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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Believe

(나는 무엇을 믿는가)


by Leo Tolstoy

   
       
   

XII. WHAT IS FAITH?

XII. 신앙은 무엇인가?

I believe Christ's teaching; and this is what I believe.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

I believe that my welfare in the world will only be possible when all men fulfill Christ's teaching.

나는, 세상에서의 나의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행할 때에, 오직 가능하다고 믿는다.

I believe that the fulfillment of that teaching is possible, easy, and joyful.

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쉬우며, 그리고 즐겁다고 믿는다.

I believe that before that teaching is universally followed, even were I alone in fulfilling it, there is still nothing for me to do to save my life from inevitable ruin but to fulfill that teaching, just as there is no alternative way of escape from a burning house for a man who has found the door leading to safety.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보편적으로 따르기 전에, 심지어 그것을 이행함에 있어서 나 혼자일지라도, 피할 수 없는 파멸에서 나의 삶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이러한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 말고는 없으며, 이것은 피신할 수 있는 문을 발견한 사람에게 활활 타고 있는 집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없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that the life I lived in accord with the world's teaching was tormenting, and that only life in accord with Christ's teaching gives me in this world the welfare the Father of life intended for me.

나는, 세상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았던 삶은 괴로웠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이 이 세상에서 삶의 아버지가 내게 의도하는 행복을 내게 준다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that this teaching confers blessedness on all humanity, saves me from inevitable destruction, and gives me here the greatest possible welfare. Therefore I cannot but accept it.

나는, 이 가르침이 모든 인류에게 행복을 주고, 나를 피할 수 없는 파멸로부터 구원해주며, 그리고 지상에서 가능한 최고의 행복을 준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The law was given by Moses;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John i. 17). Christ's teach­ing is welfare and truth. Formerly, not knowing the truth, I did not know welfare. Mistaking evil for good I fell into evil and doubted the rightness of my strivings after goodness. Now I have under­stood and believed that the goodness towards which I strove is the will of the Father and the most legitimate essence of my life.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행복과 진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니라’(요한복음 1장 17절)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행복과 진리이다. 나는 과거에도 진리를 알지 못했으므로 행복도 못했다. 나는 악을 선이라 보고 악에 빠졌으며, 행복을 찾는 나 자신의 노력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이제야 내가 열망하고 있는 선이 아버지의 뜻이며, 나의 삶의 합법적인 실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믿는다.

Christ has said to me: Live for goodness, but do not trust those snares () which, tempting you with a simulacrum of what is good, deprive you of goodness and trap you into evil. Your welfare lies in your unity with all men; evil is the infringe­ment of that unity of the son of man. Do not de­prive yourself of that welfare which is given you.

그리스도가 내게 말했다: 선을 위해 살라, 그러나 유혹들()을 믿지 말라, 그것들은, 선한 것을 모방하여 너를 유혹하고, 너에게서 선을 빼앗을 것이며 악에 걸려들게 할 것이다. 너의 행복은 모든 사람과의 일치에 놓여 있다; 악은 사람의 아들과의 그런 일치를 깨트리는 것이다. 너에게 주어진 행복을 잃어 버리지 말라.

Christ has shown me that the unity of the son of man, the love of men among themselves, is not, as it formerly seemed to me, an aim towards which people should strive, but that this unity, this love of men among one another, is their natural con­dition, in which children are born according to Christ's words and in which all men live until this condition is infringed by fraud, error, or temptation.

사람의 아들과의 일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함은, 과거에 내게 느껴지던 것처럼,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이런 일치는,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사랑함은, 그들의 자연적인 상태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아이들이 태어나며, 그 안에서 이런 상태가 기만, 오류 또는 유혹에 의해서 파괴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내게 보여 주었다.

But Christ not only showed me that; he clearly, beyond possibility of error, enumerated for me in his commandments all the temptations which had deprived me of that natural condition of unity, love, and blessedness and had drawn me into evil. The commands of Christ give me the means of salvation from the temptations which have deprived me of my welfare, and therefore I cannot but believe in those commandments.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순히 이것만 나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다; 모든 오류의 가능성을 초월하여 명백하게, 나에게서 일치, 사랑, 그리고 행복과 같은 자연적인 상태를 앗아가고 나를 악으로 밀어넣은 모든 유혹들을, 그의 계명 안에서 나에게 하나씩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명령들은 나에게서 나의 행복을 빼앗아 가버린 유혹들로부터 구원의 방법을 나에게 준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계명들을 믿지 않을 수 없다.

I was given the blessing of life, and I myself ruined it. Christ by his commandments showed me the temptations through which I ruin my happi­ness and therefore I cannot continue to do what ruins it. In that and in that alone is my whole belief.

나는 삶의 행복을 받았으며, 나 자신은 그것을 파괴했다. 그리스도는 그의 계명들로서 내가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유혹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계속해서 행할 수 없다. 바로 이점에, 오직 이런 점에 나의 전체 믿음이 있다.

Christ showed me that the first temptation which destroys the good of life is enmity, anger against other men. I cannot but believe this, and therefore can no longer deliberately bear ill-will to others; I cannot, as I used to do formerly, take pleasure in my anger, be proud of it, inflame it, and justify it by considering myself important and wise and other people insignificant, lost, and senseless. I can now no longer, at the first indication that I am giving way to anger, fail to acknowledge that I alone am guilty and to seek reconciliation with those who strive against me.

