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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INTRODUCTION

서 문 (序 文)

by Aylmer Maude
아일머 모드

This volume contains three of Tolstoy's most remarkable works. Between the completion of Anna Karenina, early in 1877, and the resumption of his literary activity in the year 1885, with his popular Tales, Tolstoy devoted himself to religious reflection and to a close study of the Gospels and of dogmatic theology, although the latter subject repelled him. Apart from the full retranslation of the Gospels with voluminous notes, the works contained in this volume are almost the only literary productions of his that appeared between his forty-ninth and fifty-seventh year, that is to say during eight of the years when his powers were at their zenith.

이 책은 톨스토이의 가장 두드러진 작품들 중의 세권[신앙고백(A Confession), 복음요약(Gospel In Brief), 나는 무엇을 믿는가(What I Believe)]을 포함한다. 1877년 초기, [안나 카레니나]의 완성과 1885년 그의 문학 활동의 재개의 사이에, 그의 유명한 이야기들과 함께, 톨스토이는 종교적 명상과 복음서들 및 교리적 신학의 면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후자의 주제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방대한 양의 주석들을 포함한 복음서의 완전한 재 해석과는 달리,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49 살부터 57 살 사이에, 다시 말하자면 그의 능력이 절정에 달하던 8년 동안, 나타난 거의 유일한 그의 문학적 작품들이다.

An attempt was made in Russia to suppress these books, but they circulated clandestinely in large numbers, in hectographed copies and also in volumes printed abroad and smuggled into the country. No adequate reply to Tolstoy's terrific onslaughts upon Church and State was produced, and within a single generation, in Russia, the institutions he attacked had crumbled to dust.

러시아에서 이 책들을 탄압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은밀히 대량으로 유포되었으며, 젤라틴 복사본으로 그리고 또한 외국에서 대량으로 인쇄되어 나라 안으로 밀수되었다. 교회와 국가에 대한 톨스토이의 무서운 맹공격들에 대한 어떤 적절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으며, 한 세대 안에, 러시아에서, 그가 공격한 체제들은 부서져 가루가 되어 버렸다.

These books have been translated into all civilized languages and have circulated far and wide. Nowhere have the views they contain been adequately met. On the contrary they have now become part of the air we breathe, and denunciations of Church and State, Parliamentary Government, Capital, and the institution of property, as well as of law and order in general, have become commonplaces of democratic rhetoric, and those institutions are now in some circles regarded as offences against the people which must be swept away as a prelude to putting down the mighty from their scats, exalting the humble and meek, filling the hungry with good things and sending the rich empty away.

이 책들은 모든 문명화 된 언어로 번역되어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것들이 담고 있는 시각들에 대해서 어느 곳에서도 적절히 대응되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들은 이제 우리가 숨쉬는 공기의 일부가 되었으며, 교회와 국가, 의회 정부, 자본, 그리고 재산 제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법과 질서는, 민주주의의 미사여구로서 다반사가 되어버렸으며, 그들 체제들은 이제 어떤 범주에서는 권력자들을 그들의 똥 더미들 위에서 끌어 내리며, 미천하고 온유한 사람들을 높이고, 배고픈 사람들을 훌륭한 것들로 채워주며 부유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쫓아 보내는 전조로서, 반드시 쓸어 내어져야 할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This is serious. Our country has not yet followed in the footsteps of Russia; but here too an axe is laid to the root of the tree. What is said in these works cannot be suppressed. It is closely interwoven with some of the profoundest truths humanity has known; but it will deal a death-blow to civilization unless it can be answered.

이것은 중요하다. 우리 나라(영국)는 아직 러시아의 발자국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도끼는 나무의 뿌리에 놓여 있다. 이 작품들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금지될 수 없다. 그것은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심오한 진리들의 일부와 긴밀히 얽혀져 잇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답변이 주어질 수 없다면, 문명에 대한 치명타를 주게 될 것이다.

If the attack here made with power, conviction, and effect on the moral basis of our lives cannot be, and is not, convincingly met, it will continue to eat into the piles on which our house stands, and the whole order of our lives will crumble into dust.

