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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IV. MISUNDERSTANDING OF CHRIST'S TEACHING

IV.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

I NOW understand what Christ meant when he uttered the words: 'It was said to you: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But I say unto you: resist not him that is evil, but bear with him.' Christ said: It has been instilled into you and you are accustomed to think that it is good and reason­able to resist evil by force and to tear out an eye for an eye, to institute criminal courts, police, an army, and to defend yourselves from foes; but I say, Do not use violence, do not take part in violence, do no harm to anyone, not even to those whom you call 'enemies'.

나는 이제야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였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그리스도는 말했다: 너희는 폭력으로 악에 저항하고, 눈에는 눈을 뽑아 내고, 형사 법정, 경찰, 군대를 설립하고,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 것을 주입받았으며, 그것이 선하며 정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 폭력에 가담하지 말라, 누구에게도, 심지어 너희들이 ‘원수’라고 부르는 자들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

I now understand that Christ, in the position he takes up of non-resistance to the evil man, is speaking not only of what will result directly for each man from non-resistance to him that is evil but, in contradiction to the principle under which mankind lived in his time under the law of Moses and under the Roman law, and now lives under various legal codes, he sets up the principle of non-resistance to the evil man, which principle according to his teaching should be the basis of man's social life and should free mankind from an evil they inflict on them­selves. He says: 'You think that your laws correct evil- they only increase it. There is but one way to end evil- by rendering good for evil to all men without distinction. For thousands of years you have tried your principle; now try my contrary one.

나는 이제 다음과 같이 깨닫는다: 그리스도는, 그가 제시하는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입장으로서,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으로부터 각각의 개인들에게 초래될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자신의 시대에, 모세의 율법 아래서, 로마 제국의 법 아래서, 그리고 현재 다양한 법전들 아래서 살았던 원리들을 반대하면서, 그리스도는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의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 원리는 반드시 사람의 사회적 삶의 토대가 될 것이며 인류를 그들이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는 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법률이 악을 고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은 오직 악을 증가시킨다. 악을 끝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너희들은 너희의 원리를 시도하였다; 이제 상반되는 나의 원리를 시도하라.

I have recently spoken to people of most diver­gent opinions about this law of Christ's- non-resistance to the evil man. It did occur, though rarely, that I met some who agreed with me. But, strange to say, two kinds of people never, even in principle, tolerated a straightforward understanding of the law, but always warmly defended the justice of resistance to the evil-doer. These are people who belong to the two extreme poles: patriotic Conservative Christians, who consider their Church to be the only true one, and Revolu­tionary Atheists. Neither these nor those wish to abandon the right to resist by violence what they consider evil. And the wisest and most learned of them are quite unwilling to see the simple and obvious truth that if one admits that one man may use violence to oppose what he considers evil, another may do the same to resist what he, in turn, considers evil.

나는 최근에 매우 다양한 의견들을 지닌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이러한 율법-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 에 대해서 강연하였다. 비록 드물었지만, 우연히 나의 견해에 일치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지만, 두 종류의 사람들은, 심지어 원리에 있어서도, 결코 율법의 참된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악한 자에 대한 저항의 정의를 열렬히 옹호하였다. 이 사람들은 양극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열성적인 보수적 기독교인들로서, 그들의 교회가 유일한 참된 교회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혁명적 무신론자들이다. 전자의 사람들이든, 후자의 사람들이든 그들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을 폭력에 의해서 대항할 권리를 포기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학식있는 사람들도, 만일 한 사람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맞서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할 것을 인정한다면, 교대로, 다른 사람도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똑 같이 행할 것이다는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를 깨닫기를 너무나 꺼려하고 있었다.

A correspondence lately passed through my hands between an Orthodox Slavophil and a Christian-Revolutionary, which was instructive in this respect. The one advocated the violence of war on behalf of our oppressed brother-Slavs; the other, a revolutionary violence on behalf of our oppressed brethren, the Russian peasants. Both demanded violence, and both relied on the teaching of Christ.