그리스도는 삶의 행복을 파괴하는 제 1의 유혹은 증오, 즉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악의를 가질 수 없다; 나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나의 분노를 즐거워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것에 불을 붙이며, 나 자신을 중요하고 지혜로우며 다른 사람들은 하찮고, 망했으며, 그리고 미쳤다고 여김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분노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오직 내가 유죄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나에게 대항하는 사람들과 화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But that is not enough. If I now know that my anger is an unnatural condition, harmful for me, I also know what temptation brings me to it. That temptation consists in the fact that I have separated myself from other people, considering only some of them to be my equals and all the rest to be mere ciphers, not real men () or stupid and un­educated (irrational). I now see that this separa­tion of myself from others and this estimation of others, as raca and senseless, was the chief cause of my enmity against men. Remembering my former life I now see that I never allowed my hostile feel­ing to flame up against those I considered to be my superiors and never insulted them, but that the smallest action that was unpleasant to me from a man I considered beneath me provoked my anger and caused me to insult him, and the more I thought myself above such a man the more ready was I to insult him; sometimes the mere imagination of the inferiority of a man's position caused me to insult him. Now I remember that that man alone is superior to others who humbles himself before others and is the servant of all. I now understand why that which is exalted among men is an abomination before God, and why woe befalls the rich and famous and the poor and humble are blessed.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만일 내가 지금 나의 분노가 비자연적이고 해롭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또한 어떤 유혹이 나를 분노에 이르게 하는지 안다. 그러한 유혹은 내가, 오직 그들 중의 몇 명만 나와 같은 자이며 모든 나머지는 단순히 하찮은 자들이며, 멸망한 자들(), 또는 어리석고 무지한(비이성적인) 자들로 여기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했다는 사실에 있다. 나는 이제, raca 및 어리석다고 여기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런 구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런 평가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증오의 주된 원인이었음을 안다. 나의 이전의 삶을 기억해 보고서 다음을 알 수 있다, 나보다 우월하다고 여긴 사람들에게는 결코 나의 적대적인 감정이 타오르도록 하지 않았으며 결코 그들을 모욕하지 않았지만, 나보다 열등하다고 여긴 사람에게서 불쾌하게 느끼는 지극히 사소한 행위는 나의 분노를 불러와서 그를 모욕하도록 하였으며, 내가 그런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쉽사리 그들 모욕하였던 것이다; 때로는 사람의 지위가 열등하다는 단순한 상상만으로 나로 하여금 그를 모욕하게 한 것이다. 나는 이제 기억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낮추며 모든 사람들의 종이되는 그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 왜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며, 왜 부자들과 유명한 사람들에게 저주가 내리며, 가난한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에게 행복이 있는지, 이해한다.

Only now do I understand this and believe it, and this belief has changed my whole appreciation of what is good and lofty and what is bad and mean in life. All that formerly appeared to me good and lofty- honors, fame, education, riches, the com­plexity and refinement of life and of its surround­ings, food, dress, and outward manners- all this has become for me bad and mean; while peasant life, obscurity, poverty, roughness, simplicity of surroundings, food, dress, and manners, has all become for me good and noble. And therefore if, knowing all this, I still in moments of forgetfulness yield to anger and insult my brother-man, yet when calm I can no longer yield to that temptation of placing myself above my fellows which deprives me of my true welfare, unity, and love, just as a man cannot reset for himself a trap into which he has formerly fallen and which nearly destroyed him. Now I cannot participate in anything that would outwardly place me above others, separating me from them; I cannot as formerly recognize, either for myself or for others, any titles, ranks, or dis­tinctions, beyond claiming to be a man; I cannot seek for fame or praise; I cannot seek such know­ledge as would separate me from others, and cannot but seek to free myself from my wealth which separated me from others, and I cannot in my life and its surroundings, in food, clothing, and external manners, fail to seek for all that will not divide me from, but unite me with, the majority of men.

오직 이제야 나는 이것을 깨닫고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은 삶에 있어서 무엇이 선이며 고귀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악이며 비천한 것인지에 대한 나의 전체 이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나에게 선하고 고귀한 것처럼 보이던 모든 것- 존경, 명예, 교육, 부, 삶의 그 환경의 다양함과 세련미, 음식, 의복, 그리고 외적인 태도들- 이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 악하며 비천한 것으로 변했다; 한편, 농부로서의 삶, 하찮은 것, 빈곤, 세련되지 못한 것, 환경, 음식, 의복, 그리고 태도들의 단순함은, 내게 있어서 모두 다 선하고 고귀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모든 것을 알면서, 내가 아직도 망각의 순간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나의 동포들을 모욕한다 하더라도, 냉정한 순간에는 나에게서 참된 행복, 화합 그리고 사랑을 앗아가는 나의 형제들 보다 나를 위에 두려는 유혹에 더 이상 굴복할 수 없으며,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과거에 자신이 빠져서 거의 파멸하게 만들었던 함정에 다시 걸려들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제 나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여, 명백히 다른 사람들 보다도 위에 두려는 어떤 것에도 참여할 수 없다; 나는 과거처럼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임을 주장함 외에는, 어떤 직함들, 직위들, 또는 명예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그런 지식을 추구할 수 없다, 그리고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는 나의 부에서 자유로워 지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과 그 주변에서, 음식, 의복, 그리고 외적인 태도들에서, 나를 대다수의 사람들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합하는 모든 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Christ has shown me that another snare ruining my welfare is lustfulness- that is to say, desire for another woman and not for her with whom I have united. I cannot but believe this, and therefore cannot, as I used to, consider adulterous lust a natural and noble quality in a man. I cannot justify it to myself by my love of beauty, by being enamored, or by defects in my wife. I cannot but recognize, at the first intimation that I am yielding to adulterous desire, that I am in an unhealthy and unnatural state, or fail to seek for all the means which can free me from that evil.

그리스도는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제 2의 유혹은 간음- 다시 말하면, 나와 결합한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에 대한 욕망- 이라는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전처럼 간음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람에게 있는 자연적이며 고상한 품성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이런 행위를 미에 대한 사랑, 정열적인 체질, 나의 아내의 결함을 이유로 스스로에게 정당화할 수 없다. 나는, 내가 간음의 욕망에 굴복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에, 내가 건강하지 못하며 비자연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며, 아니면 나를 그런 악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을 찾지 않을 수 없다.

