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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el PEACE Prize Winners 


노벨 평화상 수상자

Chamberlain, Sir (Joseph) Austen

체임벌린

Chamberlain, Sir (Joseph) Austen (b. Oct. 16, 1863, Birmingham, Warwickshire, Eng.--d. March 16, 1937, London), British foreign secretary from 1924 to 1929, who helped bring about the Locarno Pact (1925), a group of treaties intended to secure peace in western Europe by eliminating the possibility of border disputes involving Germany. The pact gained for Chamberlain a share (with Vice Pres. Charles Gates Dawes of the United States) of the Nobel Peace Prize for 1925.

The eldest son of the statesman Joseph Chamberlain, Austen was half-brother to the future prime minister Neville Chamberlain. Entering the House of Commons in 1892, he rose to be postmaster general (1902) and chancellor of the exchequer (1903-05). He was a strong candidate to succeed former prime minister Arthur James Balfour as Conservative Party leader (1911) but withdrew in favour of Bonar Law. During World War I, Chamberlain was secretary of state for India (1915-17) and a member of the war Cabinet (1918-19). After the war, he became chancellor of the exchequer once more (1919-21) and lord privy seal (1921-22). From March 1921 until October 1922 he was Conservative Party leader. He then remained outside the government during the ministries of Bonar Law and Stanley Baldwin (1922-24) but returned to office as foreign secretary in Baldwin's second government (1924-29).

The Locarno Pact, concluded on Chamberlain's 62nd birthday (Oct. 16, 1925) by Great Britain, France, Italy, Belgium, and Germany, was the high point of his foreign secretaryship; he lost popularity after the failure of the Geneva Conference on naval limitations (August 1927) and the abortive and needlessly secret Anglo-French disarmament negotiations (July 1928). He left office with Stanley Baldwin's second ministry in June 1929, returned briefly (August-October 1931) as first lord of the admiralty, and then passed the rest of his life as an elder statesman.

 

체임벌린 (Sir (Joseph) Austen Chamberlain).

1863. 10. 16 잉글랜드 워릭셔 버밍엄~1937. 3. 16 런던.

영국의 정치가.

1924~29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체임벌린은 독일과 관련된 국경분쟁의 가능성을 제거하여 서유럽에서의 평화확보에 목적을 둔 로카르노 조약(1925)을 성립시키는 데 공헌했다. 성공적인 조약체결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어 1925년 미국의 찰스 게이츠 도스 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정치가 조지프 체임벌린의 장남이며, 후에 총리가 된 네빌 체임벌린의 이복형이었다. 1892년 하원에 진출한 그는 1902년에 체신장관이 되었고, 1903~ 05년에는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1911년 전 총리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맡았던 보수당 당수직을 계승할 강력한 후보였지만, 보너 로를 지지하여 사퇴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인 1915~17년 인도 담당 국무장관과 1918~19년 전시내각의 국무위원을 지냈다. 전후에는 다시 1919~21년 재무장관, 1921~22년 옥새상서를 역임했고, 1921년 3월부터 1922년 10월까지 보수당 당수를 지냈다. 그후 1922~24년 보너 로와 스탠리 볼드윈의 연합내각 시절에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1924~29년 볼드윈의 2차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어 관직에 복귀했다. 체임벌린의 62회 생일인 1925년 10월 16일 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독일에 의해 체결된 로카르노 조약은 그의 외무장관 시절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1927년 8월 해군 감축에 관한 제네바 회의가 실패로 돌아가고 1928년 7월 영국과 프랑스의 비밀군축협상이 유산된 후 인기를 잃었다. 1929년 6월 스탠리 볼드윈의 2차 내각의 사퇴와 함께 체임벌린도 정계를 떠났다. 1931년 8월부터 10월까지 잠시 해군장관으로 복귀한 것을 제외하고 여생을 원로 정치인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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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was last modified 2001/09/19