얼마 전에 정통 슬라브주의자와 한 기독교 혁명가 사이에 왕래한 서신 한통이 나의 손을 거쳐갔는데, 그 서신은 이러한 면에서 매우 유익하였다. 한 편은 우리의 억압받는 슬라브 형제들을 대신하여 전쟁의 폭력성을 옹호하였으며; 다른 한 편은 우리의 억압받는 동포들인 러시아 농민들을 대신하여 혁명적인 폭력을 옹호하였다. 쌍방이 폭력을 요구하였으며, 양쪽 모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지하고 있었다.

People in general understand Christ's teaching in very various ways, but not in the direct, simple meaning which inevitably flows from his words.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실제로 그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의미만은 이해되고 있지 않다.

We have arranged our whole life on the very foundations he denies. We do not wish to under­stand his teaching in its simple, direct meaning, and we assure ourselves and others either that we do not acknowledge his teaching or that it is unsuited to us. The so-called believers believe that Christ is God, the Second Person of the Trinity who descended to earth to show us how to live, and they arrange most elaborate ceremonies necessary for the administration of the sacraments, for erecting churches, for sending out missionaries, for ordaining priests, for the direction of their flocks, for amending the creeds, but one little thing they forget- namely, to do what he told us to do. The unbelievers try to arrange their lives in all sorts of ways, only not according to the law of Christ, having decided in advance that that law will not do. But no one wishes to try doing as Christ bids us. Moreover, before even trying to do it, both the believers and the non-believers decide in advance that it is impossible.

우리는 우리들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가 부인한 바로 그 원리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의미로서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것이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도 확신 시키려고 한다. 소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신(神)이며, 삼위일체에서 제 2위(第二位)이며, 그가 인간에게 사는 방법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지상에 오신 것을 믿으며, 그들은 성사(聖事)의 집행, 교회 설립, 선교사 파견, 목사의 임명, 신자들의 지배 그리고 교리의 수정 등에 필요한 복잡한 의식실을 준비한다, 그러나 단 하나 작은 것을 그들은 잊고 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행하도록 말한 것을 행하는 것.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법이 맞지 않는다고 미리 결정해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법만은 따르지 않으면서, 그들의 삶을 갖가지 방법들로서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일러준 대로 행함을 시도하지 않는다. 더구나, 심지어는 그것을 행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신자들이나 불신자들 모두가 미리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결정해 버린다.

He says simply and clearly: the law of resistance by violence to him that is evil which you have made the basis of your lives, is false and unnatural; and he gives another basis- non-resistance- which in his opinion can alone deliver mankind from evil. He says: You think your laws of violence correct evil; they only increase it. You have tried for thousands of years to destroy evil by evil, but instead of destroying it you have increased it. Do what I do, and you will know whether it is true.

그리스도는 단순 명료하게 말한다: 너희가 삶의 토대로 만든 악한 자에 대한 폭력에 의한 저항의 법은, 거짓이며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는 다른 토대- 무저항- 를 주며, 그의 생각에 그것만이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너희는 폭력의 법들이 악을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오직 그것을 증가시킬 뿐이다. 너희는 수천 년 동안 악을 악으로 파괴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을 파괴하기는커녕 너희는 그것을 증가시켰다. 내가 말한대로 행하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이 진리인줄 알리라.

He not only says this but in his whole life, and by his death, he carries out his teaching of non-resistance to the evil man.

그는 이것을 설교했을 뿐만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죽기까지 악에 대한 무저항의 가르침을 실행했다.