But knowing now that adulterous lust harms me, I also know the temptation which formerly led me into it, and therefore I cannot serve it; I now know that the chief cause of temptation is not that people cannot refrain from fornication, but that most men and women have been deserted by those with whom they first came together. I now know that every desertion of a man or woman by him or her with whom they first had connexion is that very divorce which Christ forbids; because the husbands and wives abandoned by their first mates cause all the depravity in the world. Remembering what it was that led me into lechery, I now see that, besides the barbarous education by which the lust of fornica­tion in me was physically and mentally inflamed and was excused by all sorts of subtleties, the chief snare that entangled me arose from my having abandoned the first woman with whom I had con­nexion, and the condition of women who had been abandoned and who surrounded me. I now see that the chief strength of the temptation was not in my lust, but in the fact that my lust and that of the women who had been deserted and who surrounded me was unsatisfied. I now understand the words of Christ: God at first created man, male and female, so that the two were one, and therefore man may not and should not divide that which God hath joined. I now understand that monogamy is the natural law of humanity which must not be in­fringed. I now fully understand the saying that whoso divorceth his wife (i.e. the woman with whom he has first come together) for another, causes her to become dissolute and brings fresh evil into the world to his own detriment. I believe this, and that belief alters my whole former valuation of what is good and lofty and what is bad and mean in life. What formerly seemed to me the best- a refined, elegant life, with passionate and poetic love, ex­tolled by all the poets and artists- all this has come to appear to me bad and repulsive. On the con­trary, what seems to me good is a laborious, frugal, rough life which moderates the lusts. High and important seems to me, not so much the human institution of marriage affixing the external seal of legality on a certain union of a man and woman, as the union itself of any man and woman, which once it has been accomplished cannot be infringed with­out infringing the will of God. If I may even now in a moment of forgetfulness yield to adulterous desire, I can at any rate no longer (knowing the temptation which led me into that evil) serve it as I did formerly. I cannot desire and seek for physical idleness and a life of repletion which inflamed in me excessive desire; I cannot seek those amusements which inflame amatory lust- novels, verses, music, theatres, and balls, which formerly seemed to me not merely harmless but very noble amusements. I cannot leave my wife, knowing that leaving her is the first snare for me, for her, and for others; I cannot take part in the idle life of repletion led by others, I cannot take part in or promote those lustful amusements, novels, theatres, operas, balls, &c which serve as a snare for me and for others. I cannot encourage unmarried life for people who are ripe for marriage; I cannot be a party to the separation of husbands and wives; I cannot make distinctions between unions called marriages and those not so called; I cannot but consider holy and obligatory only the first marital Union which a man has formed.

그러나 이제 간음의 욕망이 나를 해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또한 이전에 나를 그것으로 인도하였던 유혹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에 굴복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유혹의 주된 이유는 사람들이 간음을 자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그들이 처음 함께한 배우자들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처음 결합하였던 남자 또는 여자를 버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금지하는 이혼임을 안다; 왜냐하면 첫번째 배우자에게서 버려진 남편들과 아내들은 세상의 모든 타락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나를 방탕함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고서, 나는 이제, 나의 내부에 간음에 대한 욕망이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감염되게 하였으며, 갖가지 교묘한 지식들로서 구실을 만들어 주던 야만적인 교육 외에도, 나를 끌어들인 주된 유혹은 나와 결합한 첫째 여자의 포기 그리고 버려져서 나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상태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유혹의 주된 힘은 나의 욕망에 있음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버려져서 나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욕망이 만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이해한다: ‘하나님이 최초에 인간을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므로 장성하여 부모을 떠나 그의 아내를 맞이할 것이니라. 이제 둘은 한 몸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합을 인간이 나눌 수 없음이니라.’ 나는 이제 일부일처제는 인류의 자연적 법칙이며 깨트릴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이제, 누구라도 다른 여자를 위하여 자신의 아내(즉, 그가 처음 함께한 여자)와 이혼하는 사람은 그녀가 방종하게 만들며 세상에 새로운 악을 가져와서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한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과거에 무엇이 선이며 고귀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악이고 비천한 것인가에 대한 나의 전체적인 평가를 바꾸어 버렸다. 이전에 내게 있어서 최선이라고 느껴지던 것- 모든 시인들과 예술가들에 의해서 찬양되던 세련되고 우아한 삶, 정열적이며 시적인 사랑- 이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 악하며 혐오스러워 보인다. 반대로, 나에게 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정욕을 절제하는 근면하고, 검소하며, 소박한 삶이다. 나에게 고귀하고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특정한 결합에 대해 외적인 적법성의 표시를 부여하는 인간의 결혼제도가 아니라, 어떤 남자와 여자의 결합 그 자체이며, 한 번 맺어지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는 파괴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내가 심지어 망각의 순간에 간음의 욕망에 사로잡힐지라도, 나는 어쨌든 더 이상(나를 그런 악으로 이끈 유혹을 알고서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런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없다. 나는 나의 내면에서 과도한 욕망을 타오르게 하는 육체적인 게으름이나 사치스러운 삶을 바라거나 추구할 수 없다; 나는 호색적인 정욕을 타오르게 하는 그런 오락들- 소설들, 시들, 음악, 극장, 그리고 무도회, 이것들은 이전의 나에게는 해로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매우 고상한 오락들이었지만- 을 추구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아내를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를 버린다는 것은 바로 나에게, 그녀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유혹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영위하는 사치스러우며 게으른 삶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정욕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혹으로 작용하는 오락들, 소설들, 극장들, 오페라들, 무도회들, 및 기타의 것들에 참여할 수 없다. 나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 사람들에게 미혼의 삶을 장려할 수 없다; 나는 남편들과 아내들의 이별에 편을 들 수 없다; 나는 결혼이라고 부르는 결합들과 그렇게 불려지지 않는 결합들 사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나는 오직 사람이 만든 첫번째의 결혼에 의한 결합을 신성하며 의무적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Christ has shown me that a third temptation ruining my welfare is the temptation of the oath. I cannot but believe this, and therefore cannot now, as I did formerly, myself take an oath to anyone or about anything, and I cannot now, as I did for­merly, justify myself for taking an oath by saying that it does no one any harm, that everybody does it, that it is necessary for the State, or that it will be worse for me and for others if I refuse this demand. I now know that it is an evil for me and for others, and I cannot do it.

