고, 우리의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위해서 그리스도에게 올리는 기도들을 들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도살을 자랑스러워하고, 칼(칼이나 단도가 없는 사람은 경멸을 받는다)을 살인의 성스러운 상징으로 만드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오늘날에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전쟁을 금하지 않으며 만일 그가 그것을 금지했다면 그가 더욱 분명하게 말했을 것처럼 느껴진다.

We forget that Christ could not imagine people believing in his teaching of humility, love, and universal brotherhood, quietly and deliberately organizing the murder of their fellow men.

겸손, 사랑, 그리고 보편적인 형제애를 믿는 사람들이, 조용히 그리고 고의적으로 자신들의 형제들을 살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그리스도가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Christ could not imagine that, and therefore did not forbid Christians to go to war, any more than a father when giving his son instructions to live honestly, to wrong no one, and to give to others, would bid him abstain from highway robbery. No one of the apostles or disciples of Christ during the first centuries of Christianity could imagine that it was necessary to forbid Christians to commit the murders that are called war. This, for instance, is what Origen says in his reply to Celsus (The Writings of Origen: Origen contra Celsum, Lib. viii. c. 73. Ante-Nicene Christian Library, vol. xviii.)

그리스도는 이러한 일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들에게 정직하게 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라고 훈계하는 아버지가 그에게 노상 강도 행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전쟁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 기독교 초기 1세기 동안 어떤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기독교인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살인 행위들을 저지르는 것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오리게네스가이 셀서스에게 보낸 대답으로 말한 것이다(오리게네스의 저서들: 셀서스를 반박하는 오리겐, 전집 8, 기원 73년경. 반니케아 기독교 장서, 18권).

He says: 'And in the next place Celsus urges us to help the King with all our might, and to labor with him in the maintenance of justice, to fight for him; and if he requires it to fight under him, or lead an army along with him. To this our answer is, that we do when occasion requires, give help to Kings, and that, so to say, a divine help, "putting on the whole armour of God". And this we do in obedience to the injunction of the Apostle, "I exhort, therefore, that first of all, supplications, prayers, intercessions, giving of thanks, be made for all men; for Kings and all that are in authority", and the more any one excels in piety, the more effective help does he render to Kings, even more than is given by soldiers who go forth to fight and slay as many of the enemy as they can. And to those enemies of our faith who require us to bear arms for the commonwealth, and to slay men, we reply: "Do not those who are priests at certain shrines, and those who attend on certain gods, as you account them, keep their hands free from blood that they may with hands unstained and free from human blood offer the appointed sacri­fices to your gods?"'

그가 말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셀서스는 우리에게 전력을 다해서 황제를 도울 것을, 그리고 정의를 수호함에서 그와 함께 노력하고, 그들 위해서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가 요구한다면 그의 지휘 아래서 싸우거나 그와 함께 군대를 지휘할 것을 명령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도 기회가 된다면 황제에게 도움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신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이것을 행할 것이며,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황제들을 위해서 그리고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탄원, 기도, 중재, 감사함을 행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신앙이 깊을수록, 황제들에게 더 효과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며, 병사들이 싸움에 나가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도살하여 제공하는 것보다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공복리를 위해서 무기를 들라고 요구하는 우리의 신앙의 적들에게, 우리는 대답한다: “특정 신전들에 사제로서 봉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정한 신들을 모시는 사람들도, 당신들이 생각하기로, 그들의 손들을 피로부터 깨끗이 하도록 하여서, 인간의 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은 손으로 당신들의 신 앞에 지정된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하지 않는가?”‘

And, finishing this chapter with an explanation that Christians are of more use by their peaceful life than are soldiers, Origen says: 'And none fight better for the King than we do. We do not indeed fight under him, although he require it.'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평화스러운 삶으로서 병사들보다 더 많은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설명으로서 이 장을 마치면서, 오리게네스는 말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우리들보다 황제를 위해서 잘 싸우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그의 아래서 싸우지 않는다, 비록 그가 그것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Such was the attitude of the Christians of the first centuries towards war, and so did their teachers speak when addressing those who ruled the world; and they spoke so when hundreds and thousands of martyrs were perishing for professing the Christian faith. .