만일 힘, 확신, 그리고 우리의 삶들에 대한 윤리적인 기초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서 이곳에서 행해지는 공격이 설득력 있게 대처 될 수 없거나 대처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집이 서있는 기둥을 계속해서 갉아 들어 갈 것이며, 우리의 삶들의 전체 질서는 부서져 가루가 될 것이다.

A Confession is the most important of Tolstoy's autobiographical writings, and will bear comparison with the most famous confessions ever penned; but it soon merges into a consideration not of his own life alone, but of the life of us all, to whom a brief existence ending in inevitable death has been' given here on earth.

[신앙 고백]은 톨스토이의 자서전적 저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제껏 펜으로 쓰여진 가장 유명한 신앙 고백들과 비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필연적인 죽음으로 끝을 맺는 짧은 존재로 여기 땅 위에서 주어진,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고찰로 변한다.

The conclusion he reaches in A Confession and in What I Believe is, that personal life lived for one's own ends must be a misfortune to any one intelligent enough to realize the facts; and that the only escape is to merge one's life with that of 'the son of man': that light of reason manifest in all humanity, which will endure when our personal career is ended, and which comes to us from a source outside ourselves. Life, he says, is a blessing for him who identifies himself with the son of man in the task of establishing the kingdom of God on earth, here and now. Life is a misfortune for him who seeks his personal welfare, which is an effort death inevitably baffles.

[신앙 고백] [내가 믿는 것]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는 개인적인 삶은 사실들을 깨닫기에 충분히 지적인 어느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불행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탈출구는 자신의 삶을 사람의 아들의 그것과 연합하는 것이다: , 이성의 빛이 모든 인류에게 구현되며, 그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생애가 끝나더라도 지속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들의 바깥의 근원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삶은, 지상에, 여기에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왕국을 확립할 임무를 띠는 사람의 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에 대한 축복이다. 자신의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삶은 불행이다, 개인적인 행복은 죽음이 필연적으로 좌절 시키고 마는 노력이다.

Tolstoy's interpretation of Christ's five commandments differs very considerably from that given by the Church, but he introduces an intelligible and practical meaning which most of us had never suspected till we read his books. Together with much that is profoundly true and immensely important, Tolstoy announces and elaborates a theory of non-resistance, and expounds a doctrine of Christian anarchy which, plausibly as he states it, appears to be as gross a superstition as any of those he attacks.

그리스도의 오계명(五戒命)에 대한 톨스토이의 해석은 교회가 제시하는 것과는 매우 상당히 다르지만, 그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의 책들을 읽을 때까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분명하며 사실적인 의미를 소개한다. 심오한 진리와 깊은 중요성을 띤 많은 것들과 함께, 톨스토이는 무저항의 이론을 공표하고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그럴듯하게 설명하지만, 그것은 그가 공격하는 어느 것들 만큼이나 형편없는 미신처럼 보이는 기독교적인 무정부주의의 교리를 설명한다.

If his theory be right (and he claims for it Christ's authority), nothing can, and nothing I should, save our industrial, political, or national existence from destruction. If, however, Christ meant this, it is curious that he did not say more than a few words of doubtful interpretation on a matter to which Tolstoy found it necessary during the last thirty years of his life to devote many volumes. Furthermore, Christ said, 'Render un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sar’s,' bidding us apparently give some recognition to government to which, Tolstoy says, we should give none. Even if Christ meant what Tolstoy says he meant, if this conflicts, as it does, with our reason, conscience, and experience of life, it is still our duty to reject it. For, as Tolstoy has said, we select Christ's teaching and prefer it to other teachings, and call it divine, because it appears to us reasonable and true. If, on the contrary, after being interpreted by Tolstoy, it turns out to be plainly false, we must reject Christ's authority rather than substitute falsehood for truth.