그리스도는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제 3의 유혹이 맹세의 유혹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은 어느 누구나 어느 것에 대해서도 맹세를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과거에 그랬듯이, 맹세는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 누구나 맹세를 한다, 맹세는 국가에 필요한 것이다, 아니, 만일 내가 이 명령을 거부한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악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맹세를 하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맹세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행할 수 없다.

But not only do I know this, I now also know the temptation which led me into that evil, and I can­not serve it. I know that the deception consists in this, that people promise in advance to obey what some man or some men order; whereas man must never obey anyone but God. I now know that the most terrible evils in the world by their results, are murders in war, imprisonments, executions, and tortures, which are performed thanks only to this temptation whereby responsibility is lifted from those who commit the evil. Remembering many and many evils which made me blame and dislike people, I now see that they were all caused by the oath- the acknowledgement of an obligation to submit oneself to the will of others. I now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words: Whatever is more than a simple assertion or denial, 'Yes' or 'No', all that is beyond that, every promise given in advance, is evil. Understanding this, I believe that the oath ruins my welfare and that of others, and this belief changes my valuation of what is good and evil, lofty and mean. All that formerly seemed to be good and lofty, the duty of loyalty to the Govern­ment confirmed by an oath of allegiance, the ex­tortion of such oaths from others, and all actions contrary to conscience performed under the in­fluence of such oaths- all this now appears to me both bad and mean. And therefore I cannot now any longer depart from Christ's command which forbids the oath. I cannot any longer swear to any­one, or compel others to swear, or take part in making other people either themselves swear or compel others to swear, and I cannot look upon the oath as either valuable or necessary, or even in­nocuous as many suppose it to be.

그러나 나는 이것을 알 뿐만 아니라, 나는 이제 또한, 나를 그러한 악으로 이끈 유혹들을 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복종할 수 없다. 나는 기만이 이런 점에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람들이 명령하는 것을 복종할 것을 미리 약속한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결코 복종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악들은, 전쟁, 투옥들, 사형들, 그리고 고문들에 의한 살인들이며, 그것들은 책임이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전가되게 만드는 오직 맹세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실행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사람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게 만든 너무나 많은 악들을 기억해보면, 나는 이제, 그것들이 모두 맹세-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맡기겠다는 의무의 인정- 가 원인이었음을 안다. 나는 이제 이 말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단순한 긍정 또는 부정, ‘예’ 또는 ‘아니오’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을 벗어나는 모든 것은, 사전에 행하는 모든 약속은, 악이다. 이것을 이해하면서, 나는 맹세가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파괴하며, 이런 믿음이 선과 악, 그리고 고귀한 것과 천한 것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는다. 과거에 선하고 고귀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 충성의 맹세로서 확인되는 정부에 대한 충성의 의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그러한 맹세들의 강요, 그리고 그런 맹세들의 영향아래서 행해지는 양심에 대치되는 모든 행위들- 이 모든 것은 이제 나에게는 악한 것이며 천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어느 누구에게도 맹세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맹세하라고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맹세하도록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맹세하도록 강요하도록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맹세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가치가 있거나 필요하다거나, 또는 심지어 해롭지 않다고 여기게 할 수 없다.

Christ has shown me that a fourth temptation depriving me of welfare is that of resisting evil by means of violence applied to other people. I can­not but believe that this is an evil to me and to others and therefore I cannot consciously employ it, and cannot, as I used to, justify this evil on the ground that it is necessary for my defense and for that of others; nor can I now, at the first reminder that I am committing violence, do other than re­frain from it and stop it.

그리스도는 나의 행복을 빼앗는 제 4의 유혹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악에 저항하는 것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없으며, 그리고 내가 이전에 그랬듯이,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이것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런 악을 정당화할 수 없다; 아니 나는 이제, 내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는 순간, 그것을 중지하고 종식시키는 일 말고는 행할 수 없다.

But not only do I know this, I now also know the snare which led me into this evil. I now know that that temptation consists in the delusion that my life can be secured by defending myself and my pro­perty from other people.

그러나 나는 이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이제 또한, 나를 이런 악으로 이끄는 유혹을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이런 유혹은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 자신과 나의 재산을 방어함으로써 보장될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있다는 것을 안다.