Believers hear all this, they read it in their churches, they say the words are divine and that he who spoke them was God, but they say: It is all very well, but it is impossible with our arrangement of life- it would upset the whole way of life to which we are accustomed and which we like. Therefore we believe all this only as being an ideal towards which humanity must strive- an ideal to be attained by prayer and by faith in the sacra­ments and the redemption and in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Others, the unbelievers, the free-thinking investigators of Christ's teaching- Strauss, Renan, and others- who follow the historic method, having thoroughly imbibed the Church's ex­planation that Christ's teaching has no direct reference to life but is a visionary doctrine con­soling to feeble-minded people, say most seriously that Christ's teaching was only fit to be preached to the savage inhabitants of the wilds of Galilee, but that for us, with our culture, it appears merely a sweet dream- 'du charmant docteur', as Renan says. In their opinion Christ could not rise high enough to understand all the wisdom of our civilization and culture. Had he stood on the height of education on which these learned people stand he would not have talked such charming rubbish about the birds of the air, about turning one's cheek, and about not being troubled for to­morrow. These learned historians judge of Chris­tianity by the Christianity they see in our society. The Christianity of our society and day regards our present life as true and sacred, with its organizations, prisons, solitary confinements, Ciros, factories, news­papers, brothels, and parliaments, and from the teaching of Christ it selects only what does not infringe that life. But as Christ's teaching is the negation of all that life, nothing is accepted of it except mere words. The learned historians see this, and, as they are under no necessity to hide it as it is hidden by the pseudo-believers, this version of Christ's teaching deprived of all substance is sub­jected to profound criticism and very rightly repudiated. The deduction is clear that there never was anything In Christianity except dreamy ideals.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듣는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들에서 그것을 듣는다, 그들은 그 말씀들이 신성하며 그것들을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모두 좋은 말씀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의 계획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적응하였으며 우리가 좋아하는 전체 삶의 방식을 뒤집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오직 인류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기도에 의해서 그리고 성찬식(聖餐式), 속죄(贖罪)에 대한 신앙과 그리고 죽은 후의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써 달성되는- 이상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 신앙이 없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자유 사상 연구가들- 스트라우스, 르낭 및 그 밖의 사람들- 은, 역사적 방법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삶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가 없으며 단지 마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위안하는 환상적인 교리일 뿐이라는 교회의 해석을 충분히 흡수하고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오직 갈릴리 황야의 미개한 주민들에게나 설교하기에 적합하지만, 문명을 가진 우리에게는, 그것은, 단지 달콤한 꿈- 르낭이 말하듯이, ‘유쾌한 학자의’- 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문명과 문화의 모든 지혜를 이해할 만큼 높이 도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이런 학식있는 사람들이 도달한 높이까지 서 있다면 그는 공중에 나는 새에 대해서, 한 뺨을 돌려대라는 것에 대해서,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등의 매력적인 쓰레기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유식한 역사가들은 기독교를 우리 사회 안에서 그들이 보는 기독교에 의해서 판단한다. 우리 사회와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그들의 조직들, 감옥들, 독방 감금들, 공장들, 신문들, 매춘굴, 의회들을 가진 우리의 현재의 삶을 진실하고 거룩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러한 삶을 침범하지 않는 것만을 골라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러한 모든 삶의 부정이므로, 공허한 말 말고는 아무것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식한 역사가들은 이것을 안다, 그리고 엉터리 신자들처럼 이것을 숨길 필요가 없으므로, 모든 핵심을 제거한 이론 종류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심오한 비평에 맡기고 매우 정당하게 부정하여 버린다. 기독교는 오직 꿈 같은 이상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명백히 결론을 내려 버린다.

It would seem as though before judging Christ's teaching one should understand what it consists of, and to decide whether his teaching is reasonable or not one should first of all admit that he said what he said; but that is just what is not done either by the Church or by the free-thinking expositors. And we know very well why they do not do it.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판단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이 이성적인지 아닌지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이 말하고자 한 것을 말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그것은 교회에 의해서든 자유 사상 주석가에 의해서든 행해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그것을 행하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We know very well that Christ's teaching always included and includes the denial of all those human illusions, those 'vain things', empty idols, which we, by calling them Church, State, culture, science, art, and civilization, think we can separate from the ranks of delusions. But it is just against them that Christ speaks, without excluding any 'empty idols'.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언제나 그 모든 사람의 환상들, 그 ‘헛된 것들’, 공허한 우상들을 부정함을 포함하였으며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교회, 국가, 문화, 학문, 예술, 그리고 문명이라고 부르면서, 그것들을 우리가 망상의 대열에서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모든 것을 부인한다, 물론 ‘공허한 우상들’도 예외는 아니다.