만일 그의 이론이 옳다면 (그리고 그는 그것에 대해 그리스도의 권능을 주장한다), 아무것도, 내가 단언컨대, 아무것도, 우리의 산업적인, 정치적인, 또는 국가적 존재를 멸망으로부터 구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그리스도가 이것을 의미하였다면, 톨스토이가 과거 삼십년 동안 자신의 삶을 많은 저서들에 헌신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문제에 대한 의심스러운 해석 몇 마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라고 말하였으므로, 톨스토이가 말하는 바, 우리가 어떤 인정을 하지 말하야 하는 정부에 대해 약간의 인정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록 톨스토이가 말하는 바 그가 의미했다고 하는 것을 그리스도가 의미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런 것처럼, 만일 이것이 우리의 이성, 양심, 그리고 삶의 경험과 충돌한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이성적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고 다른 가르침들보다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톨스토이에 의해서 해석되고 나서, 그것이 명백히 거짓이라고 판명되면, 우리는 진리 대신에 거짓으로 대체하느니 그리스도의 권능을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We here face a stupendous problem, which only those who read this book carefully are likely to realize fully.

우리는 여기서 엄청난 문제를 직면하는데, 이것은 오직 이 책을 조심스럽게 읽는 사람들만이 온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In the second volume of my Life of Tolstoy I suggested that Tolstoy's interpretation of the rule of non-resistance to 'him that is evil' was faulty, and went to the length of proposing an alternative interpretation; but on one point I think Tolstoy's meaning is seldom grasped.

나의 저서 [톨스토이의 삶]의 제2권에서, 나는 톨스토이의 악에 대한 무저항의 명령에 대한 해석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해석을 제안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점에서 톨스토이의 의미는 거의 이해되지 않는다.

Strange as it seems to us English people, and slow as I myself was to grasp it, I know not only from his works but also from correspondence and conversation with him, that he interpreted the injunction to turn the other cheek to the smiter, ‘and if any man would go to law with thee and take away thy coat, let him have thy cloak also’, to mean that no physical force should be used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to resist him that is evil.

비록 우리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며, 나 자신도 그것을 이해하는데 더디지만, 나는 그의 저서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그와의 서신들과 대화들로부터, 그는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돌려 대라는 명령인,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악한 자에게 대항함에 있어서 어떤 물리적 임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석하였다는 것을 안다.

Many objections may be urged against that interpretation, but at any rate Tolstoy is not open to the reproach of being illogical when he approves of resistance even in an acute form, so long as this resistance does not involve the use of physical force. I am aware of the intricacy of the problem, and all I want to urge here is that unless and until one grasps Tolstoy's position-that it is the use of physical force to restrain men against their will that is immoral-one cannot see how logical (whether sound or not) his argument is.

그런 해석에 대해서 많은 반론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톨스토이는 이러한 저항이 물리적 힘의 사용이 포함되지 않는 한, 심지어 격렬한 형태의 저항도 용인한다는 점에서 모순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나는 문제의 복잡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촉구하는 모든 것은 톨스토이의 입장-비도덕적인 것은 사람들을 그들의 의지에 대치하여 억압하기 위해서 물리적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을 이해하지 않거나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의 논거가 얼마나 논리적인지(온당하든 아니든) 우리는 알 수 없다.

Another point to realize is that Tolstoy, particularly at that period of his life, looked at things very much through the eyes of the Tula peasantry. Tula was a poor agricultural district where life was primitive and hard and Government demands for taxation and army service were a burden almost heavy to be borne. The outlook of a Godfearing Tula peasant was perhaps nearer to that of the Galilean disciples and the Evangelists than our twentieth-century English outlook is. Be that as it may, On Life, and Essays on Religion will show him ceasing to concern himself with the precise words of the Gospels and taking a much wider outlook on religion; but it is remarkable that even after he had ceased to attach special importance to Gospel texts he held tenaciously to the rule of Non-Resistance as being of cardinal importance, and did this not merely as a dialectical weapon against conscription, Siberian exile, capital punishment, and other evils inflicted by Government, but as an integral portion of the guidance for life that he had found while studying Christ's words.

깨달아야 할 다른 요점은 톨스토이는, 특히 그의 삶의 기간에 있어서, 툴라 농부들의 눈을 통해서 사물들을 많이 바라 보았다. 툴라는 가난한 농업지역으로, 그곳에서의 삶은 원시적이며 열악하였고, 정부의 세금과 병역에 대한 요구는 견디기에는 거의 힘든 부담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툴라 농부의 전망은 아마도 우리의 이십세기 영국의 전망보다는 갈릴리의 사도들과 전도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삶에 관하여, 그리고 종교에 관한 논문]은 그가 복음서들의 정확한 말씀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중단함과, 종교에 대한 훨씬 폭넓은 전망을 가짐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심지어 복음서 원문들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기를 중단한 뒤에도 그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무저항의 명령에 끈질기게 집착했다, 그리고, 정부에 의해서 가해지는 징병, 시베리아 유형, 사형제도, 그리고 다른 악행들에 맞서는 변증법적인 무기로서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연구함에 있어서 발견한 삶에 대한 지침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이것에 집착했다.

