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i.com Homepage

 

 

 게시판  검색  자료실  사이트맵  예수와나?

 ] 위로 ] 다음 ]

 
   

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Introduction

서문

I lived in the world for fifty-five years, and after the first fourteen or fifteen of childhood I was for thirty-five years a nihilist-in the real meaning of that word, that is to say, not a Socialist or revolutionary, as those words are generally understood, but a nihilist in the sense of an absence of any belief.

나는 세상을 55년이나 살아왔다, 그리고 유년기 의 처음 14 또는 15세 후의 35년 동안 허무주의자, 진정한 의미로서의, 다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 같이 사회주의자나 혁명가가 아닌, 어떤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로서의 허무주의자이었다.

Five years ago I came to believe in Christ's teaching, and my life suddenly changed; I ceased to desire what I had previously desired, and began to desire what I formerly did not want. What had previously seemed to me good seemed evil, and what had seemed evil seemed good. It happened to me as it happens to a man who goes out on some business and on the way suddenly decides that the business is unnecessary and returns home. All that was on his right is now on his left, and all that was on his left is now on his right; his former wish to get as far as possible from home has changed into a wish to be as near as possible to it. The direction of my life and my desires became different, and good and evil changed places. This all occurred because I understood Christ's teaching otherwise than as I had formerly understood it.

5년 전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기 시작하였으며, 내 인생이 돌연히 바뀌었다. 그 전에 간구하던 것을 간구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전에 바라지 않던 것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 전에 선(善)하게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보이던 것을 이제는 선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사업을 하러 떠난 사람이 도중에 갑자기 사업은 이제 불필요하다고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나에게 일어났다. 그의 오른쪽에 있던 모든 것은 이제 왼쪽에 있으며, 왼쪽에 있던 모든 것은 이제 오른쪽에 있다. 가능한 집을 멀리 떠나려 하던 그의 욕망이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집 가까이에 있으려는 소원으로 바뀌었다. 나의 생활 방향과 모든 소망이 달라졌으며 선과 악이 자리를 바꾸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전에 이해하던 것과는 달리 이해했기 때문이다.

I am not seeking to interpret Christ's teaching, but only to tell how I understood what is simple, plain, clear intelligible, indubitable, and addressed to all men in it, and how what I understood changed my soul and gave me tranquility and happiness.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해석하고자 하지 않으며, 단지 내가 어떻게, 그 안에 있는 단순하고, 평범하고, 분명히 이해하기 쉽고, 의혹이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이해하였으며, 내가 이해한 것이 어떻게 나의 영혼을 바꾸어 놓았으며, 안정과 행복을 주었는지 말하고자 한다.

I do not wish to interpret Christ's teaching, but should only wish to prevent artificial interpretations of it.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해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오로지 그 가르침에 대한 인위적인 해석들을 막고 싶다.

All the Christian Churches have always admitted that all men - unequal in their knowledge and minds, wise or foolish - are equals before God, and that God's truth is accessible to them all. Christ even said that it was the will of God that to the foolish should be revealed what was hidden from the wise.

모든 기독교 교회는 항상 모든 인류가 - 지식과 사상들,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차이가 있음에도 -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며, 하나님의 진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인정해 왔다. 그리스도께서도 현명한 자에게는 숨겨진 진리가 어리석은 자에게 밝혀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Not all can be initiated into the deepest mysteries of dogmatics, homiletics, patristics, liturgies, hermeneutics, apologetics, &c., but all may and should understand what Christ said to all the millions of simple, unlearned people who have lived and are living. And it is just this which Christ said to all these simple people who had as yet no possibility of turning for explanations of his teaching to Paul, Clement, St. John Chrysostom, and others - it is just this that I want to tell to all men. The thief on the cross believed Jesus and was saved. Would it really have been evil or have harmed anyone had the thief not died on the cross but come down from it and told men how he learned to believe in Christ?

모든 사람들이 교리학, 설교학, 교부학, 예배법, 해석학, 변증론 등의 난해한 신비주의로 인도될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 왔으며,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의 소박하고, 배우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말한 것을 이해하거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바울, 클레멘트, 성 요한 크리서스톰 같은 사람들로부터 들을 기회가 없었던 모든 이러한 단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전해주고 싶어하는 바로 이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도둑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그 도둑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내려와서,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더라면 정말로 사악한 것이고 누구에겐가 해가 되었을까?

I, like that thief on the cross, have believed Christ's teaching and been saved. And this is no far-fetched comparison but the closest expression of the condition of spiritual despair and horror at the problem of life and death in which I lived formerly, and of the condition of peace and happiness in which I am now.

십자가에 못 박힌 도둑과 같은,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고서 구원 받았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억지 비교가 아니라 내가 과거에 살았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영적인 절망 및 공포 상태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행복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다.

I, like the thief, knew that I had lived and was living badly, and saw that the majority of people around me lived as I did. I, like the thief, knew that I was unhappy and suffering, and that around me people suffered and were unhappy, and I saw no way of escape from that position except by death. I was nailed by some force to that life of suffering and evil, like the thief to the cross. And as, after the meaningless sufferings and evils of life, the thief awaited the terrible darkness of death, so did I await the same thing.

도둑과 같은, 나는 악하게 살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의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도둑처럼, 불행하며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불행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죽음에 의하지않고는 그러한 처지에서 벗어날 아무런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마치 도둑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나는 어떤 힘에 의해서 그런 고통과 악의 삶에 못 박혔다. 그리고, 삶의 무의미한 고통들과 악들 뒤에, 도둑이 무서운 죽음의 암흑을 기다리던 것처럼, 나도 똑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In all this I was exactly like the thief, but the difference was that the thief was already dying, while I was still living. The thief might believe that his salvation lay there beyond the grave, but I could not be satisfied with that, because besides a life beyond the grave life still awaited me here. But I did not understand that life. It seemed to me terrible. And suddenly I heard the words of Christ and understood them, and life and death ceased to seem to me evil, and instead of despair I experienced happiness and the joy of life undisturbed by death.

이 모든 비극에서 나는 정확히 도둑과 같았다, 그러나 차이는, 도둑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도둑은 구원이 무덤 저편에 있는 것으로 믿었겠지만 나는 그러한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무덤 저편의 삶 외에도 삶은 아직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부터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생(生)과 사(死)가 악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절망 대신에 죽음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였다.

Surely it can harm no one if I tell how this befell me?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음을 말한다면 분명, 어느 누구에게 해를 입힐 수 있을까?.

Moscow,

모스크바,

22 January 1884.

1884년 1월 22일

   
       
   

 ] 위로 ] [ 서문 ] I. 복음 교훈의 열쇠 ] II. 무저항의 명령 ] III.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 ] IV.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 V. 예수와 모세의 율법 ] VI. 다섯 가지 계명 ] VII. 거짓 교리 ] VIII. 삶의 길 ] IX. 신앙과 행위 ] X. 나의 멍에는 가볍다 ] XI. 죽은 교회 ] XII. 신앙이란 무엇인가? ] Notes ] Maude의 서문 ]


   
 
 

 게시판  검색  자료실  사이트맵  예수와나?

 ] 위로 ] 다음 ]

 
 

Jesusi.com Homepage



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2/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