Not Christ only, but all the Hebrew prophets, John the Baptist, and all the world's true sages, have spoken of that same State, culture and civilization, as an evil, ruinous to mankind.

그리스도 뿐만이 아니라 모든 히브리의 예언자들, 세례 요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참된 현자(賢者)들도, 그와 똑 같은 국가, 문화 그리고 문명을, 악이며 인류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말하고 있다.

Not finding a better comparison, I made use of the above. And then I remembered that Christ when preaching his doctrine used that same com­parison. He said: I will destroy your temple and in three days will build a new one. For that he was crucified; and it is for that very thing that his teach­ing is now crucified.

더 좋은 비유를 찾지 못하여, 나는 위의 예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가 그의 교리를 설교할 때 똑 같은 비유를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너희들을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3일 안에 새로운 성전을 지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똑 같은 이유 때문에 오늘날 그의 가르침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다.

The least one can demand of people who judge any doctrine is that they should judge of it in the sense in which the teacher himself understood it. And he understood his teaching not as a distant ideal for humanity, obedience to which is impossible, nor as a mystical poetic fantasy wherewith he captivated the simple-minded inhabitants of Galilee. He understood his teaching as a real thing, and a thing which would save mankind. And he did not dream on the cross but died for his teaching, and many others are dying and will yet die. Of such a teaching one cannot say that it is a dream!

어떤 교리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것은, 그들이 반드시 교사 자신이 이해한 것과 똑 같은 의미에서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을 인류에게 먼 이상, 불가능한 복종으로서, 그리고 갈릴리의 소박한 주민들을 사로잡은 신비한 시적인 환상으로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가르침을 현실적인 것,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것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 위에서 꿈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르침을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으며, 계속해서 죽을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우리는 몽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Every true doctrine is a dream to those in error. We have come to this, that there are many people (of whom I was one) who say that this teaching is visionary because it is not natural to man. It is not in accord, they say, with man's nature to turn the other cheek when one cheek is struck; it is not natural to give what is one's own to another; it is unnatural to work for others instead of for oneself. It is natural to man, they say, to defend his safety and the safety of his family and his property: in other words, it is natural for man to struggle for his own existence. The learned jurists prove scientific­ally that man's most sacred duty is to defend his rights, that is- to struggle.

모든 진리의 교리는 오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이런 위치에 와 있어서, 그의 가르침은 사람의 본성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환상일 뿐이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나도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말한다, 한 쪽 뺨을 맞고서 다른 뺨을 돌려대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맞지 않다;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노동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의 안전 그리고 자기 가족과 자신의 재산의 안전을 수호함이 당연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투쟁함이 사람에게는 당연하다. 학식있는 법학자들은 사람의 가장 신성한 의무는 자신의 권리들을 수호하는 것, 즉- 투쟁하는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But it is sufficient to free oneself for a moment from the thought that the order which exists and has been arranged by men is the best and is sacro­sanct, for the objection that Christ's teaching is not accordant with man's nature to turn against the objector. Who will deny that to murder or torture, I will not say a man, but to torture a dog or kill a hen or calf is contrary and distressing to man's nature? (I know people who live by tilling the land, and who have given up eating meat merely because they had themselves to kill their own animals.) Yet the whole structure of our lives is such that each man's personal advantage is obtained by inflicting suffering on others, which is contrary to human nature. The whole order of our life and the whole complex mechanism of our institutions de­signed for the infliction of violence, witness to the extent to which violence is contrary to human nature. Not a single judge would decide to strangle with a rope the man he condemns to death from the bench. Not a single magistrate would make up his mind himself to take a peasant from his weeping family and shut him up in prison. None of our generals or soldiers, were it not for discipline, oaths of allegiance, and declarations of war, would, I will not say kill hundreds of Turks and Germans and destroy their villages, but would even decide to wound a single man. All this is only done thanks to a very complex state and social machinery the purpose of which is so to distribute the responsibility for the evil deeds that are done that no one should feel the unnaturalness of those deeds. Some men write the laws; others apply them; a third set drill men and habituate them to discipline, that is to say, to senseless and implicit obedience; a fourth set- the people who are disciplined- commit all sorts of deeds of violence, even killing people, with­out knowing why or wherefore. But a man need only, even for a moment, free himself mentally from this net of worldly organization in which he is involved to understand what is really unnatural to him.