I now know that a large part of the ills of man­kind proceeds from the fact that instead of doing work for one another, men not only do not do so, but they deprive themselves of work and seize by violence the work of others. Remembering now all the evil I have done to myself and to others and all the evil that the others did, I see that a large part of that evil proceeded from the fact that we considered it possible to secure and improve our lives by defending them. I also now understand the words: Man is born not that others may work for him, but that he should work for others; and also the meaning of the words: the laborer is worthy of his subsistence. I now believe that my welfare and that of other people is only possible when each one labors not for himself but for others, and not only ceases to withhold his work from others but gives it to anyone who needs it. This belief has changed my valuation of what is good and evil and mean. All that formerly seemed to me good and lofty- riches, property of all kinds, honors, con­sciousness of one's own dignity and rights, has all become evil and mean; while all that seemed to me evil and mean- work done for others, poverty, humiliation, renunciation of all property and all rights- has become good and lofty in my eyes. If now I may, in moments of forgetfulness, be tempted to use violence to defend myself and others, or my own or other people's property, I can at any rate no longer calmly and consciously serve this tempta­tion which ruins me and others, and cannot acquire property. I cannot employ any kind of physical force against anyone except a child, and then only in order to save it from immediately impending danger. I cannot take part in any Governmental activity that has for its aim the defense of people and their property by violence; I cannot be a judge or take part in trials, or be an official, or serve in any Government office; nor can I help others to take part in law-courts and Government offices.

나는 이제, 인류의 불행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노동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노동을 폭력으로 빼앗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모든 악과 다른 사람들이 행한 모든 악들을 기억하면서, 그러한 악의 대부분이 우리가 삶들을 방어함으로써 우리의 삶들을 보장하며 개선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이제, 이 말을 이해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말의 뜻도 이해한다: 노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식을 먹을 가치가 있다. 나는 이제,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오직 제각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노동하며, 그리고 자신의 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아끼기를 그만둘 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이런 믿음이 선한 것 그리고 악한 것 그리고 천한 것에 대한 나의 가치기준을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나에게 선하며 고귀하다고 느껴지던 모든 것- 부유함, 모든 종류의 재산, 명예, 스스로의 위엄과 권리들- 은 도두 악한 것이며 천한 것이 되었다; 한편 나에게 악하며 천하다고 느껴지던 모든 것- 다른 사람들을 위한 노동, 빈곤, 겸손, 모든 재산과 모든 권리의 포기- 은 나의 눈에 선하며 고귀한 것이 되었다. 만일 이제 내가, 망각의 순간에,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또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도록 유혹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어쨌든 더 이상 조용히 그리고 의식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이런 유혹에 굴복할 수 없으며, 재산을 형성할 수 없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든지 어떤 종류의 신체적 폭력도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오직 즉각적으로 닥쳐오는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구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할 것이다. 나는 폭력에 의하여 사람들이나 그들의 재산의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정부차원의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다; 나는 법관이 되거나 재판에 참여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정부의 직책에 봉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재판이나 정부의 직책에 참여하는 것을 도울 수 없다.

Christ showed me that the fifth temptation which deprives me of welfare is the separation we make of our own from other nations. I cannot but believe this, and therefore if in a moment of forgetfulness feelings of enmity towards a man of another nation may arise within me, yet in my calm moments I can no longer fail to acknowledge that feeling to be a false one, and I cannot justify myself, as I used to do, by claiming the superiority of my own people to others, basing this on the errors, cruelties, and barbarities of another nation, nor can I, at the first reminder of this, fail to try to be more friendly to a foreigner than to a compatriot.

그리스도는 나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가는 제 5의 유혹은 우리 자신의 민족과 다른 민족들에 대해 차이를 두는 것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망각의 순간에 다른 민족의 사람을 향한 증오의 감정들이 나의 안에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냉정을 찾은 순간에는 나는 더 이상 그런 감정이 옳지 못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전처럼, 나 자신의 민족이 다른 민족들 보다도 우월함을 주장함으로써, 이로서 다른 민족의 오류들, 잔인함들, 그리고 야만성들을 말하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런 차이를 느끼려 하자마자, 동포보다 외국인에게 더욱 친절해 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But not only do I now know that my separation from other nations is an evil ruining my welfare, but I also know the temptation that led me into that evil, and I can no longer, as I did formerly, con­sciously and quietly serve it. I know that that temptation lies in the delusion that my welfare is bound up only with that of the people of my own nation, and not with that of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I now know that my union with other people cannot be severed by a line of frontier and by Government decrees about my belonging to this or that nation. I now know that all men everywhere are equals and brothers. Remembering now all the evil I have done, suffered, and seen, resulting from the enmity of nations, it is clear to me that the cause of it all lay in the gross fraud called patriotism and love of one's country. Remembering my education I now see that a feeling of hostility to other nations, a feeling of separation from them, was never really natural to me but that all these evil feelings were artificially inoculated into me by an insane education. I now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words: Do good to your enemies; behave to them as to your own people. You are all children of one Father; so be like your Father, i.e. do not make distinctions between your own people and other peoples; be the same with them all. I now understand that my welfare is only possible if I acknowledge my unity with all the people of the world without exception. I believe this. And that belief has changed my whole valuation of what is good and evil, lofty and mean. What seemed to me good and lofty- love of fatherland, of one's own people, of one's State, and service of it to the detri­ment of the welfare of other peoples, the military achievements of men, all this now appears to me repulsive and pitiable. What seemed to me bad and shameful- rejection of fatherland, and cosmopolitanism- now appears to me, on the contrary, good and noble. If now, in a moment of forgetfulness, I can cooperate with a Russian rather than with a foreigner and can desire the success of the Russian State or nation, I can no longer in calm moments serve that temptation which ruins me and other people. I cannot acknowledge any States or nations, cannot take part in the quarrels between nations and States either by writings or (even less) by serving any Government. I cannot take part in all those affairs which are based on the diversity of nations, not in custom-houses and the collection of taxes, nor in the preparation of military stores and ammunition, nor in any activity for creating arma­ments, nor in military service, nor (still less) in war itself against other nations- and I cannot help other people to do so.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다른 민족과 구별하는 것이 나의 행복을 파괴하는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또한 나를 그러한 악으로 이끄는 유혹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전에 그랬듯이, 더 이상 의식적으로 그리고 묵묵히 그것을 따를 수 없다. 그런 유혹은 나의 행복이 오직 나 자신의 민족의 사람들의 행복과 함께 하며, 지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생각에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과 나의 연합은 국경선과 내가 이 국가 또는 저 국가에 귀속된다는 정부의 명령들에 의하여 금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어느 곳에서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형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민족들간의 적대감을 통해서 내가 행했으며, 겪었고, 보았던 모든 악들을 기억해보니, 그 모든 악의 원인은 애국심과 조국애라고 불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기에 있음을 나는 이제 명백히 안다. 나는 이제,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적대 감정은, 그들을 차별하는 감정은, 결코 진실로 내게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악한 감정들은 터무니 없는 교육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나에게 주입되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너희 적에게 선을 행하라; 그들을 너희 자신의 민족처럼 대하라. 너희는 모두 한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처럼 되라, 즉, 너희 자신의 민족과 다른 민족들 사이에 구별을 두지 말라; 그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하라. 나는 이제, 만일 내가 오직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예외 없이 나와의 연합을 인정한다면, 나의 행복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선한 것과 악한 것, 고귀한 것과 천한 것에 대한 나의 전체 가치관을 바꾸었다. 나에게 선하며 고귀하다고 느껴지던 것- 조국에 대한,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기 국가에 대한 사랑, 그리고 다른 민족들의 행복을 해치게 하는 봉사, 사람들의 군사적 업적, 이 모든 것은 이제 내게는 혐오스럽고 불쌍한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악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던 것- 조국의 거부 그리고 세계주의- 은 이제 반대로 내게 있어서 선하며 고상하게 느껴진다. 만일 이제 망각의 순간에 내가 외국인 보다는 러시아인과 협력할 수 있으며 러시아 정부나 국민의 성공만을 바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냉정함을 찾게 되는 순간에 더 이상 나와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그런 유혹에 복종할 수 없다. 나는 어떤 국가들이나 민족들을 인정할 수 없으며, 국가들 간이나 민족들 간의 분쟁에, 말이나 글로서 또는(심지어 더욱더) 어떤 정부에 복종함으로써, 참여할 수 없다. 나는 국가들 사이의 차이에 기초를 둔 모든 문제들- 세관, 세금의 징수, 군사물품과 무기의 비축, 무기 제조를 위한 활동, 병역의무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 대한 전쟁 자체 (더욱 더)까지- 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도울 수 없다.