기독교인들의 최초 수세기 동안의 전쟁에 대한 태도는 바로 이러하였으며, 그들의 교사들도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에 그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 수백 수천명의 순교자들이 사라져갈 때에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And now? Now no question is asked as to whether a Christian can take part in war. All young men, educated in the teaching of the Church which is called Christian, when the time comes each autumn present themselves at the Army Office and, with the assistance of Church pastors, violate the law of Christ. Only recently one peasant turned up who on Gospel grounds refused military service. The teachers of the Church expounded to him his error; but, as the peasant believed not them but Christ, he was put into prison and kept there till he renounced Christ. And all this is done 1800 years after a quite clear and definite commandment was an­nounced to Christians by our God: Do not con­sider the people of other nations to be enemies, but account all men as brothers and treat them as you treat people of your own nation: and therefore, not only do not kill those whom you call your enemies, but love them and do good to them.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기독교인이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기독교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교육받은 모든 젊은이들이, 매년 가을이 오면 병무청에 나타나서 교회의 목자들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율법을 파괴하고 있다. 오직 최근에서야 복음서를 근거로 병역의무를 거부한 한 명의 농부가 나타났다. 교회의 교사들은 그에게 그의 잘못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 농부는 그들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그는 감옥에 투옥되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할 때까지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명료하고 명확한 계명이 우리의 하나님에 의해서 기독교인들에게 선포된 뒤에도 행해졌다: 다른 국가의 사람을 원수들로 여기지 말라, 오직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여길 것이며 그들을 너희가 너희 자신의 민족을 대우하듯이 여기라, 너희가 원수라고 부르는 자들을 죽여서도 안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라.

And having so understood these very simple, definite commands of Christ, not subjected to any interpretation, I asked myself: How would it be if the Christian world believed in these command­ments not in the sense that they must be sung or read for the propitiation of God, but that they must be obeyed for the welfare of man? How would it be if people believed in the duty of keeping these commandments as firmly as they believe, for in­stance, that one must say one's prayers every day, go to Church every Sunday, avoid flesh food on Fridays, and fast every Lent? How would it be if people believed these commandments even as much as they believe in the demands made by the Church? And I pictured to myself the whole of Christendom living and educating the young according to these commandments. I pictured to myself that it was inculcated on us all and on our children from child­hood upwards, by word and by example- not as now, that a man must maintain his dignity and pre­serve his rights against others (which can only be done by humiliating and offending others), but that it was taught that no man has any rights or can be superior or inferior to another, and that he only is inferior to all and most ignoble who desires to set himself above others; that there is no more humiliating condition for a man than that of being angry with another; and that my conviction that someone is insignificant or mad cannot justify my anger against him or my strife with him. Instead of all the arrangements of our life, from the shop-windows to the theatres, novels, and women's dresses, which excite sexual desire, I imagined to myself that it was suggested to us and to our children by word and deed, that to amuse oneself with voluptuous books, theatres, and balls, is the basest kind of amusement, and that every act which has for its aim to adorn or show off the body is the very basest and most shameful of acts. Instead of the organization of our life, in which it is considered necessary and good that a young man should be dissolute until he marries, and instead of a way of life that separates married couples being considered most natural; instead of the legalization of a class of women set apart for the service of depravity; in­stead of the admission of and the sanctification of divorce- instead of all this, I imagined to myself that it was instilled into us by word and deed that the condition of a man who has reached the age for sexual relations and has not renounced them but yet remains single and unmarried, is an abnormity and a shame, and that a man's desertion other with whom he has come together and the exchanging of her for another, is not only an unnatural action, like incest, but is a cruel, inhuman action. Instead of our whole life being founded on violence, instead of each of us being punished or punishing from childhood to advanced old age, I imagined to my­self that it was instilled into us all by word and deed that revenge is a most degrading animal feeling, and that violence is not merely a shameful thing but one which deprives a man of true happiness, and that the only happiness of life is such as need not be defended by violence and that the highest respect is deserved, not by him who takes or retains what is his from others, but by him who gives up the most and serves others most. Instead of it being con­sidered admirable and right that each man should be sworn in and should surrender all that he holds most valuable- that is to say, his whole life- to the will of he knows not whom, I imagined that it was instilled into all that man's reasonable will is that highest sanctuary which he may yield to no one else, and that to bind oneself by oath to anyone, and about anything, is a repudiation of one's rational being and a defilement of that highest sanctuary. I pictured to myself that instead of these national enmities which are instilled into us under the guise of love of one's country, and instead of those ap­plauded slaughters called war, which from childhood are represented to us as the most heroic deeds- I imagined that we were imbued with horror at and contempt for all those activities, political, diplo­matic, and military, which promote the separation of peoples; and that it was suggested to us that the recognition of any kingdoms, exclusive laws, fron­tiers, or territories is an indication of most savage ignorance; and that to go to war- that is to say, to kill people, people personally unknown to us, with­out any grounds- is the most horrible villainy, to which only a lost and perverted man, degraded to the level of a beast, can descend. I pictured to myself that all men believed this, and I asked: What would be the result?