그러나 현존하는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서 체제가 가장 훌륭하며 가장 신성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잠시 동안만 해방시킨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람의 본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장애물이 반대자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어느 누가 살인하거나 고문하는 것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개를 고문하거나 닭이나 송아지를 살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에 위배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부정할 것인가? (나는 땅을 경작하면서 살아가면서, 단순히 자신이 기른 동물들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삶들의 전체 구조는 각각의 사람의 개인적 이익은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얻어 지며,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도록 되어 있다. 폭력을 가하도록 설계된 우리의 삶의 전체 질서와 우리의 제도들의 전체적인 복합적 장치는, 폭력이 사람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어떤 판사도 그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린 사람을 밧줄로 목을 매어 죽이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행정관도 한 농부를 그의 울고있는 가족으로부터 체포하여 투옥하도록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장군이나 병사도, 훈련, 충성의 맹세, 그리고 전쟁의 선언이 아니라면, 수백명의 터어키인들이나 독일인들을 살해하거나 그들의 마을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단 한 사람이라도 상처를 입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오직 매우 복잡한 국가 및 사회 조직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며, 그 조직의 목적은 악한 행위들의 책임을 분배하여 어느 사람도 자신들의 행위들에 대해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게 행해지도록 함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법들을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들을 적용한다; 세 번째의 사람들은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규율에 적응하도록, 즉, 무감각하고 무조건적인 복종하도록 만든다; 네 번째 무리는- 훈련 받은 사람들-  이유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폭력 행위들을 저지르고, 심지어 사람들을 살해한다. 그러나 사람은 오직, 심지어 잠시동안 만이라도,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이런 세상의 조직의 그물에서, 자신을 정신적으로 풀어 놓으면, 무엇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부자연스러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As soon as we cease to affirm that the customary evil we employ is an immutable divine truth, it becomes obvious which of the two is natural and accordant to man: violence, or the law of Christ. Is it to know that my tranquility and safety and that of my family, and all my pleasures, are purchased by the destitution, corruption, and misery of millions, by hangings every year, by hundreds of thousands of suffering prisoners, by millions torn from their homes and stupefied by discipline- soldiers, policemen, and gendarmes who, armed with pistols against hungry people, safeguard my amusements- to purchase every sweet morsel I put into my mouth or into the mouths of my children, by the sufferings of humanity that are unavoidable for the procuring of these morsels? Or to know that, be the morsel what it may, it is mine only when no one else needs it and when no one has to suffer on account of it?

우리가 채택하는 일상화된 악이 불변의 신성한 진리라고 주장함을 멈추자마자, 둘 중의 어느 것이 자연스럽고 적합한지 분명해진다: 폭력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법인가. 나와 나의 가족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나의 모든 행복들은, 수백만 명의 빈곤, 부패, 그리고 불행에 의해서, 해마다의 교수형에 의해서, 수십만의 고통받는 죄수들에 의해서, 훈련 때문에 자신의 가정으로부터 격리되어 마비된 수백만 명- 나의 쾌락들을 보장하기 위해 배고픈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서 총으로 무장한 병사들, 경찰들, 그리고 헌병들- 에 의해서 사들여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입 속에 또는 내 자식들의 입 속에 넣기 위해 사들이는 맛있는 음식마다, 이런 음식들을 얻음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인류의 고통들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그것이 어떤 음식이든지, 다른 사람에겐 필요가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아무도 고통 당하지 않을 때, 내 것임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It is only necessary once to understand that this is so, and that every pleasure of mine, every mo­ment of tranquility under our organization of life, is purchased by the deprivations and sufferings of thousands who are restrained by violence; one need but once understand that fact, to understand what is natural to man's entire nature- that is to say, not merely to his animal nature, but to his reasonable nature as well. One need only understand the law of Christ in its full meaning, with all its conse­quences, in order to understand that Christ's teaching is not contrary to man's nature, but that it really consists in rejecting what is contrary to man's nature, namely, the visionary human doctrine of resistance to evil which now makes life unhappy.