I have now understood wherein my welfare lies; I believe in this and therefore cannot do what undoubtedly deprives me of welfare.

나는 이제, 나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에게서 분명히 행복을 빼앗아 가는 일을 행할 수 없다.

But not only do I believe that I ought to live thus; I also believe that if I live so my life will receive for me the only possible, reasonable, and joyful mean­ing indestructible by death.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나는 또한, 만일 내가 이렇게 산다면 나의 삶은 나을 위해서 유일하게 가능하며, 합리적이며, 그리고 즐거운 그리고 죽음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게 됨을 믿는다.

I believe my rational life, my light, was only given me in order to shine before men, not by words but by good works, that men may praise the Father (Matt. v. 16). I believe that my life and knowledge of truth is a talent given me to use, and this talent is a fire which is only a fire when it burns. I believe that I am Nineveh in relation to other Jonahs from whom I have learnt and am still learning the truth, but that I too am a Jonah in relation to other Ninevites to whom I must convey the truth. I believe that the sole meaning of my life lies in living by that light which is within me, and in not hiding it under a bushel but holding it high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it. And this belief gives me fresh strength to fulfill Christ's teaching, and destroys those hindrances which formerly blocked my path.

나의 이성적인 삶은, 즉 나의 빛은, 말로서가 아니라 선한 행위들로서, 오직 사람들 앞에 비추기 위해서, 그리하여 사람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마태복음 5장 16절), 내게 주어진 것임을 나는 믿는다. 나의 삶과 진리에 대한 지식은 사용하도록 내게 주어진 재능이며, 이 재능은 불이며 이 불은 오직 타고 있을 때 불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다른 요나들과 관계있는 니느웨 사람이며 아직도 진리를 배우고 있지만, 다른 니느웨 사람들과 관계있는 요나이며, 나는 반드시 그들에게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의 삶의 유일한 의미는 나의 안에 있는 빛에 의해 삶에 있으며, 그 빛을 발등상 아래 두지 않고 사람들 앞에 높이 들어서 그들이 볼 수 있도록 함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내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주며, 이전에 나의 길을 막았던 장애물들을 파괴한다.

The very thing which formerly militated against the truth and practicability of Christ's teaching and drove me away from it- the possibility of priva­tions, sufferings, and death, inflicted by those who do not know his teaching- that very thing now confirms for me the truth of the teaching and attracts me to it.

이전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진리와 실행가능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바로 그것- 그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가해지는 궁핍, 고통, 그리고 죽음의 가능성- 바로 그것이 이제 나에게 있어서 가르침의 진리를 확증해 주며 나를 진리에 끌어당긴다.

Christ said, 'When you exalt the son of man you will all be drawn to me', and I felt that I was irresistibly drawn to him. He also said, 'The truth will make you free', and I felt myself completely free.

그리스도는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일 때, 너희는 모두 나에게 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리스도에게 강하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또한 말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완전히 자유로움을 느꼈다.

'If a hostile army or wicked people attack me', thought I formerly, 'and I do not defend myself, they will despoil me, shame me, and torment and kill me and my neighbors', and this seemed to me terrible. But now all that formerly disturbed me seems to me joyful and confirms the truth. I now know that I and the enemy and the so-called criminals and robbers are all men, all just sons of man as myself, who love good and hate evil as I do, and who also live on the eve of death as I do, seek­ing salvation and with no possibility of finding it except in Christ's teaching. All evil that they do me will be evil for themselves, and therefore they should do me good. If the truth is unknown to them and they do evil considering it good, I know the truth only in order to show it to those who do not know it. But I cannot show it them except by renouncing participation in evil and acknowledging the truth by my actions.