나는 그렇게 하여 이토록 단순하고 명료한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어떤 해석에도 지배당하지 않도록, 깨닫고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만일 기독교 세계가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노래하고 읊어지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지켜져야 된 의미로 이 계명들을 믿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일 사람들이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교회에 가며, 금요일에는 육식을 피하고, 사순절마다 금식하듯이 확고하게 믿고서 이들 계명들을 지키는 것을 의무로서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에 의해서 정해진 규칙들을 믿듯이 이 계명들을 믿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 계명들을 따라서 살면서 어린 세대들을 가르치는 전체 기독교 사회를 상상해보았다. 나는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어릴 적부터 어린들에게 말과 행동으로서 가르쳐지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처럼,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위엄을 지니고서 다른 사람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을 마음을 상하게 하고 화내게 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어떤 권리를 가지거나 우월하거나 열등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보다도 자신을 높이려 하는 자는 모든 사람들 보다도 열등하고 가장 비천하며;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보다도 더 창피한 상태가 없으며; 누군가가 하찮다거나 미쳤다는 나의 생각이 그에 대한 분노나 그와의 싸움을 정당화할 수 없음이 가르쳐지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계획들, 상점의 진열장에서 극장들, 소설들, 그리고 성적인 욕망을 부추기는 여자의 의복들 대신에, 향락적인 책들, 극장들, 그리고 무도회들로서 자신을 즐기는 것은 가장 저속한 취미이며, 육체를 장식하거나 과시하려는 목적을 위한 모든 행위들은 가장 저속하고 수치스러운 행위들이라는 것을, 말과 행위들로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넌지시 비추어 주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젊은 사람은 결혼할 때까지 방탕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하며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삶의 조직 대신에, 그리고 결혼한 사람들이 분리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삶의 방식 대신에; 한 계층의 여자들이 타락을 위한 봉사에 마련되는 것을 합법화하는 대신에; 이혼의 허가와 축복 대신에- 이 모든 것들 대신에, 성적인 관계들이 가능한 나이에 이르렀고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아직 독신이며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비정상적이며 수치스러운 것이며, 자신이 함께 해왔던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로 바꾸는 것은 근친상간처럼 부자연스러운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잔인하며 비인간적인 행위임을 말과 행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지는 사회를 나는 상상해 보았다. 우리의 전체 삶이 폭력 위에 기초하는 대신에, 우리 각자가 어린시절부터 상당히 늙은 나이에 이르기까지 억압받거나 억압하는 대신에, 원한은 가장 비열한 동물적인 감정이며, 폭력은 수치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박탈한다는 것을, 그리고 삶의 유일한 행복은 폭력으로 보호될 필요가 없는 그런 것임을, 그리고 최고의 명예는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서 소유함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가장 귀하게 섬기는 데서 얻어 진다는 것을 말과 행위로서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지는 것을 나 스스로 상상해 보았다. 제각기 사람이 맹세를 하여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의지에 자신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 다시 말하면, 자신의 전체 삶- 을 내맡기는 것을 찬미하며 타당하다고 여기는 대신에, 사람의 이성적인 의지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신성한 것이며, 자신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어떤 것에 대해서 맹세로서 묶어 두는 것은 자신의 이성적인 존재를 포기한 것이며, 그러한 가장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것임이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지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그려보았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구실 아래에 우리에게 가르쳐진 이런 민족적 원한관계 대신에, 그리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찬양받는 도살들 대신에,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들에게 가장 영웅적인 행위들이라고 대변되어 왔지 않았는가- 우리는 사람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외교적 그리고 군사적인 그 모든 행위들에 우리가 전율과 비난을 느끼도록 배울 것을; 그리고 어떤 국가나, 배타적인 법률들, 국경들이나 또는 영토들을 인정함은 가장 야만적인 무지의 표시라는 것을;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는 것- 은, 짐승의 수준까지 나빠져서, 오직 타락하고 죄악에 빠진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극악무도한 처사라는 것을 배우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믿는 것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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