이러한 일이 사실이며, 나 자신의 모든 기쁨, 우리의 삶의 조직 아래서의 매 순간의 평안은,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빈곤과 고통에 의해서 얻어 진다는 것을 오직 한 번만이라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의 전반적 본성에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그의 동물적 본성 뿐만 아니라, 그의 이성적인 본성까지- 우리는 이런 사실을 단 한 번만이라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인간의 본성에 반대되지 않으며,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을, 즉, 오늘날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허황된 인간의 교리를 진정으로 거부함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그 완전한 의미로서, 그 모든 중요성을 가지고, 단 한 번만이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Christ's doctrine of non-resistance to him that is evil is a dream! But that the life of men in whose souls pity and love for one another is implanted, has been passed, and is now being passed, by some in organizing executions at the stake, knouts, and breakings on the wheel, lashes, the splitting of nostrils, tortures, handcuffs, penal servitude, gal­lows, shootings, solitary confinements, prisons for women and children, in arranging the slaughter of tens of thousands in wars, in organizing periodic revolutions and Pugachev revolts, and the life of others in carrying out all these horrors, and the life of a third set in evading these sufferings and aveng­ing themselves for them- is this not a dreadful dream?

악한 자에 대한 무저항의 그리스도의 교리는 환상이다! 그러나 영혼 속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심어져 있는 사람들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서 화형(火刑), 가죽 채찍, 형차(刑車), 태형, 코를 찢음, 고문, 족쇄, 중노동, 교수대, 총살, 독방감금, 부녀자용 감옥들과 같은 처형들을 조직함에서, 전쟁에서 수만 명을 도살할 준비를 함에서, 주기적인 혁명들과 봉기들을 조직함에서, 그리고, 이 모든 공포를 실행함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도, 그리고 제 삼의 무리들의 삶도, 이런 고통들을 피하거나 그것들에 대해 복수함에서 사라져 갔으며,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무서운 환상이 아니란 말인가?

One has but to understand Christ's teaching to understand that the world, not that which God gave for man's delight but the world men have devised for their own destruction, is a dream, and a very wild and terrible dream- the raving of a maniac from which one need but awake in order never to return to that terrible nightmare.

하나님이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의 파멸을 위해 만들어 낸 세상은, 꿈이며 가장 난폭하고 무서운 꿈- 우리가 오직 깨어 날 필요가 있으며 다시는 그토록 무서운 악몽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하는 미친 자들의 광란- 이란 것을 우리는 깨닫기만 하면 된다.

God descended to earth; the Son of God- one of the Persons of the Trinity- became flesh and redeemed Adam's sin; this God, we were taught to think, must have said something secret, mystical, difficult to understand, and only to be understood by the aid of faith and the sacraments; and suddenly it appears that the word of God is so simple, so clear, so reasonable. God says simply: Do not do evil to one another- and there will be no evil. Is it possible that God's revelation is so simple? Can it be that God only said that? It seems to us that we all knew that: it is so simple.

하나님은 지상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 삼위일체 중의 한 분- 이 육신이 되어서 아담의 죄를 구속하셨다; 이 하나님은 틀림없이 무엇인가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우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말씀하셨으며, 오직 신앙과 성사(聖事)들로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명료하며, 너무나 이성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단순히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 그러면 악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토록 단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오직 그것만을 말씀하셨을까?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Elijah the prophet, fleeing from men, hid in a cave, and it was revealed to him that God would appear to him at the entrance to the cave. A storm arose that broke the trees. Elijah thought this was God, and looked; but God was not there. Then came thunder; the thunder and lightning were terrible. Elijah went out to look whether God was not there; but God was not there either. Then there came an earthquake; fire arose from the earth, the rocks were rent, and the mountains quaked. Elijah looked, but God was still not there. Then a light, quiet breeze arose, bringing the refreshing scent of the fields. Elijah looked- and God was there! Such, too, are these simple words of God: 'Resist not him that is evil.'