이전에 나는, ‘만일 적군이나 사악한 사람들이 나를 공격함에도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를 약탈하고, 나에게 수치를 주며, 나와 나의 이웃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은 내게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나를 곤란스럽게 한 모든 것이 내게 있어서 즐겁게 느껴지며 진리를 확증해 준다. 나는 이제, 나 그리고 적 그리고 소위 범죄자들과 강도들은 모두 사람들이며, 모두 다 바로 나처럼 사람의 아들이며, 그들은 나처럼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며, 또한 그들은 나처럼 죽음을 직면하고 살고 있으며, 구원을 찾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외에는 그것을 찾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행하는 모든 악은 그들 자신에게도 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에게 선을 행할 것이다. 만일 진리가 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들이 악을 선이라고 여기면서 악을 행한다면, 나는 오직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주기 위하여 진리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악에 참여함을 포기함과 나의 행동으로서 진리를 인정함을 제외하고서는 진리를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없다.

'Enemies will come: Germans, Turks, savages, and if you do not fight they will slaughter you!' That is not true. If there were a society of Christians doing no harm to anyone and giving the whole surplus of their work to others, no enemies- neither Germans, nor Turks, nor savages- would kill and torture such people. They would take for them­selves all that those people (for whom no distinction existed between Russians, Germans, Turks, or savages) were in any case giving away. If Christians are living in a non-Christian society which defends itself by war, and the Christians are called on to take part in the war, then an opportunity occurs for those Christians to help those who do not know the truth. Christians only know the truth in order to testify to it before those who know it not. And they can only testify by action. That action is the repudiation of war and the doing of good to people, without distinguishing between so-called enemies and one's own people.

‘적들이 쳐들어 올 것이다: 독일인들, 터어키인들, 야만인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싸우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신을 죽일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만일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으며 그들의 노동의 잉여분 전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독교인들의 사회가 있다면, 어떤 적들도- 독일인들도, 터어키인들도, 야만인들도- 그러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그들에겐 러시아인들, 독일인들, 또는 야만인들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내놓은 것을 그들의 것으로 취할 것이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의지하여 스스로를 방어하는 비기독교인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전쟁에 참가하도록 소집된다면, 그들 기독교인에게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진리를 모르는 사람을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직 행위로서 증거할 수 있다. 그런 행위는 전쟁의 거부이며, 소위 적과 자기 민족을 구별함이 없이,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But if the foreign enemy does not attack the Christian family, then his own wicked neighbors will, and will pillage, torture, and kill him and those dear to him if they do not defend themselves.' This again is not true. If all the members of the family are Christians and therefore devote their lives to serving others, no man will be found so senseless as to deprive of food or to kill those who serve him. Miklukha-Maklay settled among the most bestial savages, so it is said, and they not only did not kill him, but grew fond of him and submitted to him, merely because he was not afraid of them, demanded nothing of them, and did them good. If a Christian lives with an un-Christian family and relations who defend themselves and their property by violence and the Christian is called on to take part in that defense, this demand is for him a call to the fulfillment of his duty in life. A Christian knows the truth only to show it to others, and most of all to those near him and bound to him by ties of relation­ship and friendship, and a Christian can show the truth by not falling into the error others have fallen into, by not ranging himself either on the side of the attackers or on the side of the defenders, but by giving all to others and showing by his life that he wants nothing except to fulfill the will of God, and that he fears nothing except to depart from that will.

그러나 만일 외적이 기독교인의 가족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자기 동족 중의 악한 이웃들이 공격할 것이며, 그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약탈하고 고문하고, 죽일 것이다.’ 이것 또한 진실이 아니다. 만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기독교인이며 그러므로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에 바치고 있다면, 자신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의 식량을 빼앗거나 그들을 살해할 만큼 몰상식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들리는 바로, 미클루카 마클레이는 가장 야만적인 종족 사이에 정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에게 복종하였다, 이는 왜냐하면 단순히 그가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선을 행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기독교인이 폭력으로 자신들과 재산을 방어하는 비기독교인 가족 및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 기도교인이 그런 방어에 참여하도록 요청을 받는다면, 이런 요구는 그에게 있어서 삶에 있어서 그의 의무의 실행에 대한 부름이다. 기독교인은 오직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주위에 있으며 가족관계 또는 우정이라는 유대로 묶여있는 사람들을 위함이며,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에 빠져들지 않음으로써, 공격하는 편에도 방어하는 편에도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그러나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함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짐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리를 보여줄 수 있다.

'But the Government cannot allow members of society to refuse to acknowledge the foundations of the State organization and to evade the per­formance of the duties of every citizen. The Govern­ment demands from Christians oaths, participation in legal proceedings and military service, and for a refusal of these things subjects them to punishment, banishment, imprisonment, or even execution.' And again this demand made by Government will only serve for a Christian as a call to fulfill the busi­ness of his life. For a Christian the Government's demand is the demand of people who do not know the truth. And therefore a Christian who knows it cannot but bear witness to it before those who know it not. Violence, imprisonment, or execution, to which a Christian is subjected in consequence of this, affords him the possibility of witnessing not in words but in deeds. Every violence by war, robbery, or execution, is not a result of the irrational forces of nature, but is perpetrated by erring people, deprived of knowledge of the truth. And therefore the greater the evil these people do to a Christian, the further they are from the truth, the more un­fortunate are they and the more do they need a knowledge of the truth. But a Christian cannot impart that knowledge to men otherwise than by refraining from the error in which those dwell who do him evil, and by returning good for evil. And that alone is the whole business of a Christian's life, and its whole meaning, which death cannot destroy.