In the years between the completion of Anna Karenina in 1877 and his active return to fiction and drama with the publication of The Death of Ivan Ilych and The Power of Darkness in 1886, Tolstoy wrote three other large works on religion besides the two given in this edition. There is a very detailed Harmony and Translation of the Four Gospels in two volumes, difficult to present satisfactorily to English readers because much of it is directed against faulty renderings in the Church-Slavonic text. And there is a Criticism of Dogmatic Theology, which would have little appeal for English readers, since those who hold to the dogmas of the Church creeds might think it wrong to consider his arguments, while the many who are already indifferent to the creeds would think any serious discussion of them a waste of time.

1877 [안나 카레니나]의 완성과, 1886 [이반 일리아치의 죽음] [어둠의 힘]의 출판과 더불어 소설과 드라마에 활발한 복귀 사이의 기간 동안에, 톨스토이는 이번 출판에 내 놓은 두 가지 외에 종교에 관한 다른 방대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두 권에 걸친 매우 상세한 [ 복음서의 조화와 번역]으로서, 많은 내용들이 슬라브 교회의 사본에 있어서 잘못된 번역에 대해 집중되어 있으므로 영국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럽게 보여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교리적 신학의 비판]으로서, 영국 독자들에게는 거의 매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의 교리들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그의 논리들을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며, 반면에, 교리들에 이미 냉담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한 어떤 진지한 논의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To indicate Tolstoy's point of view and the difficulty of securing fair consideration for it, let me tell of an incident that occurred not long ago. Lecturing on Tolstoy, I spoke of the fact that, in the course of his search for a religion he carefully examined the Church creeds and arrived at the conclusion that the whole body of dogmatic theology was meaningless and would not bear reasonable examination. As an example I mentioned his conviction that it is harmful to a child's brain to give him a religious lesson in which he is told that someone went to the top of a hill and rose into the sky where 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his father; and then to give that boy an astronomy lesson in which he is told that the world is round and surrounded by infinite space-so that if anyone rose into the sky there would be no possibility of sitting down at anyone's right hand, and that if he stopped rising he would come back with a bump.

톨스토이의 관점과 그것에 대한 공정한 배려를 확보함의 어려움을 지적하기 위해서,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 하겠다. 나는 톨스토이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종교에 대한 그의 탐구 과정에서, 그는 교회의 교리들을 조심스럽게 조사하였으며 교리적 신학의 전체 덩어리는 무의미하며 합리적인 조사의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급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언덕 위에 올라가서 하늘로 올라 갔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의 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고 전해주는 종교 교육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그리고 나서 세상은 둥글며, 무한한 공간-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하늘에 올라 간다면, 누군가의 오른 편에 앉아 있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가 올라 가기를 멈춘다면 쿵 소리와 함께 떨어질 것이다-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다고 말하는 천문학 교육을 그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의 머리에 해로운 것이다는 그의 확신을 언급했다.

A dear and respected relation of my own, who is strongly attached to the Church, was in the audience, and when next I met her expressed regret that Tolstoy was so ignorant as not to know what any educated theologian could, she said, have told him, namely, that Christ did not rise in a natural body but in a 'resurrection body'.

교회에 아주 열심히 다니는 나 자신의 귀엽고 소중한 친척이 청중으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톨스토이가 어떤 학식있는 신학자도 알 수 있는 것을 모를 정도로 무식하다고 유감을 표현했다, 그녀는 말했다, 사실, 그에게 말했다, 그리스도는 자연의 몸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일어 났다고.

At the moment I could only reply that that was not what Tolstoy had heard the parish priest tell the peasant children at Yasnaya, nor had I been taught it at Christ's Hospital. On reflection it now occurs to me that by making the noun 'resurrection' into an adjective and speaking of a 'resurrection body' the theologians explain nothing, nor does their restatement of the dogma supply any moral lesson. They merely evade the necessity of admitting that the dogma is meaningless, and they do this by adding further obscurity to what was already unintelligible.