선지자 엘리야는 사람들을 피하여 동굴에 숨어 들었다, 그리고 동굴의 입구에서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폭풍이 일어나서 나무들이 부러졌다. 엘리야는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 천둥소리가 났다; 천둥과 번개는 무서웠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그곳에 있는지 나가서 찾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도 없었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났다; 땅에서 불이 솟아나오고, 바위가 갈라졌다, 그리고 산들이 진동하였다. 엘리야는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곳에 없었다. 마침내 가볍고 조용한 미풍이 불면서, 들판의 신선한 내음을 몰고 왔다. 엘리야는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다! 하나님의 이토톡 단순한 말씀들도 그렇게 온다: ‘악한 자에게 대항하지 말라.’

They are very simple, but in them is expressed the law of God and man, one and eternal. The law is to such an extent eternal that if there is in history a movement forward towards the elimination of evil, it is thanks only to those men who have so understood Christ's teaching and have endured evil and not resisted it by violence. Progress to­wards the welfare of mankind is made not by the persecutors but by the persecuted. As fire does not extinguish fire, so evil cannot extinguish evil. Only goodness, meeting evil and not infected by it, con­quers evil. That this is so is in man's spiritual world an immutable law comparable to the law of Galileo, but even more immutable, clearer and more complete. People may deviate from it and hide it from others, but nevertheless the progress of humanity towards what is good can only be accomplished by that path. Every step forward is made solely in the path of non-resistance to evil. And in the face of all possible temptations and threats the disciples of Christ may, with more assurance than Galileo, de­clare: 'And yet, not by violence, but by goodness alone can you destroy evil.' If that advance is slow, this is thanks solely to the fact that the clearness, simplicity, reasonableness, inevitability, and ne­cessity of Christ's teaching is hidden from the majority of men in the most cunning and dangerous way, hidden under a different doctrine falsely called his.

그것들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율법이 표현되어 있으며, 하나이며 영원하다. 그 율법은 그토록 영원하여서, 만일 역사상에 악의 제거를 향한 전진의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렇게 깨닫고 악을 참아 내었으며 폭력으로서 저항하지 않았던 탓이다. 인류의 복지를 향한 진보는 박해하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박해받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불이 불을 끌 수 없듯이, 악도 악을 소멸시킬 수 없다. 오직 선만이, 악을 만나서 물들지 않음으로써, 악을 굴복시킨다. 이것이 그러한 것은 사람의 영혼의 세상에서 갈릴레오의 법칙에 비교할 수 있는 불변의 법칙이다, 그러나 심지어 더욱 불변하며, 더욱 명료하고 완전하다. 사람들은 이 길에서 이탈할지도 모르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숨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향한 인류의 전진은 오직 그러한 길을 통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다. 전진을 향한 각각의 걸음은 오직 악에 대한 무저항의 길에서만 옮길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가능한 유혹들과 위협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갈릴레오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지고서, 선언한다: ‘그렇지만,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선에 의해서만 악을 파괴할 수 있다.’ 만일 그런 전진이 더디다면, 이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명료함, 단순성, 합당성, 불가피성, 그리고 필요성이 가장 교묘하며 위험스런 방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숨겨져 있으며, 거짓되이 그의 것이라고 일컬어 지는 다른 교리 밑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 위로 ] 서문 ] I. 복음 교훈의 열쇠 ] II. 무저항의 명령 ] III.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 ] [ IV.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 V. 예수와 모세의 율법 ] VI. 다섯 가지 계명 ] VII. 거짓 교리 ] VIII. 삶의 길 ] IX. 신앙과 행위 ] X. 나의 멍에는 가볍다 ] XI. 죽은 교회 ] XII. 신앙이란 무엇인가? ] Notes ] Maude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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