‘그러나 정부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국가 조직의 기초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모든 시민의 의무들의 실행을 회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정부는 기독교인들에게 맹세, 법적 절차들에 참여함, 그리고 병역의무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거부에 대하여 그들을 처벌, 유형, 또는 심지어 사형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부에 의해 내려지는 이런 요구들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오직 그의 삶의 임무를 실행할 것에 대한 부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정부의 요구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요구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고 있는 기독교인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진리의 증거의 결과로 인해 기독교인이 처해지는 폭력, 투옥, 또는 사형은, 그에게 말로 증거함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전쟁, 강도질, 또는 사형에 의한 모든 폭력은 자연의 불가항력적인 힘의 결과가 아니라, 진리를 알지 못하여 죄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기독교인에게 악을 많이 행하면 행할수록, 진리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고, 그들은 더욱 불행하며, 그들은 더욱 진리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 외에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전해줄 수 없다. 그리고 오직 이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전체 임무이며, 전체 의미이다, 그리고 죽음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People bound together by a delusion form, as it were, a collective cohesive mass. The cohesion of that mass is the world's evil. All the reasonable activity of humanity is directed towards the destruction of this cohesion.

기만으로써 함께 묶인 사람들은, 이를테면, 집합적으로 응집된 덩어리이다. 그러한 덩어리의 응집력은 세상의 악이다. 인류의 모든 합리적인 활동은 이런 응집력의 파괴를 향하여 집중된다.

All revolutions are attempts to break up that mass by violence. It seems to people that if they break up that mass it will cease to be a mass, and therefore they strike at it; but by trying to break it they only forge it closer. The cohesion of the particles is not destroyed until the inner force passes from the mass to the particles and obliges them to separate from it.

모든 혁명들은 이런 덩어리를 폭력으로써 분쇄하려는 시도들이다. 만일 그들이 이 덩어리를 분쇄한다면 그것이 덩어리이기를 멈출 것처럼 사람들에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덩어리를 두들긴다; 그러나 그것을 분쇄하려고 시도함으로써 그들은 그것을 더욱 조밀하게 단조한다. 내적인 힘이 덩어리로부터 입자들에게 전해져서 입자들이 덩어리로부터 떨어지게 만들기 전까지는, 입자들의 응집력은 파괴되지 않는다.

The strength of that cohesion of people lies in a falsehood, a fraud. The force freeing each particle of the human cohesive mass is truth. Man can hand on the truth only by deeds of truth.

사람들에 대한 그와 같은 응집력은 거짓, 즉 기만에 있다. 각각의 입자들을 사람의 응집하는 덩어리에서 분리하는 힘은 진리이다. 사람은 오직 진리를 행함으로써 진리를 전할 수 있다.

Only deeds of truth bringing light into man's consciousness, destroy the cohesion of deception and separate men one after another from the mass bound together by the cohesion of deception.

사람의 의식 안으로 빛을 가져가는 진리를 행함만이 기만의 응집력을 파괴하며, 기만이라는 응집력으로 함께 묶여 있는 덩어리로부터 한 사람씩 분리한다.

And this work has been going on already for 1800 years. From the time the commandments of Christ were laid before humanity that work began, and it will not end until all has been accomplished, as Christ said (Matt. v. 18).

그리고 이 작업은 이미 1800년 동안 진행되어 오고 있다. 그리스도의 계명들이 인류 앞에 선언된 순간부터 이 작업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말한대로(마태복음 5장 18절), 모두가 성취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The Church formed of those who thought to unite people into one by asserting of themselves with oaths that they possessed the truth, has long since died. But the Church formed of men joined in union not by promises nor by anointings but by deeds of truth and goodness, this Church has always lived and will live. This Church, now as heretofore, is formed not of those who say, Lord, Lord! yet work iniquity (Matt. vii. 21, 23), but of those who hear Christ's words and do them. The members of this Church know that it is only necessary for them not to infringe the unity of the son of man, for their life to be a blessing, and that this blessedness is only infringed by the non-fulfillment of the commandments of Christ. And therefore members of the Church cannot but fulfill those commandments and teach others to fulfill them.

자신들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맹세들을 통해서 스스로 단언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로 연합하려는 생각을 하던 사람들로부터 구성된 교회는,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나 약속에 의해서 그리고 기름부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와 선을 행함으로써 연합하여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교회는, 이런 교회는 언제나 살아 왔으며 살아 있을 것이다. 이런 교회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주여! 주여! 말하면서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마태복음 7장 21, 23절),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구성된다. 이런 교회의 구성원들은 사람의 아들의 연합을 파괴하지 않는 것, 즉, 그들의 삶이 행복할 것이 오직 필요할 뿐이며, 이런 행복은 오직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파괴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러한 계명들을 실행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다.

Whether there are now few or many such people, that is the Church which nothing can overcome and to which all men will be united.

오늘날 이러한 사람들이 적든 많든, 이것이 바로 어느것도 억누를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연합될 수 있는 교회이다.

'Fear not, little flock, for it is your Father's good pleasure to give you the kingdom' (Luke xii. 32).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느니라.’(누가복음 12장32절)

Moscow, 22 January 1884.

모스크바, 1884년 1월 22일.

   
       
   

 ] 위로 ] 서문 ] I. 복음 교훈의 열쇠 ] II. 무저항의 명령 ] III.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 ] IV. 그리스도 가르침의 오해 ] V. 예수와 모세의 율법 ] VI. 다섯 가지 계명 ] VII. 거짓 교리 ] VIII. 삶의 길 ] IX. 신앙과 행위 ] X. 나의 멍에는 가볍다 ] XI. 죽은 교회 ] [ XII. 신앙이란 무엇인가? ] Notes ] Maude의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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