그 때에 나는 그것은 톨스토이가 교구의 신부가 야스나야의 농부 아이에게 말한 것을 들은 것이 아니며, 나 역시도 그리스도 병원에서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오직 말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서야 명사 부활을 형용사로 여기고 부활의 몸을 이야기 함에서 신학자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에서도 어떤 도덕적인 교육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단순히 교리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를 회피하며, 이미 이해할 수 없는 것에다 더욱 불명료함을 더함으로써 이 일을 행하는 것이다.

Many people-notably Voltaire-have scoffed at dogmatic theology when they have attacked religion. The peculiarity of Tolstoy's case is that his rejection of the dogmas formed part of an ardent search for religious guidance, which he thought he found by disencumbering the sayings of Christ from Church dogmas which Christ evidently never taught or could have uttered.

많은 사람들-특히 볼테르-은 그들이 종교를 공격할 때 교리적 신학을 비웃었다. 톨스토이의 경우의 특이함은 그의 교리들의 거부가 종교적 지침에 대한 열렬한 탐구의 부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결코 명백히 가르쳤거나 언급한 적이 없는 교회의 교리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가 발견하였다고 생각했다.

Tolstoy's attitude, expressed in What I Believe, towards an after-life had altered by the time he wrote On Life, and in a letter to his wife dated May Bth, 1898, he wrote:

[나는 무엇을 믿는가]에서 표현되었던 사후의 삶에 대한 톨스토이의 태도는, [삶에 대하여]를 집필하였을 때 바뀌었으며, 그리고 1898 5 8일자로 그의 아내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그는 썼다:

‘On my way back in the evening twilight I rode through Turgenev's wood, Spasskoe: fresh grass underfoot, stars in the sky, the scent of blossoming willows and dead birch-leaves, the nightingale's notes, the sounds of cockchafers and cuckoos-cuckoos and solitude-and the brisk pleasant movement of the horse under me, and physical and spiritual health. And I thought, as I constantly do, about death. And it was so clear to me that on the other side of death it will be as good, though in a different way, and I understood why the Jews represented paradise as a garden. The enjoyment of nature is the purest form of enjoyment. It was clear to me that there it will be just as good-even better. I tried to evoke in myself doubts of that life such as I formerly felt-but I could not, just as formerly I could not feel assurance.’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 돌아가는 길에 나는 스파스코의 투르게네프 숲을 지났다: 발 밑에는 파릇한 잔디가, 하늘에는 별들이, 꽃이 피는 버드나무 그리고 마른 자작 나무 잎들의 향기,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들, 왕풍뎅이와 두견새들의 소리들-두견새들과 고독함-그리고 내 아래 있는 말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 그리고 육신과 영혼의 건강. 그리고 나는 , 내가 늘 그랬듯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죽음 저편에는, 비록 다른 모습이겠지만, 여전히 훌륭하리라는 것이 내게 너무나 명료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유대인들이 왜 낙원을 동산으로 표현했는지 깨달았다. 자연을 즐김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즐거움이다. 그곳에서 그것은 여전히 훌륭할 것이며-심지어 더 나을 것임이 내게 분명했다. 나는 내가 이전에 느꼈던 그런 삶에 대한 의혹들을 자신에게 환기시키고자 시도하였다-그러나, 내가 이전에 확신을 느낄 수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럴 수 없었다.’

In other volumes of this edition I have been careful to give the dates of first publication of each item. Here I can only give approximate dates, for Tolstoy's religious works were for the most part forbidden by the censor and first circulated clandestinely in hectographed copies, being printed some ten years later at a Russian revolutionary Impress in Geneva-where, curiously enough, censorship of a different kind was exercised to exclude doctrines unsympathetic to the revolutionaries. Only towards the end of the last century was the Russian text of these works printed in England, under the supervision of Tolstoy's friend V. G. Chertkov, and not till after the 1905 revolution in Russia was the censorship sufficiently relaxed, to allow of their being printed in that country.

이번 출판의 다른 책들에서, 나는 각기 항목의 최초 발표일을 제시함에 신중을 기하였다. 여기서 나는 오직 대략적인 날짜들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톨스토이의 종교적 작품들은 대부분 당국의 검열에 의해서 금지되었으며 초기에는 젤라틴 사본으로 은밀히 유포되었기 때문이며, 몇 십년이 지나서야 제네바의 러시아 혁명 인쇄소에서 인쇄되었고-그곳에서는, 이상한 일이지만, 혁명에 동조하지 않는 교리들을 배제하는 이상한 종류의 검열이 실행되었다. 오직 지난 세기의 말 경에야 이들 작품들의 러시아어 원본이 툴스토이의 친구인 V.G 체호프에 의해서 영국에서 인쇄되었으며, 검열이 충분히 완화된 것은 1905년 러시아 혁명 후이었고, 그제야 그 나라에서 그의 작품들의 인쇄가 허가되었다.

A Confession, the first of this series of religious works, has great autobiographical as well as literary value. It is hortatory in the best sense of the word, and aims at conveying to others the experiences Tolstoy had lived through. While doing this he had no thought of sparing himself, but like Bunyan overstated his own misconduct in early life. It is also noteworthy that just when the critics were crying out that he had 'abandoned art', he was in fact, in A Confession, using his great artistic ability to impart his feelings and convictions to his readers. He was too great an artist to believe that it is only in the form of a novel, a poem, or a story, that a reader's feelings can be reached.

[신앙고백], 일련의 종교적 작품들 중 첫번째로서, 훌륭한 자서전적 및 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말씀의 가장 좋은 의미에서 충고하는 내용이며, 톨스토이가 살아 온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이 일을 행하면서, 자신에게 인정을 베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번연처럼 초기의 삶에서 자신의 방종함을 너무 과장하였다. 비평가들이 그가 예술을 버렸다고 부르짖고 있을 바로 그때, 그는 사실, [신앙 고백]에서 , 자신의 느낌들과 확신들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그의 위대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너무나 위대한 예술가라서 오직 소설, , 또는 단편을 통해서만 독자들의 느낌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Saint Augustine's name has often been mentioned in conjunction with Tolstoy's and there are no doubt some striking resemblances between them, but an exceedingly wide gulf divides the man who believed the theological scheme of redemption to be of such vital importance that unbaptized infants would perish and who furnished the arguments on which later defenders of the persecution of heretics relied, from the author of A Criticism of Dogmatic Theology, who regarded that whole theory as an absurdity and detested any idea of religious persecution.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이 톨스토이와 관련하여 종종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어떤 놀라운 비슷함이 있지만, 지극히 넓은 공간이 있어서, 구원에 대한 신학적인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으므로 세례 받지 못한 유아들은 소멸된다고 하여, 차후의 시대에 이단자들의 처형을 옹호하는 자들이 근거로 하는 논리를 제공한 사람과, [교리적 신학 비판]의 저자로서, 전체 이론이 모순이라고 여기며, 종교적 처형에 대한 어떤 사상도 거부하는 사람으로 갈라진다.

I will end this Introduction with a few more sayings uttered by Tolstoy at various periods.

나는 이 서문을 다양한 시기에 톨스토이가 언급한 말들을 몇 가지 더 이야기한 다음에 끝을 맺겠다.

Senator Andrew D. White, who was I think American Ambassador at Berlin at the time, called on Tolstoy and mentioned the Mormons, whereon Tolstoy remarked that no doubt two-thirds of their religion is deception, but that on the whole he preferred ‘a religion which professed to have dug its law out of the earth engraved on plates of gold, to one which claimed that its law was let down to it from heaven on the top of a mountain engraved on tables of stone’.

상원 의원인 앤드류 E. 화이트는, 그는 내가 생각하기로 그 당시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이었는데, 톨스토이를 방문해서 모르몬교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그것에 대해 톨스토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 종교의 삼분의 이는 사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판 위에 새겨진 흙으로부터 율법을 파내었다고 고백하는 종교를, 하늘로부터 돌로 만들어진 판위에 새겨진 산의 정상위에 율법이 내려졌다고 주장하는 종교보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When out for a walk with him one day at Yasnaya Polyana, the name of God being mentioned he turned to me and said: ‘There are two Gods’, and went on to explain himself: ‘There is the God that people generally believe in-a God who has to serve them (sometimes in very refined ways, say, by merely giving them peace of mind). This God does not exist. But the God whom people forget-the God whom we all have to serve-exists and is the prime cause of our existence and of all that we perceive.’

어느날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그와 함께 산책을 나갔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는 나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두 하나님이 있다’, 그리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하나님-그들을 섬겨야 하는 하나님 (말하자면 때로는 매우 세련된 방법으로, 그들에게 단순히 마음의 평화를 주면서)-있다. 이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어 버리는 하나님-우리 모두가 섬겨야만 하는 하나님-은 존재하며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He once wrote: 'God is that whole of which we acknowledge ourselves to be a part: to a materialist -matter; to an individualist-a magnified, non-natural man; to an idealist-his ideal, Love.'

그는 언젠가 기록하기를: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의 전부이다: 물질주의자에겐-물질, 개인주의자에겐-거만하며 부자연스러운 사람; 이상주의자에게는-그의 이상, 즉 사랑이다.

When Tolstoy was very ill in the Crimea in 1901, a few months after his Excommunication, news that he was not expected to live reached the Holy Synod, which was exceedingly anxious that at least a formal submission to the Church should be secured from him before he died. Instructions were given that a priest should try to secure an interview with Tolstoy and should announce his repentance. Tolstoy, on being told by his son of the priest's repeated applications for an interview, said: 'How is it, Sergey, that these gentlemen do not understand that even in the face of death, two and two still make four?'

톨스토이가 파문 후 몇 달 뒤인, 1901년 크리미아에서 톨스토이가 매우 위독하였을 때, 그가 회생할 가망성이 없다는 소식이 최고 종교 회의에 전해지자, 그들은 그가 죽기 전에 적어도 교회에 대한 형식적인 굴복이라도 확보하기 위하여 극도로 염려하고 있었다. 신부가 톨스토이와 면담을 확보를 시도하고 그의 회개를 공표하라는 명령들이 내려졌다. 톨스토이는, 그의 아들을 통해서 신부의 계속적인 면담 요청들을 듣고서 말했다: ‘세르게이, 어찌하여 이 점잖은 사람들이 비록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둘 곱하기 둘은 여전히 넷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Strenuously as Tolstoy expressed himself, and convinced as he generally was of the soundness of his conclusions, he never claimed to erect 'an invulnerable fortress of truth, planned and constructed once and for ever'. On the contrary, in his reply to the Synod that excommunicated him he wrote:

톨스토이가 격렬하게 자신을 피력하고, 자신의 결론들이 온전함을 일반적으로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계획하고 건설된 무너트릴 수 없는 진리의 요새를 세웠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를 파문한 최고 종교 회의에 대한 답변으로 이렇게 썼다:

'I do not believe my faith to be the one indubitable truth for all time, but I see no other that is plainer, clearer, or answers better to all the demands of my reason and my heart; should I find such a one, I shall at once accept it.'

나는 나의 신앙이 언제나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 평범하고, 더욱 명백한 다른 것을, 또는 나의 이성과 나의 마음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더 나은 대답들을 볼 수가 없다; 만일 내가 그런 것을 찾는다면, 나는 당장 그것을 받아 들일 것이다.

This volume and On Life contain the record of a very remarkable variety of religious experiences, which have never before, I think, been brought together in due sequence in any two volumes.

이 책과 [삶에 대하여]는 매우 다양하고 주목할 만한 종교적 경험들의 기록을 포함한다, 이것들은, 나의 생각에는, 이전에 결코 어떤 두 권의 책 안에 적절한 순서대로 함께 모은 적이 없는 것이다.

AYLMER MA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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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로 ] 서문 ] I. 복음 교훈의 열쇠 ] II. 무저항의 명령 ] III.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 ] IV.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 V. 예수와 모세의 율법 ] VI. 다섯 가지 계명 ] VII. 거짓 교리 ] VIII. 삶의 길 ] IX. 신앙과 행위 ] X. 나의 멍에는 가볍다 ] XI. 죽은 교회 ] XII. 신앙이란 무엇인가? ] Notes ] [ Maude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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